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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에드거 앨런 포>의 에드거 앨런 포 [No.154]

글 |나윤정 사진 |심주호 2016-07-28 6,542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법


19세기 문학계의 스타 작가 에드거 앨런 포. 그의 인생은 불행으로 가득했지만, 작품은 오래 남아 예술가로서 그의 이름을 빛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버지니아가 죽은 후 술에 의존하며 외로운 시간을 보내다 2년 만에 세상을 떠난 에드거 앨런 포. 그는 지금도 그토록 간절하게 글을 쓰고 있을까요?


* 이 글은 에드거 앨런 포 역 배우 최재림과의 대화를 토대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지금 우리는 에드거 앨런 포를 19세기 미국 문학사를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가라 불러요. 당신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후대의 예술가들도 어마어마하고요.
아니, 살아 있을 때나 주목해 주지. 죽은 다음 다 무슨 소용입니까? (버럭)


우선은 진정하시고요. 자신의 작품이 이렇게 유명해질 줄 알았어요?
물론 제 글에 대한 믿음은 항상 있었어요. 대중에게 사랑받은 작품, 또 외면받은 작품, 모략으로 인해 세상에 거부당한 작품도 있었죠. 그런데 저는 당장 인정을 못 받더라도, 제가 보는 세상을 글로 담고 싶었어요. 군대도 가보고, 편집도 해보고, 가게에서 육체적인 노동도  다 해봤는데 못 견디겠더라고요. 글을 계속 써야겠더라고요. 그냥 글로 승부하고 싶었어요. 물론 그때는 그리스월드 그자가 제 등에 이렇게 칼을 꽂을 줄을 몰랐지만….


그리스월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가 당신을 파괴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언제였어요?
그는 제 글에 대한 비평을 항상 했어요. 저도 그에 대한 비평을 해왔고요. 그런데 절 죽이고 싶어 하는지는 미처 몰랐어요. 제 작품의 소재나 표현 방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건 알았지만, 절 죽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제 작품을 관리한다고 했을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하는 건데…. 그때 제가 너무 술에 의존해 생각을 제대로 못했네요.


그러게 왜 그렇게 술을 마셨어요.
술이요? 사실 처음엔 사람들이랑 친해지려고 마신 거였어요. 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진짜 노력 많이 했거든요. 제 본모습을 억누르고 친절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술자리도 마련하고 노력한 거죠. 그렇게 다른 예술가들과 소통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이거 원 수준이 되어야 말이지. 쯧쯧.


그리스월드와의 만남을 돌이켜봤을 때,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언제예요?
첫 만남인 것 같아요.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거죠. 그리스월드가 저명한 목사였고, 문학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비평가이자 문학가였지만, 새로운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좁았어요. 자신의 신념과 신앙에만 휩싸여서 현실을 흑백논리로만 나누더라고요. 저는 그런 점을 좀 지적하려 한 건데… 제가 말이 좀 세잖아요. 원체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에 방어기제가 컸어요. 그때부터 우리의 만남이 잘못된 거죠. 그리스월드, 넌 정말 안 돼!



그의 작품에 대해 논한다면요? 
논할 가치도 없어요.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고요. 아니, 재밌어야 읽죠. 만날 신 이야기만 하고, 성경적 논리만 따지잖아요. 한두 장 읽다가 역겨워서 덮어버렸어요. 어휴, 글도 더럽게 못 써요. 그리스월드, 너 그걸 글이라고 쓰니!


그리스월드 이야기는 그만할게요. 당신 인생에서 세 명의 여인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어머니였어요. 당신이 늘 그리워했던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죠?
사실 기억이 없어요. 어떻게 생겼는지도 사진으로만 봤죠. 저를 키워주신 분들이 부모님 이야기를 많이 안 해주셨어요. 저희 어머니는 배우였고, 병으로 죽었다고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제가 만들어낸 이상이에요. 나의 어두운 환경과 아픔, 채워지지 않은 사랑, 이 모든 것들을 포용해 줄 수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어릴 때부터 머릿속에 키워온 거죠. 죽고 나서 어머니를 뵈었는데 예쁘시더라고요. 우리 엄마, 예뻤어! 허허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첫사랑 엘마이라를 통해 채웠잖아요. 그만큼 그녀와 헤어질 때 상실감이 컸겠어요.
분했죠. 억울했어요. 가난이 죄구나! 돈을 벌어야겠다! 그런데 나중에 딴 사람과 결혼했더라고요. (당신도 버지니아와 결혼했잖아요.) 엘마이라가 먼저 나를 버렸잖아요.(버럭) 나 버리고 잘 사는데 그거만 바라보고 살아요? 물론 그 배신감 때문에 버지니아와 결혼한 건 아니에요. 버지니아가 날 필요로 했고, 그녀는 내가 보호해 줘야 할 대상이자 나의 뮤즈였어요. 버지니아와 결혼했지만, 엘마이라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항상 마음속에 있었어요. 어머니의 묘지 앞에서 재회하게 됐을 때도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그녀도 나를 사랑한다는 걸 느꼈죠. 그때 제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주는 게 너무 치욕스러워 밀어냈지만, 그녀가 떠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느꼈죠. 역시 엘마이라를 진정으로 사랑했구나! 버지니아의 것과는 조금 다른 사랑이었던 거죠. 누굴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한 건 아니에요. 사랑의 모양이 달랐던 것뿐이죠.



어리고 병약했던 사촌 버지니아와 결혼을 결심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사실 많이 두려웠어요.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 순간에는 내가 버지니아를 보호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선택한 결혼이었는데, 그러지 말걸 그랬어요. 닐슨과 결혼하게 내버려 둘걸. 나 혼자 감당해야 할 불행에 버지니아를 끌어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항상 미안한 마음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 엘마이라, 버지니아, 모두 함께 있으니까 행복해요.


불행으로 점철된 인생이었지만, 그래도 가장 행복했던 때가 있었겠죠?
이 말은 버지니아가 들으면 안 되는데…. 실은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을 출판했을 때 많은 사랑을 받았거든요. 물론 그때도 돈을 많이 번 건 아니지만, 내가 글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행복했어요. 동시에 그 시기에 엘마이라를 만나고 있었거든요. 그 순간이 제 삶에서 가장 찬란하고 따뜻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뻔한 질문이긴 합니다만, 글을 쓰는 게 왜 그렇게 좋았어요?
그게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었어요. 다른 것들은 전혀 통하지 않았으니까요. 제 삶에서 저를 인간적으로 좋아해 준 사람은 정말 많지 않아요. 저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원래 모습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그래서 늘 나를 숨겨야 하고 포장했어야 했는데, 글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글 속엔 내 본심을 담을 수 있으니까. 저는 항상 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글로 쏟아내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건 글이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었던 거죠.


그럼 지금도 글을 계속 쓰고 있어요?
어휴, 지금 글 쓸 필요가 뭐 있겠어요. 주변에 내가 필요한 모든 게 있잖아요. 더 이상 결핍이 없으니, 글을 쓸 이유 또한 없어졌네요. 허허.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4호 2016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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