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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캣츠> 인순이, 절정을 향한 열정과 도전 [No.96]

글 |정세원 사진 |심주호 진행 | 김영주, 이민선 2011-09-19 5,576

 

Another Night is Over, Another Day is Dawning

 

가수 인순이의 두 번째 뮤지컬 도전작은 <캣츠>다.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그녀만을 위해 주어진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지만, 불멸의 명곡 ‘메모리’는 열정의 디바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달빛 아래 홀로 남겨져 화려했던 지난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대신 삶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애착을 보이며 내일의 희망을 꿈꾸는 그리자벨라, 그리고 세상의 편견과 힘든 역경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려온 인순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을까. 언젠가 자신을 내려놓게 될 그날을 앞서 걱정하기보다는, 자신의 가장 화려한 시절인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는 ‘잿빛(Grizzle)의 아름다운 여인(Belle)’ 인순이가 다시 우리 앞에 섰다.  

 

 

2년 만에 다시 돌아오셨네요.

<시카고> 때 만났죠, 우리? 그때 공연 보러 왔을 때도 나 실수를 많이 했는데. 계단 위에 올라가서 대사 치는데 너무 어지러워서 잠깐 아찔했잖아요. (그럼에도 충분히 멋지셨어요.) 그래요? 고마워요.(웃음) 그동안은 늘 그랬듯이 계속 콘서트 다녔어요. 카네기홀 공연도 하고 개인 콘서트도 하고. ‘어퍼컷’이라는 싱글곡도 나왔고.


콘서트 무대가 무척 화려했다는 얘기 들었어요. 현장에서 즐기지 못해 아쉽던걸요. 아, <유희열의 스케치북> 100회 특집 ‘뮤지션의 날’에도 깜짝 출연하셨죠. 아주 잠깐이었지만 음악에 몸을 맡기고 순간을 즐기는 모습이 뜻밖이면서도 참 보기 좋았어요.

그 얘기 참 많이 들었어요. <열린 음악회> 녹화하러 갔다가 익숙한 음악이 들리길래 누가 부르나 궁금해서 들어갔는데 가수는 없고 연주만 하는 거예요. ‘저 양반들 다 나랑 같이 작업해 본 사람들이고,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인데’ 싶은 마음에 너무 좋더라고요. 시간되면 놀러 오라는 얘기에 달려간 거예요. 마침 <열린 음악회>는 오프닝 무대이기도 했고. 드레스도 안 갈아입고 기다렸다가 마지막 무대에 올라가서 춤추고 내려왔어요. 피디들도 내가 끝까지 남아있을 거라 생각 못하고 있다가 깜짝 놀랐잖아요. 이게 나예요. 노래 안 하면 뭐 어때요. 축하해주는 마음만큼 춤을 췄는데. 심지어는 녹화 끝나고 뒤풀이까지 따라가서 1차 비용을 다 내고 왔다는 거 아니에요.


지난 인터뷰 때 ‘다작보다는 나한테 맞는 몇 작품에 계속 출연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캣츠>가 그중 하나가 되었네요.

난 다른 배우들처럼 쉽게 배역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거든요. 한두 달 공연만으로 캐릭터 안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고요. 오죽하면 비중은 적더라도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무대 작업에 참여해서 배우들이 캐릭터로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고 했겠어요. 몇 작품만이라도 여러 번 참여해서라도 내 감정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캣츠>도 마찬가지였죠. 내 인생의 작품 몇 개 갖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시기적으로도 뭔가 새로이 시작하면서 스스로 나태해지는 것을 막고 싶었고요. 이번 공연에 참여하지 않으면 몇 년을 또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데 그때 과연 내가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컸어요. 지금 경험해봐야 다음에 더 안정적으로 공연할 수 있지 않겠어요. 물론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르고 싶어 하는 ‘메모리’를 배역 안에서 불러보고 싶은 욕심이 가장 컸고요.


그래서 직접 참여해보니 어떠세요.

착각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요. 진짜로 ‘메모리’ 하나만 부르면 끝나는 줄 알았거든요.(웃음)

 

하하. 그리자벨라가 다른 고양이들처럼 뛰고 구르지는 않아도 무대에 오르는 장면이 아주 없지는 않죠.

이번에는 오프닝 장면에서도 같이 무대에 올라 춤을 출 거예요. 고양이 분장을 한 데다,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있어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겠지만.(웃음) 연습에 참여하면서 이 작품이 얼마나 심오하고 철학적인지 알게 됐어요. 고양이로 무대에 오르기 위해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쏟아내야 하는지도 말이에요. <시카고> 때는 내가 바빴고 내가 열심히 뛰었거든요. 다른 배우들이 그렇지 않았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캣츠>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우리네 인생을 담아낸 캐릭터 하나하나가 다 사연이 있고 감동적이에요. 어제도 런 스루를 보면서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들의 이야기들을 제대로 전달해줄 수 있을까 고민도 해보고. 참 근사한 작품이에요.

