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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스위니 토드> 조승우 [No.153]

글 |배경희 사진 |Robin Kim 헤어·메이크업 | 순수 스타일리스트 | 이한욱 2016-06-14 16,460

한계점이 피어낼 폭발음


조승우가 잔혹한 이발사 스위니 토드로 돌아왔다. 그에겐 4년 만의 신작이다. 오랜만에 새로운 작품, 새로운 캐릭터를 마주한 그는 생애 첫 시험을 앞둔 아이처럼 투정에 가까운 엄살을 피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두렵다고 할수록 기대감은 커져만 갔다. 명작의 무게가 자신을 짓누를수록, 그 영광의 무게를 이겨내겠노라 스스로도 짐작할 수 없는 크기의 열망으로 그득해지는 배우. 올여름 우리는 <스위니 토드>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흔들리지 않는 신념


도대체 얼마 만의 신작이에요! 신작 출연은 나름대로 큰 결심이었을 것 같은데, 맞아요?
(의뭉스럽게 웃으면서) 하하하. 제가 한 몇 년 앙코르 공연만 계속했잖아요? 신춘수 프로듀서의 꼬임에 넘어가서(웃음), <지킬 앤 하이드> 10주년 공연, <맨 오브 라만차> 10주년 공연, 계속 이렇게 예전에 했던 작품만 하다 보니 새로운 작품에 목이 말랐어요. 사실 <스위니 토드>는 9년 전인가 초연이 올라가고 나서 계속 재공연 이야기가 있던 작품인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요리조리 도망 다녔어요. 내가 열여섯 살짜리 딸이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내 나이로? 내 비주얼로? 내 인생 경험으로? 아, 이건 아니다 싶었거든요. 사실 지금도 버거워요. 큰 산을 만나야 할 때가 됐다고 느꼈다가 정말 대단히 큰 산을 만나서 매일 좌절에 좌절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랄까. 거친 파도를 타듯이 좌절에 부딪치며 연습 중이죠.


새로운 작품을 잘 안 하는 건 신중함 때문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스위니 토드> 바로 전 신작이 <닥터 지바고>일 거예요. 4년 전 작품. 따져보면, 지금까지 한 작품 수가 공연해 온 시간에 비해 별로 없어요. 다작도 안 하는 데다 신작은 더 드문드문 하는데, 그 이유가 저는 영화도 하고 드라마도 하니까 저한테는 그게 신작이거든요. 그래서 뮤지컬은 신작에 대한 조급함이 없이 진짜 좋은 거 하자, 그런 마음이에요.


좀 이상한 말일지 몰라도, 누군가는 그럼 진짜 좋은 신작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미 했던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할 만큼 무대에서 얻는 게 뭘까 하는 질문을 가질 것 같아요.
쉽게 얘기해서, 제 젊음을 무대 위에 툭 던져 놓고 싶은 거죠. 물론 그럼 또 누군가는 젊음을 어딘가에 남기고 싶으면, 필름에 새기는 게 더 좋지 않겠냐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저는 그냥 무대에 남기고 싶어요. 원래 무대가 제 꿈이기도 했고, 마음을 가장 불태우면서 할 수 있는 작업이 여기 일인 걸 어쩌겠어요. 15년 넘게 활동하는 동안 어디서 뭘 하든 제 중심은 항상 무대에 있었어요. 절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알 거예요.



젊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활동 초기 영화 <클래식>을 이번에 다시 봤더니 그때 당시에 진짜 풋풋했더라고요? 만화 속 순정남 같기도 하고. 혹시 가끔 본인의 옛날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해요?
(거부 반응을 보이며) 아니죠, 순정 만화 주인공은 아니지. 그냥 뭐, 촌스러운 남자애가 있겠죠. 근데 전 제가 나온 거 잘 안 봐요. 아니, 못 봐요, 어색해서. 그리고 예전 작품들을 다시 보지 않는 이유는, 거쳐 온 역할한테는 이미 마음이 떠났으니까요. 마치 탁 덮어 책장에 꽂아둔 추억 같은 거라 굳이 다시 들춰보지 않아요. 나중에 죽기 전에나 한 번 싹 돌려 보고 가야죠.(웃음)


