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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No.72] 이건명과 함께 한 [날 보러와요]

사진 |박진환 정리|배경희 2009-10-22 5,531

이 모든 게 우리의 현실이어서 너무 슬픈 이야기 

이건명과의 데이트 약속을 잡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도 간단했다. 전형적인 호탕한 남자로 설명되는 이건명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자 조건반사적으로 “좋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얼마 전 <로미오 앤 줄리엣> 공연을 마친 이건명은 자신의 발자취나 다름없어서 쉽게 놓을 수 없다는 <갬블러>의 공연 연습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바쁜 일정으로 연극 관람은 정말 오랜만이라는 그와 함께 <날 보러와요>를 보기 위해 신촌 더 스테이지를 찾았다.

 

 

 

연극 [날 보러와요]를 각색한 영화 [살인의 추억]은 내게 가장 뚜렷이 기억되는 영화 중 하나다. 영화에서 봉준호 감독이 만들어낸 서스펜스는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였다.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극도의 긴장감으로 숨도 못 쉴 만큼 집중하게 만들었다가 어느 순간 배를 잡고 웃게 만들기도 하고,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영화가 개봉한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고 반복해서 본 것도 아닌데, 대부분의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때 내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흥분과 분노 그리고 슬픔, 그 다양한 감정들의 변화까지도. 그래서 영화의 원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날 보러와요]에 대한 기대는 충분했다.


[날 보러와요]에 대한 소감을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를 재밌게 본 나로서는 어쩐지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었다. 작품성이나 완성도, 그런 것들을 떠나서 어떤 장르로 먼저 접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연극을 먼저 봤다면 아마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흥미로운 소재에, 극본도 탄탄한 작품이니까 연극에서도 관객을 극에 집중하게 하는 힘은 여전했다. 계속 벌어지는 살인 사건과 계속 되는 수사 실패,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치밀한 구성으로 극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스펜스에 대해 큰 기대를 했던 터라, 그 점에서 아쉬웠다고 할까. 영화에서는 경찰과 보이지 않는 범인과의 두뇌싸움으로 긴장의 끈을 한시도 놓을 수가 없었는데 연극에서는 형사들의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서 극적 긴장감이 덜했던 것 같다. ‘육감으로 수사하는 시골 형사와 FBI 책을 들고 다니며 과학수사를 한다는 서울형사의 캐릭터가 좀더 대조적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고.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의 열악한 시대상과 형사들의 사건 해결에 대한 열망이 점점 광기로 변해가는 걸 보면서 동정과 연민을 느꼈다. 살인 사건을 막기 위해 전경 부대를 투입해달라는 형사들의 요청에 시위 진압을 이유로 묵살 당하고, 사건 해결의 열쇠인 용의자의 DNA를 분석할 기구가 없어 미국으로 증거를 보내야 했던 우리 사회의 현실. 영화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찾은 그 곳에서 한 소녀와 대화를 나누다 송강호의 클로즈업으로 끝이 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연극에서도 역시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토록 잡기를 열망했던 범인을 잡지 못하고 결국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는 김형사의 절규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 진실이 정말 존재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정의가 결국 승리한다는 말이 무색해지는 결말은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게 현실인 것 같아서 씁쓸했다.


작품 내적인 요소 외에 [날 보러와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을 뽑으라면 아무래도 연극 무대에서 후배들의 연기를 본 것(이 작은 무대에서 그것도 세 명이나). 솔직히 뮤지컬 배우들이 노래와 춤에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연기에 투자하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한 게 사실인데, 후배들이(개인적으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연극 무대에서 서서 연기나 말의 디테일에 대한 소중함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내가 다 뿌듯했다. 혼자서 세 명의 용의자를 연기했던 김재범이나 김형사의 일편단심 민들레 미스 김을 귀엽고 사랑스럽게 표현한 임문희의 연기도 좋았지만 (최)재웅이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새삼 느꼈지만 재웅이는 배우로서 참 좋은 재능을 가진 것 같다. 재웅이한테는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어도 풍기는 확실한 자신만의 분위기가 있는데, 그건 정말 타고나야 하는 것 같다.


두 시간 동안 바로 코앞에서 모르는 척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지금 배우들이 속으로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는지가 보여서 약간의 부러움을 느꼈다. 소극장은 규모가 작아서 공기의 변화가 그대로 느껴지는데 공연이 진행될수록 마치 돔이 씌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번 공연을 보는 내내 소극장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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