 

‘메모리’를 무대 위에서 또는 개인적으로라도 불러본 적 있으세요?

상상해본 적은 있지만 한번도 불러본 적 없어요. 실제로 불러보니 참 절절하더라고요. 외로움과 회한 속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갈 희망을 찾는다는 게. 내가 생각했던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어떤 느낌의 곡이라고 생각하셨길래요?

선배님들이나 외국 가수들이 부르는 걸 보면서 대곡이니까 그만큼 우렁차고 화려하게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름다운 노랫말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할 것 같았고. 근데 아니었어요. 멜로디나 가사보다는 이 곡이 지닌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더라고요. 연습에 참여한 지 3주 정도 됐는데 그동안 소리 죽이는 작업만 한 것 같아요. 음은 높은데 첫 음을 제대로 콕콕 짚어 부를 수가 없고, 소리도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거든요. 게다가 늙고 병든 고양이라 몸을 움츠리고 불러야 한다고요! 나라면 결코 쓰지 않았을 창법이에요. 특히 마지막 ‘터치 미’ 부분은 온 마음을 다해 터트리고 싶어도 자세 때문에 쉽지가 않아요.

 

 

청자의 속이 다 후련할 정도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이는 가수 인순이로서는 꽤나 답답할 것 같아요.

그래서 연출님께 아주 조금 어깨를 펼 수 있게 허락을 받았어요. 한 8마디 정도?(웃음) 처음에는 내 안에서 얼마나 싸웠는지 몰라요. 웅장하고 화려하기는커녕 꾹꾹 눌러서 가슴속에 담아야 한다니. 어디 노래뿐인가요. 동선이나 시선 처리 등도 지켜야 할 정확한 포지션이 있잖아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걸 알지만 그게 참 힘들어요. <시카고> 할 때도 정해진 틀 안에 갇혔다는 생각만으로도 엄청 답답했거든요. 15~20회 정도는 내 안에서 터트리지 못해 병이 날 정도였다고요. 하지만 뭔가 배우겠다고 많은 것들 포기하고 작품에 참여했는데 나를 고집하면 놓치는 게 얼마나 많겠어요. 극복해야죠.


지금은 화려한 무대에서 국민가수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혼혈이라는 뿌리로 인해 평탄치 않은 가수 인생을 살아오셨어요. 슬럼프도 적지 않게 겪으셨고요. 그 시간들이 그리자벨라의 아픔과 외로움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나요.

그럼요. 30년이 넘는 가수 생활 동안 슬럼프도 여러 번 경험해봤고, 언제까지나 화려한 시절을 보낼 것 같던 사람들이 어떻게 사라져갔는지를 다 지켜봤잖아요. 그리자벨라는 늙고 병들어 털도 다 빠지고 볼품없어졌지만 그런 자신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손을 내밀어요, 자기를 받아달라고. 다 내려놓고 새로운 나를 꿈꾸는 거죠. 아직은 그녀처럼 격정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인생을 내려놓는 단계에 서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나도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악악 대면서 춤추고 노래할 수 있겠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을 그 시기를 생각하고 계신다니 뜻밖이에요. 새로운 장르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이나 혼신의 힘을 다해 선보이는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떠올리면 언제까지나 지금 모습 그대로일 것 같은데 말이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해요. 누구에게나 오는 시기일 텐데 내가 앞서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내게는 아직 힘이 남아있는데 스스로 먼저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 열정이 남아있을 때 더 즐기자고 결론 내렸어요. 세월 가는 건 누구도 거부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더 열정적으로 멋지게 살아내느냐는 내가 할 수 있는 몫이니까요.

 

긍정적인 사고와 끊임없이 도전하는 열정과 노력이 오늘의 당신을 있게 한 동력이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얘기죠. <캣츠>의 젤리클 고양이들처럼, 지난한 삶의 여정에서 누군가 당신의 손을 잡아준 기억이 있나요?

후배들이요. 손을 잡아준 정도가 아니라 나를 끌고 갔죠. 박진영이라는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난 패티 김 선배님처럼 두 팔 벌려가면서 노래하는 대형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아직은 아니다’라며 ‘또’를 제작해 만들어주면서 날 완전히 변화시켰어요. 그 다음에는 조피디라는 친구가 같이 노래하기를 원했고. 그 후로 작곡가들은 죄다 나한테 트랜디한 곡 아니면 대형곡을 만들어줬고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예요. 참 고마운 일이죠.

