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1 접촉, 맞닿음(touching)
2 《미》 교제, 친교(associations);연락(을 취함);《구어》 연고, 연줄(connection)
물과 공기처럼 당연하게 누리고 있지만 사라진다면 살아갈 수 없는 것, 없다고 해도 곧바로 생명에 위협이 가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못지않게 심각한 영혼의 위기를 몰고 오는 것. <컨택트>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단막으로 구성된 세 가지 에피소드는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 전혀 다른 안무 스타일, 다른 배우들에 의해 펼쳐지지만 두 가지만은 변함이 없다. 시각적 쾌락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관능적이고 독창적인 춤, 그리고 작품의 핵심이 되는 테마.
두 존재가 맞닿음을 통해 삶의 열망들을 꿈꾸고, 실험하고, 이루고, 실패하는 모습이 다채로운 몸의 어휘로 펼쳐지는 동안 작품의 주제는 머리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너와 나의 ‘컨택트’는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을까?
복숭아빛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꽃송이처럼 그네 위에 앉아있었다. 날아오를 듯 허공에 몸을 내밀 때마다
스커트 속에서 나풀거리는 하얀 파니에. 겹겹이 층이 진 속치마는 천사의 깃털 같기도 하고, 펼쳐지는
흰 꽃잎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그녀는 자신을 향한 두 시선 중 어느 쪽을 더 의식하고 있을까. 보석과 금화를
던져주며 그녀를 도발하고 희롱하는 ‘연인’일까, 어두운 나무 숲 사이에 그네를 미는 ‘하인’ - 뜨거운 손바닥이
여인의 등에 닿을 때마다 탐하는 눈빛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또 한 사람의 ‘남자’일까.
퀸즈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앉아 여자는 뜬 눈으로 꿈을 꾼다. 검은 수염의 남편이 그녀에게 주문을
걸었기 때문이다. ‘말하지 마, 웃지 마, 움직이지 마!’ 그가 윽박지르고 자리를 뜬 사이, 말하지 않고, 웃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꿈을 꾸는 것. 살아있기 위한 백일몽이 시작된다. 장난꾸러기 숲의 요정처럼 엉뚱한
놀이로 난장판을 벌일 수 있다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믿을 수 있는 남자의 단단한 팔을 붙잡고 레스토랑의 테이블
위를 뛰어다닐 수 있다면! 그와 부둥켜안고 높이, 더 높이 날아오르면 까마득히 펼쳐지는 도시의 노랗고 파란
지붕들… 여자는 끌어안은 두 사람이 나아갈 방향을 헤아리기 위해 한 손을 길게 뻗는다.
펼친 손가락 마디 사이에 흐르는 것은 바람보다 가벼운 영혼의 숨결.
네온 불빛들이 어둠을 더 깊어보이게 하는 도시의 마천루를 내려다보며 나를 구해줄 누군가를
기다렸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포기하려던 찰나, 무의미한 타인들 사이로 노란 불꽃
처럼 들어서던 당신의 얼굴이 낯익었습니다.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기억을 더듬어보았습니다. 당신이
상기시킨 건, 태어나던 날 나를 이끈 빛이었습니다. 나는 그 빛을 따라 따뜻하고 평화로운 바다를
뒤로 한 채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도착한 순간 길을 잃어버렸지요.
그러나 당신의 손을 잡고, 살기 위한 첫 숨을 다시 쉬면서 시작된
것은 아름답고, 강렬한, 태어나고, 자라고, 번식하고, 무엇보다 살아있기 위한 꽃의
투쟁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여신과 함께 봄의 전장을 향해 떠날 채비를 마쳤습니다.
아담 쿠퍼를 위시로 한 쟁쟁한 발레 스타들이 뮤지컬 무대에 섰다고 해도, 무대 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은 국경을 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다. 그러나 30년대 재즈 열풍에 휩쓸린 러시아 발레단의 이야기를 춤으로 풀어낸 발란신의 <온 유어 토우즈(On Your Toes)>가 그랬던 것처럼, 발레 댄서들에게 중립 지역으로 느껴질 만한 매혹적인 작품들이 드물게 등장한다.
1989년 전설적인 프리마 발레리나 나탈리아 마카로바가 <온 유어 토우즈>의 브로드웨이 재연에 도전했을 때, 사람들은 자유로운 춤을 찾아 망명을 감행할 수 있었던 그녀다운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2009년, 수잔 스트로만의 <컨택트>를 한국에서 초연한다는 소식을 들은 관계자들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은 ‘3막에 나오는 노란 드레스 입은 여인은 누구?’였다. 그리고 신비로운 구원의 여인을 연기할 주인공으로 김주원의 이름이 언급되자 그들은 명쾌한 정답을 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국립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라는 직책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나 근엄한 분위기와 별개로 김주원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도 유명하다. 노란 드레스 여인은 빼어난 댄서들이 많기로 유명한 극단 시키 공연에서도 신국립발레단의 사카이 하나에게 맡겨졌을 만큼 대단한 춤실력과 카리스마, 남다른 스타성이 갖추어져야 하는 역이다. “토슈즈 대신 하이힐을 신고 춤추는 것 뿐, 춤에 있어서 전혀 다른 것은 없어요. 마츠 에크의 <카르멘> 같은 현대 무용 작품에서 경험한 것들이 있으니까요”라고 깔끔하게 정의할 수 있는 자신감이 김주원에게는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감의 한편으로, “무대에서 목소리를 내서 말하는 것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쓰러질 것 같다”는 긴장을 함께 안고 있다. 단단한 확신과 물결치는 떨림을 함께 안고, 프리마 발레리나는 새로운 무대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과 맞닿을 준비를 하고 있다.
스타일리스트: 류영선
헤어: 한지선
메이크업: 류현정(aM)
플로리스트: 김애경, 허예조(꽃여울)
소품협찬: 디자인카페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5호 2009년 12월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