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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선덕여왕>의 연출가 김승환 [No.76]

글 |정세원 사진 |이맹호 2010-02-02 7,830

역사를 통해 미래를 들여다본다

 

삼한일통의 허리를 강화했던 시대. 진흥왕에서 시작해 27대 선덕여왕이 우리 역사 속 최초의 여왕으로 등극하기까지의 과정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며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우쳐준 MBC 드라마 <선덕여왕>이 2010년 1월 뮤지컬로 탄생한다. 뮤지컬 <선덕여왕>은 MBC가 자체 기획·제작하는 첫 번째 창작뮤지컬로서 이전의 외부 프로덕션이 제작에 참여했던 <대장금>, <프란체스카>와 구별된다. 뮤지컬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MBC 최종미 PD와 연출을 맡은 MBC 예능국 PD 출신의 김승환 MMCT 대표를 비롯해 MBC의 방송 인력이 대거 투입되었다. “50여 년 동안 축적된 MBC의 기술력과 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음악, 철학적 재미를 더한 현대적이면서도 미래적인 뮤지컬”이라 자신하는 <선덕여왕>의 김승환 연출을 만났다.

 

 

PD 출신으로 알고 있다. 뮤지컬 <선덕여왕> 작업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대학 때 작곡을 전공해서 그런지 음악 작업에 대한 관심이 늘 많았다. 1987년에 MBC 예능국 PD로 입사한 후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세계로 가는 장학 퀴즈>, <우정의 무대>, <무한도전> 등을 연출하면서도 연출가로서의 마지막 작업은 뮤지컬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MBC에서 <대장금>을 뮤지컬로 제작할 때 <무한도전>을 하고 있어서 연출은 못했지만 <대장금>의 기획상을 받았다. <쇼뮤지컬 추석 판타지>를 연출하다가 올해 MBC의 투자를 받아 뮤지컬 전문회사 MMCT(Musical & Media Creative Technology)를 꾸리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컬계에 뛰어들었다.


뮤지컬 <선덕여왕>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3년 전부터 우리의 역사 콘텐츠를 이용한 뮤지컬 기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선덕여왕’이라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전부터 작곡가를 비롯한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어떤 드라마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음악과 이미지를 스케치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작업은 드라마 <선덕여왕>이 시작된 후에 진행됐다. 뮤지컬의 소재는 누구나 알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시청률 40퍼센트를 넘긴 <선덕여왕>은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훌륭한 아이템이었다. <아이다>처럼 역사 속 인물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데, ‘선덕여왕’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우리 역사 속 인물이었다. 또한 여자 주인공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아이다>, <미스 사이공>, <라 트라비아타>, <나비부인> 등 성공한 작품들의 주인공도 여자이지 않나. 불굴의 의지로 사랑과 성공을 거머쥐는 여자 주인공의 성공 스토리는 남자 주인공일 때보다 더 판타지적이고 드라마적이다. 그런 면에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신라의 여왕으로 거듭나는 선덕여왕의 영웅담은 내가 추구하는 뮤지컬과 잘 맞는 소재였다.

 

작품의 소재가 결정되기도 전에 음악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인가. 보통의 뮤지컬 작업 방식으로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상황을 먼저 설정해두는 거다. 모든 스토리에는 사랑이 있고 분노와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사랑 테마, 분노, 갈등, 환희의 테마로 음악 작업을 먼저 했는데, 메시지만 정해놓으면 어디에든 쓸 수 있는 심리 묘사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도 이별 노래 같지만 어찌 보면 사랑 노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여러 가지 접근 방법을 실험하고 멜로디를 붙여보면서 200여 곡의 테마를 만들어 놨다. <선덕여왕>에 사용된 10곡 이상의 넘버는 1년 전에 만들어진 테마다.

