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닌
<위키드>의 엘파바와 글린다는 서로를 만나 세상을 새롭게 보기 시작한다. 또 다른 문을 열고 나온 둘처럼 정선아가 다시 만난 글린다의 결은 초연과 분명 달랐다. 그 변화의 이유는 당당함과 유쾌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난 시간의 노력과 마음가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위키드>를 만났기에
THE MUSICAL 글린다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해요. (youjin1120)
정선아 가볍지 않은 글린다를 만들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어요. 겉만 화려하게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리 작품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면의 많은 것들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했어요.
“글린다가 웃긴 역할이라고 가볍게 볼 수도 있어요. 분위기 메이커니까요.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는 특히 2막에 좀 더 집중했어요. 초연 때는 엘파바와 글린다 둘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오즈민들과 그 외적인 부분까지 생각하면서 멀리 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도움 받은 것도 많고요.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돌아가실 때 가져가는 감동이 전과 다른 걸 확실히 느껴요.”
THE MUSICAL <위키드>에 좋은 넘버들이 많은데 가장 좋아하는 넘버는 뭐예요? (rimous)
정선아 2막 1장 ‘감사해(Thank Goodness)’인데요. 예전에 느끼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이번에 많이 발견했어요. 글린다의 많은 여정이 담겨있어서 좋아해요.
“초연 초반에는 ‘파퓰러(Popular)'에 신경 쓰느라 힘을 고르게 분배하지 못했어요. 엘파바 하면 ‘중력을 거슬러(Defying Gravity)’인 것처럼 글린다의 주제가는 어찌됐든 ‘파퓰러’니까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거든요. 오래 공연하다 막상 하차일이 다가오니 장면 하나하나가 더 소중해지면서 ‘감사해(Thank Goodness)’도 새롭게 다가왔어요. 글린다의 삶에서 어떤 장면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친구도 잃고 사랑하는 약혼자 피에로도 떠나고 혼자 남아서 오즈민들을 이끌어야 했잖아요. 힘든데도 앞에선 웃어야 했고요. 배우들에게나, 저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라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꽂혔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스스로도 ‘이 장면에 집중해서 감정을 표현하고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THE MUSICAL 이번 공연에서 엘파바를 맡은 두 배우와 연기할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어요. (rlgma16)
정선아박혜나 배우는 우선 차분하고 내가 정신이 없을 때도 잘 이끌어줄 수 있는 엘파바예요. 제가 많이 의지하죠. 차지연 배우는 감성이 좋아서 무대에 같이 서있는 그녀를 봤을 때 내가 관객이 된 것처럼 감동받으면서 공연할 때가 있어요. 각자 장점이 많아서 번갈아가면서 할 때 저한테는 배우로서 큰 시너지를 줘요.
“혜나 언니와는 초연 때 외국 스태프들과 연습할 때 정말 고생 많이 했거든요. 이번도 힘들었지만 초연 때는 정말 강도가 셌어요. 그 당시 마음가짐과 동료애 같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 보니 무대에서 도움이 돼요. 둘은 하나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둘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마음이 정말 쓰여요. ‘중력을 거슬러’는 눈물나는 장면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하늘에 올라가 있으면 마음이 저리고 눈물이 나요. 저희들끼리는 “늙어서 이러나. 눈물만 나네” 이러는데 그만큼 더 끈끈해졌고, 작품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공부한 애정 작품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지연 언니랑은 상당히 친해요. <아이다>, <드림걸즈>를 같이 했기 때문에 눈을 보면 함께했던 시간이 있어서 찌릿한 게 있어요. 끝까지 재미있게 체력 잘 유지하면서 잘 할 것 같아요.”
THE MUSICAL 이번 극장이 초연 때보다 큰데 버블머신을 타고 있을 때 보이는 시야와 느낌을 알고 싶어요. (mikey0227)
정선아 객석이 좀 멀긴 한 것 같아요. 이번 공연엔 남자 관객이 왜 이렇게 많죠? 웃음소리가 상당히 많아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에 ‘널 만났기에(For Good)’ 같은 경우도 우물 때문에 상수, 하수가 바뀌었고. 극장도 커졌어요. 장단점이 있는데 이 극장은 울림이 더 있어서 작품이랑 잘 어울리는 거 같긴 해요. 반면 집중해서 보고 싶으신 분들은 멀기도 하고. 그런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THE MUSICAL 글린다와 실제 자신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vitamin39)
정선아 저는 우선 핑크색을 그렇게 막 좋아하지 않아요. 검정과 흰색을 더 좋아해요. 그런데 글린다하면서 (핑크색도) 조금 좋아하게 됐어요.
