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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페스트> 김다현 [No.154]

글 |배경희 사진 |배임석 헤어·메이크업 | 에스휴 스타일링 | 최제윤 2016-07-28 5,628

깊어지는 여유


지난해 여름 서울예술단이 선보인 초연 창작뮤지컬 <신과 함께_저승편> 이후 한동안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김다현이 다시 돌아왔다. 지난 6월 <노트르담 드 파리>로 짧은 공백을 깬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는 7월 베일을 벗게 될 초연 창작뮤지컬 <페스트>의 신념 강한 의사 리유다. 문화 대통령으로 군림했던 서태지의 첫 주크박스 뮤지컬 <페스트>에 대해 공연계 안팎으로 뜨거운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김다현은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용기

작년 가을부터 한동안 일본 활동에 집중했다죠? 언제 그런 계획을 세웠어요?
일본 활동에 대한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했어요. 야다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막연히 일본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2012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일본 투어 공연에 참여하게 되면서 좀 더 구체적인 고민을 하게 됐고요. 분명 한국어 가사를 이해하지 못 하실 텐데도 저희 공연에 감동받는 일본 관객분들을 보면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소통이라는 게 있구나 싶었거든요. 그게 저한테도 감동이었어요. 일본 시스템에 맞게 음반도 내고, 배우로서도 활동할 장기 계획을 세우기 위해 작년 가을부터 아예 일본에 머물면서 직접 발로 뛰어다녔어요. 신인 때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었죠.


언제 다시 돌아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떠났던 거예요?
사실 언제 어떤 작품으로 돌아오겠다는 계획은 없었어요. 그런데 다들 하는 말이 외국 생활 6개월이면 향수병을 느낀다는 거였는데, 정말 6개월 정도 생활해 보니까 향수병이 심해지더라고요. 빠르게 일본어를 익히려는 마음에 비즈니스 미팅도 통역 없이 혼자 다니고, 일부러라도 한국 사람을 안 만나려고 했더니 결국 한국을 더 그리워하게 된 것 같아요.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단 생각이 간절해질 때쯤 때마침 <노트르담 드 파리>와 <페스트> 출연 제의를 받아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죠.


서태지 음악으로 뮤지컬을 만든다는 소식은 언제 처음 접했어요?
2014년 가을에 <보이첵>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보이첵>의 각색을 맡았던 안재승 작가하고 원래 잘 아는 사이인데, 그 친구가 서태지 뮤지컬을 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진짜냐고, 대본 나오면 꼭 보여달라 그랬어요. 제가 서태지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거든요. 나중에 크리에이티브 팀이 교체되면서 작가도 바뀌었지만, 어쨌든 처음 소식은 그 친구를 통해 들었어요.


처음에 가장 기대했던 점은 뭐예요?
서태지 선배님의 음악이 어떻게 뮤지컬 음악으로 변할까. 이게 제일 궁금했어요. 서태지 음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뮤지컬 음악과는 다소 거리가 있잖아요. 원곡의 가치나 매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재탄생할지, 저도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제가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하던 90년대에 사춘기를 보내서 서태지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하루의 시작과 끝을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와 함께했고, 옷도 서태지처럼 입고 다니고. 심지어 야다로 활동할 때도 서태지 패션을 따라 힙합 바지 차림을 하고 다녔어요. 저흰 록 발라드 밴드였는데도요. (웃음) 그래서 이번 작품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커요. 꼭 좋은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서태지를 좋아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출연을 주저하게 되진 않았어요?
물론 기대가 큰 만큼 두려움도 있었어요. 아마 저희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나 스태프 모두 어느 정도는 비슷한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우리나라 대중문화에서 서태지가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잖아요. 그런데 두려운 마음에 도전을 피해버리면 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할 기회 자체가 없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는 도전에 나서야 새로운 것들이 생겨날 테니까요. 기존의 가치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도 아티스트로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출연을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아무래도 역시 서태지 선배님의 음악이었죠.


서태지 노래 중에서 작품에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있어요?
‘난 알아요’는 있었으면 했어요. 첫 소절, ‘난 알아요’ 이 짧은 가사의 멜로디가 정말 강렬하게 남잖아요. 잘 알려진 익숙한 멜로디를 어떻게 편곡할까 굉장히 궁금했는데, 뮤지컬 넘버에 없더라고요. 저희 작품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에요. (웃음)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에서 제일 기대하는 노래는 ‘비록’이란 곡이에요. 서태지의 가장 최근 정규 앨범에 실린 곡인데, 제 상대 캐릭터인 타루와 애틋한 이별을 겪는 장면에서 불러요. 슬프지만 아름다운 장면이 될 것 같아서 기대돼요. 


