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음성이 들리는
서간체 소설
혼성 이인극으로 변신
1912년 발표된 진 웹스터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는 재치 있고 유쾌한 고아 소녀 제루샤가 베일에 가린 후원인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로 성장해 가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유머 넘치고 글재주가 뛰어난 제루샤 에버트가 비밀스러운 복지가 키다리 아저씨(실제 이름은 제르비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진 서간체 소설이다. 거리를 두고 제루샤를 돕던 키다리 아저씨는 그녀가 보내는 매력 넘치는 편지를 받으면서 점점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제르비스는 답장을 보내지 않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깨고 비밀스런 후원자 키다리 아저씨가 아닌 제르비스로 다가가 제루샤를 만난다. 제르비스와의 만남과 그때 느낀 제루샤의 감정이 편지를 통해 키다리 아저씨에게 전해진다. 제루샤는 제르비스를 만나 설레고 호감을 가지면서 이러한 감정을 키다리 아저씨에게 솔직히 털어놓는다. 이 둘이 동일 인물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제르비스와 제루샤의 독특한 관계에 집중해 편지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제외하고 제루샤와 제르비스만 등장하는 혼성 이인극으로 만들었다. 2인극이지만 서간체 소설인 원작의 형식을 유지해 대부분의 이야기는 제루샤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전해진다. 소설 속 깜찍하고 재치 넘치는 편지들은 적절히 선택 각색되는데, 소설처럼 제루샤의 목소리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제르비스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눈치가 없는 독자가 아닌 이상 소설에서는 키다리 아저씨와 제루비스가 동일 인물임을 어느 정도 알게 되지만 철저히 제루샤의 일인칭 시점에서 전해지는 서간체 형식이어서, 독자가 명확하게 키다리 아저씨가 제르비스임을 알게 되는 시점은 제루샤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되는 소설의 마지막 순간이다.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제르비스가 등장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키다리 아저씨가 제르비스임을 즉시 알게 된다. 약한 반전이긴 하지만 원작이 지닌 재미 중 하나가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키다리 아저씨』가 반전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도 아닐뿐더러, 이미 너무 알려진 스토리이기 때문에 뮤지컬에서는 애당초 반전의 묘미를 살리기가 힘들다.
소설에서는 제르비스의 마음이 은근하게 전달된다면, 뮤지컬에서는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소설에서 키다리 아저씨가 제르비스임을 눈치 챈 독자라면 제루샤가 『햄릿』을 읽고 감탄하는 편지를 보낸 다음, 뉴욕에 방문해 그곳에서 공교롭게도 <햄릿>을 보고 흥분하고 기뻐하는 장면에서 제르비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샐리의 오빠인 지미를 질투해 마음 졸이는 제르비스를 제루샤의 편지 너머에서 느끼는 것도 은근한 재미다. 뮤지컬에서는 같은 장면을 은근하게 담아내지 않고 직접 보여준다. <햄릿> 장면만 해도 그렇다. 제루샤가 『햄릿』을 읽고 반해 찬사를 보낸 후 제르비스의 계획으로 뉴욕에 초대돼 연극을 보게 된다. 뮤지컬에서는 이 장면을 뉴욕에서 연극 <햄릿>을 보는 장면으로 압축시킨다. 대신 제루샤와 제르비스가 순차적으로 편지를 읽게 함으로써, 제루샤의 천진난만한 기쁨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랑스러운 음모의 결과를 즐기는 제르비스를 보게 한다. 제루샤를 위한 특별 이벤트를 남몰래 펼치고 은근히 기뻐하는 제르비스를 보는 것은 뮤지컬에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재미다.
뮤지컬에서 편지가 읽혀지는 시점은 두 가지 시점을 공유한다. 제루샤의 입장에서는 쓰는 시점이지만 제르비스의 입장에서는 읽는 시점이 된다. 두 사람의 다른 시선과 시점에서 편지는 읽혀지고 즉각적으로 제르비스의 반응이 재현된다. 나이 든 후원자로 아는 제루샤가 편지를 보내는 대상이 어떤 인물인지, 도저히 머리 부분은 상상이 안 된다며, 키다리 아저씨는 ‘대머리인지, 백발인지, 숱이 적은지’를 물을 때 시커먼 머리에 젊은 제르비스의 난처한 반응이 시각적으로 제시된다.
