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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박용호 프로듀서[No.148]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6-02-26 7,569

초심을 지켜 나가는 것


2014년 중견 제작사 뮤지컬해븐의 법정 관리 신청은 한국 뮤지컬의 위기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마니아층의 탄탄한 지지를 받던 견실한 제작사이자, <쓰릴 미>, <스프링 어웨이크닝>,  <번지점프를 하다>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라인업을 보유한 회사여서 업계가 받은 충격은 컸다.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대표는 근 1년 동안 주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최근 에이리스트코퍼레이션의 공연 파트 대표로 활동을 재개했다. 그에게서 긴 터널을 지나온 이의 피로와 바닥을 디딘 자의 자신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새로운 출발을 즈음하여


그동안 어떻게 보냈나?
내 과욕으로 10년 차 회사를 접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유감이다. 내 소신을 믿고 함께해 준 관객, 배우, 스태프, 나를 아는 분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1년 이상 회생에 매달렸지만 폐업을 하게 됐다. 이후 정중동 하면서 앞으로의 일을 모색했다. 프리랜서로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에이리스트 유주영 대표의 제안으로 공연 사업을 대표하는 부문장을 맡게 되었다. 첫 작품으로 <넥스트 투 노멀>을 올리게 되고 다음 작품으로 <스위니 토드>를 올린다.


한때 프레인에 영입되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프레인과는 어떤 관계인가.
프레인 글로벌에서 컨설팅 프로듀서로 공연 사업에 조언을 하고, 일이 성사되었을 때 참여하기로 했다. 프레인 입장에서는 영입이라는 말이 과히 틀린 것 같지 않아 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회사에 내 자리를 마련해 주거나,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별로 협업하는 개념이다. 앞으로도 이런 식의 협업을 해 나갈 것이다.


당시 기사에 프레인에서 2017년 대형 신작을 기획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제인에어>를 제안했다. <레 미제라블> 여성 버전 같은 작품이다. 오리지널 <레 미제라블> 연출인 존 케어드가 각색과 연출을 했다. 개인적으로 좋게 봤고 프레인 글로벌의 첫 작품으로 적합할 것 같아 소개했다. 프레인 측에서 공동 제작을 제안했고, 에이리스트가 참여한다. 그런데 공연장을 대관해야 할 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대관이 결정되지 않았다.


기존의 해븐 라이선스 작품들은 어떻게 되는가?
모두 열려 있다. 그렇지만 누가 하겠나. 대히트작이라면 라이선스를 잃을 수도 있지만, 내가 만든 작품들이 호락호락한 작품도 아니고 한국의 트렌드에서도 벗어난 무거운 작품들이다. 제작사에서 관심을 갖지 않고 경쟁하지 않으면 라이선스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 <쓰릴 미> 같은 경우는 특별한 경우다. 원작자 스티븐 돌기노프가 나에게 아시아 지역을 관리해 달라고 했다. 중국에서 CJ가 내년 4월에 라이선스로 <쓰릴 미>를 올리는데, 돌기노프의 요청으로 내가 총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로 참여한다.


<스위니 토드>는 오디뮤지컬컴퍼니와 공동 제작을 한다. 프로듀서별로 색깔이 다른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들었다.
작년에 오디에서 공동 제작을 제안해 왔다. 바로 직전에 이 작품을 다른 제작사와 진행하다가 불발됐다. 신춘수 대표가 <스위니 토드>를 제작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공연 시기가 내년 6월로 연기되면서 미야모토 아몽 연출이 참여할 수 없게 됐다. 두 프로듀서가 개성이 강하니까 부담도 있었고, 아몽도 못하게 되면서 2016년은 신춘수 대표가 선택한 연출과 무대디자이너가 참여하고, 2018년에는 내가 선택한 스태프들이 별개의 프로덕션으로 각자 개성을 살려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도 공동 제작자로서 신 대표와 계속 의견을 나눌 것이다.


<스위니 토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스위니 토드>만큼 재밌는 공연을 못 봤다. 초연 공연을 모두 봤다. 콘솔 옆이 내 자리였다. 무너질 듯 이어지는 플롯이 인상적이다. 연출을 찾을 때 애초부터 유명한 연출에게 맡길 생각은 없었다. 조건은 두 개였다. 오페라와 영문학에 조예가 있을 것. 아드리안은 아마추어로 호른을 불 정도로 음악의 이해가 높았다. 그와의 작업은 잘 맞았다. 대본이 워낙 좋았다. 열심히 만들었고 좋은 성과가 있었다.