사실 <스위니 토드>는 지금까지 해온 작품들과 많이 다른 스타일이라 출연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한편, 오디컴퍼니가 제작해서 으레 조승우가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뮤지컬에선 오디컴퍼니가 조승우란 배우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으니까. 작품 선택을 하는 데 의리랄까, 정이랄까, 이런 것도 작용하는 건가요?
오디 신춘수 프로듀서하고 저하고는 십 년 넘게 오랜 시간을 작업해 왔으니까, 아무래도 프렌드십? 이런 건 있겠죠. 밖에선 조승우 오디하고 종신 계약했냐고 그러는데, 오디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품을 많이 하고, 신춘수 대표님이 시기적절하게 작품을 제안하세요. 저를 아주 잘 간파하시죠.(웃음) 물론 아무리 좋은 타이밍이어도 제가 주인이 아닌 것 같은 작품은 안 해요. 주인이 따로 있는 작품은 절대 안 하죠.(웃음)






언젠간 넘어야 할 산


손드하임 작품은 음악이 정교하게 계산돼 있기로 유명한데, 조승우는 짜여진 계산에 얽매이기보단 감정을 우선시하는 배우잖아요? 그런 점에서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생각했어요. 정반대 성향의 작품과 배우가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동의하세요?
아니, 뭐, 손드하임 작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음악이 더 중요시 돼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하는데…. 어쨌든 손드하임 작품이 음악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돼 있는 건 맞아요. 손드하임 곡은 어떤 음정과 박자에 어떤 감정을 실어야 하는지, 이런 것까지 디테일하게 다 표현돼 있으니까. 그런데 말씀대로 저는 무대에서 프리하게 하는 스타일이잖아요. 멋대로 하는 망나니 기질이 있어서, 어떤 작품의 어떤 장면 노래가 지나치게 뮤지컬스러우면 대사로 쳐버리기도 하죠. 작곡가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요. 근데 이 작품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작품이, 노래가, 우리 배우들을 막 설득시켜요.


선악 같은 분명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지금껏 해왔던 작품들과는 차이가 있죠.
네, 지금까지 제가 했던 작품들은 대부분 주제가 확실했죠. 저는 메시지가 분명한 게 좋거든요. 특히 뮤지컬을 할 땐 더 그래요. <지킬 앤 하이드>나 <맨 오브 라만차>처럼, 주제를 한 줄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는 그런 유의 작품들이 좋죠. 그런데 <스위니 토드>는 그 주제가 뭔지 잘 못 찾겠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품을 하기까지 오래 걸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작품의 주제가 선명해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안 그래요. 스위니 토드는 좋은 사람이다, 또는 나쁜 사람이다 하는 가치 판단을 강요하지 않고, 그에게 동정을 가져봐 하고 떠밀지도 않죠. 인간의 복수심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하는 본질을 꿰뚫어 보여줄 뿐이에요. 그래서 이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좋은 작품이라고 인정받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잔혹한 이 작품에 빵빵 터지는 코미디가 얼마나 많다고요! 되게 아이러니한데,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주제가 명확한 작품이 왜 좋아요?
음…. 유행 타지 않고 긴 시간 두루두루 볼 수 있으니까? 뭐라 그럴까,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는데, 굵직한 주제가 있는 작품은 반영구적이잖아요. 


혹시 스위니 토드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데 힌트를 얻은 게 있어요?
모든 캐릭터의 출발점은 이거예요. 나라면 어땠을까? 나한테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딸이 있는데, 누군가 내 아내를 좋아해서 이유도 모른 채 어디론가 끌려가게 됐다면, 십수 년 만에 겨우 탈출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면 어떨까. 작품 속 캐릭터가 처한 상황하고 비슷한 경험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비슷했던 기억을 찾아내는 게 제가 캐릭터에 다가가는 방식이에요. 이번에 떠올린 기억은, 되게 위험한 발언이 될 수도 있는데…. 최근에 강아지 공장이 이슈가 됐잖아요? 저는 동물 학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죽이고 싶어져요. 물론 생각에서 멈추지만, 마음은 진짜 그래요. 그런 개인적인 경험에서 소소한 감정을 끌어와서 극 중 상황에 옮겨 놓고 상상해 봐요. 그런데 정 이해가 안 될 때는, 감정을 맞추기도 해요. 극 상황에 맞게 제 자신한테 주문을 넣는 거죠.  


