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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NUMBER BEHIND] 채한울 작곡가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No.160]

정리 | 나윤정 사진제공 | 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 2016-12-13 5,155

‘시인과 그의 연인’. 박해림 작가를 통해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바로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이 생각났어요.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시인의 사랑’처럼, 결국 시인은 시로 말하고 그 시에 본인의 사랑도 연인도 생도 모두 존재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백석의 시만 가사로 삼은 작품을 써보자고 제안했죠. 그리고 슈만의 ‘시인의 사랑’이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같은 낭만주의 연가곡들을 이정표 삼아 작업을 시작했어요. 백석과 자야의 연애기인 1920년대에 유행했을 법한 음악들도 염두에 두고 작업했어요. 작가와 함께 일단 시를 노래로 만들고, 이 노래들로 드라마를 잡아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했으니 결국 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시인의 시인 셈이죠.



‘바다’
낭만 가곡 스타일을 충실히 참고한 곡이에요. 시인의 노래와 함께 피아노 반주가 바다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또 시인의 쓸쓸한 마음의 심상을 보여주었으면 했어요. 시인의 마음의 변화를 나타내는 이중창이 되길 바랐죠. 이 곡은 백석이 통영에서 자야에게 보낸 편지인데, 저는 이 내용이 처음엔 란이를 향한 것이었을 거란 전제를 놓고 작곡을 시작했어요. 노래는 자야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너스레를 떠는 칸초네로 시작해, 마음과 장소의 길들을 이동해 통영의 란이에게 향해요. 하지만 란에게 상심을 겪고 나서 결국 자신을 기다리고 받아 줄 자야에게 돌아오는 구조로 노래가 되었죠. 뿐만 아니라 애정 문제에서 갈팡질팡할 때조차 봄날처럼 변화무쌍하고 작은 감정의 순간에도 낭창낭창하게 흔들리는 시인의 불안한 감수성도 느껴지길 원했어요.



‘흰 밥과 가재미와 우린’
이 넘버는 원래 이 곡의 리프라이즈 자리에만 있었어요. 우리(작가와 작곡가) 안에서, 또 그들(극 중 백석과 자야)의 대화 안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이 꽃피던 시절이 존재했지만, 막상 장면으로 표현되진 않았어요. 이야기가 시간 순으로만 흐르는 것을 작가나 저나 경계하고 있던 상태였는데, 그 경계를 좀 풀더라도 넘버 안에서 이 사랑의 시간들이 깊어가는 장면들을 묶어 관객들과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현재 위치에 이 넘버를 만들자고 제안했죠. 마치 백석이 통영의 바다에서 자야에게 다시 돌아온 것처럼, 노래 중간에 고향으로 나선 길에서 자야에게 다시 돌아와요. 하지만 이 길에서 그녀를 떠올린 백석의 벅찬 마음은 통영의 바다에서와는 분명 또 다를 거예요.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어떤 노래는 분명 20년대 스윙에 조금이라도 근접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할 때 이 시가 눈에 들어왔어요. 백석의 시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는 사랑의 정점에서 백석이 연인에게 불러줄 행복한 세레나데가 되었어요. 중간 간주에서 백석이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으로 탭 브레이크를 해줬으면 하고 막연히 상상했는데, 트라이아웃 공연 섭외를 위해 이상이 배우와 대화를 하다가 그가 실제로 탭댄스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결국 그 상상이 이뤄져서 자야만을 위한 백석의 쇼 타임은 탭댄스로 모양을 갖추었죠. 지금은 탭댄스뿐만 아니라 각 백석들이 각자의 댄스로 자야와의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답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사랑과 눈의 역학 관계에 중점을 두고 쓴 곡이에요. ‘내가 아름다운 당신을 사랑해서 눈이 푹푹 나리는데, 언제 이 눈이 가장 쏟아질 듯 내리느냐?’ 이 지점을 찾고 싶었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도 사랑을 하는데 그 사랑이 나를 향한 것임이 확인되는 순간이 그 지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시의 주인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사랑이 나임을 확인하는 순간. 온 세상이 부시도록 눈은 푹푹 나립니다. 사랑이 눈으로 결실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눈은 모든 소요를 가라앉힐 고요한 힘이 있어요. 공연 제목과 같은 시이기도 하고, 무슨 음악을 써도 이 시 자체의 정서와 분위기를 해칠 수밖에 없다는 예상에 작업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으나 그 시대 영화에 나올 법한 음악을 쓰려 했고 당나귀 소리를 흉내 내면서 놀기도 하고(웃음), 후주 클라이맥스에서는 옛 영화들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정말 아름답게 춤춰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그리고 작품 말미 그들은 가장 하야니 빛나며 행복한 마음으로 떠나고, 우리도 그 마음으로 보내줄 수 있도록.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9호 2016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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