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너머의 가능성
19세기 말 뉴욕의 가난한 신문팔이 소년들 ‘뉴시즈(Newsies)’. 어느 날, 거대 신문사 ‘더 월드’가 그들에게 파는 신문 값을 인상하자 뉴시즈는 똘똘 뭉쳐 파업을 일으킨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아 보이는 이 무모한 도전을 이끄는 인물은 뉴시즈의 리더 ‘잭 켈리’. 그런데 이 역할에 이름을 올린 온주완, 서경수, 이재균은 공통점을 찾기 힘들 만큼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배우다. 그들 각자가 생각하는 잭 켈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과시하지 않는 존재감 온주완
온주완이 <뉴시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첫째로 놀랐다.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혀 온 작품에 처음 뮤지컬에 도전하는 배우, 그것도 가수가 아닌 연기자가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에 말이다. 하지만 둘째로 든 생각은 온주완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소문난 노래 실력, 최근 예능 프로그램 <주먹쥐고 소림사>에서 보여준 날렵한 몸놀림, 무엇보다 한때 유노윤호를 가르친 춤 실력자였다는 유명한 일화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꺼내자 온주완은 옛날얘기라며 손사레를 쳤다. “무용과에 진학하기 위해 현대무용과 재즈댄스를 4년 정도 배웠어요. 그러다 춤 외에도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영역으로 진로를 바꾼 게 연극영화과였죠.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가 주무대가 되면서 춤출 일은 거의 없어졌어요.” 그러니 이번 무대를 통해 그도 오랜만에 춤과 재회하는 셈. 게다가 <뉴시즈> 하면 애크러배틱과 발레가 접목된 화려한 안무가 특징인 작품 아닌가. 온주완은 강도 높은 안무 연습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20대 초반에 춤추던 기분으로 춤을 따라하다가 얼굴로 꽝 떨어졌어요. 시퍼렇게 멍든 얼굴을 보며 예전과는 다르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더 연습에 매진하고 있어요. 어차피 뮤지컬에 도전할 거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할걸. (웃음) 이제라도 도전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춤 되고 노래 되는 배우에게 그동안 뮤지컬계의 러브콜이 없었던 건 아니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고사했던 건 그에게 뮤지컬이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제 분야가 아니다 보니 두려운 마음이 컸어요. 못하는 것보단 차라리 시도를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뉴시즈>의 잭 켈리 역을 제안받았을 때도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다. 고난도 춤과 노래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그럼에도 온주완은 ‘<뉴시즈>이기 때문에 도전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를 사로잡은 <뉴시즈>만의 매력은 바로 조화의 힘. “일단 노래를 들어보자 했는데, 대표곡 한두 개만 좋은 게 아니라 전곡이 다 좋았어요. 대본에서도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근데 이 에너지가 단순히 주연인 잭과 캐서린의 사랑이나 잭과 크러치, 데이비의 우정에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주연, 조연, 앙상블을 가리지 않고 뉴시즈 전체에서 나오는 조화의 힘이 엄청나요.”
어쩌면 이러한 선택은 13년 차 배우 온주완의 지금까지 행보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늘 작품 속에서 혼자 도드라지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역할에 어우러져 전체적인 조화에 일조해온 배우다. “저 스스로도 이렇게 얘기해요. 나는 팬덤 있는 배우가 아니다. 스타의 길을 걸어온 적도 없다. 그냥 하고 싶은 연기, 하고 싶은 배역을 하면서 배우의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서도 티켓 파워는 없을지 몰라요. 오히려 저보다는 뮤지컬을 오래 해온 경수나 재균이가 관객을 불러올 수 있겠죠. 하지만 막상 공연이 올라간 다음에는 특정 배우의 힘이 아니라 작품 자체의 힘, 조화의 힘으로 입소문이 날 것 같아요.”
