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되어가는 시간
뮤지컬 경력만 15년 차인 김수용은 베테랑 배우다. 스스로 배우라 부르길 주저하지만 정작 그의 생각을 듣고 일상을 살피다 보면 24시간을 온통 공연과 관련된 일에 몰두할 만큼 천상 배우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은 또 하나의 작품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다시 만난 <인터뷰>
THE MUSICAL <인터뷰>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vianj)
김수용 초연 기간이 짧아서 아쉬웠고, 연습도 짧게 해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생각보다 많이 못 해봤어요. 재공연으로 다른 해석, 심화된 해석을 연기해 보고 싶어서 복귀했어요.
THE MUSICAL 싱클레어를 연기하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김수용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어요. 퇴장이 없는 게 힘들어요.
“특히 어려웠던 부분은 인격이 바뀔 때예요. 초연 때 시간에 쫓기면서 인격이 바뀌는 장면을 만들었는데 손동작으로 변화를 주는 거예요. 나머지 싱클레어 친구들도 좋다고 받아들여 줘서 고맙게 풀었는데 이번엔 표정과 목소리만으로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있거든요. 동작을 통해 인격이 변하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정서와 상황으로 변화를 주는 걸 시도해 보고 있어요.”
THE MUSICAL <인터뷰>에서 인격들마다 살리려고 하는 디테일이 있나요? (zxcvb028)
김수용 각 인물에 어울리게 하려고 노력해요. 서 있는 모양새나 손가락 하나하나의 쓰임새나 목소리나 노래, 표정까지 그 인물에 가깝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THE MUSICAL 자신에게 <인터뷰>란? (joo13)
김수용 놀이터! 정말 마음껏 연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준 작품입니다.
THE MUSICAL <인터뷰>에서 가장 잘 맞는 것 같은 유진 역 배우가 있나요? (zxcvb028)
김수용 형들이랑 하면 제가 기댈 수 있는 게 좋아요.
“(이)건명 형은 ‘열혈유진’이에요. 모든 사건을 확실하고 명쾌하게 풀길 원하는 사람이에요. (이)선근이는 묵직하게 카운터 펀치를 날려요. 터프한 외모와 달리 연기는 쿨하게 툭툭 던지듯이 해요. 그러다 어떤 순간에는 강한 톤으로 훅 들어올 때가 있어요. (민)영기 형은 학자 같다고 할까요? 중저음 목소리라 중심이 잡힌 느낌이에요. 진짜 (작품 속) 글을 쓴 사람 같고요. 싱클레어를 학문적으로, 의학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게 보였어요. 제 입장에서는 기댈 수 있는 유진이고요. (임)병근이는 ‘선비유진’이에요. 어떻게 해도 다 받아줄 것 같아요. 날카로운 칼을 들고 공격한다면 칼날을 무디게 만들어서 여유롭게 자기 쪽으로 흡수하는 게 있어요. 받아서 녹이는 느낌이에요. 유진 역 배우들이 다 다르니까 정말 재밌어요.”
THE MUSICAL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넘버는 무엇입니까?
김수용 이번에 새로 생긴 노래 중에 '내 안의 괴물’.
“<인터뷰>에서 유진과 싸우지 않고 아름다운 선율로 듀엣곡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되는 건 이 곡이 유일해요. 앞으로 벌어질 일의 폭풍전야 같은 느낌을 주죠. ‘좋은 시간은 여기까지야!’ 하는 생각이 들게요. 둘이 화합하는 건 이때 한 번이에요. 저는 ‘내 이야기를 저 사람이 듣고 날 이해해 주는구나. 저 사람도 그러는 거네?’ 하면서 서로 간의 동의를 구하는 장면이라 생각해요. 두 사람의 생각이 혼합되는 게 좋았어요.”
THE MUSICAL 싱클레어는 매력적인 역이지만 3개월 공연에 원 캐스트라면 할 건가요? (언더스터디 없음) (ahaha7979)
김수용 무덤을 파겠습니다….
