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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뉴시즈> 데이비 [No.153]

글 |안세영 사진 |양광수 2016-06-22 5,675

끝이 아닌 시작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되었던 뉴스보이의 파업이 노조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언론은 그들의 리더인 잭 켈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지만 그의 옆에는 함께 파업을 이끌어간 여러 뉴스보이가 있었죠. 17세의 뉴스보이 데이비도 그중 한 명입니다.


*이 글은 데이비 역 배우 강성욱과의 대화를 토대로 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퓰리처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걸 축하해요. 조합장인 잭이 파업의 일등 공신으로 당신을 꼽더군요. 자기는 허세고 진짜 브레인은 당신이라고요.
어우, 아니에요. 브레인은 무슨. 저희가 파업을 일으키기 전에 전차 파업이 3주나 계속되었잖아요. 그때 신문 기사를 읽은 게 도움이 된 셈이죠. 뉴스보이 사이에서 좀 튀었을 뿐이지, 저 학교에선 그렇게 공부 잘하는 애도 아니었어요.


학교에 다녔어요? 학교에서는 어떤 학생이었는데요?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한 학생? 공부로 일등을 한 것도 아니고, 친구들을 몰고 다닌 것도 아니고. 조용히 제 할 일만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죠. 제가 뉴스보이가 되어 파업을 이끌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아침 등굣길에 신문을 팔고 있는 아이들을 자주 보았는데, 동정심도 생기지만 한편으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쟤들은 나랑 비슷한 나이에 벌써 일을 하고 있구나. 나는 하지 못하는 걸 하고 있다는 존경심 반, 쟤들도 나처럼 학교에 다니고 싶겠지 하는 동정심 반. 그런 마음으로 바라봤던 것 같아요.


뉴스보이 중에는 고아나 가출 청소년이 많은데,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던 당신이 왜 뉴스보이가 된 거예요?
아버지가 일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셨거든요. 그래서 해고를 당하셨어요. 장남인 제가 아버지 대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에 신문팔이 일에 뛰어들었죠. 신문팔이가 제 또래 애들이 제일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자리잖아요. 물론 제 성격엔 엄청난 모험이었지만, 아버지가 워낙 책임감 강하고 가정에 충실한 분이셔서 저도 보고 배운 게 있나 봐요.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어린 동생도 챙겨야 했고요.


하지만 그 동생도 당신과 함께 신문을 팔지 않았나요? 왜 데리고 나온 거예요?
전 데리고 나올 생각 없었어요. 그 철부지가 맘대로 따라온 거지. 아무리 말려도 말을 들어야 말이죠. 아버지랑 제 밑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자라서 그런가 아주 천방지축이에요. 그래도 레스가 옆에 있으니까 의지가 되긴 하더라고요. 저보다 신문도 잘 팔고…. 이젠 자기가 다 컸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제가 보기엔 아직 지켜줘야 할 철부지예요.


뉴스보이가 된 다음 알게 된 뉴스보이의 새로운 면이 있나요?
뉴스보이와 친구가 되면서 동정심은 사라지고 존경심이 더 커졌어요. 집 없는 가난한 애들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많고, 버는 돈이 적어서 끼니 챙겨 먹기도 어려운데, 그래도 다들 웃으면서 즐겁게 일하더라고요. 치열하게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도 많이 배웠어요.


잭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사실 처음에는 약간 사기꾼 같았죠. 웬 모르는 애가 동생이 귀여우니 신문이 잘 팔리겠다며 동업하자는 거예요. 전 신문팔이의 세계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까, 의심하면서도 그냥 휩쓸렸죠. 근데 그날 하루 잭과 함께해 보니, 잭이 레스를 단순히 신문 파는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짧은 시간에도 진심으로 레스를 예뻐하는 게 보여서, 저도 의심이 풀렸어요. 게다가 레스는 전부터 잭에 대해 알고 있었나 봐요. 저한테 “이 형 이름은 잭이야” 하고 알려 주더라니까요.



