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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스위니 토드> [No.155]

글 |정수연 한양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오디컴퍼니 2016-08-11 6,782

익숙한 듯 다른 듯,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스위니 토드>




장르의 진화 방식                            


사람이 진화하고 포케몬이 진화하듯이 공연 예술도 진화한다. 변화된 조건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킬 때 포케몬이 됐든 예술이 됐든 최적의 생명력을 얻게 되는 거다. 포케몬은 속초에서 알을 까고 태어나지만 공연 예술은 장르라는 수직적 맥락과 공연이라는 수평적 맥락의 교차점 위에서 새롭게 진화할 수 있다. 그 두 축 사이에서 무게 중심이 어디에 쏠렸는가에 따라 진화의 행로는 달라지게 마련인바, 같은 공연 예술이라도 각각 진화의 양상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전적인 고급 예술은 대중성을 향해 진화하고 현대적인 대중예술은 예술성을 향해 진화하는 식이다. 어려운 예술은 쉬워지고 쉬운 예술은 무거워진다고나 할까. 전자는 대중화의 이름을 얻고 후자에는 실험적이라는 딱지가 붙겠지만 그래도 결론은 하나다. 공연 예술은 장르의 형식을 확장하며 관객과 더불어 진화한다는 것.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은 뮤지컬의 진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손드하임의 작품을 통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지평이 쇼에서 극으로, 스토리에서 미장센으로, 노래(ballad)에서 음악(music)으로 확장됐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에 의해 경쾌하고 발랄한 뮤지컬의 세계에 어둡고 혼란스러운 질문이 가미되기 시작했고, 사건의 분명한 결론보다는 과정의 복잡다단한 심리가 극의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관객의 뇌리에 하나의 선율이 아니라 전체의 장면이 남는 손드하임의 뮤지컬은 뮤지컬의 전형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그런데 흥행했다. 브로드웨이의 전통은 바로 여기서 빛을 발한다. 이런 부류의 작품에 기꺼이 주류의 자리를 내어주었다니. 다양성을 인정하고 낯섦을 즐기는 재미는 장르의 경륜이 축적됐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하나의 장르가 예술성을 덧입기 위해 필요한 것이 형식의 다양성과 세계관의 탑재라면, 손드하임에 이르러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통은 실험성과 예술성의 경계에 발을 들인 셈이다. 관객의 호응이 없었다면 물론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의 관객에게 손드하임의 작품이 갖는 맥락은 사뭇 다르다. 한때는 도발적이었던 그의 작품도 세월의 두께에 이제는 품위 있는 고전이 되었거니와, 한국의 관객에게 그의 작품이란 지금껏 없었던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이기보다는 무던히도 회자되던 작품성을 확인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실 가사의 운율부터 소재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미국적인 손드하임의 뮤지컬에서 브로드웨이의 관객들이 느꼈던 전율을 똑같이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다.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이 아니라면 그의 작품이 지닌 새로움이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힘들 것이다. 손드하임을 향한 찬사는 오히려 부담스런 선입관으로 작용하기 쉽다. 그런 것 다 떠나서 그저 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고전으로 이 작품을 즐길 수 있다면 된 거다. 이런 질감의 작품이 재미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더 좋을 테고. 관객이 다양성을 수용할 때 시장은 넓어지고 작품은 많아지며 완성도는 높아진다. 손드하임은 여기에서도 진화의 지표인 셈이다.  



친근해진 스위니 토드              


‘브로드웨이의 고전’으로 볼 때 이번의 <스위니 토드>는 성과를 거둔 공연이다. 고전 라이선스 작품으로 이만큼의 완성도를 지닌 공연이 최근에 있었던가? 작품의 권위와 배우의 권위가 행복하게 어우러진 경우일 거다. 손드하임의 작품은 자주 배우를 압도하지만 우리 뮤지컬 동네에서 배우의 이름은 언제나 작품에 앞섰더랬다. 누구의 <스위니 토드>일 것인가.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 작품과 배우는 각각의 역량으로 멋진 조화를 일궈낸다. 뮤지컬 배우는 노래로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뮤지컬다운 연기의 기량을 성실하게 부려놓는 배우들을 보는 재미는 만만치 않다. 조승우의 대사에는 빨려들어가는 맛이 있고 양준모의 노래에는 듣는 맛이 있다. 전미도의 러빗부인은 특출나다. 역할의 생동감뿐 아니라 말의 느낌을 살리는 디테일한 호흡에서 전미도의 연기는 보는 내내 관객을 즐겁게 한다. 러빗부인이 이렇게 해학적인 인물이었다니. 그동안 전형적인 역할에만 매진했던 옥주현에게도 이번 공연은 연기의 초심을 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됐을 거다. 손드하임의 작품에서 옥주현의 노래와 연기는, 여전히 곱고 성실하지만, 드라마틱하지는 않다.