THE MUSICAL의상이나 가발을 순식간에 바꿔 입어야 할 텐데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orange49)
정선아 살쪄서 옷 터짐. 지퍼 터짐.
“일단 공연을 진행하다가 잠깐 백스테이지에 들어갔다 나오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의상팀 친구가 재빨리 지퍼를 올려주고 후크까지 채워줘서 제대로 갖춰 입고 공연할 수 있었어요. 돌발 상황이 생기면 스태프들이 항상 옆에서 도와주세요. 덕분에 제가 더 공연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THE MUSICAL 배우는 배역을 만나 성장한다고 하잖아요. 글린다를 만나서 성장했다고 느끼나요? (liana307)
정선아엄청요! 특히 2년 전 이 작품을 만나고 지금 다시 이 작품을 만나서 제 인생에서, 또 배우로서 큰 성장과 깊이가 생긴 것 같아요.
“저한테는 축복인 작품이에요. 배우도 사람이라 잘한다 하면 신나서 더 잘하고 싶고 완벽해지고 싶은 반면에 안 맞는다 하면 하기 싫고 빨리 끝났으면 할 때도 있거든요. 제가 성악 했던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위키드>는 큰 도전이었어요. “정선아가 엘파바가 아닌 글린다?” 이런 말을 들었는데 나름대로 노력을 엄청 했어요. 그래서 ‘노력했구나’란 칭찬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고, 더 잘하고 싶어서 레슨도 열심히 받았어요. 관객들이나 동료들한테도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저를 위해서도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기 때문에 채찍질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 같아요.”
무대를 대하는 마음
THE MUSICAL 여태껏 해온 뮤지컬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은? (govlqufdl)
정선아 관객들이 제가 했을 때 돋보였다고 얘기해주시는 <아이다>와 지금 하고 있는 <위키드>요. 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대표로 꼽으면 이 두 작품이에요.
“두 작품 모두 음악적으로 저와 맞았어요. <아이다>는 저한테 시너지를 많이 주는 음악이고, 발성이나 캐릭터가 저랑 잘 맞았고요. 글린다도 암네리스처럼 막을 열고 닫는 캐릭터인데 기승전결로 봤을 때 이 캐릭터의 여정이 잘 보여서 뭔가를 더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대본이 잘 짜여있어요.”
THE MUSICAL 역할의 비중과 상관없이 작품을 선택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작품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enchanted)
정선아 마음 가는대로.
“대부분의 배우들이 그럴 테지만 저도 음악이나 작품이 좋아서 꼭 해보고 싶은 작품들이 있었어요.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해보고 싶은 작품으로 꼽았던 <킹키부츠>나 <위키드>도 했고, 그 외에도 유명하고 좋은 작품들을 해오면서 선택의 기준이 조금 달라졌어요. 혼자 돋보이는 작품보다는 좋은 배우들, 스태프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저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물론 작품 자체의 매력도 고려하겠지만, 사람들이 좋으면 흔쾌히 그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THE MUSICAL출연작 중 자신과 제일 맞는 배역은 무엇인가요? (govlqufdl)
정선아 사실 <킹키부츠>의 로렌이 잘 맞아요. 병맛 역할. 크크크크.
“로렌은 실제 있을 법한 여성이잖아요. 제가 로렌과 완전히 비슷하다는 건 아니지만 저도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즐거움을 추구하거든요. 개그 욕심도 있고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성격이고요. 그런 점들이 저와 잘 맞아서 참 좋아했던 역할이었어요.”
THE MUSICAL 평소 자신과 제일 안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는 역할은? (pym5214)
정선아 엠마?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THE MUSICAL 참여하고픈 뮤지컬이나 꼭 해보고픈 역할이 있나요? (govlqufdl)
정선아 <알라딘>요. 디즈니 뮤지컬을 참 좋아하거든요. 우리나라에 들어올지 모르겠지만 자스민 역을 해보고 싶어요. 너무 늦게 들어온다면 할 수 없겠지만요.
THE MUSICAL 여배우로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역할을 해본 것 같은데 해보고 싶은 남자 역할 있나요? (lsopvce)
정선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유다.
“매력적인 작품에 매력적인 역할이잖아요. 예수 역도 멋있지만 저는 강하고 카리스마 있고 소울 충만한 매력에 더 끌리는 것 같아요. 한지상 오빠가 너무 잘해서인지 역할이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같이 공연할 때 내가 남자였다면 저 역할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THE MUSICAL 무대에서 가끔 틀릴 때 어떻게 넘어가요? (smr1024)
정선아 자주 틀려요. 집중하는데도 틀리네요. 흑흑.
