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대에 서서
“여기서 지금 무슨 공연을 하죠?” 이준 감독이 물었다. “우리가 공연했을 때는 사석에다 곰인형을 앉혔어요. 마치 공연을 보고 있는것처럼. 그런데 후반에는 인형을 다 치우고 사람들이 앉았어요.(웃음)” 오만석이 객석을 덮고 있는 천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두 사람이 선 곳은 두 사람의 첫 번째 창작뮤지컬 <즐거운 인생>을 했던 곳이다.
#1 연기파 ‘헤드윅’의 탄생
기자 : 지난 호 살롱에서 만난 송한샘 프로듀서와 송용진 씨도 2005년 <헤드윅> 초연으로 맺어진 관계였는데, 두 분의 인연도 그때 시작된 거죠? 당시 오만석 씨가 감독님을 힘들게 했다고요.(웃음)
오만석 : 그렇죠. 하하하. 제가 록 음악을 잘 몰라서 따라가기 힘들었죠. 평소에도 뭘 빨리 배우는 스타일이 아니긴 하지만요.
이준 : 지금도 계속 힘들게 해요. 하하. 그땐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습득 속도가 느렸죠.
기자 : 오만석 씨는 무언가 뜻대로 잘 안 풀릴 때 어떻게 해결하는 스타일이던가요?
이준 : 안 보는 데서 연습을 많이 해요. 해보라고 하면 “되면 보여드릴게요” 그런 다음 그걸 해 와요. 엄청난 노력파예요. 록커의 제스처도 자기가 다 연구해 왔어요. 그리고 사실 만석이가 다른 배우들하고 비교가 될 정도로 못 따라왔던 건 아니에요. 제가 인터뷰에서 몇 번 농담 삼아 한 이야기였는데, 그게 사실처럼 굳어져버렸어요.(웃음)
기자 : 이제와 하는 이야기이지만, 오만석 씨는 오디션과 상관없이 출연자로 내정된 배우였다면서요. 록 뮤지컬의 보컬 디렉팅을 해야 하는 음악감독의 입장에서 록 발성이 익숙하지 않은 배우의 노래를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오만석 :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절차상 오디션을 보긴 했어요. 그때 내가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불렀나? 소감은 뭐, 앞이 깜깜했겠죠.
이준 : 깜깜했죠. 조명을 받아도 깜깜한 배우니까.(웃음) 만석이는 딕션도 좋았지만, 보이스 톤이 매력적이었어요. 흡입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같은 말을 하더라도 집중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잖아요. 노래도 그렇거든요. 그래서 같이 밴드도 하는 거고요.
오만석 : 난 내가 록 발성을 못 내니까 <헤드윅>을 안 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워낙 무게감이 있는 작품이라서 소화를 못할 것 같더라고요. 난 안 한다고, 못하겠다고 계속 버티다 연습에 들어갔는데 역시나 힘들었죠. 조승우, 김다현, 송용진, 저, 이렇게 네 명이 연습을 했잖아요. 다들 금방금방 잘 따라 하는데, 어우, 난 리듬도 못 잡겠더라고요. 나는 아예 따라할 수도 없을 만큼 진도가 느렸어요. 감독님은 저 때문에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시고.(웃음)
기자 : 하하. 답답한 마음에요?
오만석 : 예. 난 원래 피우고 있었으니까 더 피웠고. 하하. 감독님도 그때 처음으로 뮤지컬 음악감독을 맡으셨던 거고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예요. 하지만 첫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배우 스스로가 조바심 내지 않도록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기자 : 그런데 두 분은 서로가 친근하게 먼저 다가갔을 것 같진 않아요. 가까워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이준 : 둘 다 그런 타입이 아니긴 하죠. 연습 초반, 스태프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런스루를 하고 있었는데, ‘위그 인 어 박스(Wig in a Box)’에서 연출이 이 신은 만석이가 해보자고 해서 만석이가 올라갔어요. 그러곤 대사를 시작한 지 1분도 채 안돼서 눈물을 뚝 흘리는 거예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방금 전 까지는 옆에서 다른 배우가 하는 걸 보고 있었는데. 그때 ‘아, 저 배우랑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죠.(전원 웃음) 만석이가 했던 거 보셨어요?