배우의 구성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스위니 토드>는 주류의 문법을 따른다. 일단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이 그렇다. 벤자민 바커를 협박하는 사이비 이발사의 과장된 우스꽝스러움은 전형적이고, 의붓딸을 향한 욕망에 사로잡힌 터핀 판사의 악마성은 피상적이다. 언뜻 사랑에 빠진 중년 남자의 귀여움이 보이기도 하니 누가 그를 악의 근원이라고 볼까. 작품 속의 모든 인물들은 익숙하면서도 친근하다. 탐욕스러운 이기주의자로 보기에 러빗부인의 너스레는 오히려 사랑스럽고 토비를 보살피는 그의 모습에서는 푸근함마저 느껴진다. 살인마 토드에게서조차 광기와 처연함보다 돋보이는 것은 유머감각이다. 보기에 불편한 악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 볼수록 재밌는 캐릭터가 포진해 있는 셈이다.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한 말장난이 적절하게 섞여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버무려진 대사와 가사 덕분이기도 할 거다. 


캐릭터의 친근함이 도드라지는 건 단지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서만은 아니다. 시대적 분위기를 완전히 탈색시킨 무대를 보자면 이번 공연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확연해진다. 한 남자의 ‘억울함’과 ‘복수’ 중에 이 작품의 무게 중심은 후자에 쏠려 있다. 억울함에 주목하자면 빅토리아 시대로 상징되는 사회적 모순이 시각적으로 구현되든 인물 구축으로 나타나든 했을 거다. 스위니 토드의 살인이 단순한 엽기 복수극이 아니라 어떤 의미의 상징성을 띠어야 하는 거다. 하지만 무대는 설명하지도 상징하지도 않은 채 그저 배우들이 드나드는 공간을 수직으로 확장하며 판을 깔아놓고, 인물은 구조적 악을 대표한다기보다는 개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터핀은 사회악의 상징이 아니라 그냥 나쁜 놈이고, 토드의 복수 또한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역설적 도발이 아니라 그저 개인적인 억울함일 뿐이다. 개인의 행동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개인의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여야 하는 법. 토드나 러빗이나 터핀에게서 악마성보다 인간성이 먼저 보이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러니 낯설고 기괴하기보다는 익숙하고 재미날 수밖에. 다크서클 짙게 그린 무서운 얼굴에 피 칠갑을 한 채 목이 잘리는 앙상블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이 작품에서 기괴함을 찾을 데는 한 군데도 없을 뻔했다.



가벼워지느라 놓쳐버린 것들


사실 <스위니 토드>의 진짜 재미는 익숙함이 아니라 낯섦에 있다. 낯섦은 깊이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엽기적인 살인마라는 표면은 대중 서사의 전형이지만 악마를 처단하느라 괴물이 되어버리는 사람의 이야기로 깊게 들어가면 복수의 대중 서사는 증오의 굴레에 사로잡힌 자의 비극적 서사에 가닿는다. 증오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그를 죽이기까지 한 이발사와 자만에 눈이 멀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까지 한 오이디푸스는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비극의 당사자이자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미친 여자 루시의 운명은 아무도 믿지 않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광기의 예언자 카산드라를 연상시킨다. <스위니 토드>는 여러 면에서 비극과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비극성이나 사회성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좀 섭섭하지만 작품은 해석에 열려 있어야 하니 이런 선택을 싱겁다 말할 순 없다. 오히려 아쉬운 건 해석이 아니라 무대화이다. 넓게 펼쳐진 무대에 개연성 없는 등퇴장이 거슬리고(제발 루시의 발걸음에 이유를!), 높게 층 지워진 공간의 기능성이 분명치 않음도 아쉽지만(높은 곳에 있는 자는 누구?), 갇혀 있던 토비가 어떻게 도망갔다 왜 다시 돌아오는지 극으로만 보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연출의 운용이 그리 매끄러워 보이진 않는다. 그래도 말이다, 여전히 <스위니 토드>에는 배우와 관객을 긴장시키는 힘이 있다. 진화하려는 자, 그 긴장을 견뎌라. 기대하는 바와 조금은 다르다 해도 초연 때나 지금이나 이 작품에 여전히 마음이 열리는 이유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5호 2016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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