뮤지컬로 쌓은 흔적
THE MUSICAL 생애 처음 본 뮤지컬은? (ahaha7979)
김수용 뮤지컬의 길로 인도해 준 작품은 <더플레이>입니다.
“<더플레이>는 <오마이갓스>란 제목으로 초연했을 때부터 점점 발전되는 걸 본 작품이에요. 제가 좋아했던 (임)춘길 형, 서지영 누나, 방정식 형, 학교 선배인 (유)준상 형까지 출연진이 대단했어요. 우리 이야기를 우리말로 이질감 없이 표현했고, 재즈, 탭 등 여러 춤을 소화하는 게 멋있어 보였어요. ‘저 작품을 못하면 진짜 억울해서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조건 ‘난 뮤지컬을 꼭 할 거야!’ 했죠.”
THE MUSICAL 지금까지 했던 배역 중에서 다시 하고 싶은 배역이 있나요? (sksms587)
김수용 배역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다시 해보고 싶어요.
“<햄릿>의 햄릿 역과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랭구아르 역을 정말 다시 하고 싶어요. <햄릿>은 “연극 <햄릿>에 유인촌이 있다면 뮤지컬 <햄릿>에는 김수용이 있다”는 평생 한 번 들을까 말까 한 칭찬을 듣기도 했고, 생각보다 짧게 공연해서 아쉬움이 남아 있어요. <노트르담 드 파리>는 제가 투입될 당시 그랭구아르 역은 트리플 캐스트였고, 출연 회차도 적은 상황에서 급히 투입된 바람에 역할에 익숙해지려 할 때 끝났거든요. 게다가 당시 제작사가 부도나서 더 많은 공연을 하지 못했던 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어서 꼭 다시 하고 싶은 역할이에요.”
THE MUSICAL 하지 않았던 역 중 탐나는 캐릭터가 있다면? (skahah123)
김수용 모차르트도 해보고 싶고, 포도 해보고 싶어요. 뮤지컬로는 없지만 나온다면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가위손>의 에드워드요.
“<에드거 앨런 포>의 포를 하고 싶은 이유는 엔딩 노래 ‘영원(Immortal)’ 때문이에요. 노래가 정말 좋아서 불러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봤어요. 천재 작곡가인 모차르트의 삶을 제대로 연기해 보고 싶더라고요. 에드워드의 경우 사람들이 저한테 “니가 딱이다. 인간 같지 않은 건 딱이다!” 라고 했거든요. <헤드윅> 시즌3 할 때 연출이 김달중 형님이었는데 ‘가위손’ 마니아였어요. 오죽했으면 형님한테 “형이 만들어요. 그러면 내가 무조건 할게요.”라고 할 정도였겠어요. 무용극도 있는데 왜 뮤지컬이 아직 안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THE MUSICAL 맡은 캐릭터를 이해하거나 해석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나요? (yellowcomet)
김수용 대본을 많이 읽고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요. 표현하는 방식이 한 가지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열어놓고 있죠.
“대본에 있는 내용대로 쭉 가는 게 제 해석 방식이에요. 정방향이죠. 대본에 표현된 상황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해요. 대본을 처음 볼 때 제 배역 중심으로 보지 않고 독자가 된 기분으로 전체를 보면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봐요. 그래야 어떤 부분에서 뭘 표현해야 할지 알게 되거든요. 이 단계가 없으면 모든 장면에서 힘을 줘야 해서 덜그럭거릴 수 있어요. 이후에 캐릭터들을 정방향으로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방식의 연기를 했어요. <인터뷰>에서도 맷, 지미, 우디, 앤. 노네임까지 순차적으로 해 나갔어요.”
THE MUSICAL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매력은? (yoonie0520)
김수용 시키는 대로 다 한다!
“저는 말로 안 되면 일단 보여주려고 해요. 장면을 만들어갈 때 접점을 찾기 어려우면 우선 연출 의도를 따라가려고 노력해요. 뭐든 저한테 주어진 게 있다면 확실하게 해내고 다음에 제 의견을 피력해요. 만들어서 보여준 다음 만족했을 때 제 의견도 제시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못하겠다는 말을 안 해요. 해보고 나서 진짜 안 될 때만 못하는 거죠.”