서태지 음악으로 서태지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고전 소설을 각색해 작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더 흥미로웠을 것 같아요.
네, 뭔가 재밌는 작품이 나오겠다 싶었죠. ‘페스트’라고 하면, 왠지 굉장히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는데, 바이러스 전염병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 문제잖아요. 최근에 일어난 메르스 사태도 그렇고요. 그래서 전 이 작품이 시의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 도시에 갑작스럽게 전염병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는 원작의 줄거리는 그대로 따르지만, 시간적 배경을 미래로 바꿔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과학 기술이 발전한 가까운 미래라는 설정인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얘기처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뮤지컬 <페스트>에는 행복한 도시 건설을 위해 불행한 기억을 삭제해 주는 ‘기억제거장치’가 개발됐다는 새로운 설정도 추가됐잖아요. 만약 실제로 이런 기계가 발명되면 어떨 것 같아요?
누구라도 그런 기계를 발명해 낸다면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 것 같은데, 한편으론 안 그럴 것 같기도 해요. 저도 제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 몇 개 있긴 하지만 막상 그 기억을 지우겠냐고 하면 안 할 것 같거든요. 행복했던 기억이나 불행했던 기억 모두 제 인생의 한 부분이고, 잊지 않고 기억해야 같은 실수를 안 할 테니까요.





나를 향한 믿음

나를 자극하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는데, 이번에 맡은 리유는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어요?
고립된 도시에서 끝까지 페스트와 싸우는 신념 강한 모습에 끌렸어요. 자기 신념대로 고지식하게 밀어붙이는 점이 저랑 닮아서 왠지 더 마음이 갔고요. 저도 예전엔 주위에서 고지식해서 답답하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거든요. (웃음) 근데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성격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죠. 사람은 누구나 다 변하기 마련이라 어떻게 변하느냐가 중요한데, 스스로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전 나이를 먹어가면서 좀 더 좋은 쪽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요.


리유라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해요?
아직 단정 지어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리유는 인간의 신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페스트라는 재앙이 덮친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환자를 치료하고자 헌신하는 인물이니까요.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어쩔 수 없이 생각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당장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다 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이 옳다는 걸 리유가 보여주는 듯해요. 이제 막 드라마를 깊이 파고드는 시점이라 연출님하고 잘 상의해서 캐릭터를 완성해 가려고요. 개인적으로 노우성 연출님 작품을 좋아했는데, 같이 작업하게 돼서 기대가 커요.


리유처럼 세상과 혼자 맞서 싸우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럼요. 작품을 할 때마다 매번 세상과 홀로 싸우는 외로운 기분을 느끼는걸요. (웃음) 특히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초연 창작뮤지컬 작업을 할 때는 더 그래요.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겪게 되니까. 근데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다 겪은 후에 얻는 보람은 어디서도 느낄 수 없어요. 초연 창작뮤지컬을 하면 분명 감정적으로 힘들어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매번 하게 되는 이유죠. 창작뮤지컬은 설령 눈에 보이는 결과가 실패로 끝나더라도, 작업 경험 자체가 제 자신을 성장하게 한다는 믿음이 있어요.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만큼 깨닫는 바도 많을 것 같아요.
네, 창작뮤지컬은 할 때마다 꼭 새롭게 느끼게 되는 게 있어요. 작품마다 생각의 전환이 이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할까요. 물론 그렇다고 라이선스 뮤지컬 작업이 쉽다거나 덜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건 아니에요. 창작뮤지컬과 라이선스 뮤지컬은 그냥 성격이 조금 다른 작업인데, 최근 몇 년 동안 <보이첵>이나 <신과 함께> 같은 창작뮤지컬을 하면서 큰 보람을 느꼈거든요.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이 생겼죠.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작년에 <신과 함께>를 하면서는 신의 존재를 믿게 됐어요. 정말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신적인 영역의 일이라는 게 있구나 싶더라고요. 하늘은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라는 말도 믿게 됐고요. 좀 더 바르고 똑바로 살아야겠다 싶었죠. (웃음)


극 중 대사 중에 ‘오랑 시민에게 필요한 건 1퍼센트의 희망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배우 김다현에게 필요한 1퍼센트는 뭘까요?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시는 관객분들이죠. 관객이 없으면 저라는 존재도 의미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리고 뮤지컬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은 좀 더 특별한 느낌이 있어요. 한 작품과 배우를 마치 가족처럼 마음 깊이 응원해 주신달까요. 그래서 아무리 지치고 힘들더라도 매 작품을 기대해 주는 팬을 생각하면 다시 한 번 힘을 내게 돼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4호 2016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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