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외로이 선 마이크 같은 인생
공연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퀴즈쇼> 연습으로 저녁도 거르고 약속 장소에 나타난 성기윤은 무척이나 피곤해보였다. 얼마 전에 공연을 마친 <남한산성>, 연말에 공연되는 <퀴즈쇼>와 내년에 예정된 <선덕여왕>까지, 연달아 세 편의 창작뮤지컬 출연진으로 이름을 올렸으니 지친 기색이 드러나는 건 무리가 아닐 것이다. 바쁜 일정에서도 보고 싶었다는 <피아프>를 함께 관람하고, 성기윤이 말하는 <피아프>에 대한 단상을 이야기로 옮겼다.
<피아프>는 동료 배우 한성식과 김호영이 출연해서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작품이다. 오전에 우리와 함께 <퀴즈쇼> 연습을 하다 오후에는 공연을 하러 가니, 그들이 공연하는 <피아프>가 어떤 작품일지 궁금했다. <피아프>의 연출을 맡은 심재찬 선생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연출가이기도 하다.
에디트 피아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샹송이 그녀의 노래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그녀의 노래를 처음 접한 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미녀와 야수>에 출연하고 있을 때, 미세스 폿츠 역을 맡았던 문희경 선배님이(선배님은 샹송 대회 출신이다) 분장실에서 피아프의 노래를 부르곤 하셨는데, 선배님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때가 정말 처음은 아니겠지만, 그게 피아프의 노래에 대한 나의 첫 번째 기억이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도 ‘원어로 부르는 게 훨씬 더 감흥이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 조금 아쉬웠지만 극에서는 드라마의 흐름이 더 중요하니까.
이전에는 피아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는데, 성공한 가수로서의 삶 이전에 그녀가 살았던 방식에 가슴이 찡했다. 세상의 가치에 눈치 보지 않고 옳건 그르건, 열심히 사랑하고 눈앞에 닥친 일에 충실하는 것이 그녀가 살아가는 법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방식대로 열심히 살았다면, 누가 그것을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번 공연에서 가장 좋았던 노래는 ‘사랑의 찬가’였다. 피아프처럼 늘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런 노래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상대방이 잘못될까봐,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그 사람은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붙잡지 않고 먼저 끝내버리는 그녀의 사랑 방식. 이런 점 때문인지 피아프의 사랑을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니라 그게 자신의 전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스스로 만족할 수 있어서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자기만족인 셈인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대 정중앙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스탠드 마이크였다. 그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다른 것들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마이크가 꼭 피아프 같았다. 누군가 찾아와서 사용해줘야만 외롭지 않은 존재. 우리가 그녀를 알지 못했던 때부터 점점 우리 곁으로 다가와 주변을 맴돌던 피아프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마이크가 세워진 자리에 앉아 있는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모두 홀로 외롭게 서있는 마이크 같은 존재 아닌가.
피아프의 친구, 뜨완 역 정재은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피아프와 같은 씨앗에서 태어나 전혀 다르게 자란 나무나 다름없는 뜨완이, 피아프를 다양한 측면에서 볼 수 있도록 그녀가 선택하지 못한 다른 삶의 모습을 잘 보여준 것 같다. 보는 내내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극을 이끄는 최정원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정말이지 그녀의 지치지 않는 열정은 나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자극이 된다.
먼 훗날, 내 이름을 건 모노극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여러 명이 모여 작업을 하는 게 참 좋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무언가를 합의한다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어렸을 때 했던 ‘술래잡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게임이 재밌는 이유가 그때는 게임의 규칙이 허술하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그 허술한 규칙을 지키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공연을 하면서도 그런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분명 조금 부족하고 허술한 점이 있는 약속이지만, 그것을 모두가 지키고자 했을 때의 공연과 누군가 한 명이라도 어긋난 공연에는 굉장한 차이가 생긴다. 팽팽한 대립의 과정을 거치고 결국 합의점에 도달해 공연이 올라갔을 때, 그때의 희열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조금 힘이 들더라도 이런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