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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이상훈의 세계의 도시, 세계의 공연장] 발트 3국 [No.154]

글 |이상훈 사진 |이상훈 2016-07-18 7,089

그동안 알지 못하였던 음악 강국, 발트 3국의 공연장 이야기




유럽 여행이 보편화된 지 오래다. 직장인부터 시니어까지 전 세대에 걸쳐 유럽 여행을 다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젊은 대학생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일도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예산과 일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유럽 여행은 보통 파리나 로마 등을 찾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입문 코스이다. 클래식 음악을 즐긴다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미술을 즐긴다면 프랑스를 먼저 방문할 수도 있다. 아니면 여름 시즌 축제 일정에 맞추어 축제가 벌어지는 해당 도시를 여행하거나, 런던에서 뮤지컬을 즐길 수 있다. 이후 몇 차례 유럽 여행의 경험이 쌓이면 가보지 않은 나라와 도시를 섭렵하려고 할 것이다. 꼭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유럽, 동유럽 등을 돌고나면 마지막으로 북유럽을 찾게 된다.


하지만 발트 3국(발트해 남동해안에 위치해 있는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은 일반적으로 그리 쉽게 찾게 되는 지역이 아니다. 북유럽을 여행한다고 해도 배를 타고 헬싱키에서 이동해야 하며 러시아로 방향을 잡는다고 해도 모스크바와는 제법 거리가 있다. 게다가 49개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과 비자 협정이 되어 있지 않은 벨로루시를 지나쳐야 한다. 필자 역시 지난 수년간 40여 개국 가까이 방문했던 유럽 국가 중 가장 뒤늦게야 이 지역을 방문할 수 있었다.


발트 3국은 가기가 쉽지 않다고 해서 관심 밖으로 둘 나라는 아니다. 요즘 클래식 음악계는 이 지역 출신 음악가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으며, 발트 3국 주요 도시마다 최고의 공연장이 있다. 먼저 동시대 지휘자 중 최고의 지휘자라고 할 수 있는 마리 얀손스(Mariss Jansons)가 바로 라트비아 리가(Riga) 출신이며, 라이프치히에 소재한 독일 명문 오케스트라 게반트하우스의 음악감독에 부임한 신예 안드리스 넬손스(Andris Nelsons) 역시 리가 출신이다. 마에스트로 네메 예르비(Neeme Jarvi)와, 우리에겐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으로 알려진 HR 헤센 방송교향악단의 음악감독 파보 예르비(Paavo Jarvi), MDR 중부독일 방송교향악단의 크리스티앙 예르비까지 예르비 3부자가 모두 에스토니아 탈린(Tallinn) 출신이다. 발트 3국의 클래식 공연 저변과 음악 교육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이다.



공연장 시설은 또 어떠한가. 먼저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Vilnius)에 있는 리투아니아 국립 오페라 발레극장은 1974년 완공되었으며, 주로 서구의 오페라, 러시아 오페라와 발레를 공연한다. 또한 빌니우스 음악 축제 기간에는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빌니우스를 찾는데, 지난 6월 초 빌니우스 음악 축제에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가 참석하기도 하였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는 1782년 이미 독일어 오페라를 하는 극장이 존재했을 만큼 전통이 있는 도시이다. 1893년 라트비아어 오페라를 만드는 시도를 했으며, 1912년 본격적으로 오페라 컴퍼니를 설립했다. 하지만 세계대전 동안 컴퍼니는 러시아로 대피, 지금의 라트비아 국립오페라극장은 1995년 이후 리노베이션된 것이다. 이번 여행은 라트비아 국립오페라극장의 베르디 페스티벌을 중심에 두고 일정을 짰는데, 기간 중 오페라 <일트로바토레>를 만날 수 있었다. 역시 명불허전. 오페라 가수의 실력과 연출 모든 면이 유럽의 어느 오페라 극장 못지 않았으며 극장 시설 역시 나무랄 데가 없었다. 사견으로는 발트 3국 중 리가의 공연장 시설과 인프라가 가장 앞서는 것 같았다.



에스토니아 탈린에 위치한 에스토니아 국립 오페라극장은 콘체르트하우스(Konserthaus)와 나란히 도심 중앙에 서 있는데 그 규모와 위용이 대단하다. 이 극장은 건축물인 동시에 동명의 오페라단이기도 하다. 오페라, 발레, 오페레타, 뮤지컬 등을 상시 공연하며 이를 주관하는 예술단과 스태프 등 500명 이상의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또한 에스토니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이곳에 상주해 있으며 소비에트 시절부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아놀드 쇤베르크, 안톤 베베른, 칼 오르프 등 현대 작곡가들의 연주로 정평이 나 있다.



실험적인 음악극 <한여름 밤의 꿈>

                       


이번 일정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연은 발트 3국 여행 마지막 날 만난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단언하건대 지금껏 클래식 연주라는 카테고리에서 만난 가장 혁신적인 연주였다. <한여름 밤의 꿈>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음악극이라 보통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그리고 연극배우들의 협업으로 공연되곤 하는데, 에스토니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보여준 이날 연주는 실험적인 연출로 단순 연주회가 아닌 첨단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는 무대에 배치했다. 대신 객석 1층 중앙에 퍼포먼스를 하는 무대로 마치 마당극처럼 ‘ㄷ’자로 관람석을 배치하였으며, 그 위에 대형 스크린 역할을 하는 원형 볼을 두고 사방에서 프로젝트를 쏘아 배우들의 액션과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효과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들려주는 음악과 함께 실시간 영상으로 볼 수 있게 하였다. 특별히 영상을 어안렌즈로 촬영, 평면이 아닌 구에다 화면을 쏜 덕분에 객석 어느 위치에서도 음악과 영상을 함께 볼 수 있는 점이 획기적이었다. 무대에서 직접 공연을 보는 이유는 집에서 영상으로는 느낄 수 없는 현장감 때문이다. 하지만 무대의 연주자(배우)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는 없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관계인데 이번 연주에서는 두 가지 조건을 다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것도 클래식 연주회라는 틀 안에서 말이다. 실험적이라는 말은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의미도 되지만 또 자신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발트 3국을 여행하면서 만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의 공연장과 공연 단체들은 충분히 기대 이상이었으며, 이미 잘 알려진 서방의 어느 공연장 못지않았다. 그동안 이 지역의 놀라운 성과를 미리 알지 못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최근 활약하고 있는 발트 3국 출신 음악가들은 천재가 아니라 그들이 이룬 문화적 인프라에서 등장한 당연한 결과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4호 2016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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