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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소품으로 보는 <프랑켄슈타인> [No.147]

글 |송준호 사진 |김수홍 2016-01-29 14,512

창작뮤지컬로 흥행 신화를 세웠던 <프랑켄슈타인>이 돌아온다. 이 작품은 화려한 캐스팅과 인상적인 뮤지컬 넘버, 차갑고 어두운 무대와 의상, 분장 등 원작을 효과적으로 무대에 구현해 팬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받았다. 특히 이 작품이 기괴하고 음울한 매력을 증폭시킬 수 있었던 데는 소품의 역할이 컸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임희정 소품디자이너를 대신해 초연부터 함께 작업했던 김린아 제작 팀장의 설명으로 <프랑켄슈타인>의 소품들을 들여다봤다.  




그로테스크한 시대의 정서를 담은 디자인 


<프랑켄슈타인> 전체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그로테스크’다. 이 말은 처음에는 장식을 위한 색다른 디자인을 뜻했지만, 지금은 대개 극도로 부자연스러운 것이나 흉측하고 괴기한 것을 가리킨다. 사실 그로테스크는 고대 이후 꾸준히 등장해 온 미적 경향이다. 기존의 질서가 해체되고 가치가 역전되는 변혁기마다 이질적인 존재가 과장되거나 왜곡된 형상으로 나타났다.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이 쓰인 18세기도 산업혁명으로 과학 기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생명체와 기계의 중첩 현상이 나타났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탄생한 배경이다.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피사체와 사건과 분위기로 점철돼 있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도 그런 시대적 배경에 근거하고 있다. 초연 당시 임희정 디자이너가 중점을 둔 부분 역시 철저한 고증이다. 상상력을 더하더라도 고증을 바탕으로 시대성을 드러낸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시대의 자료나 영화 등을 참고해서 원작의 그로테스크한 정서를 끔찍하게 구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고 중심이 되는 것들이 피투성이 소품과 더미들인 이유다. 소품 제작 전 리서치한 자료를 모아둔 제작 팀의 폴더에는 온통 빨간색 사진과 피범벅 영상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건 이 소품들 역시 마찬가지다.




닥터 마스크                          



이 긴 부리의 마스크는 극 중에서 빅터의 아버지가 페스트 환자들을 치료할 때 쓰고 있던 것이다. 일명 ‘까마귀 탈’이라고도 부르는 이 마스크는 페스트가 유럽에 창궐했을 때 의사들이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온몸을 감싼 옷과 함께 착용했던 것이다. 부리 끝엔 향신료나 허브 같은 약초들이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페스트 균을 막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까마귀 탈’이라는 별칭은 페스트 환자가 있을 때 등장하는 의사의 존재가 마치 시체가 있는 곳에 나타나는 까마귀의 습성과 비슷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프랑켄슈타인>에서 쓰인 이 마스크는 가죽 재질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위해 부리 부분을 더 길게 뺐다.



잘린 손            



<프랑켄슈타인>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는 대목은 괴물의 탄생을 예고하는 앙리의 참수일 것이다. 눈을 감은 채 들려진 앙리의 머리는 그 자체로 거대한 비극을 암시한다. 이 잘린 머리는 치아 모형 제작 시 사용되는 알지네이트로 박은태와 한지상의 머리 모형을 각각 떠서 제작됐다. 이번 공연에서는 잘린 손이 추가됐다. 격투장 여주인 에바의 잔인한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가 하인의 손목을 자르는 장면에서 쓰이는 소품이다. 가짜 손을 잡고 있다가 칼로 그으면 떨어트리는 간단한 장면이지만, 제작 팀에게는 절단면 표현을 비롯해 의상 팀과 소매 끝 처리도 협의해야 해서 여러 가지 테스트가 필요한 소품이다.



잘린 다리와 접합용 지혈 도구      


         
절단면이 매끈한 손과 달리 다리는 뼈와 살점이 불균일하게 드러나 있어 한층 더 흉측한 모습으로 제작됐다. 특히 말랑말랑한 실리콘의 질감은 배우들에게도 썩 유쾌하지 않은 느낌을 선사할 만하다. 극 중 다리 접합 수술 장면을 위해 디자이너와 제작 팀은 당시 수술 장면을 재현한 영상들을 찾아보며 그런 고증을 바탕으로 소품을 제작했다. 접합용 지혈 도구 역시 1815년 워털루 전투 때 쓰인 수술 도구 중 하나다. 



더미(Dummy)              


              
이번 재연에서는 초연에 비해 소품의 재질이나 표현의 디테일을 업그레이드한 것들이 많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소품이라면 역시 인체 모형이다. 작년에는 딱딱한 마네킹을 활용했지만, 좀 더 실감나게 보이기 위해 이번에는 뼈대부터 인체 같은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는 더미를 제작했다. 극 중 목을 매단 엘렌의 시체가 줄에 묶인 채 떨어질 때마다 앞을 향하지 않고 뒤를 보는 바람에 제작 팀은 ‘원래 뒷모습이 컨셉’이라고 우기기도 했다고. 줄에 매달린 시체와 빅터가 지상으로 끌어내려서 안고 오열하는 시체는 다른 것이다.



불에 탄 사체        


                     
<프랑켄슈타인>은 페스트 창궐이라는 설정 때문에 유독 불에 탄 사체들이 많이 나온다. 빅터의 어린 시절에서는 페스트에 감염된 사체들을 불구덩이에 던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어린 빅터가 새까맣게 탄 엄마의 시체를 다리 위에서 끌고 가는 대목이다. 이때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체를 더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피부와 옷도 불에 그을린 채 살에 달라붙은 것으로 표현됐다. 자세히 보면 손과 발도 살짝 오그라들어 있을 정도로 디테일을 추구한 게 눈을 끈다. 당시 이런 리얼한 효과를 표현하기 위해 제작 팀에서는 소품을 불에 그을린 결과, 한동안 작업실에 오징어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죽은 개들      



엄마의 충격적인 죽음을 목격한 후 어린 빅터의 진로는 이미 결정된다. 그 첫 번째 실험 대상은 바로 어린 줄리아의 강아지. 마차에 치인 채 돌아온 강아지는 이미 피로 범벅돼 있어 줄리아를 슬프게 하지만, 반대로 빅터의 눈은 실험에 대한 의욕으로 반짝인다. 이때 강아지 소품은 지나치게 인형의 티를 내지 않으면서 사고의 흔적이 느껴지는 비주얼로 제작돼야 했다. 괴물의 희생양이 되는 들개의 시체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어졌다.  



자크의 인두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자크의 괴물 고문 신에 등장한 인두의 비밀은 뭘까. 실제로 만져보면 하나도 뜨겁지 않지만 분명히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소품의 위험도를 낮추고 실감 나는 표현을 위해 디자이너와 제작 팀이 머리를 맞댄 결과 전자 담배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소품의 버튼을 누르면 불이 들어오면서 연소된 전자 담배의 액상의 힘으로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원리다. 하지만 이런 원리를 안 후에도 빨갛게 달아오른 불빛과 피어나는 연기를 보면 섣불리 인두에 손을 대기가 꺼려진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7호 2015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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