1인칭 시점에 머물던 소설과 달리, 또 다른 인물인 제르비스의 시점이 들어오면서 그의 직접적인 고민과 생각들이 대사와 노래로 펼쳐진다. 대학에 들어간 제루샤의 첫 편지-키다리 아저씨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묻는 편지-에서 ‘폭삭 늙은 사람인지, 조금 늙은 사람인지 묻는 질문에, 제르비스는 독백 같은 노래 ‘나 늙었대’를 부른다. 그리고 ‘사랑을 보내며. 제루샤’라는 크리스마스이브 편지의 끝인사에 제르비스는 ‘사랑이라니’라는 노래를 통해 설레고 흔들리는 그의 심정을 표현한다.
성장 스토리보단
러브 스토리에 집중
소설 『키다리 아저씨』는 재능 있고 매력적인 고아 제루샤가 작가의 꿈을 이루는 성장 스토리이자, 제루샤와 제르비스의 묘한 관계에서 사랑을 키워가는 러브 스토리이다. 두 가지 이야기를 큰 축으로 사회와 종교의 모순과, 여성 참정권의 의견 등 사회적인 문제를 담아 놓았다. 뮤지컬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편지 곳곳에서 보인다. 그러나 무대라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 때문에 이야기의 곁가지를 잘라낸다. 제루샤와 샐리, 줄리아 등 친구들이 쇼핑을 하고 파티를 즐기면서 여자 친구들과 나누는 우정이 뮤지컬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대신 뮤지컬에서는 제루샤와 제르비스의 러브 스토리에 집중하는 편이다. 특히 2막에서는 제르샤와 제르비스의 감정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부각된다. 출판사에 보낸 소설이 퇴짜를 맞고 나서도 “제르비스가 이런 초라한 꼴을 못봐서 다행이에요. 이런 창피한 이야긴 아저씨한테만 할 수 있어요”라는 편지를 쓴다. 참고로 원작 소설에서는 이러한 표현은 없다. 작가로서 작은 실패를 맛본 상황에서도 제르비스에게 신경 쓰는 제루샤를 보여줌으로써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불우한 환경을 이겨내고 작가로 성장하는 성장 스토리보다는 제르비스에게 온 신경을 쓰고 있는 제루샤를 강조한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참 좋은 작품이고 감동적으로 봤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못마땅하다. 제루샤가 멋있고 사랑스러운 것은 그의 엉뚱한 상상력이나 말들 때문만이 아니다. 그녀는 엉뚱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고, 진정한 행복을 고민하는 성숙한 사고를 지녔으며, 무엇보다도 후원자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고 있지만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하는 독립적인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막에 들어서면 극은 성장 드라마는 주변부로 밀려나고 러브 스토리가 전면으로 등장한다.
제루샤와 제르비스를 러브 스토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구성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을 감소시킨다. 원작이나 뮤지컬 모두 제르비스에 대한 감정은 제루샤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로 드러난다.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이기 때문에 제루샤의 감정은 어느 정도 걸러지고 감춰진 채 드러난다. 제루샤에게 키다리 아저씨 역시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다. <키다리 아저씨>는 동일 인물을 두고 삼각관계를 이루는 구조인 셈이다. 뮤지컬에서도 졸업식 장면은 이러한 관계가 부각된다. 제루샤는 키다리 아저씨가 졸업식장에 나타날 것을 기대하지만 그는 결국 오지 않는다. 제르비스로 참석하고 있기 때문에 올 수 없었던 것이다. 소설에서는 졸업식 당시의 서운함을 꾹꾹 누른 편지를 통해 담담하게 제시된다. 반면, 뮤지컬에서는 제르비스가 있는데도 키다리 아저씨를 찾고 있는 제루샤를 통해 강한 서운함과 상실감을 느끼게 한다. 둘 다 키다리 아저씨와 제르비스 그리고 제루샤 사이의 묘한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데, 뮤지컬에서는 전반적으로 제루샤가 제르비스에 의존하는 듯 그려져 이러한 구도의 균형을 깨뜨린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7호 2016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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