THE MUSICAL <페스트>가 다시 공연된다면 코타르 회장님 할 의향이 있어요? ‘시대유감’, ‘FM 비즈니스’ 정말 최고였어요! (llklhbii)
김수용 항상 말씀드리지만 불러주시면 갑니다!
“코타르는 권력자라 처음엔 고압적인 캐릭터로 생각했어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인물로 생각했는데 연출님은 조커나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 같은 느낌을 말하셨어요. ‘시대유감’은 쇼스타퍼로 가겠다시는데 춤을 보는 순간 아이돌이 떠올랐죠. (김)도현이하고 (윤)형렬이한테 “나 <음악중심> 갔다 올게. 저번주보다 순위가 올랐으려나?’ 하고 무대에 오를 정도였어요. 그때부터 캐릭터를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줄 수 있는 정말 얄미운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FM 비즈니스’는 공연 중에 추가됐잖아요. 노래가 어려웠어요. 서태지 대장님이 작정하고 라임도 맞추고 랩을 하셨더라고요. 겨우 외웠더니 2절 앞·뒤 파트 순서가 바뀐 거예요. 설상가상으로 제가 첫 공연이라 힘들었죠. 이 장면이 추가되면서 연기 라인도 다시 바꿔야 했고요. 캐릭터 성격을 공연하면서 많이 바꿔야 했던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THE MUSICAL 티타늄 성대의 비결은 뭔가요? (albatross464)
김수용 엄청 관리해요. 잠을 충분히 자고 항상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 마셔요. 공연 전 연습이나 공연 기간에는 2~3주에 한 번씩 이비인후과에 들러서 목 상태 체크를 합니다.
“저는 기관지가 약해요. 목 상태가 심각하면 밤새 24시간 하는 병원에 가서 링거를
1회 투여량의 2~3배 용량으로 맞고, 다음 날 이비인후과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요. 그것도 불안하면 약을 먹는 거죠. 피곤할 땐 자거나 반신욕을 하면서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힘쓰고요.”
THE MUSICAL 제일 부르기 어려웠던 넘버는 어떤 곡인가요? (ahaha7979)
김수용 테너라 바리톤 음역대 노래가 굉장히 어려워요. <영웅> 할 때 낮아서 소리가 안 나오는 곡들도 있었거든요. 그때 잠깐이지만 성악 레슨을 받기도 했어요.
THE MUSICAL 뮤지컬 배우로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김수용 누구나 하는 말이겠지만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초심이죠!
“‘내가 제일 못하는 사람이야!’란 생각을 늘 해요.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인데(웃음). 부모님이 저희 학교 CC이신데 아버지는 드라마 연출가셨고 어머니가 배우셨어요. 연출가와 배우의 시선에서 냉정한 평을 해주셔서 웬만한 평이 두렵지 않아요. 어른들한테 인사 안 하면 혼났고 세상에 저보다 못한 사람 없다는 말도 많이 해주셨어요. 자기 이름 걸고 하는 사람들은 다 그 자리에 있는 이유가 있어요. 저 잘한다 하고 있으면 남들의 장점이 안 보여요. 멀티 캐스트를 선호하는데 제가 갖고 있지 못한 장점을 볼 수 있거든요.”
THE MUSICAL 지금까지 들은 칭찬 중 가장 기분 좋았던 말은 어떤 건가요? (ahaha7979)
김수용 김수용이라는 배우가 연기를 하면 무조건 이해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말씀이 기억이 나요. 말씀해 주신 분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THE MUSICAL 팬들이 불러줬으면 하는 별명 있나요? (celinac)
김수용 별명보다는 훗날 ‘배우’란 말을 듣고 싶어요. 훈장 같은 단어라서 제 입으로 배우란 말을 못해요. 직업군을 설명할 때만 배우라고 하고, 보통은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하거든요. 배우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THE MUSICAL 존경하는 분 있나요? (yoonie0520)
김수용 부모님입니다.