달컴퍼니에서 <쓰릴 미>를 올렸다. 달컴퍼니와는 어떤 관계인가?
뮤지컬해븐에 있던 친구가 독립해서 차린 회사다. 앞으로 나는 대표 역할은 안 하려고 한다. 에이리스트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기반을 다지고 그다음에 월급을 받겠다고 했다. 내가 전체 프로덕션의 큰 그림을 그리고, 에이리스트가 투자나 작품 제작의 핵심 기능을 맡고, 달컴퍼니에게 제작 현장을 책임지는 제너럴 매니지먼트 기능을 맡기려고 한다. <키다리 아저씨>는 달컴퍼니에서 제작해 보라고 제안했다.




대표적인 창작뮤지컬 프로듀서


<김종욱 찾기>를 비롯, <마이 스케어리 걸>, <번지점프를 하다>, <살짜기 옵서예> 등 많은 작품을 프로듀싱 했다. 그만큼 해븐의 창작뮤지컬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많은 것 같다.
지금 시장에서 창작으로 수익을 내기는 힘들다.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지만 그들이 왔을 때 50% 정도 채운다. 나머지 20%는 일반 관객들로 채워야 하는데 그들을 모으기가 힘들다.  <번지점프를 하다> 같은 작품은 좋은 때가 오면 달컴퍼니에서 해보라고 했다. 창작뮤지컬 중에 의미 있는 한 발을 내딛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발전 여지가 5~10%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한다면 400석 규모에서 만들고 싶다.


새로운 창작도 시도하는가?
창작하고 싶고, 하고 있다. 내가 큰 컨셉을 잡고 달컴퍼니에 의뢰하면, 달컴퍼니에서 작가와 작곡가를 만나 의논한다. 개발 과정에서 비용을 지불하기는 힘들지만 창작산실 같은 좋은 제도가 있으니 선정되면 혜택을 공유해서 제작해 보자는 취지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제작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동의를 얻고 제작되는 것이 <용의자 X>이다. 내년 대명아트홀에서 신작 3편의 리딩을 선보인다. 하나가 <용의자 X>이고, 또 하나는 스티븐 돌기노프의 신작 <플레임스>다. 남자 둘에 여자 한 명이 나오는 스릴러인데, 오프웨스트엔드에서 평이 좋았다. <쓰릴 미>가 10주년을 맞는 2017년에 올릴 예정으로 준비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연극을 한 편 할까 고민하는 단계다.


힘들지만 그래도 창작을 지속한다.
창작을 하는 게 힘들다. 대본이 가장 중요한데, 잘 안 나온다. 창작자들과 갈등하고 마찰을 빚으면서 상처가 많이 남는다. 라이선스를 가져오면 그렇게 마음 상할 일은 없다. 겉으론 그렇게 안 보일지 몰라도 속으로 많이 낙담하는데 창작에 매력이 있다. 상처받지만 또 하게 된다. 술꾼들이 밤새 술 먹고 속 쓰리다면서 해장으로 속 푸는 것처럼 나도 창작이 미치게 힘들지만 창작으로 해장한다.


창작뮤지컬 제작에 국가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을까?
우리나라에 수많은 극장이 있다. 대부분이 대관 중심의 극장이다. 수많은 기획자와 지방 극장이 레지던스 계약만 해도 상황은 많이 좋아질 것이다. 지역 예술회관을 포함한 공연장에서 레지던스 컴퍼니 식으로 기획사에 제작 의뢰를 하고, 그 작품이 서울에서도 유통될 수 있게 한다면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강하늘이나 주원 등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탁월한 눈을 가졌다. 김무열 역시 지금의 위치로 성장한 계기가 <쓰릴 미>였다.
사실 가장 많은 신인을 발굴한 작품은 <그리스>다. 누구나 다 스타가 될 수 있다. 나는 캐릭터를 많이 보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손해를 많이 보기도 한다. 내가 만약 2004년에 <지킬 앤 하이드>를 제작했다면, 조승우를 캐스팅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대신 신인을 발굴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인이더라도 캐릭터에 잘 어울리고, 잘하는 배우와 호흡을 맞추게 하면 빛이 난다. 김무열이 그런 경우다. 김무열은 그 전에 <알타보이즈>를 하기도 했지만  <쓰릴 미>를 통해 빛났다. 웃는 모습이 비열해 보이면서도 귀엽고 매력이 있었다. 류정한과 호흡을 맞추면서 안정을 찾고 더 큰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다. 주원도 <알타보이즈>에서 언더스터디로 기용해 보면서 음색이나 용모를 보고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출연시킨 것이다. 강하늘은 중대 연극에서 굉장히 돋보인 배우였다. 그래서 <쓰릴 미>와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기용했다.


