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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아랑가> [No.150]

글 |정수연 사진제공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2016-03-16 4,422

미숙함과 안이함 사이에 끼인 가능성



창작뮤지컬의 난점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만들어내는 사람을 일러 장인(匠人)이라고 하는데, 이 말에 담긴 두 가지 뜻이 의미심장하다. 손의 기술과 머리의 궁리. 머리로 궁리하고 손으로 완성하는, 어느 사회학자의 말대로라면 장인은 ‘생각하는 손’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머리의 궁리와 손의 기술이 어우러지는 자리에서 아름다움은 빚어지니, 이 아름다움 안에서 장인은 예술가의 다른 이름이 된다.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먼저 장인이 되지 않으면 예술가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결과 때문이 아니라 관념의 사유는 반드시 몸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그렇다. 


공연은 몸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장인의 원리에 가깝다. 그런데 장인에서 예술가가 되는 과정이 다른 예술보다 훨씬 어렵다. 공연은 생각하는 사람(작가)과 손을 가진 사람(연출)과 몸을 가진 사람(배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생각과 작곡가의 상상은 연출의 손과 배우의 몸을 통해서만 공연으로 완성될 수 있다. 작가와 작곡가가 궁리하는 사람이라면 연출가는 배우를 조율하고 시공간을 분할하며 시청각을 활용하는 기술자인 셈이다.


뮤지컬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극작과 작곡의 중요성만큼 연출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서사와 음악은 본질적으로 무대에서 기능하는 방식이 다르다. 흐름을 따라야 하는 서사에 노래가 끼어드는 건, 그것이 설사 서사적 기능을 한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음악은 서사보다는 감정에 가까운 바, 감정의 본질은 흐름이 아니라 몰입에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달려가는데 음악은 멈춰 세운다. 서사의 횡적 흐름과 음악의 종적 퇴적 사이에서 생겨나는 간극은 서사에 익숙한 연극 연출가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함정이었다. 명성을 얻은 연극 연출가들이 뮤지컬에서 판판이 깨졌던 예가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이 간극은 새로운 공연 언어를 개발할 토양이기도 하다. 뮤지컬 연출가의 전문성은 이 틈에서 싹터야 한다. 등퇴장 암전을 반복하며 노래든 이야기든 그저 나열하는 게 뮤지컬 연출의 몫은 아니라는 거다.  


이 지점에서 최근까지 공연된 다수의 창작뮤지컬이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 봐야겠다. 극작의 완성도가 부족해서, 음악의 선율이 인상적이지 못해서, 서사와 음악의 구성에 짜임새가 없어서 공연이 싱거웠을 거다. 공연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언제나 똑같다. 하지만 작품의 싱거움에 아무런 간을 하지 않은 책임을 오직 작가의 궁리에만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연출의 손은 어디에 있나. 전체의 조율자이면서 시공간의 기술자여야 할 연출이 그 싱거움을 몰랐다면 미숙한 것이요 알고도 간을 하지 않았다면 무능한 것이다. 뮤지컬 연출의 부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스타의 팬덤이나 라이선스의 후광에 기대지 않은 채 오로지 콘텐츠 자체로 승부해야 하는 창작뮤지컬에서 그 빈자리는 더욱 크게 부각된다.



미숙한 궁리                        


서두가 길었음을 양해해 주시길. 뮤지컬 <아랑가>의 문제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랬다. <아랑가>의 매무새는 단정하다. 텅 빈 무대도 실을 차양처럼 드리운 막도 배우의 의상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대사도 시처럼 간결하게 표현하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풍성한 것은 오히려 음악이다. 국악이 가미된 음악의 라이브는 음량에서나 감성에서나 넘칠 듯 가득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극작과 음악에서 진지함과 성실함이 배어난다. 신인 작가 특유의 조심스러운 패기가 보기 좋다. 하지만 그런 미덕이 완성도라는 이름을 얻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이 작품의 극작과 음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의욕이 돋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미숙함이기 때문이다.


