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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LIFE GRAPH] 무대가 주는 행복 김수용 [No.150]

글 |안세영 2016-04-07 5,191

아역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33년을 배우로 살아온 김수용. 그는 자신이 서온 모든 뮤지컬 무대에 만족도 100점을 주었다.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그 모든 시간이 감사하고 행복했기 때문이에요.” 직선으로 뻗은 그래프처럼 변함없이 올곧게 무대를 사랑해온 그의 지난 여정을 들어보았다.




뮤지컬 배우로의 전환점 <풋루스>
“7살에 드라마로 데뷔한 뒤, 성인이 되어서도 따라다니는 아역 배우의 꼬리표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어떤 오디션을 보러가도 항상 마지막에 듣는 말은 ‘아역 이미지가 남아서’였죠. <풋루스>는 그런 제가 다시 배우로 설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준 작품이에요. 당시 저는 새로 접한 뮤지컬이란 장르에 푹 빠져있었지만, 뮤지컬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했어요. 대학에서도 사실주의 연극만 가르치던 때였거든요. 그러다가 동국대 선배님이 <풋루스> 연출을 맡으셔서 연습을 구경하러 갔는데, 뜻밖에 오디션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그것도 주인공인 렌 역으로요. 알고 보니 그 전에 여러 배우가 여러 사정으로 그 역을 고사했다 하더라고요. 제겐 하늘이 준 기회였죠. 두 번의 오디션을 치르고 마침내 연습에 나오라는 얘길 들은 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요. 너무 좋아서.”





실력을 인정받은 <뱃보이>
“반은 인간으로, 반은 박쥐로 태어난 박쥐소년 ‘뱃보이’는 배우로서 굉장히 욕심나는 역할이었어요. 박쥐의 습성을 신체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데다 음악도 매우 독특했거든요. 이 역할을 위해 무려 6차에 걸친 살벌한 오디션을 치렀죠. 그때 오디션장에서 (이)동근 형을 마주쳤는데, 절 보시고는 황급히 어디론가 사라지시더니 나중에 돌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도 뱃보이로 지원했는데 네 얼굴 보고 파커로 바꿨다. 넌 그냥 딱 봐도 뱃보이야.’ (웃음) 그랬는데 정말로 저는 뱃보이, 형은 파커로 함께 무대에 서게 됐죠. 당시 샘 비브리토 연출은 모든 걸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믿고 맡겨주셨어요. 그래서 저 혼자 <동물의 왕국>을 보며 박쥐의 움직임과 소리를 연구했죠. 결과적으로 대학로에 짐승 한 마리가 산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 작품으로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어요.’




이름을 알린 대표작 <햄릿>
“<햄릿>은 현재의 저를 있게 해준 작품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할 수 있어요. 초연, 재연, 삼연에 연달아 참여하며 분에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받았죠. 심지어 ‘연극에 유인촌의 햄릿이 있다면, 뮤지컬에 김수용의 햄릿이 있다’는 찬사까지 들었으니까요. 저 역시도 무척 재미있게 공연했던 작품 중 하나예요. 록 베이스 음악에 감정의 폭발력이 큰 작품이라, 한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었죠. 초연 때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는 베드 신에서 웃옷을 벗어야 하는데, 부끄러워서 연습 내내 안 벗고 버텼던 거예요. 공연을 일주일 남겨두고 처음 옷을 벗었는데, 그때 뒤에서 ‘어우, 곱다~’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던 게 기억나네요. (웃음) 제가 그때 워낙 마르고 하거든요.”





위기를 기회로 <엘리자벳>
“2011년 <환상의 커플>을 공연하면서 발목 인대가 파열되어 치료를 받았는데, <엘리자벳> 연습 기간에 증상이 재발했어요. 설상가상 독감까지 걸려서 보름간 거의 연습실에 나가지 못했죠. 그래서 저 혼자 연습을 했는데, ‘밀크’라는 곡 끝에 애드리브로 불러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이 부분에서 고음을 쭉 올리는 걸로 연습해갔더니, 루케니 역의 다른 배우들은 그루브를 넣어서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없을 때 오스트리아에서 음악감독님이 와서 그렇게 하기로 합을 맞췄대요. 아차, 나도 바꿔야겠구나 생각했는데 김문정 감독님이 제 노래를 들어보시고는 지금도 좋다며 그대로 가자고 하셨어요. 덕분에 ‘사단고음 아이용’이라는 별명을 얻을 수 있었죠. (웃음) <엘리자벳>에는 감사한 추억이 또 있어요. 공연 일이 제 생일과 겹친 날이었는데, 커튼콜 때 평소랑 다른 음악이 나오는 거예요. ‘이게 뭐지?’ 하고 들어보니 절 위한 생일 축하 노래더군요. 그때의 감동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새로운 도전 <모차르트!>
“당시 <모차르트!> 팀은 콜로레도 대주교를 새롭게 표현해줄 배우를 찾고 있었어요. 날카롭고 시니컬한 이미지를 원하는데 제가 딱일 것 같다며 제안이 들어왔죠. 처음에는 (민)영기 형을 비롯해 기존에 콜로레도를 연기했던 배우들이 워낙 저와 다른 이미지라 망설였어요. 하지만 결국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죠. 제가 표현하려 한 콜로레도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하다 못해 그를 갖고 싶어 하는, 내가 갖지 못하면 파멸시키고 말겠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어요. 아드리안 연출은 제가 너무 착해 보인다며, 연습 기간 내내 추리닝을 금지하고 구두를 신고 오도록 했죠. 그렇게 변신을 위한 혹독한(?) 과정을 거쳐 무대에 섰는데, 그때 제 멘토인 (이)석준 형에게 처음 칭찬을 들었어요. 제가 콜로레도 캐릭터를 무척 풍성하게 만들었다며 대견해 하시더라고요. 그 얘길 듣고 도전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죠. 그날 제가 SNS에 이렇게 올렸어요. ‘난 오늘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잠들지 못할 것 같다!’




또 한 번의 변신 <은밀하게 위대하게>
“작품 선택을 하는 데 있어 소극장 공연이냐 대극장 공연이냐는 별로 중요치 않아요. 배우의 역할은 설득력 있는 인물을 창조해내는 것인데, 단순히 극장 크기로 그 실력이 판가름되지는 않으니까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악역을 해보고 싶어서 참여했어요. 그동안 제가 제대로 된 악역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배우로서 계속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는 것은 제 자부심이기도 해요. 과연 관객들이 절 무섭게 봐주실지 걱정은 되지만요. 그래서 이번에는 수염도 기르고, 스모키 화장도 하고, 노래할 때 목을 더 죄어서 긁는 소리를 내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어요. 또 한편으로는 악역이지만 입체감 있는 인물을 만들고 싶어요. 저는 김태원이 냉철한 군인이지만 부대원들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이 고문을 당하다 죽는 걸 보느니 자신이 죽이고 스스로도 죽겠다는 마음인 거죠.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비뚤어진 인물이 보였으면 좋겠네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0호 2016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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