기자 : 아뇨. 오만석 씨가 한 <헤드윅>을 못 본 게 정말 아쉬워요. 전설로 남은 그 공연을!
이준 : 이제 곧 다시 할 거라니까. 어제 <스케치북> 녹화를 끝내고 거기 가수들하고 술을 마시다가 <헤드윅>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헤드윅>은 배우들이 딱 두 가지 색깔, 오만석파하고 조승우파로 나뉜다고요. 제가 6년째 이 작품을 해보니 정말 그래요.
오만석 : 하하. 나 없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하는구나.
이준 : 드라마로 쑥 들어가는 친구들이 오만석파. 이석준이나 최재웅 같은 친구들이 여기에 속해요. 승우는 좀 더 테크니컬하다고 해야 하나. 더 유쾌하죠. 하여튼 <헤드윅>이 이렇게 성공하게 된 데에는 만석이하고 승우, 두 사람의 공이 큰 것 같아요.
오만석 : 저보단 승우의 공이죠.
이준 : 승우는 만석이 공이라 그러던데.(웃음) 하여간 난 두 사람의 공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두 사람이 아닌 다른 배우가 첫 단추를 끼웠어도 이렇게 성공했을까? 저희끼리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두 사람 다 남성적인 배우들이잖아요. 그런 배우가 여성성을 띄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게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했고, 극에 더 몰입하게 만들었죠. 그리고 한 사람을 온전히 다 보여주잖아요. 마지막에는 옷까지 다 벗고. 옷 벗는 신이 없었으면 흥행이 안 됐을 거야.(전원 웃음)
오만석 : 아, 나는 이제 겁나서 못하겠어. 겁나, 겁나. 진짜로 겁나.
이준 : 너무 잘할까봐? (웃음)
오만석 : ‘에이, 안 보는 건데 괜히 봤어’ 이런 소리 들을까봐. 다시 하자는 제안은 계속 받지만 그때마다 겁나요. 괜히 다시 했다가 안 하니만 못하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헤드윅>은 그만큼 배우에게 중압감을 주는 작품이에요. 음악적인 것도, 드라마적인 것도 누구한테 기댈 수 없이 혼자 끌고 가야 하니까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죠.
#2 두 남자가 의기투합해 탄생시킨 첫 창작물
기자 : 오만석 씨의 첫 번째 연출작 <즐거운 인생>은 오만석 씨가 감독님께 작업 제의를 했던 거죠? 감독님께 뭐라고 하면서 같이해 보자고 하던가요?
이준 : 전부터 자기가 창작을 하게 되면 같이하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하게 될 줄은 몰랐죠. 이런 내용의 연극이 있고, 나는 뮤지컬로 이렇게 만들고 싶은데, 여기에 어떤 음악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시놉시스를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오케이, 하자” 그랬죠. 어떻게 보면 찌질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상처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밝게 버티면서 결국 산다는 건 즐겁지 아니한가, 라고 말하는 내용이 참 아프고 멋있었어요.
오만석 : 김태웅 작가님이 <즐거운 인생>을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면서 네가 연출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을 때 바로 떠오른 게 준이 형이었어요. 작품 컨셉을 설명하고 나서 난 무조건 밴드 라이브로 갈 거니까 거기에 맞춰 곡을 써달라고 했어요. 아마 곡 작업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제가 역발상적으로 주문을 했거든요. 예를 들어 세기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식적으로는 슬픈 멜로디의 곡이 나와야 하잖아요. 그렇게 쓰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오히려 더 비트감 있고 경쾌하게 써달라고 했죠. “아빠 돌아오겠다고 이야기했잖아요. 새빨간 거짓말.” 말은 이렇게 하는데 음악은 템포가 있는 거죠.
이준 : 그게 진짜 어려웠어요. 선생님이 부르는 노래를 랩으로 써 달래요. 선생님인데? 다섯 곡을 먼저 만들어서 들려줬는데 다 퇴짜 맞았어요.
