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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페스트> 김성수 음악감독 [No.154]

글 |나윤정 사진 |심주호 2016-08-04 6,577

친숙하지만 낯설게


<페스트>는 시대의 아이콘인 서태지의 음악으로 만든 창작 뮤지컬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알베르 까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었다. <페스트>의 김성수 음악감독은 작품의 편곡을 맡아 서태지 음악의 친숙함과 새로운 매력을 동시에 끄집어내기 위해 힘을 쏟고 있었다. 김성수 음악감독을 만나 주크박스 뮤지컬 <페스트>의 편곡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주크박스 뮤지컬, 친숙하지만 낯선 매력
편곡자로서 느끼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매력은 무엇인가?
주크박스 뮤지컬은 음악의 멜로디가 이미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검증된 멜로디인 만큼 웬만해선 관객들이 음악에 대한 혹평을 하진 않는다. 반면, 멜로디가 각인돼 그걸 쉽게 비틀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가사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틀에서 창작을 해야 하는 것 또한 편곡자에게는 큰 도전이다. 그럼에도 다른 창작자가 만든 곡을 확장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만든다는 것, 이것이 주크박스 뮤지컬의 매력이다.


노래의 가사가 정해져 있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특징이 편곡자의 입장에선 아무래도 제약이 크겠다.
그래도 작품에서 노래의 가사를 바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사를 바꾼다면 주크박스 뮤지컬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물론 창작자로서 힘들긴 하지만, 정해진 가사를 두고 편곡을 구성한다는 것이 이 작업의 묘미라고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크리에이티브 팀의 능력치가 나타나는 거다.


<페스트>는 서태지의 음악으로 만든 창작뮤지컬이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서태지의 음악을 편곡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당연히 부담된다. 현 시대의 음악이기 때문에 더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만약 만들어진 지 오래된 클래식 음악이라면, 자신 있게 비틀어서 완전히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서태지의 음악은 생각보다 유통기한이 굉장히 길고, 지금도 유효하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음악이니까. 또한 창작자의 입장에서 원작자를 만족시키는 편곡을 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내가 원작자라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내 음악이 만들어지면 더 재밌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더 자신감을 얻었다.


주크박스 뮤지컬을 편곡하기 위해선, 원곡을 분석하는 과정이 중요하겠다.
우선 원곡을 즐겨야 한다. 그 노래를 좋아해야 편곡을 할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곡을 손대는 작업이기 때문에, 원작자가 수긍할 수 있는 편곡을 하는 것도 하나의 의무다. 또한 이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해해야 한다. <페스트> 작업을 맡게 된 후 처음에는 서태지의 곡을 모두 구입해서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곡을 틀어놓고, 음악에 내 몸을 담갔다. 그 뮤지션이 가지고 있는 세계와 코드 안에 내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악에 들어갔다가 머물기만 하면 좋은 편곡이 안 나온다. 거기서 빠져나와 내 갈 길을 가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화성적인 분석도 해야 한다. 서태지의 음악은 한 번 들으면 귀에 딱 들어온다는 게 큰 특징이다. 국내 가요들은 코드 진행이 복잡한 경우가 많은데, 서태지의 음악은 코드 진행이 복잡하지 않다. 원체 머릿속에 팍팍 들어오는 음악이라 심각하게 분석할 필요가 없었다. 몰입이 워낙 잘되서 곡을 즐길 수밖에 없었다.


<페스트>는 다른 주크박스 뮤지컬과 어떤 차이가 있나?
주크박스 뮤지컬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대중이 좋아하는 원곡 본연의 느낌을 잘 살려 만든 작품, 그리고 원곡을 해체해 만든 작품이다. <페스트>는 이 중간에 있지만, 후자에 조금 더 가까운 작품이 될 것 같다. 어떤 곡은 원래 형태를 조금 남겨 두기도 하고, 어떤 곡은 완전히 해체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곡들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구체적인 편곡의 방향은 무엇인가?
오케스트레이션을 강조할 거다. 웅장한 오페라처럼 말이다. 또한, 영화 음악에서 많이 사용하는 사운드 장치를 더해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적인 느낌을 주려고 한다. 또한, 현악, 관악을 강조한 오케스트라 위주로 가되 전자악기들을 좀 활용할 예정이다. 밴드 음악에 기반 한 ‘서태지스러움’이 불쑥 튀어나와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FX 사운드나 엠비언트 사운드 디자인을 더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를 기존 공연처럼 음향 팀에서 컨트롤하지 않고,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전자 장비를 컨트롤해 직접 연주하는 방식을 택할 거다.


서태지의 곡 중 뮤지컬 넘버 리스트를 선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나?
<페스트>는 원작과 원곡이 워낙 유명해, 그 자체가 크리에이티브 팀에게 큰 도전이었다. 원작이 정해져 있고, 원곡의 가사를 바꿀 수 없으니,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들기에 난해한 요소는 모두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창작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드라마였기 때문에, 곡 선정은 우선 작가와 연출가의 의견을 존중했다. 드라마의 개연성을 잘 만들고, 그것에 어울리는 곡을 배치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내 역할은 드라마에 어울리는 음악적 호흡을 맞추는 것이었다.





