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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올해의 창작자 연출가 이지나 [No.159]

글 |배경희 2017-01-06 5,235

여전히 최전선에 서 있는
관록의 수장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 문제적 연출가. 마이너 작품으로 흥행을 이끌어내는 상업적인 연출가. 드라마성보다 이미지성에 집중하는 확고한 무대 미학을 지닌 연출가. 지난 2003년 한국 뮤지컬 흥행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된 <그리스>를 통해 주류 연출가로 올라선 이지나는 지금껏 한 번도 중심에서 물러선 적이 없는 국내 대표 연출가다. 트렌드에 민감한 뮤지컬계에서 십여 년이 넘도록 매해 가장 많은 화제작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 보더라도 연출가로서 그녀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오랫동안 대표 연출가로 군림해 온 그를 다시 한 해의 창작자로 선정한 것은 올해 두 편의 신작 창작뮤지컬 <곤 투모로우>와 <도리안 그레이>를 나란히 무대에 올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지나 연출의 대표작을 언급할 때 <바람의 나라>나 <서편제>, <광화문연가> 같은 여러 편의 창작뮤지컬이 뒤따르는 것처럼, 창작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연출가이지만 한 해에 대형 신작을 두편 선보인 것은 분명 기록할 만한 성과다.


지난 9월에 공개된 두 편의 신작 가운데 먼저 베일을 벗은 <도리안 그레이>는 두말할 것 없이 올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이었다. 왜냐하면 조용신 예술감독과 김문정 음악감독이 개발해 온 프로젝트에 이지나 연출이 합류하는 것으로 꽤 탄탄한 크리에이티브 군단이 꾸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방대한 서사를 이미지로 압축해 내러티브를 끌고 가는 데 재능이 있는 이지나 연출이라면,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으로 가득 찬 유미주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를 무대화하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게 했다. 물론, 업계의 뜨거운 관심이 쏠린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다름 아닌 여전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아이돌 스타 김준수가 소속된 씨제스컬쳐(정확히 말하면 김준수가 소속된 씨제스엔터테인먼트의 공연 관련 계열사)가 제작하는 첫 번째 창작뮤지컬이라는 것. 배우 개개인의 매력을 잘 살려내는 것으로 정평이 난 이지나 연출가와 최고의 아이돌 스타 김준수가 어떤 시너지를 이룰지 또한 기대를 모으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기대 속에서 베일을 벗은 <도리안 그레이>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지나의 연출작은 언제나 호오가 갈린다는 점을 감안해도 <도리안 그레이>는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이 신기할 만큼 첨예하게 대립했는데, 특히 평단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쏟아졌다. 원작의 관념적인 언어를 무대 언어로 바꾸는 데 성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무대 미학을 보여주는 것마저 실패했다는 것. 오직 김준수의, 김준수에 의한, 김준수를 위한 작품이라는 혹평 또한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상업적인 장르인 뮤지컬 연출가로서 이지나의 최장점 중 하나는 관객층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란 점이다. 가령 지난 2011년에 초연된 주크박스 창작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 주요 관객층인 중장년층에게 어필하기 위해 이영훈 작곡가의 음악 자체를 컨셉으로 내세워 이례적인 성공을 거둔 것처럼 말이다(주로 이별 후의 감정을 회고하는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를 원곡 가사 그대로 사용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그에 맞는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리안 그레이>가 김준수를 컨셉으로 잡은 작품이 된 데 대한 답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작품의 핵심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컨셉을 잡아내며, 컨셉을 무대화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연출가. 이지나 연출은 아름다운 젊음을 지키기 위해 파멸에 이르는 나르시시스트를 연기한 김준수의 매력이 최대치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한 치의 주저 없이 달려 나갔다. 만약 이 이야기가 쉽게 납득이 안 된다면, 아이돌 스타로서 면모가 한껏 발휘되는 1막의 엔딩 신 ‘어게인스트 네이처’ 안무를 생각해 보라. 이지나 연출의 선택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도리안 그레이>는 예상 못한 실패가 아닌 의도된 성공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불과 열흘 간격으로 뒤이어 개막한 <곤 투모로우>는 어쩌면 관객 성향에서 <도리안 그레이>와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작품이다. 어두운 역사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로 다른 누구보다 뮤지컬 팬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이지나 연출의 선택은 새로운 스타일의 역사 뮤지컬을 선보이는 것. 조선말,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과 그를 암살한 홍종우의 이야기가 두 사람의 유대를 중심에 둔 홍콩 누아르 스타일로 탄생한 이유다. 절망의 시대에서 새 세상을 꿈꾸는 젊은 혁명가들의 이야기는 그 스스로가 아름다운 것에 열광하는 탐미주의자이기에 마니아 취향을 누구보다 잘 간파하고 있는 연출다운 선택이다. 또한 역사적 이야기를 다루지만 옛것을 고증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전하는 대신 컨템포러리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이지나다운 연출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곤 투모로우>에서 이지나 연출의 역량이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조명과 영상 등의 무대 미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시각적인 이미지로 극을 빠르게 진행시킨 점이다. 빈 무대에서 영상을 활용해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이지나 연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바람의 나라>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지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거나 높은 비평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의 컨셉, 또는 한계를 이해해 어떤 작품이든 그럴싸하게 ‘때깔 좋은 스타일’로 만들어내는 능력 면에서 따져보면, 이지나 연출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국내에서 뮤지컬이 대중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의 뮤지컬 키드들이 이지나 스타일을 벤치마킹하며 각자의 꿈을 키워갈 것이라는 것, 훗날 이지나 연출의 가장 큰 성취는 바로 이 점 아닐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9호 2016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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