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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CENE STEALER] <빨래> 김국희 [No.151]

글 |배경희 사진 |이배희 2016-04-27 5,656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안녕! 유에프오>의 엉뚱한 외계인 할머니 복희, 그리고 <빨래>에서 사연을 간직한 마음 따뜻한 주인할매. 대학로가 사랑하는 ‘할머니’ 김국희가 이제 겨우 삼십 대를 맞은 배우란 사실을 알고 나면 누구라도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질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우리를 웃고 울리는 배우로 성장할지 말이다.



“저 진짜 할머니는 아니에요! 하하. 제가 진짜 할머니 배우인 줄 아셨다 나중에 정체를 알고 나서 놀라는 분들이 꽤 있어요. 분장을 지우고 나오면 못 알아보시는 분들도 많고요.(웃음)” 노역 연기에 대한 찬사로 인사말을 건네자, 김복희가 너스레를 떨며 반달 같은 눈웃음을 짓는다. 진한 노인 분장을 지운 화장기 없는 그녀의 뽀얀 얼굴을 마주하니, 그의 말대로 관객들이 무대 밖의 그녀를 못 알아보는 것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대 아래선 영락없는 청춘인 삼심 대 초반의 그녀는 어떻게 ‘대학로의 할머니’라는 별명을 얻게 됐을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활동 초,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이하 <오! 당신>) 2010년 공연에서 연출가의 주문으로 노역을 맡게 된 것. 겨우 이십 대에 말이다. “2008년쯤 <지하철 1호선>에서 창녀 ‘걸레’를 하면서 서브 캐릭터로 귤 까먹는 할머니를 한 적이 있어요. 무대에 잠깐 등장하는 역할이었는데, 관객들이 그 캐릭터를 무척 좋아해 주셨죠. 그런데 마침 <오! 당신> 연출님이 그 공연을 보셨던 거예요. 다른 역할로 오디션에 지원했던 제게 길례 할머니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처음엔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먼저 앞섰지만, 도전해 보기로 했죠.” 자신의 의구심과는 달리 그녀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훌륭히 표현해 연출가의 안목을 증명해 냈고, 다양한 나이대의 연기 스펙트럼을 지닌 젊은 배우의 등장 소식은 대학로에 금세 퍼져 나갔다. “<오! 당신>을 하고 나서 노인이 등장하는 창작뮤지컬은 한 번씩 연락이 왔던 것 같아요. 주로 나이 많은 역할을 맡아서 그런가? 제가 사람들한테 <지하철 1호선>을 했다고 하면, 으레 ‘곰보할매’를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웃음)”



김국희는 노역에 그를 찾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나이대의 배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겸손한 대답에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구부정한 걸음걸이, 억양이 살아있는 말투, 적절한 추임새. 어느 식당이나 가게, 거리에서 수없이 마주친 듯한 얼굴을 그려내는 그녀의 연기는 독보적인 무엇이니까. “새로운 할머니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진짜 할머니들을 관찰하러 가요.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서 밥도 먹고, 하루 종일 앉아 시간을 보내다 오기도 하고. 각각 다른 성향의 할머니들 모습을 머릿속에 담아두면 연기 디테일이 막혔을 때 도움이 되거든요.” 달동네 사람들의 서울살이를 그린 <빨래>의 억척스럽지만 따뜻한 주인할매로, 노부부 이야기를 그린 <당신만이>의 긍정적인 아내 이필례로, <오! 당신> 이후 확고한 길을 만들어간 그녀가 제대로 빛을 발한 건 지난 2월에 초연한 <안녕! 유에프오>에서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하다 하다 못해 이젠 외계인 할머니까지’ 맡게 됐다지만, <안녕! 유에프오>는 그녀가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과 그렇지 않았던 순간으로 나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박한 마을 사람들의 잔잔한 이야기에 웃음을 확 끼얹고 사라지던 엉뚱한 외계인 할머니 복희는 관객들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며 판타지적인 설정을 받아들이게 했으니 말이다. 특히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가볍게 대사를 치고 빠지는 연기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공연하다 보면 아주 가끔 상대방 말에 대꾸하고 싶단 충동에 저도 모르게 대사가 툭 튀어나오거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져서 가만히 상대를 바라보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연기하는 게 정말 재밌어요. 물론 대본 속 인물을 연기하기까진 수많은 계산을 해야겠지만,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동안엔 일상을 살듯 계산 없이 살아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마지막으로 궁금해진 질문 하나. 그저 노역 전문 배우로 각인되는 게 서운하거나 두렵진 않은 걸까?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맡을 수 있었던 것, 저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이 많은 역할을 해서 그런지 오히려 연기를 잘한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연기를 잘하니까 으레 연극배우라고 생각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죠. 성악을 공부했던 학창 시절에 <지하철 1호선>을 보고 나서 저 작품을 꼭 하고 싶단 마음에 여기까지 왔거든요. 제 꿈은 뮤지컬 배우였고, 앞으로도 뮤지컬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그게 저의 제일 큰 바람이에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1호 2016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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