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수집가, 음악감독 김성수
국내를 대표하는 음악 프로듀서에서 최근 인기 뮤지컬 음악감독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된 김성수 음악감독.
2002년 <포비든 플래닛>의 음악감독으로 뮤지컬계와 인연을 맺은 후 드물게 작업을 이어오던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15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다. 이 작품에서 그가 보여준 열정적인 지휘는 관객들의 가슴속에 확실하게 각인될 만했으며, 그해 편곡을 맡은 <마마 돈 크라이>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역시 평단의 호평을 받아 단숨에 뮤지컬계에 뜨겁게 떠올랐다. 올해는 <포우>, <페스트> 같은 굵직한 작품들로 작업 스케줄이 꽉 채워진 상태. 얼마 전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마친 그의 개인 작업실을 찾았다.
“한번 들어보실래요?” 김성수 음악감독의 개인 작업실을 찾은 이른 오후, 그는 대세 인디 뮤지션 검정치마의 앨범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곧 발매될 검정치마의 정규 3집 앨범의 편곡은 물론 녹음과 믹싱까지 담당하는 프로듀서를 맡았다는 것. 그를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먼저 알게 된 이들에게 두 사람의 만남은 뜻밖의 사건처럼 느껴지겠지만, 김성수 음악감독은 2000년대 초 한국 인디의 대부로 불렸다는 사실! 라이너스의 담요, 메이트, 몽구스, 칵스 등 국내에서 인기를 끈 인디 뮤지션들의 음반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1997년에 MI(LA에 있는 실용 음악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처음엔 인디 뮤지션들의 앨범 작업을 많이 했어요. 솔직히 돈은 안 됐지만,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그러다 점차 대중가요와 영화 쪽 음악 작업을 하게 됐고, 언젠가부터 뮤지컬 음악까지 하게 됐죠.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계속 뮤지컬 작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웃음)”
하지만 김성수 음악감독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현재 공연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되었고, 그답게 검정치마의 앨범 작업 뒤로는 공연 음악 작업들이 줄줄이 쌓여 있다. 그중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긴급한 과제는 오는 4월에 초연될 <지구를 지켜라>의 음악 작업. 동명의 영화를 무대로 옮긴 연극에서 그는 작곡이라는 임무를 맡았다. 주로 편곡자와 음악감독으로 활동해 온 그가 공식적으로 공연 음악 작곡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엔 배경음악으로 쓰일 몇 곡만 쓰면 되는 줄 알고 부담 없이 시작했는데, 곡 수가 점점 늘어나서 이러다 음악극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하하.” 그와 동시에 5월과 7월 각각 무대에 오르는 라이선스 신작 <포우>와 초연 창작뮤지컬 <페스트> 편곡 작업도 한창 진행 중이다. 이 많은 작업들을 밀리지 않고 해내는 비결은? “데드라인을 못 지킬 땐 그냥 욕을 들어가며 하는 거죠.” 그는 농담조로 명쾌한 답을 내놓았지만, 작업에 대해 설명하는 열정적인 모습에서 사뭇 열의가 느껴진다. “<페스트>는 서태지 노래로 만든 작품이라 록 뮤지컬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음악 컨셉은 클래식적으로 편곡한 장엄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에요. 스펙터클한 영화음악에 오페라적인 사운드가 더해진 것 같은 음악이죠. 물론 서태지의 음악 색깔이 확실히 드러나야 하는 장면에서는 완전히 록킹한 음악이 나올 거고요. 반면 소설가 애드거 앨런의 삶을 다룬 <포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록 뮤지컬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의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음악적 상상력을 음악에서 찾으려고 하면 한계에 부딪힌다고 생각해요.” 그에게 자양분이 되어주는 것은 자칭 열렬한 문학 소년이자 영화광이었던 어린 시절에 섭렵한 문학 작품들과 영화들이다.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작가들의 소설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데이비드 린치 같은 시대를 뛰어넘는 창조적인 영화감독들의 저서들. 작업실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에는 무엇이 그의 바탕이 됐는지 짐작할 수 있는 물건들이 빼곡하게 꽃혀 있다. “음악을 하기 위해 음악을 공부했다기보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것들을 밖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지금의 일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전 이런 쪽의 일을 하기 위해 무엇보다 자신만의 취향을 형성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조그만 카세트 플레이어로 노래를 듣던’ 70년대에 우연히 록 음악에 눈을 떠 매일 밤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과 딥 퍼플의 ‘April’ 두 곡을 들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직 초등학생의 나이에 말이다. “사실 모든 건 다 허세에서 시작하는 거죠. 제가 고등학교 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처음엔 여자들에게 더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였어요. 어려서 소위 말하는 어려운 책이나 영화를 섭렵한 이유도 난 남들과는 다르다는 기분을 즐겼거든요.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시작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거죠. 무언가 열렬히 좋아하게 되면 그걸 내 식으로 표현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김성수 음악감독이 크리에이터에게 중요한 자질에 대해 다시 명쾌한 답변을 내린다. “허세와 오타쿠 기질. 그리고 그걸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 이 세 가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01 고등학교에 올라가 처음 잡게 된 기타.
가장 먼저 접하게 된 악기는 피아노인데, 모두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02 책장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의 책.
앨런 긴즈버그의 『Howl』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집.
03 또 다른 비트 제너레이션 대표 작가 윌리엄 버로스의
자전적인 소설 『네이키드 런치』와 관련된 물건들.
04 최근 김성수 감독은 5천 장에 가까운 음반을 처분하고
아끼는 음반들만 남겨 놓았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미니멀리즘 계열의 현대 음악가 마이클 니만과 필립 그래스의 음반.
물론 이들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들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0호 2016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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