레스가 어떻게 잭의 이름을 알았을까요?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면서 잭을 본 적이 있나 봐요. 어린 나이에 형들이 신문 팔면서 자기들끼리 먹고 사는 게 멋져 보였을지도 모르죠. 그중에서도 대장인 잭은 레스에게 영웅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싶어요. 맨해튼 뉴스보이에게도 잭은 친구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느껴져요. 잭이 이끄는 뉴스보이 무리는 폐건물에 모여 살면서 가족처럼 생활하는데, 말하자면 잭이 이 집안의 가장인 셈이죠. 애들이 툭하면 잭을 찾고, 잭의 이름을 연호하는 건 그만큼 잭이 듬직하게 애들을 이끌었기 때문 아니겠어요.


퓰리처가 뉴스보이에게 파는 신문 값을 인상한 날, 잭과 당신은 바로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을 선언했죠. 당신이 파업에 참여한 계기는 뭔가요?
처음에는 잭을 말렸어요. 당장 우리 가족이 굶게 생겼는데, 파업을 하면 돈을 못 벌잖아요. 그런데 잭이 한 말이 결정적으로 제 맘을 흔들었죠. “너희 아버지도 노조가 있었다면 니가 여기 나와서 신문 파는 일은 없었을 거잖아.” 그 말을 들으니 다시는 아버지처럼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이 아니었다면 전 쉽게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을 거예요.


브루클린 뉴스보이의 대장인 스팟 콜론의 협조를 얻으러 다녀오기도 했죠?
정확히는 잭이 절 억지로 끌고 갔죠. 뉴욕 뉴스보이를 하나로 모으려면 브루클린의 협조가 중요했거든요. 브루클린 애들은 뉴스보이 사이에서 험악하기로 소문난 애들이라 엄청 긴장했어요. 걔들이 저희 주위를 쭉 둘러싸는데, 어깨만 툭 쳐도 심장이 덜컹하더라고요. 잭은 그래도 맨해튼 대표랍시고 그 앞에서 허세를 떨고, 그러면서 정작 파업의 목적 같은 건 다 저한테 얘기하라고 떠넘기는 거예요. 어휴, 엄청 눈치 보면서 소심하게 얘기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시위가 경찰과 폭력배에게 진압당했을 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던가요?
사실 아이들이 다치고 크러치가 보호소에 끌려간 뒤, 우리의 파업은 실패했다고 생각했어요. 가족들도 굶고 있어서 다음 날 아침 신문을 사러 나갔죠. 그런데 신문을 파는 와이즐의 불안한 표정을 보고 느낀 거예요. 아직 끝난 게 아니구나! 그래서 신문을 다시 내려놓고 뉴스보이가 모인 레스토랑으로 갔죠. 애들은 자포자기 상태로 늘어져 있었지만, 전 내심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때 신문 기자인 캐서린이 우리 파업 기사가 1면에 실렸다는 소식을 가져온 거예요. 모두에게 다시 희망이 생겼죠. 심지어 브루클린 애들은 그 기사를 보고 자기들도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전 빨리 이 소식을 전하러 잭을 찾아갔죠. 그때 잭은 아이들을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극장에 틀어박혀 있었어요.


잭이 그 극장에 숨어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보호소장 스나이더가 잭을 쫓아왔을 때 함께 그곳으로 도망친 적이 있거든요. 극장 주인인 미스 메다가 잭을 반갑게 끌어안더라고요. 마치 어머니처럼 말이에요. 잭이 뉴스보이 사이에서 아버지 노릇을 한다지만 걔도 앤데 기댈 곳이 필요하잖아요. 제 생각엔 그게 미스 메다였던 것 같아요. 직감적으로 여긴 잭의 쉼터라는 걸 느꼈죠. 그래서 극장으로 찾아갔는데 역시나 거기 있더라고요. 전 잭을 설득했어요. 이 극장에서 파업 집회를 열자고.