 

지난 인터뷰 때 어떤 무대건 상관없이 그곳에 서서 노래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쁨이고 행복이라는 얘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지금도 변함없어요. 이제는 나를 ‘모시기 힘든’ 무대들도 꽤 있거든요 사실은. 하지만 무대를 가리는 건 내 기준에서 썩 바람직하지 않아요. 큰 무대에서는 큰 무대니까 나도 같이 빛나고, 작은 무대는 내가 그 무대를 빛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무대든 내가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격이 있는 무대, 멋진 무대가 될 수 있다면 그 역시도 내가 할 몫이거든요. 상위 1퍼센트뿐만 아니라 하위 1퍼센트의 사람들 역시 내 팬들이에요. 대중이고 서민이죠. 여기까지 나를 올 수 있게 힘을 준 그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노래하는 게 대중 가수인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이트클럽도 마찬가지고요.

 

 

지금도 나이트클럽에서 노래하시나요?

그럼요. 철저한 계산이 오가는 냉정한 세계거든요. 그곳에 온 사람들이 ‘거위의 꿈’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면 믿을 수 있겠어요? 일 년에 5~6번이긴 하지만 한 번씩 가면 많이들 반가워하시고 난 나대로 옛날 생각을 하게 돼요. 내가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하다가 눈에 띄어서 가수가 된 사람이잖아요. 1978년 희자매로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땐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대에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했어요. 그러다 조금씩 실력이 늘면서 시간대도 바뀌고 방송에 나가게 되면서 개런티도 올라가고. 지금은 내 이름 하나만으로도 손님이 꽉꽉 차는데 그게 행복이지 뭐가 행복이에요. 그렇다고 내가 흐트러지거나 스스로 그 무대를 싸구려로 만드는 건 싫어요. 나이트클럽이든, 미사리든, 어떤 무대 위에서든 같은 퀄리티로 노래하는 게 중요해요. 그게 정말 나를 빛나게 할 수 있거든요. 다른 건 다 포기하더라도 무대 위에서 자존심 망가지는 것만큼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 자존심 망가지는 건 어떤 걸 의미하나요.

내가 나를 함부로 하는 거죠. 누군가에게 나를 쉽게 말하는 거. 참 싫어요.

 

<캣츠>와 더불어 참여하게 된 <나는 가수다>는 관객들에게 대놓고 평가받는 무대잖아요. 아무리 도전을 좋아하고 변화를 즐긴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뭔가 하나를 얻으려면 위험을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링딩동’을 했을 때에도 누군가는 ‘아우 저 아줌마가 왜 저래’ 했거든요. <나가수>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욕을 먹더라도 그때, 적절한 시기에 해봤다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후회만 하게 될 거거든요. 걱정되는 건 나는 원래 한두 달 연습해서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사람인데 일주일 연습해서, 다 내 것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에요.

 

살아오면서 후회해본 적 있나요.

나는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녀 시절, 여학생 시절이 없었어요. 청춘일 때도 청춘이 뭔지도 모르고, 이 어린 나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살았죠. 스물하나에 데뷔해 남들 눈 속에 갇혀 사느라고. 요즘에는 젊은 가수들끼리 만나서 술도 마시고 여행도 가고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거 자체를 못 하게 했거든요. 누구랑 데이트를 했다고 신문에 나면 거의 매장 당하는 분위기였어요. 어떤 사람은 정말 신문에 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랑 결혼까지 했다니까. 결혼하면 가수 생활은 거의 끝나는 거고. 난 무조건 연예계에서 오래 살아남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야 했어요.


조금만 늦게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요. 사회적인 편견도 덜했을 거고.

어린 친구들 보면 왜 부럽지 않겠어요. 내가 날씬하고 이쁠 땐 탱크톱이 없었고 허리, 팔뚝이 드러나는 옷을 입지도 못했거든요. 근데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아요. 언제든 후회하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에요. 사회적 편견도 그래요. 참 힘든 시기였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그런 편견이 있었기에 내가 지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내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주목하고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돌아보면 나는 참 여러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일단 배경부터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잖아요. 가끔은 나한테 그 많은 일들을 겪게 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 노래하는 것 말고 내게 주어진 다른 길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얼마 전에 뭔가를 찾았는데 아직 얘기해줄 수는 없어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는 것 말고는.(웃음)

 

마지막으로 준비한 질문이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게 했고, 앞으로 달려가게 할 꿈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비밀이라니 묻어두겠어요.(웃음) <시카고> 때는 관객들로부터 ‘노력을 참 많이 했구나, 물과 기름처럼 겉돌지 않는구나’ 하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하셨는데 두 번째 뮤지컬 <캣츠>를 마친 후에는 어떤 평가를 듣고 싶나요?

음, 이젠 좀 제법 하네? 이제는 여기저기 슬쩍슬쩍 끼워줘도 되겠다 하는 얘기 듣고 싶어요. 다음 공연 때 또 참여할 수 있게 말이에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6호 2011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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