스위니 토드는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이니까, 살인의 동기를 유추하는 게 캐릭터를 풀어가는 첫 단추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지킬 앤 하이드>하고 비교하자면, 하이드가 살인의 대상으로 삼는 인물들은 명확하잖아요. 윗사람들, 사회의 강자들. 그런데 스위니 토드는 계급에 상관 없이 막 다 죽여요. 그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긴 했어요. 스위니 토드하고 다른 위치에 있지 않는 저 사람들이 왜 파이 재료가 되는 거지? 너무 많은 사람을, 너무 이유 없이 죽이는 게 아닐까? 답은 시대적 상황에 있는 것 같아요. 스위니 토드의 시대는 오직 한 사람에 대한 복수를 품었던 그를 점점 온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게 만들죠.


에너지를 뿜어내지 않고 감정 없이 행동하는 캐릭터가 연기에 영향을 줄까요?
말 그대로, 폭발하는 모습이 다를 거예요. 예를 들어 살인 장면에서 보통은 ‘으아아아악! 죽여버리겠어!’ 이런 신파 분위기의 뮤지컬 넘버가 나오지, 아름다운 선율의 예쁜 노래가 나올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요? 마음속은 이미 이 사람을 죽이겠다는 복수심으로 타오르고 있는데 그걸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분명 다른 종류의 카타르시스가 있을 거라 스스로도 기대돼요.



오늘 이야기를 쭉 듣고 보니 <스위니 토드>는 여러모로 도전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청난 도전이죠. 근데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한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다 도전이었어요. 스물 네다섯 살에 <지킬 앤 하이드> 같은 대작을 했던 거나, 에이즈나 바이 섹슈얼 같은 문제가 국내에 생소할 때 <렌트>를 했던 거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낮았을 때 <헤드윅>을 했던 거나, 다 도전이었죠. 심지어 <닥터 지바고>는 공연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투입됐잖아요? 배우로서 최악으로 열악했던 상황이 <닥터 지바고>라고 생각했는데, <스위니 토드>가 그걸 넘어섰어요. <스위니 토드>는 앞선 장면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분위기의 장면이 툭 튀어나오는, 반전이 기막힌 작품이거든요. 되게 오래된 작품이지만, 뮤지컬이 꼭 그래야만 해? 구성이? 노래가? 하고 반문하는 작품 같아요. 아마 제가 그런 데에 매력을 느끼나 봐요. 나를 잡고 뒤흔드는, 이리 와, 나를 한번 알아봐, 하고 저를 자극하는 작품들에.


지금 조승우를 가장 자극하는 건 뭔데요?
제 스스로의 조급함이요.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주어진 디렉션 안에서 작품을 가지고 놀고 싶은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미치겠는 거죠. 이제 드라마 연습을 시작한 지 이 주 정도 됐는데, 지금 되게 로봇처럼 하고 있거든요. 장면에 녹아들지 못하고 누가 대사를 치면 내 다음 대사가 뭐였지, 하고 막 머리로 생각해요. 뭔가를 계속 배우고 있는데 소화를 못 시키는, 음, 역류성 식도염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랄까.(웃음) 비행기로 치자면, 이륙을 못하고 계속 활주로만 달리고 있는 그런 상황? 작품에 반전이 있는 것처럼, 지금 제 마음에도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해요. 좌절과 어떤 깨달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죠. 지금 제일 두려운 건, 노래를 아무리 반복해서 연습해도 어느 순간 문득 노래가 낯설게 느껴져서 한순간도 방심하지 못 한다는 거예요. 그게 너무 무서워요.


설마!
진짜에요. 연습 첫날 그랬어요. 나 이거 하기로 한 거 취소하면 안 될까? (웃음) 어젠 첫 장면부터 박자를 놓쳐서 버벅대는데, 제 자신이 되게 초라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어제 단체로 보러 가기로 한 <뉴시즈>도 못 보러 갔어요. 연습하면서 너무 좌절해서 연습 끝나고 바로 집에 들어가서 녹음해 준 거 들으면서 가사 봤어요.(웃음) 작품하면서 이렇게 주눅 드는 건 처음이에요.


천하의 조승우가 이 정도의 압박에 시달릴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작품을 하기로 하고 나서 아직 최종고 대본을 못 받았을 때, 대본 번역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티켓이 오픈돼요. 근데 매진이래요. 그 부담감은 장난 아니에요. 하! 결과를 책임져야 되잖아요. 솔직히 <스위니 토드>는 매진이 안 될 줄 알았어요. 워낙에 마니아틱한 작품이니까. 그래서 지금 상황이 더 부담스러워요. 어떡하지, 어떡하지, 맨날 죽을 것 같지만, 잘 해내야만 하겠죠. 프로 의식을 가지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3호 2016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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