서태지 음악의 새로운 세계
넘버 리스트를 보면, ‘난 알아요’, ‘하여가’, ‘컴백홈’ 등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서태지의 대표곡들이 빠져있어 좀 아쉽다. 의도한 것인가?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다. 관객들이 드라마의 개연성을 중요시 여기는 만큼, 그것에 중점을 두고 음악을 선정해 배치한 것이다. 일반적인 주크박스 뮤지컬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히트곡을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페스트>는 알베르 까뮈의 소설이 원작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주크박스 뮤지컬과는 곡 선정 과정이 조금 달랐다. 서태지의 음악 중 좋은 곡을 고르고, 그 음악 안에서 스토리를 도출해 내는 일반적인 과정이 아니라, ‘페스트’란 원안 안에서 드라마에 맞는 곡을 선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물론 이러한 과정 속에서 크리에이티브 팀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곡이 무엇일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대중이 선호하는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접점을 찾는 것이 주크박스 뮤지컬의 난제일 것 같다.
그 접점을 잘 찾아야 한다. 그런데 낯설기도 하지만 친숙한 것이 주크박스 뮤지컬의 강점이다. 이 역시 잘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겐 자신이 좋아하는 멜로디를 무대에서 들을 수 있는 것 자체가 큰 매력일 테니까. 그런 만큼 주크박스 뮤지컬에서는 훅이 있는 멜로디를 관객들이 들을 수 있게 만들어 줄 필요도 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도 주안점을 두었다. 또 곡마다 각각의 역할이 있다. 해체되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곡이 있고, 원곡의 드라마틱한 면을 그대로 가져가는 곡도 있다. 단 몇 개의 곡들이 아주 멜로디가 강하다 보니, 이런 부분은 의도적으로 조금씩 조정하고 있다. 너무 귀에 잘 들어오는 곡들이 계속 이어지지 않게 말이다. 단거만 너무 먹으면 질릴 수 있으니까.


첫 곡이 ‘영원’이다. 어떤 느낌을 기대하면 될까?
극이 시작되면 격렬한 오버추어가 2~3분 정도 이어질 거다. 지금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에드거 앨런 포> 오버추어가 3부작인데, 그것이 쪼개져서 나중에 뒤에 벌어지는 사건들의 언더스코어로 들어가 있다. <페스트> 역시 이런 식으로, 오버추어에 쓰인 테마들이 특정 장면의 언더스코어로 자리하게 될 거다. 다이내믹한 오버추어가 시끄럽게 이어지다가, 분위기가 반전되며 조용하게 ‘영원’이 시작될 거다.



서태지의 음악 중 유일하게 리메이크된 곡인 ‘너에게’도 넘버 리스트에 있다. <응답하라 1994>의 OST로 큰 사랑을 받았는데, 이 곡은 어떤 방식으로 편곡할 예정인가?
성시경이 부른 리메이크 버전과는 당연히 다르게 갈 거다. 솔직히 이 노래가 리메이크가 안 되었다면, 이 작품에서도 성시경 버전과 비슷한 느낌의 리메이크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스트링이 나오는 발라드. 하지만 아무래도 먼저 나온 리메이크와 다른 방향으로 갈 거다. 오케스트라 중심으로 가겠지만, 엠비언트 사운드 등의 요소가 조금 더해질 것 같다. 라이트한 일렉트로닉의 느낌이라면, 힌트가 될까?


‘죽음의 늪’은 곡 자체가 지닌 묵직한 느낌 때문에 페스트에 걸린 오랑 시민들의 비극을 더욱 극대화하는 듯하다.
‘죽음의 늪’은 드라마가 중요한 곡이다. 그래서 살짝 무섭게 만들려고 한다. 오케스트라 위주로 가되 비트감을 살릴 거다. 현악과 관악을 강조해서 다이내믹하고 드라마틱하게 편곡하려고 한다.


‘Take5’는 2막에서 리프라이즈되는데, 리프라이즈의 특별한 기능이 있을 듯하다.
보통 리프라이즈는 반복을 통해 특정한 것을 연상시키고 각인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 작품에서는 연상을 역으로 시키려고 했다. 원래 까뮈 원작이 희망을 이야기한 작품은 아니었다. 반면 뮤지컬 <페스트>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한 곡을 리프라이즈로 대비시킴으로써 희망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담았다. ‘Live Wire’ 같은 경우 1막에서 매우 어두운 느낌이라면, 2막에서는 희망적인 느낌을 담아내려 했다. 이런 식으로 정반대의 분위기로 연상을 이끌어내려 한다. ‘Take5’의 경우는 사실 편곡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나중에 뮤지컬 넘버 리스트를 보면 알 텐데, 밝은 곡들이 쭉 이어지는 흐름이다. 그러다 보니 원곡 호흡대로 가면 ‘Take5’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지점이 된다. 그런 만큼 이 곡은 새로운 느낌으로 비틀어야 했다.


이 밖에 <페스트>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미리 알려줄 팁이 있다면?
아마 저마다 ‘왜 이 노래는 뮤지컬 넘버 리스트에 안 들어갔을까?’ 생각하는 노래가 있을 거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세운 계획이 있다. 여러분이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곡 중 하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극 안에서 들을 수 있게 될 거다. 오버추어, 언더 스코어, 퇴장 음악 등등에서 만날 수 있으니, 귀 기울여 달라. 어떤 곡인지 미리 알면 재미없으니 이 정도만 말해두겠다. 이런 요소들로 극이 더욱 재밌어 질 거다. 만드는 입장에서도 신 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4호 2016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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