<김종욱 찾기>도 한예종 발표 공연을 먼저 보고 발굴해 냈다. 대학 공연까지 꼼꼼히 챙기나보다.
예전에는 많이 봤다. <김종욱 찾기> 학교 공연은 60분짜리였다. 그동안 소극장 창작뮤지컬이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이 작품에서는 해결했더라. 코미디와 아련한 로맨스를 잘 살렸다. 이 작품이 대학로의 정체된 분위기를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의 좌절을 딛고


지금의 위치에서 공연계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이 틀리지 않았다. 예술마당 시절 레퍼토리 극장을 지향하면서 극단형 기업으로 가려고 했다. 삼성영상사업단에서 마지막으로 제출한 보고서가 ‘리틀 사계’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촌에 극장 더 스테이지도 만든 것이다. 수많은 시도를 했고 신인 기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마니아를 키워야 한다. 일본에서 그런 방식으로 소극장이 제대로 운영된 게 1990년대다.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도 그 뒤에는 튼튼한 극단형 기업들이 있다. 신인 발굴과 마니아 양성, 이 둘을 놓지 않아야 이후에도 보람이 있고 성공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뮤지컬해븐 시절의 박용호와 지금의 박용호 사이에 차이가 있는가?
내 생각에 공연 예술은 엔터테인먼트는 아니다. 공연은 마니아가 움직이는데, 문제는 마니아가 너무 적다는 거다. 영국이나 미국에는 훌륭한 극단형 기업들이 존재한다. RCS와 NT는 제작형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레 미제라블>을 만들고, <마틸다>를 만들었다. 우리는 마니아도 키우지 않았고, 좋은 공연을 개발하지도 않았다. 좋은 작품 개발은 기본이다. 앞으로 10년 좋은 작품을 올릴 수 있는 텃밭을 기름지게 하면서 내 생각을 잃지 않고 키워보려고 한다. 회사는 없어졌지만 뮤지컬해븐이나 연극은 시어터해븐으로 내 브랜드를 가져 가려고 한다.


뮤지컬해븐 시절에도 마니아를 양성하고, 제작에 힘썼다. 왜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나와의 싸움에서 진 것이다. 마니아들을 내 위주로 해석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간과했다. 소신을 잃지만 않으면 마니아 시장 안에서도 할 수 있다. 나부터 욕심을 버려야 한다. 마니아들이 원하는 작품만 만들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양한 작품, 개성 있는 작품을 제시하면서 시장을 키우겠다는 거다. 쉽지는 않겠지만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천천히 걸어갔으면 꽤 많이 갔을 텐데, 예전에는 너무 욕심을 부렸다.


기획된 작품들 중에는 대작들도 포함되어 있다.
2010년부터 생각이 달라진 것이 있다. 스타가 출연해서 작품을 잘 알릴 수 있다면 좋다는 생각이다. 너무 하고 싶은 대작은 유명 배우를 캐스팅해서 하고, 그렇다고 캐릭터에 맞지 않는 스타를 쓸 생각은 없다. 200석이나 250석 규모에서 승부를 걸 수 있는 마니아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계속 올릴 것이다. 대명이나 프레인 같은 회사들과 계속 파트너십을 늘려가야 할 거다.


해외 다른 시장과의 협업은 어떻게 되고 있나?
나는 지구인이어서 일본이든, 중국이든 구별하지 않는다. 좋은 작품이면 한다. 극비리에 번역해서 읽고 있는 것만 20여 편이 넘는다. 일본은 매우 흥미로운 시장이다. 미국이나 영국과 다르면서도 어찌 보면 더 유럽스러운 시장이다. 뒤늦게 일본을 안 것을 반성하고 있다. 일본은 계속 다니면서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인가?
중국도 흥미로운 시장 같다. <쓰릴 미>를 진행해 보니까 중국 배우들의 수준이 높다. 많진 않지만 노래를 잘하는 배우들이 있고 중국말에서 오는 언어적인 장점도 있는 것 같다. 상해에 에이리스트 자회사를 설립했다. 중국에서 몇 가지 제안받은 것이 있다. 아직은 제안 상태이긴 하다. 북경과 상해의 확실한 곳과 넌버벌이나 뮤지컬 제작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중국은 아직 상업 시장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제작 전문 회사로 활동하고 싶다.


인생의 큰 풍란을 겪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내 본분에서 벗어나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 나 자신을 더 알게 된 계기였다. 앞으로 내 주제 안에서 내 색깔을 지키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더 자신감이 생겼다. 결국 공연도 본질은 똑같다. 다시 출발하니까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뛰어서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쌓을 계획이다. 공연을 하는 일은 쉽지 않다. 후배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들은 남겨줄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8호 2016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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