오만석 : 으하하. 저한테 많이 시달렸어요.
이준 : “이건 아닌 것 같다.” “이건 좋은데 이 느낌은 아니다.” 공과 사가 얼마나 정확한지 그때는 말도 못 놔요. 만석이가 촬영차 일본에 가있었던 적이 있는데, 호텔방에서 틈이 나면 이메일을 보내요. 가사를 이렇게 썼으니까 여기에 맞춰봐 달라고. 사람을 무지 피곤하게 해요.(전원 웃음) 어쨌든 사전 준비 기간이 꽤 길었는데, 본격적으로 곡작업에 들어갔을 때는 빨리 끝냈던 것 같아요. 3주 정도 걸렸나?
오만석 : 본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그동안 펼쳐 놓고 만들었던 걸 정리해서 취합을 해야 하잖아요. 쳐낼 건 쳐내고, 쓸 곡은 베리에이션을 주면서 다시 제대로 가사를 붙이는 작업을 했던 거죠. 말이 맞으면서도 의미가 전달이 되고, 또 듣기에도 좋은 말이면 좋잖아요. 직접 불러봐야 알 수 있으니까. 3주 동안 둘이 밤새우면서 녹음하고. 100번은 불러 본 것 같아요, 곡 당 100번. 전곡을 녹음해서 첫 리딩 날 틀었어요. 요 시점에서는 이 노래입니다, 그 다음 신에서는 이 노래입니다. 연습 시작 전에 곡이 다 완성돼 있었으니까 창작뮤지컬치고는 작업이 잘됐죠.
기자 : 물론 오만석 씨가 배우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본인이 나서서 직접 녹음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준 : 웬만한 열정이 없으면 못해요. 보통 오지랖이 아니죠.(웃음) 보통은 자기가 하겠다고 말은 해도 막상 일이 시작되면 올인해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진 않거든요. ‘이래서 사람들이 오만석을 찾는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친구가 저보다 한참 동생인데 동생 같지가 않아요. 왜냐면… 밥과 술을 거의 다 사니까.(전원 웃음)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한테 그래요. 우리가 소위 말하는 대인배, 리더의 기질이 있어요. 어디 가서 오만석 싫다는 사람은 못 보셨을걸요.
오만석 : 아우, 얼마나 많은데!
이준 : 술 안 먹는 사람들 아냐?(웃음)
기자 : 하하. 두 분이 술을 가장 많이 마셨을 때는 언제예요?
오만석 : <즐거운 인생> 했을 때. (유)준상이 형이 워낙 팀원들을 챙기는 스타일인 데다, 이영미, 백주희, 이건영… 다들 허리춤에다 술 병 하나씩 차고 다니는 사람들이라 만날 마셨어요. 그때 신당동 일대의 모든 맛집을 섭렵했죠. 죄송합니다.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이준 : 없는 틈에 이제 빈틈에 대해서 얘기 좀 해볼까요.(전원 웃음)
기자 : 오만석 씨는 빈틈 보이는 걸 경계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어요.
이준 : 그렇죠. 저도 처음엔 그런 인상을 받았어요. 뭐 말을 안 하니까. <헤드윅> 때는 연습실에서 거의 말을 안 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그러는데, 저 친구는 본인이 해야 되는 말 말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안 하더라고요. 이상하게 욕심내는 개그 몇 개 빼고는요. 그게 어떤 거냐면 루시드 폴의 스위스 개그 비슷한 거라고 보시면 돼요. 정말 친하지 않으면 웃기 힘들어요.
기자 : 하하. 그럼 ‘이 친구가 마음을 열었구나’ 하고 느꼈던 때는 언제예요?
이준 : 공연이 올라가고 만석이 공연을 보면서 제가 먼저 마음을 열었어요. 그때 절 많이 울렸거든요. 오만석의 <헤드윅>은 좀 많이 슬펐어요. 헤드윅이 참 불쌍한 캐릭터잖아요. 만석이는 그가 가진 슬픔을 더 슬프게 보여줬죠. 저도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제 스스로 벽을 허물고 제가 말을 놓았죠.
기자 : 그리고 지나치게 겸손한 면이 있잖아요.