잭 켈리라는 인물의 해석에서도 그는 일방적인 리더십보다 상호작용을 중시한다. “리더인 잭이 일방적으로 뉴시즈를 챙기는 인물이었다면 매력이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극 중 잭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뉴시즈에게서 배우는 게 있거든요. 때로는 그들에게 기대기도 하고요.” 그가 주목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잭의 강인함이 아닌 숨겨진 연약함. “극 중 잭의 나이가 제 실제 나이의 반토막이에요. (웃음) 서른넷인 저도 아직까지 인간적으로 완벽하지 않은데 열일곱 살 소년은 얼마나 갈대 같겠어요. 그니까 잭이 모두를 끌고 가는 모습보다는 잭이 팀원으로 있는 뉴시즈가 서로 위해 주고, 부딪히고, 포기도 해봤다가, 다시 싸워 보고, 이겨 보고, 타협도 해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뉴시즈끼리의 케미스트리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관객분들이 저희 모두의 에너지를 잔뜩 받아 가실 수 있도록!”
지금 더 뜨거운 에너지 서경수
“<넥스트 투 노멀>을 무사히 그리고 후회 없이 잘 마무리한 거요!” 서경수에게 최근 가장 행복했던 일을 묻자 그는 지난 3월 13일 막을 내린 <넥스트 투 노멀>의 기억을 떠올렸다. 2013년 게이브 역을 맡아 존재감을 드러낸 서경수는 2년 만에 다시 게이브로 돌아와, 역할 특유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게이브로 다시 무대에 섰을 때요? 정말 많이 떨렸어요. 처음엔 기대가 컸어요. 드디어 하는구나! 물론 관객들이 좋아해 준 역할인 만큼 부담도 따랐어요. 하지만, 기대와 부담을 마음 한편에 잘 묻어두었어요. 그냥 순수하게 더 노력하고 집중하며, 게이브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새로운 면을 보여주기보단, 더 사랑하고 소통하자는 데 초점을 맞췄죠.”
<넥스트 투 노멀>의 행복했던 기억을 안고, 지금 서경수가 맞이한 무대는 뜨거운 에너지의 <뉴시즈>다. “에너지가 넘쳐요. 진짜 뜨거워요. 팀 분위기도 정말 화기애애하죠. 모난 사람 하나 없이 서로 으쌰으쌰하며 연습하고 있어요.” 그가 맡은 역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뉴시즈의 리더 잭 켈리, 왠지 듬직해 보이는 서경수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지는 역할인 듯하다. “한 무리의 리더이면서, 강인한 꿈과 희망을 지닌 잭 캘리를 꼭 연기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디션을 봤어요. 잭 캘리는 겉은 강해 보이지만, 속은 정말 유들유들한 친구예요. 리더이기 때문에 자신의 속마음은 숨기고, 흔들리지 않는 강한 모습만 보여주거든요. 사실 저도 이런 면이 좀 있어요. 겉으론 엄청 밝아 보이는데, 일부러 제 안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거든요. 힘들 때 티 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다른 사람한테 제 기분을 전가하고 싶지 않거든요. 누군가와 자신의 감정을 공유해야만 기분이 풀리는 사람이 있잖아요. 전 반대로, 혼자 앓으면서 속으로 삭히는 게 편해요. 이런 면이 잭 켈리랑 비슷한 점이죠.”
<뉴시즈>는 1899년 뉴욕에서 일어난 뉴시즈의 실제 파업을 다룬 이야기다. 지금의 대한민국과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정의에 맞서는 뉴시즈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날에도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이 많다. “지금 우리 사회와 관통되는 부분이 많아요. 불안하고 흉흉한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시기적으로나 상황적으로 더 의미가 있어요. 이런 점을 살려 관객들에게 좀 더 강인한 용기와 의지를 전해 드리고 싶어요.” 특히 작품 중 서경수가 가장 공감했던 장면은 1막의 마지막 장면인 ‘산타페’다. “잭 켈리가 뉴시즈를 선동해 파업을 일으키지만, 경찰들이 그들을 짓밟으며 끌고 가버려요. 이때 잭 켈리는 동지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을 자책해요. 끝까지 동지들을 책임지지 못한 죄책감에 울부짖는 노래가 바로 ‘산타페’에요. 정말 이럴 수 있겠구나! 이런 상황들에 깊이 공감했어요.”
