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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DATE] <에릭 사티> 박정환 [No.96]

글 |이민선 사진 |박진환 2011-09-14 4,512

학림다방에서 예술가의 삶을 논하다

 

영화학도인 토미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여전히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부동산 중개인이 소개해준 몽마르트의 작은 방에서 토미는 백여 년 전에 그곳에 머물렀던 작곡가 에릭 사티를 만나게 된다. 순탄치 않았던 음악가의 삶의 조각을 들여다본 토미가 예술가로서 살아갈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 창작음악극 <에릭 사티>의 골자다. 이 작품에서 에릭 사티 역을 맡은 박정환을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만났다. 오십 년이 넘도록 문인과 예술가들의 단골 카페로 유명한 학림다방은 몽마르트의 어느 카페 못지않다. 과거 속 예술가를 연기하면서 박정환은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다시 한번 고민하고 있었다.

 

 

학림다방에서 인터뷰라니 조금 의아한데요?”

낡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의자에 앉은 박정환이 내뱉은 이 말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에릭 사티>의 배경과 닮은 장소로 가장 먼저 떠오른 대학로 명소임은 분명하지만, 워낙 ‘선생님’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보니 학림다방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게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중학생이던 제가 대학로에 처음 연극을 보러왔을 때도 이 다방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로에서 연극을 시작했던 시절엔 커피를 돈 주고 사먹는 게 힘든 일이었어요. 그래서 주로 극단 대표님이나 연출 선생님을 뵐 때나 여기 오곤 했죠.”

현대적인 인테리어와 음악으로 채워진 커피 전문점이 한 블록마다 하나씩 들어선 요즘에는 보기 드문, ‘다방’이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이곳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현재에서 과거로 순간 이동을 한 듯이. 박정환은 학림다방에 깃든 시간보다 더 먼 옛날을 경험하고 싶다고 했다. “토미처럼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 제의 속에서 이뤄졌던 초기의 연극들을 직접 보고 싶어요. 아,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학림다방을 찾은 게 <아가멤논> 공연을 마친 후 연출가와 배우들이 다함께 모였던 때군요.”

 

2005년 연극 <아가멤논>에서 박정환은 그리스 연출가 미카엘 마르마리노스의 눈에 들어 당시 그의 입지로는 꿈꾸기 어려운 주연을 맡았다. 외국인 연출가는 캐스팅뿐만 아니라 고전을 재해석하는 연출에서도 비범하고 신선한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당시 함께했던 배우들은 이에 이질감 대신 흥미로움과 신뢰감을 갖게 되었고, 팀워크 역시 좋았다. 공연이 끝난 후 연출가는 자국으로 돌아갔지만, 후에 다시 방한했을 때 학림다방으로 배우들을 불러 모았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귀에까지 학림다방의 명성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아가멤논>이 배우들에겐 굉장히 재미있는 작업이었지만, 표현 방식이 낯설어 관객들에겐 어려운 작품이었을 거예요. 연출가 역시, 이 공연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 것이고 많은 관객들이 싫어할 수도 있다고 말했거든요. 많은 제작사들이 대중이 좋아할 만한 공연을 위주로 올릴 수밖에 없고, 거창하게 예술이라고 일컫는 것이 아니더라도 다수가 어려워할 만한 작품을 만드는 데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공공 예술 단체가 자본의 영향력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운 작품을 만들어줘서 감사하죠. <에릭 사티>도 마찬가지예요. <에릭 사티>가 재미없는 작품이란 말이 아니고, 제일의 목표를 대중성에 두고 있지는 않다는 거죠.”

 

에릭 사티가 예술의 목적을 흥행이나 명예에 두지 않았고,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고자 스스로에게 엄격한 예술가였다는 사실과 이 작품의 성격이 무관하지 않다. “사티가 그저 위대한 음악가였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끝까지 고집스럽게 음악이라는 한길만 걸었다는 게 대단하지만, 외부의 편견과 비난에 맞서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면서도 그 역시 타협하는 약한 모습을 보였어요. 자신의 판단에 혼란스러워했고 고민을 거듭했죠. 그래서 <에릭 사티>는 그를 고증하는 작품이 아니라, 사티를 푯대로 세우고 따라가는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예요.”

 

관객은 토미의 시선을 따라 에릭 사티를 만나고, 이 시대의 예술가인 토미를 통해서 외부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예술가의 고민에 공감한다. 현재를 사는 배우 박정환도 늘 고민한다. 아니, 고민을 멈추지 않으려고 고민한다.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그 역시도 생계를 위한 연기와 좋아서 하는 연기의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다. “사티에게 보편적 위안을 얻으면서도, 다시 한번 어떤 게 좋은 작품이고 좋은 배우인지 생각해보게 돼요. 자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작업을 하면서도, 흥행과 수익에만 목매지 않고 좀 더 다양하고 새로운 작품을 할 수 있어서 요즘 무척 기쁩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6호 2011년 9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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