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LIFE GRAPH] 스스로 개척한 운명 정성화 [No.157]

글 |안세영 2016-11-04 4,356

“방송은 정성화를 믿어주지 않았고, 개그계도 정성화를 믿어주진 않았어요. 그런데 뮤지컬은 절 믿어준 거예요. 그러니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죠.” 개그맨으로 시작해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을 주로 했던 정성화. 그가 뮤지컬에서 묵직한 역할을 도맡는 주인공이 되기까지, 그의 인생 그래프를 따라가 보았다.






무대에 빠지다 <아이 러브 유>
본격적으로 뮤지컬 배우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건 <아이 러브 유>를  공연하면서부터예요. 그 전까지 저는 개그에서도 드라마에서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죠. 이렇다 할 직업 철학 없이 그저 잘나가고만 싶었던 때이기도 해요. 그때 <아이 러브 유>를 함께한 남경주 선배님의 따끔한 조언이 큰 도움이 됐어요. ‘네가 배우로 살면서 연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느냐’는 말씀을 듣는데 정말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선배들이 추천해 준 책을 읽으며 진지하게 연기 공부를 시작했죠. 그날그날 공부한 걸 무대에 적용하다 보니 2년 공연이 지루할 새 없이 지나갔고, 다음 작품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욕심이 생겼어요.



힘찬 도약  <맨 오브 라만차>
뮤지컬 경력이 짧은 제가 <맨 오브 라만치>의 돈키호테로 캐스팅된 건 그야말로 파격적인 사건이었어요. 원래 <올슉업>에서 절 눈여겨본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님이 산초 역을 제안하셨는데, 제가 돈키호테 역을 더 잘할 수 있으니 맡겨 달라고 주장했죠. 부담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지만 사실 그때 저는 마냥 즐거웠어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저한테 돈키호테는 정말 자신 있는 역할이었거든요. 결국 <맨 오브 라만차>를 통해 제가 웃기는 조연만 아니라 주인공도 할 수 있는 배우란 걸 증명했다고 생각해요.



배우 인생의 정점  <영웅>
<영웅>에 캐스팅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하얼빈 역, 뤼순 감옥을 돌아다니며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쫓는 거였어요. 안중근 의사에 대해 잘 몰랐던 저는 그곳에서 그분의 정신을 마음 깊이 새기고 돌아왔죠. 한 인물을 그렇게 깊이 파고들어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그러면서 어떤 역할을 맡든 이 정도 공부는 필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시작부터 비장한 기운을 안고 단단하게 작품을 준비한 덕인지, 평생 받아본 적 없던 상을 이 작품으로 한꺼번에 받게 됐죠. 한국뮤지컬대상, 더 뮤지컬 어워즈, 예그린어워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고, 스태프들이 뽑은 배우상, 배우들이 뽑은 배우상까지 받으면서 그야말로 배우 인생의 정점을 찍었어요.



즐거운 변신 <라카지>
상을 받고 뮤지컬 배우로 이름을 알리면서 사람들이 제게 거는 기대도 더 커졌어요. 이런 때 전작의 이미지를 이어가기보다는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뮤지컬 <라카지>에서 트랜스젠더 역에 도전했어요. 개그맨 시절 종종 여자 연기를 해봤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유머러스하게 표현할 자신이 있었거든요. 특히 <라카지>는 노래, 연기, 코미디를 총망라해 제 능력의 최대치를 보여준, 제 장점을 가장 잘 살린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하면서 무대를 즐기는 법을 알게 됐죠.




한계의 시험대 <레 미제라블>
<레 미제라블>은 무대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무대에서 배우가 얼마나 발가벗겨질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준 작품이에요. 장 발장으로 무대에 서는 내내, 한순간도 만만한 순간이 없었거든요. 특히 보컬 면에서 한계에 부딪혔는데, 악착같이 연습을 해도 나아지긴커녕 자신감만 줄어들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원 캐스트로 1년 장기 공연을 하려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심리 치료까지 받았을 정도로요. 결과적으로 이 시기를 거치며 다짐한 게 있죠. 못해도 기는 죽지 말자. 잘 안 되는 부분은 빨리 인정하고, 잘할 수 있는 부분에 더 최선을 다하자. 노래 실력은 60세까지 발전한다고 하니, 조급해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가보려고요. 



너 자신이 돼라 <킹키부츠>
또 여장 남자야? 혹자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지만 <킹키부츠>의 롤라와 <라카지>의 앨빈은 전혀 다른 캐릭터예요. 앨빈은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고 남자를 좋아하는 반면, 롤라는 자신을 남자라고 생각하고 여자를 좋아하죠. 다만 롤라는 여자 옷을 입으며 만족감을 느끼는 거예요. 롤라는 그런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말해요. ‘너 자신이 돼라, 타인은 이미 차고 넘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숙고하지 않고 쉽게 남을 판단하려 드는 현대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명대사죠. 화려한 쇼 뮤지컬에 그치지 않고, 철학적 메시지를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 그게 바로 제가 <킹키부츠>에 빠진 이유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7호 2016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