이준 : 짜증날 정도로 겸손하죠. 할 수 있는데 만날 아니라고 하니까. 근데 그래서 열심히 하는 거예요. 본인 스스로 부족하고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철저히 준비를 하죠. 연출할 때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뭘 하는 게 아니라 노트가 다 돼있어요. 어떤 건 좀 내려놓아도 되니 너무 피곤하게 본인을 달달 볶지 마라, 사람들을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천성이어서 얘기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진 않아요. 항상 노력은 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진짜 못 바꾸는 것 같아요. (이때 오만석이 다시 등장한다.)
#3 녹색 괴물로 다시 만나다
기자 : <톡식 히어로>도 오만석 씨가 연출을 맡으면서 감독님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하게 된 거죠? 함께 작업하면서 얻는 즐거움이 큰가 봐요.
오만석 : 네. 대화도 잘 통하고 같이하면 즐거워요. 감독님은 상당히 긍정적이에요. 어떤 의견을 내도 ‘안 돼’가 없어요. “이건 안 될 것 같은데…”가 먼저 나오는 게 아니라 “오케이, 그렇게 해볼게” 그렇게 접근해주시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 즐겁죠. 또 쉽지 않은 것들을 쉬운 일처럼 할 수 있도록 해주시니까 계속 같이하고 싶은 거죠.
이준 :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제 생각에 이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믿으니까요. 저는 음악적인 부분만 생각하지만 연출은 전체적인 그림을 생각하잖아요. 연출가의 말을 100프로 믿고 가는 거죠.
기자 : 지난 해 오만석 씨가 출연했던 <톡식 히어로>는 보셨어요?
이준 : 그럼요. 정말 재미있게 봐서 꼭 다시 한번 보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에 오 연출님이 무대에 서면 저도 기타를 치겠다고 거래를 했는데.(웃음) 작년에는 관객의 입장에서 봐서 그저 재미있게만 봤는데, 이번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해보니 이게 사람 잡는 공연이더라고요.
오만석 : 엄청 피곤해요. 옷이랑 가면 무게도 상당하고, 진짜 숨차요. 제가 (이)석준이 형한테 하자고 한 건데 형이 이 자식은 나한테 이런 걸 추천했냐고 죽이겠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이 작품은 석준이 형처럼 디테일한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드라마를 잘 끌고 가는 사람이 있어야 제대로 살 수 있거든요. 코믹한 장치들이 있으니까 대충 코믹하게 넘어갈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에요. 작품에 대한 접근 방식이 아예 잘못된 거죠. 이건 계산이 진짜 잘 돼있어야 하고, 관객의 반응을 몇 수 앞서 가야 해요.
기자 : 오만석 씨가 연출가로서 배우들에게 주문했던 건 뭐예요?
오만석 : 관객들이 이 지점에서 웃을 걸 예상하고 “자 웃어” 이렇게 포인트 잡고 하지 말라고 했어요. 관객이 웃든 안 웃든, 당신이 어떻게 보든 나에게는 이게 굉장히 진지하다는 식으로 해달라고요. 배우들이 처음에는 그런 디렉션을 힘들어 했어요. 왜냐면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안 웃긴 것 같거든요.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배우들이 끝까지 뻔뻔하게 할 때 재미있는 거죠. 초연 때와 여러 가지 바뀐 부분들이 있는데 감독님이 선봉에서 믿어주는 모습을 보여주시니까 다들 잘 따라와 준 것 같아요. <즐거운 인생>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사실 피와 땀을 짜내서 곡을 써왔는데 그걸 빼자니 얼마나 아깝겠어요. 그래도 전혀 싫은 내색 안 하시고 “오케이 그럼 이걸 가지고 내가 좀 더 만들어 올게” 하자는 대로 믿어주셔서 제가 연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자 : 아무리 공과 사를 구분한다고 해도, 오만석씨가 너무 칼같이 “이건 아닌 것 같아”라고 딱 잘라 말하면 기분이 좀 상하지 않아요?