첫 장면의 피상적인 대사(시간은 무엇인가, 인생은 무엇인가, 사랑은 무엇인가!)가 끝 장면에 반복될 때 끝내 그 피상성이 메워지지 않는 것은 극작의 미숙함을 잘 보여주는 예다. 이 대사가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춘기 정서에 머무른 까닭은 인물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마지막 대사가 살아나려면 개로왕은 시간이 지날수록 질투와 욕망에 사로잡힌 악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강필석이 연기한 개로왕은 그저 얻지 못한 사랑에 시종일관 애절할 따름이다. 고구려의 간첩인 승려 도림을 비중 있게 설정한 것을 보면 개로왕에게 입체적인 배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건보다는 고백이 위주인 데서 잘 드러나듯(모두 홀로 노래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만 흘러가는 전개에서 이런 입체적 설정은 오히려 사족이 되고 만다. 각 인물에게는 각각 사랑 복수 절개 지조라는 전제만 있지 그들의 행동에 따른 사건의 전개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전제에서만 비롯되는 행동은 전형적일 수밖에 없다. 애절한 만큼 지루해지는 이유이다.


하지만 극작보다 아쉬운 건 음악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판소리와 창극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홍보 문구는 과하다. 판소리라는 음악적 형식을 기반으로 서사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창극계의 실험을 보면서 신선하다고 느낀 관객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뮤지컬의 문법에서도 판소리는 대단히 매력적인 음악 형식이니만큼 그것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것인지 기대가 컸다. 그런데 그 활용의 범주가 너무나도 좁더라. 그저 도창 하나뿐이니 말이다. 도창을 제외한 다른 뮤지컬 넘버에 판소리의 색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판소리는 음악 형식임과 동시에 공연 형식이기도 하지만(마당같이 텅 빈 무대!) 이 작품에서 판소리는 극의 안팎에 어정쩡하게 걸쳐 있는 이색적인 취향에 그치는 거다. 그러는 사이 이 작품의 음악은, 아름답지만, 평평해지고 만다. 음악의 감성과 완성도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어느새 스르르 눈이 감겼던 건 비슷한 감상의 반복 때문이었을 거다. ‘아랑아랑아랑아랑’을 반복하는 노래는 댄버스 부인의 ‘레베카’만큼 기억에 남지만 그것이 생명력을 지닌 서정과 선율이 될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음악적 시도에서 좀 더 과감했어도 좋았으련만. 못내 아쉽다.



안이한 손                                  


그런데 문제는 이런 미숙함이 무대화의 과정에서 더욱 도드라졌다는 데 있다. 물론 본질적인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무조건 뛰어넘으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억지다. 하지만 적어도 극작과 음악이 힘을 싣고자 하는 부분에서 무대의 도움이 적절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례로 이 작품의 정체성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창 부분에서 어떠한 연출적 시도도 없었음은 영 석연찮다. 그럼 무대는 왜 비워놨단 말인가. 고구려의 진격을 묘사하는 도창은 적벽가처럼 역동적이건만 시각적 형상화는 영상의 색채로 끝나고, 백제 국경의 처참함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그 말을 듣는 도미가 아무 이유 없이 퇴장했다가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 어쩌면 이것이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미니멀한 판소리의 미학을 적용해 정서와 상상력의 진폭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일지도. 극 전반에 걸쳐 모든 등장인물은, 연극으로 말하자면 독백이요 영화로 말하자면 클로즈업처럼, 거의 대부분 홀로 무대에서 절창을 선보인다. 가끔 과도한 음량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노래의 몰입도는 높아지더라. 하지만 이것이 의도의 전부라면 빈 무대는 무의미한 공간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일단 이 작품의 음악적 중심이 판소리도 아닐뿐더러, 판소리 ‘마당’으로 해석된 공간도 아닌 채 배우의 노래와 감정만으로 채우는 무대를 창의적 공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무런 시도도 가미되지 않은 텅 빈 공간에서 무대 디자인도 자기 복제의 기시감으로 다가올 뿐이다. 똑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별다른 기능을 하지 않아 문제인 거다. 



신진의 미숙한 궁리는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기성의 안이한 손 안에서는 답이 없다. 그 속에서 뭉툭해진 가능성을 찾아내 벼리는 것이 필요하다. 머리의 궁리에서 손을 상상해야 함은 물론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0호 2016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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