“낳아주고 길러주시고 제가 잘못되지 않게 이끌어주셨어요. 제 마음가짐이나 인생의 방향에 대해 올바르고 멋진 모습을 보여줬던 분들이셨죠. 희생이란 게 뭔지 알려주셨고요. 그래서 존경스러워요. 사랑하는 마음도 잘 표현하려고 해요. 아버지께서 1년 동안 투병하고 돌아가셨는데 후에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거든요.”
THE MUSICAL 형! 상웅이에요! 항상 좋은 형, 멋진 배우로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저 보고 싶은가요? 보고 싶다면 얼만큼?♡ (조상웅)
김수용 너 보고 싶은 거 너무너무 커서 말로 표현 못 해! 내 동생!!!
“<인터뷰> 초연 배우들끼린 돈독할 수밖에 없어요. 악전고투하면서 고생했거든요. 상웅이는 정말 착해요. 연습할 때 같이 얘기 많이 하면서 “우리 형” 그러면, 저는 “내 동생” 하면서 어려운 걸 같이 이겨내다 보니 많이 돈독해진 것 같아요.”
THE MUSICAL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 갈비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김수용 원래 풀네임은 갈비탕이고요. 와이프가 키우던 고양이예요. 새끼 때 너무 말라서 갈비라고 불렀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제 기억은 그렇습니다!
THE MUSICAL 이국적인 외모로 외국인으로 오해받기도 하는데 에피소드 있어요? (celinac)
김수용 영국에 배낭여행 할 때였는데요. A항공사를 타고 갔거든요. 스튜어디스가 저한테 식사 뭘로 하시겠냐고 영어로 물어봤어요. 크크크.
“<저지 보이즈> 내한 공연 보러 갔을 때였어요. 지하에 주차 정리 해주시는 분이 어르신이셨는데 오른쪽으로 차 빼라는 말이 잘 안 들려서 창문을 내렸어요. 그랬더니 절 보고 영어로 ”라이트! 라이트!”라고 하셨어요. 외국 나갔을 때는 프랑스 관광객이었던 것 같은데 구글 지도 보여주면서 길 알려달라고 해서 저도 관광객이라 미안하다고 한 적도 있고요. <푸른 눈 박연> 때는 어디서 온 외국인인데 한국말을 저렇게 잘하느냐고 의아해하는 관객분들이 계셨대요. 주변 선배님들이 “니가 살다 살다 진짜 외국인 역할을 하는구나!”라고 하기도 했죠.(웃음)”
THE MUSICAL 배우가 아니었다면 어떤 직업을 갖고 있었을까요?
김수용 운동선수, 만화가, 연출가, 작곡가?
“고등학교 때 체육부장을 몇 번 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고, 고3 때는 체육 선생님이 사회체육학과 진학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힘들어서 포기했고. 만화는 잘 그린다기보다 특징만 잘 잡으면 되고 칸을 나눠서 스토리를 만들고 내 얘기를 푸는 게 좋았어요. 연출가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잖아요. 만화는 직접 그린다면 연출은 머릿속에 있는 걸 구현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생각해요. 노래 만들고 싶단 생각에 아주 잠깐 작곡가를 생각한 적 있어요. 초등학교 때 동생이랑 둘이 ‘김수용과 병신들’이라면서 말도 되지 않는 ‘옥수수’ 이런 노래 만들고 했어요.”
THE MUSICAL 동국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yoonie0520)
김수용 묘해요. 다른 학교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학생이기 전에 학교 후배들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수업할 때 자꾸 풀어지려고 해서 수업 시간이 마치 신입생 오티에 가서 후배들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오래전에 입시 볼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친 적도 있고 지금은 작년부터 대학 강의를 하고 있어요. 국민대학교 대학원과 명지전문대학 실용음악과에서 뮤지컬 파트 강의를 했고 모교에서는 올해 3월부터 했어요. 저희 학교 학생들 가르치란 얘길 들었을 때 감회가 남달랐고 신기했어요. ‘내가? 정말? 우리 학교에서 가르쳐도 되나?’란 생각이 들었고요. 그냥 고맙고 행복했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8호 2016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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