<뉴시즈>의 남다른 에너지는 무대를 준비하는 서경수에게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공연을 좋아해서 이렇게 무대에 오르지만, 때론 힘들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정말 에너지를 충전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힘이 들 때도 자신을 소모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더욱 충전되고 있는 기분이에요.” 물론 그는 이 에너지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고, 무대에서 이 힘을 힘껏 발산해 낼 계획이다. “<뉴시즈>뿐 아니라 앞으로의 무대에서도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해 주고 싶어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서로 더 배려하고, 아껴주는 행복이 있잖아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라며, 저부터 좋은 에너지를 지닌 배우가 돼야죠!”
처음과 같은 방향으로 이재균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땐, 무대에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어요. 무대에 오르면 숨 쉬는 법까지 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무대에서 숨 쉬는 게 제일 편해요.” 이재균은 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꾸밈없이 담백하게 이야기했고, 그것은 배우로서 그의 굳은 심지를 느끼게 만들었다. “이제 데뷔한 지 5년이 넘었는데, 처음과 지금, 연기에 대한 생각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어요. 처음 그때처럼, 아무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추구하는 것 하나만 보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어요.”
이재균은 2011년 <그리스>의 앙상블로 데뷔한 이후 <닥터 지바고>, <번지점프를 하다>, <쓰릴 미>, <히스토리 보이즈> 등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오가며, 인상적인 열연을 펼쳤다. 그리고 최근에는 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뉴시즈>는 2014년 <쓰릴 미> 이후 그가 2년여 만에 다시 찾은 뮤지컬 무대다. “아무래도 방송은 컷에 맞춰 장면을 찍다 보니 연기 호흡이 짧아요. 그런 점에서 무대가 그리웠어요. 평소 이렇게 이야기하듯,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만큼 연극 <엘리펀트 송>을 정말 즐길 수 있었어요. 물론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해 왔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한 것도 뮤지컬 무대였으니까. 일 년 반 만에 오르는 뮤지컬 무대인데,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나게 돼 다행이에요. 정말 제 마음에 쏙 들거든요. 제가 그동안 어두운 작품을 많이 했잖아요. 그래서 용기를 줄 수 있는 밝은 작품을 해보고 싶었어요. <뉴시즈>가 딱 그런 작품이에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작품요!”
이재균이 <뉴시즈>에서 맡게 될 역할은 뉴시즈의 리더 잭 켈리. 그는 이 역할의 매력을 ‘당당함’이라고 꼽았다. “잭 켈리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소년이지만, 다른 친구들을 보살펴주며 어떤 권력자 앞에서도 당당해요. 굉장히 용감하고 멋있어요. 솔직히 요즘 세상에선, 그런 당당함을 찾기가 힘들잖아요. 한편으론,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데 투박하고 서툴지만 또 솔직해요. 정말 인간적인 캐릭터 같아요. 그를 보면 계속 무언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뉴시즈>는 마치 뮤지컬을 처음 시작한 듯한 기분이 들게 해요. 정말 새로워요!”
잭 켈리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는 이재균. “저는 워낙 누구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해요. 반장이나 부장도 한번 안 해봤어요. 항상 아웃사이더였죠. 그런 면에서 잭 켈리와 많이 달라요. 그래서 이 역할을 통해 누군가를 이끌어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에요.” 비록 서로의 성향은 다르지만, 지난 시간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와 잭 켈리는 어느 순간 교집합을 이루기도 한다. “잭 켈리와 같은 나이였을 때요? 저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졸려서 잠만 잤던 기억밖에 없어요. 그런데 연기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후부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이것만 보고 앞으로 나아갔어요. 처음엔 친구나 가족 누구 하나 선뜻 응원해 주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연기가 재밌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말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연기를 마주한 순간, 이재균은 잭 켈리처럼 열정적인 소년으로 변모한 것이다.
처음부터 그러했듯, 오롯이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배우 이재균. 지금 이 순간도, 그는 미래의 새로운 역할을 꿈꾸기보단 현재의 무대 ‘잭 켈리’를 정말 잘 표현해 내고 싶다는 진심 어린 바람을 이야기한다. “저는 제가 계속 안 변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언제나 배우로서 이 일을 재밌어하고, 늘 최선을 다했으면 해요. 연극이나 뮤지컬 등 어떤 작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도, 저는 그다음 작품에서는 다 잊고 처음 연기를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을 유지해 왔어요. 늘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연기하고 싶거든요. 전 그게 재밌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1호 2016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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