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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고래고래>의 최수형 [No.157]

글 |박보라 사진제공 |아시아브릿지컨텐츠 2016-11-02 5,069

이제야 털어낸 응어리


얼마 전 자라섬 밴드 페스티벌이 끝난 후 홀로 공연을 펼친 밴드 1번 국도의 모습이 온라인에서 큰 화제였습니다. 덩달아 <7시 내고향>을 통해 국토 횡단과 버스킹을 이어간 사연이 방송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특히 이번 공연을 위해 150억 원 대작 영화를 고사한 것으로 알려진 밴드 멤버 호빈, 그를  <더뮤지컬>이 단독 인터뷰했습니다.


*이 글은 호빈 역 배우 최수형과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영상이나 방송에서는 사투리를 쓰던데, 서울말을 아주 잘 쓰던걸요.
아니, 저 배우예요. 서울말 잘 씁니다. (단호) 그런데 고향에 내려갔을 때나 동생 병태와 함께 있으면 저도 모르게 사투리가 튀어나와서 문제예요. 서울 올라와서 사투리를 고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고향 친구들은 제가 서울말을 쓰면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하지만 지금은 꽤 자연스럽지 않나요?


도보 여행을 하며 버스킹을 하던 도중 영화 오디션에 합격해 촬영을 앞뒀지만, 결국엔 밴드 1번 국도에 다시 합류했다고 들었어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도보 여행과 버스킹에 참여하게 된 건 오로지 영민이 때문이었어요. 영민이가 여자 친구와 이별한 ‘그 사건’ 이후로 말 한마디 안 하고 폐인처럼 지냈잖아요. 무엇보다 제가 영민이에게 큰 상처를 준 장본인이라, 영민이와 연락이 끊긴 내내 계속 신경 쓰고 있었어요. 알음알음 주변을 통해 영민의 안부를 들었고요. 영민이가 도보 여행과 버스킹을 하겠다고 온 순간 꼭 함께하고 싶었어요. 게다가 밴드에 드럼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되거든요. (단호)


당신이 제 발로 차버린 그 영화의 오디션 기회를 잡기 위해 매니저가 3년 동안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면서요.
그래서 매니저한테 정말 미안했고, 지금도 미안하고, 앞으로도 미안할 거예요. 다시 밴드 1번 국도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 매니저가 제게 “나한테 안 미안해?”라고 묻더군요.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자라섬 밴드 페스티벌이 끝나고 난 후에 바로 전화를 해 사과하고 붙잡았어요. 마음씨 착한 매니저가 결국 밴드 1번 국도의 매니저로 남았죠. 하하.


당신과 매니저의 관계가 정말로 끈끈해 보여요.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어땠어요?
군대 선후임으로 만났어요. 교포인 매니저가 국방의 의무를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죠. 사실 군대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기 어렵잖아요. 이것저것 알려줬는데 잘 따랐어요. 주변에서 제가 매니저를 막 대한다고 하던데, 뭘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전 매니저가 친동생 같아서 잘되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잔소리하는 사람이 더 힘들다니까요. (단호) 얼마나 입이 아픈지. 그래도 다 애정이 있으니까 그러는 겁니다.



밴드 1번 국도가 잠깐 휴식기를 가졌을 때, 배우로 전향했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요. (단호) 원래 모든 밴드의 드러머들이 제일 잘 생겼어요. 진짜로. 제가 작곡이나 작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드럼을 전설적으로 잘 치진 못하잖아요. 물론 정말 열심히 연습했죠. 밴드가 그렇게 됐을 땐, 혼자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제가 솔로로 노래를 부르기엔 너무 부담스러웠죠. 잘생긴 얼굴과 큰 키를 장점으로 내세워 연기에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어요.


밴드 1번 국도의 휴식기에 대해 많은 말이 있어요. 멤버 영민이 사랑한 여자 친구의 마지막 편지를 당신이 숨겼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요?
편지를 일부러 숨긴 건 아니었어요. 전 그때 <슈퍼 락밴드>의 준결승 무대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면 앨범도 낼 수 있고, TV에도 나올 수 있잖아요. 정말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영민이에게 그 편지를 주면 공연을 무사히 끝낼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때 영민이에게 일부러 더 거칠게 말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결승 무대를 끝내고 줘도 늦지 않을 것 같았죠.


그때는 정말 많이 성공하고 싶었나 봐요.
네, 성공하고 싶어서 미쳐 있었어요. 사실 어렸을 땐 집이 정말 잘살았어요. 아버지가 목포에서 여러 사업을 하고 계실 정도로 풍족했으니까.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나, 갑자기 가세가 휘청했어요. 평생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다 지원해 주시던 부모님이 처음으로 제게 ‘안 된다’고 말한 때였죠. 그래서 더 악착같이 성공하고 싶었어요.


영민 씨에게 사과하는 당신의 모습이 뭉클하다는 반응도 많았어요.
늘 영민이에게 사과하고 싶었어요. 사실 미안하다는 말을 못해서 여행을 떠난 거예요. 영민이를 향한 마음속의 응어리가 있었죠. 그래서 영민이가 다시 말을 하자마자 저도 모르게 달려 나갔어요. 이제야 말하지만, 그동안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라고 자책도 많이 했죠. 사실 영민이가 여자 친구와 이별하지 않았어도 우리가 우승할 거란 보장은 없었잖아요. 내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우승은 못 하더라도 밴드 1번 국도를 계속 함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까지도 들었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을 땐 어땠어요?
병실에서 병태가 일주일 뒤에 모여 도보 여행과 버스킹을 하자 하고 헤어졌는데, 아무도 안 올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도 오랜만에 밴드 이야기가 나왔으니 드럼을 연주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드럼채를 잡자마자 무엇에 홀린 듯 일주일 동안 미친 듯이 연습했어요. 사실 민우는 언제 봐도 티격태격 편한 사이였는데, 영민이를 본 순간 ‘헉’ 했어요. 어색해서 곁에 가지도 못했을 정도로. 그런데 제가 영민이한테 큰 상처를 줬잖아요? 영민이를 위해서라도 이번 여행을 꼭 무사히 끝내고 싶었어요.


간발의 차이로 자라섬 밴드 페스티벌 무대에 서지 못했어요.
오디션에 가지 말걸. 자라섬에 도착하자마자 든 생각이었어요. 오디션을 안 갔더라면 정말 페스티벌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거잖아요. 사실 정말 허무하고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들었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구나. 내가 있을 곳은 여기구나’라고 깨닫게 됐죠. 사실 여전히 자라섬 밴드 페스티벌을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해요.


마지막으로 밴드 1번 국도의 끈끈한 우정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친구들과 함께했던 추억 때문이죠. 어렸을 때 쉽게 했던 약속들이 막상 나이를 먹으니, 먹고살기 어려워서 지킬 수 없더라고요. 이번 도보 여행과 버스킹을 통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달만 옛날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걸으면 걸을수록 새로운 추억이 생겼잖아요.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더 많이 생긴 만큼 밴드 1번 국도가 더 끈끈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7호 2016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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