“안 틀린 척 태연하게 연기해요. 순발력이 좋은 편이라 틀려도 자연스럽게 이어가려고 해요. 가사를 틀리면 내용에 맞춰서 앞뒤를 바꾸거나 비슷한 내용으로 부르는 식으로 대처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동료 배우들이 신기해하면서 ‘백일장 1등’이란 별명도 붙여줬어요. 크크크.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틀렸지만 나 자신은 결코 틀리지 않은 척 당당한 거죠!”
THE MUSICAL 큰 무대를 처음 섰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너무 궁금해요. (gofka741)
정선아 <렌트>가 큰 무대를 처음 선 작품 같아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이었는데 처음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점점 무서워요.
“처음엔 용기만 가득했다면 지금은 무대의 중요함과 신성함을 더 느껴요. 무대 경험이 쌓이면서 애착이 커졌고요. 어릴 땐 돋보이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지금은 관객 분들이나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후배들을 보면서 뮤지컬 발전에 보탬이 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다보니 무대에 대한 책임감도 커져서 점점 무서워지는 것 같아요. 특히 저를 보면서 뮤지컬 배우 꿈을 키우는 새내기들을 보면 희망이 되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요. 무대 위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THE MUSICAL 암네리스, 글린다, 로렌이 쇼핑을 간다면 어떤 에피소드가 생길까요? (Rebecca)
정선아 절교. 크크크크.
“<아이다>, <위키드>, <킹키부츠>를 본 분들은 아실 거예요. 이 셋은 서로 안 맞는 것 같아요. 같이 가더라도 자기 말만 하고, 자기 옷만 보고 있을 것 같은? 굳이 같이 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인 거죠. 그래서 자기 이야기만 하다 서로 절교하고 헤어지지 않을까요.”
THE MUSICAL 긴 시간 동안 한 분야에 몸을 담는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syj4434)
정선아 장인 정신 게이지가 올라간다고 할까요? 하하하.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
THE MUSICAL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pym5214)
정선아 너무 즐거웠어요. 장난꾸러기였던 것 같아요. 뮤지컬 배우를 정말 많이 꿈꾸고 상상했는데 이뤄졌어요. 역시 사람은 꿈을 꾸면서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THE MUSICAL 항상 당당하고 멋진데 마음가짐이라든가 비결 좀 알려주세요. (Rebecca)
정선아자존감인 것 같아요.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당당해져요. 자만과는 달라요. 내 자신한테 자신감을 줬을 때 큰 힘을 발휘해서 무엇이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THE MUSICAL SNS 보면 몸매가 정말 좋은데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pym5214)
정선아운동도 하고요. 좋은 사진 어플이나 각도도 중요하죠. 2백장 찍어 2장 건져요. 크크.
“예전에는 운동 하면 무대에서 발산할 에너지를 운동으로 소모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였어요. 운동을 하지 않으면 공연할 때 힘들어요.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껴서 운동으로 관리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대극장 작품을 많이 하다 보니 한 번에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나잖아요. 그분들께 제 에너지를 충분히 전달하고 활력이 되어 드리고 싶어서 운동으로 체력을 키워요. 워낙 온갖 운동을 좋아하고요. 최근 몇 년간은 필라테스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유산소 운동도 병행해요.”
THE MUSICAL 항상 성대가 짱짱한데 평소 목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chuchuchoo)
정선아 잠을 푹 자야하고 공연 전날엔 잘 먹고 운동하고 푹 쉬어요.
THE MUSICAL 평소 여행 사진 올려 주는 것 잘 보고 있는데 여행 에세이 내볼 계획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재밌을 것 같아요. (yyy123)
정선아 기회가 된다면 여행 에세이는 정말 써보고 싶어요. 강아지 책도!
“동물을 진짜 좋아해요.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진 않지만 동물을 보호하고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특히 강아지에 대한 애착이 커요. 어릴 때부터 쭉 키워왔는데 그걸 아는 지인이 관련 책을 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신 적도 있어요. 바빠서 책을 내진 못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동물과 여행 책은 꼭 한 번 써보고 싶어요. 저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많은 분들과 또 다른 분야에서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THE MUSICAL SNS 보면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특별히 좋아하는 디저트 있나요? (liana307)
정선아 단것만! 찾아 먹어요. 크크크크크. 케이크 사랑합니다!
THE MUSICAL 오늘 함께해서 정말 즐거웠어요! (zjm250)
정선아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실시간 대화를 해서 정신도 없었고 그만큼 재미있었는데 이 시간에 저랑 대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위키드> 이번엔 좀 짧게 8월말까지 하는데 매회, 매회 마음에 담아서 하니까 더운 여름, 저희와 예술의전당에서 만나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5호 2016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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