 

‘두 번째 달’의 김현보 씨를 작곡가로 투입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현보의 음악은 월드뮤직의 요소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아랍과 유럽의 선진 문물을 많이 받아들였던 <선덕여왕>의 시대 배경을 고려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음악과 스케일을 사용하면서도 한국 음악의 리듬에 신경을 많이 썼다. 김현보는 인도 리듬보다도 더 복잡하면서도 대중적인 요소가 많은 한국 전통 리듬인 7채 장단을 활용했다. 한국 음악의 리듬인 8분의 18박자, 엄밀히 8분의 36박자를 따르면서도 록과 재즈, 힙합 등을 접목시켜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도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수준의 한국적인 월드뮤직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극 중에 사용되는 드라마 OST의 ‘달을 가리운 해’나 ‘발밤발밤’, ‘바람꽃’ 등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곡들이다.

 

뮤지컬 경험이 전무한 MBC 코미디 작가 출신인 박선자 작가가 작업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뮤지컬을 완성할 수 없다고 본다.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의 작곡가는 알아도 작사가나 극작가는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 뮤지컬 역시 작곡가의 비중이 더 크다. <테마게임>을 함께 작업했던 박선자 작가는 완성도 있는 작품을 위해서라면 지치지 않고 수정·보완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한 뮤지컬 작업에서 꼭 필요한 덕목이다. <선덕여왕>은 드라마의 얼개가 있기 때문에 신을 구성할 때부터 작곡가와 작가가 서로의 상상력을 공유하면서 작업했다. 어떤 음악이 들어올지 상상하면서 대본을 썼고, 작곡가와 연출, 음악감독 등을 거쳐서 다시 작가에게 보내는 과정을 30여 차례 거쳐서 대본을 완성했다. 창작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공연 한 달 전에 대본과 음악, 무대디자인, 조명디자인 등이 완성되어 있으니 조금 놀라는 눈치다. 

 

62부작의 드라마를 뮤지컬로 옮기는 과정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스토리의 기본 골격은 드라마와 같지만 62부작을 120분으로 압축하지는 않았다. 노래 한 곡으로 드라마 15부까지의 내용을 표현할 수 있는 게 뮤지컬이지 않나. 선덕여왕의 이야기를 뮤지컬에 맞춰 새롭게 구성하면서 고민한 것은 작품이 철학적이면서도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무한도전>에서 지하철과 달리기를 하게 하고 목욕탕의 물을 퍼내게 하면서 자연의 법칙과 기계 문명에 대한 도전을 시도했고, <인생극장>을 통해서는 항상 선택해야 하는 인생의 메시지를 담았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에서는 과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다가 프롤로그에 ‘빛의 유전자’라는 새로운 내용을 더했다. 1,300년 전 유라시아 동쪽의 화랑 무리가 가졌던 긍정적인 유전자에 대한 노래를 통해 그 빛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해보자는 의미에서다. 마지막에 문노가 ‘이들의 유전자는 어디에 가 있느냐’고 물어본다. 상황만 다를 뿐 <선덕여왕> 속의 캐릭터와 인간관계는 과거에도,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다. 단순히 흥미 위주의 작품이 아니라 세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우리만의 메시지를 담아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작가, 작곡가를 비롯한 스태프들과 치열한 의견 충돌 과정을 겪었다.

 

드라마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는 관객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을 텐데.

그들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보지 않은 관객들의 반응도 생각하면서 혼자 프리뷰를 많이 한다. 드라마와 뮤지컬의 가장 큰 차이는 덕만이 노래를 한다는 것 아니겠나. 음악과 춤, 그리고 그 둘이 어우러진 무대를 통해 드라마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덕만이 남자에서 여자로, 화랑에서 공주로 바뀌는 중요한 장면인 개기일식은 뮤지컬에서도 만날 수 있다. 관객들은 실제로 극 중 인물들과 함께 빛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에 더 큰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인물들의 심리를 노래 한 곡에 담아낸 비제 장면이나, 드라마와는 달리 끝까지 살아남아 극의 흐름을 끌고가는 록커 문노, 20여 대의 LED 모니터로 만든 첨성대 등을 통해 뮤지컬만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선덕여왕> 이후 MMCT의 작업 방향은.

3월에 MBC에서 준비하는 역사 콘텐츠 드라마가 있는데 기획 단계부터 뮤지컬로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1년 전부터 원효를 소재로 한 뮤지컬도 기획하고 있고 언젠가 5대 판소리를 현대화해서 뮤지컬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6호 2010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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