왜 집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나요?
지난번엔 머릿수가 적어서 제압당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뉴욕에 뉴스보이가 얼마나 많아요. 우리 각자는 어리고 힘이 약하지만 수천 명이 모이면 신문사 하나 뒤엎는 것쯤은 문제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때 잭을 설득하면서 저도 몰랐던 제 다른 면을 발견한 것 같아요.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도 못했던 제가 잭보다 더 적극적으로 파업을 주도한 거잖아요. 그때 이렇게 말했던 게 기억나요. “이런 걸 바로 시작이라고 하는 거야.” 전 우리 힘으로 그 시작을 만들어냈다는 게 자랑스럽고 뿌듯했어요. 집회 날, 뉴욕의 뉴스보이가 모두 한자리에 모인 걸 봤을 때도 전율을 느꼈고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때는 더 이상 소심하게 굴지 않고 단호하게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했죠.


파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어요?
그날 집회에서 잭이 파업을 철회하고 퓰리처와 합의하자고 얘기했을 때요. 그땐 잭이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를 몰라서, 의지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났어요. 뉴스보이들이 극장을 박차고 나갈 때, 저 역시 잭을 포기하듯 바라봤죠. 하지만 나중에 퓰리처가 모든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우리를 몽땅 보호소에 집어넣겠다고 협박했다는 얘길 듣고 잭의 마음을 이해했어요. 다행히 캐서린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서 파업도 다시 재개가 됐고요. 우리만의 신문을 찍어서 파업의 목적을 21세 미만 노동자 전체의 권익 보호로 확대하자는 캐서린의 아이디어는 퓰리처에게 결정타를 날렸어요. 온 도시가 파업 상태에 들어가서 퓰리처에게 항의 전화가 빗발쳤거든요.


파업은 잭의 아이디어, 집회는 당신의 아이디어, 신문은 캐서린의 아이디어. 그럼 루즈벨트 주지사를 데려오는 건 누구 아이디어였나요?
그건 미스 메다의 아이디어예요. 전에 레스가 잭한테 주지사님과 아는 사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옆에 있던 미스 메다가 “잭은 모르지만 난 알지”라고 했거든요. 그게 농담이 아니었어요. 미스 메다의 극장을 즐겨 찾는 고위층 인사 중 한 분이었던 거죠. 주지사님은 전차 파업도 지지하고 있고, 퓰리처랑 사이도 나쁘니까 저흴 도와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미스 메다가 나서지 않았다면 만나 뵙지도 못했겠지만요.


파업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은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퓰리처와의 협상 결과, 신문 값은 내려가지 않았지만 팔다 남은 신문을 환불할 수 있게 되어 부담이 줄었어요. 전에는 남은 신문을 팔려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애들이 많았거든요. 또 저희의 승리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아이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저희가 다른 친구들의 희망이 되고,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뻐요. 잭은 지금 신문사에서 정치 만화를 그리는데, 반응이 꽤 뜨겁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아는 잭은 저 혼자 성공한다고 만족할 애는 아닌 것 같아요. 언젠가 구두 공장 같은 걸 차려서 뉴스보이를 다 데려가지 않을까요? 하하. 잭은 어떻게든 계속 친구들과 함께하려고 할 거예요.


이번 파업이 당신에게는 무엇을 남겼나요?
전 이번 일을 통해 학교에 다닐 때는 알지 못했던 사회의 부조리를 깨달았어요. 그리고 내 힘으로 그런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요. 하지만 아버지가 복직하시면 전 다시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요. 이번 파업을 계기로 제게도 꿈이 생겼거든요. 기자가 되어서 앞으로도 사회의 숨겨진 부조리를 폭로하고 싶다는 꿈이요. 이런 걸 바로 시작이라고 하는 거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3호 2016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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