이준 : 그런 일로 상처 받는다면 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연출가가 선장이고, 선장한테 키를 맡기는 건 당연한 건데 기분 상해하면 안 되죠. 연출이 그려놓은 전체적인 그림에 저는 음악적 지식을 보태는 거지, 제가 음악감독이라고 해서 이건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들에게도 그래요. 배우의 색깔을 살려주려고 해요. 이 사람이 지금까지 20~30년 동안 노래를 해 온 게 있는데 한두 달 안에 내가 원하는 색깔대로 어떻게 바꿔요. 말이 안 되죠.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 부르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지 도움을 주는 거죠.
기자 : 오만석 씨는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에요? 아니면 일을 하다보니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가요?
오만석 : 원래 좀 그런 성격인가 봐요. 아주 신인 때도 연습하다가 이건 아닌 거 같은 경우에는 얘기했어요. 그래서 아마 선배들이 건방지게 봤을 거예요. 그렇다고 뭐 저도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다하진 못해요. 포지션에 따라 좀 다른데, 연출일 때는 내가 주장을 해도 되는 위치니까 얘기를 많이 해요. 배우일 때는, 사실 얘기 잘 안 해요. 많이 참죠. 그건 내 몫이 아니니까.
이준 : 그래서 많이 힘들어해요. 본인이 연출도 하니까 지금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게 눈에 보이잖아요. 그때는 술을 더 먹어요.
오만석 : 하하. 아까 내가 없는 사이에 술 먹는다는 이야기를 했구나.
기자 : 아뇨. 만석 씨가 이상한 개그한다는 이야기했어요. 스위스 개그하신다고.
오만석 : (진지하게) 제 개그는 프랑스의 어느 포도 농장에서 시작됐어요. 유례가 깊죠. 그래서 나폴레옹이 제 개그를 했던 거 아니에요. “이 산이 아닌가 보다.” (분위기가 조용해진다.) 거기까지 힘들게 올라가서…. 죄송합니다.
이 준 : 네, 바로 이런 겁니다.
기자 :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감독님은 함께 작업하는 동안 오만석 씨가 크게 화를 냈던 걸 본 적이 있나요?
오만석 : 작년에 <톡식 히어로>를 했을 때 엄청 화냈지.
이준 :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건 아니지만 이야기는 들었어요. 오죽하면 화를 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화를 잘 안 내거든요. 화낼 일도 별로 없고.
오만석 : 제가 연출할 때는 화를 잘 안 내요. 가령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빨리 해결할 수 있는 거면 지금 처리하고 연락을 달라고 하고 아니면 “이건 나중에 해결하자. 오케이? 괜찮아? 다친 사람 없어? 자, 갑시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려고 노력해요. 뭐가 잘 안 돼, 그렇다고 “뭐하는 거야!” 이렇게 언성을 높이면 진행이 더 늦어져요. 연출이 소리 지르고 히스테리컬하게 굴면 그 순간은 일이 빨리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연출일 때는 더 냉정하게, 최대한 웃어요. 그런데 화를 내는 경우는 이건 정말 불합리하다고 생각될 때, 그리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는데 바뀌지 않을 때죠.
기자 : 참 아까 타이밍을 놓쳐서 못 물어본 게 있는데, 두 분이서 어떤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오만석 : 우리끼리 노래도 만들고 즐겁게 해보자 만든 밴드예요.
이준 : 밴드를 시작한 지 이제 5년 정도 됐나. 원래는 부활의 드러머 채제민하고 베이시스트 서재혁하고 넷이서 했던 건데, 부활 두 분이 너무 잘 나가서 현재는 둘 체제로 가고 있어요. 규칙적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잠깐씩 쉴 때 있잖아요. 그럴 때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자고 만든 거예요.
오만석 : 그렇게 노래들을 만들어서 뮤지컬을 만들자는 게 장기적인 목표고요.
기자 : 참, 두 분이서 창작뮤지컬을 한 편 준비한다고 했던 건 계속 구상 중인 거예요?
오만석 : 네, 제가 시놉시스만 써놓고 멈춰있는 상태에요.
이준 : 우리는 이렇게 몇 년을 이야기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쑥 작업에 들어가는 거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6호 2011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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