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적으로 보이는 프로듀서 송한샘과 악동 같아 보이는 배우 송용진. 두 사람을 나란히 놓고 보면 동질감보다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첫 만남
기자 두 분은 <헤드윅>으로 알게 되신 거죠? 그게 언제쯤이에요?
송한샘 아마 2004년 말 내지는 2005년 초였을 거예요.
송용진 아, 기억난다. 첫 미팅을 하러 연습실에 갔더니 사무실 안에서 색소폰 연주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어? 사무실에서 웬 색소폰? 그 연주의 주인공이 대표님이었죠.
기자 오, 색소폰이요? 아까 보니 대표님은 드럼도 치고, 기타도 칠 줄 아시던데 다양한 악기를 다루시나 봐요?
송한샘 제 문제가 이것저것 다루는 건 많은데 뭐 하나 제대로 연주하는 건 없다는 거예요. 손만 대고 마무리 못 짓는 이상한 성격이어서. (웃음)
송용진 저랑 좀 비슷하시네요. (웃음)
송한샘 제가 용진이를 처음 본 건 오디션 때예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와서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굉장히 신선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뮤지컬 배우 같았고 용진이는 뮤지션처럼 보였죠. 노래를 부르고 나서 이준 음악감독하고 ‘너 누구 알아? 누구랑 같이 연주해?’ 이렇게 둘이서만 아는 대화를 나누는데 진짜 뮤지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준 감독이 얘는 록 하는 친구라면서 꼭 쓰고 싶다고 했어요.
송용진 제가 왜 트레이닝복을 입고 갔냐면 <헤드윅>이 록뮤지컬이잖아요, 펑크록. 당시 펑크록 하는 친구들의 교복이 청바지에 아디다스 트레이닝 점퍼를 입는 거였거든요. 통기타를 치면서 부른 건 U2 노래였고, <헤드윅> 넘버로는 ‘Tear Me Down’을 불렀어요. 일주일 동안 밖에 안 나가고 영화 속 동작까지 연습해 갔는데, 떨려서 못 하겠더라고요. 에라, 나도 모르겠다. 그냥 평소에 클럽에서 공연하듯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런데 노래가 끝나니까 뒤에 앉아 있던 헤드헤즈들이 박수를 쳐주더라고요. 속으로 ‘어, 나 잘했나?’ 하는 생각을 했죠.
기자 송용진이 오디션 현장에서 떨려서 노래를 못 부른다니 상상이 안 돼요.
송용진 저는 오디션을 보면 100 퍼센트 떨어져요. 정말 많은 오디션을 봤지만 딱 두 작품 붙었어요. <록 햄릿>하고 <헤드윅>. 오디션 공포증이 있어서 진짜 떨어요. 농담 같죠? (책을 쥐고 떠는 시늉을 하면서) 이렇게 달달 떨어요. 이런 적도 있어요. 2003년에 <그리스> 초연을 하고 다음 해에 앙코르 공연을 할 때, 기존 배우들은 그대로 참여하고 추가로 배우를 더 뽑는다고 했거든요. 그때만 해도 제가 순진해서 오디션을 다시 봐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오디션을 보러 갔죠. 다들 왜 왔냐고 황당해 했어요. (웃음) 이왕 왔으니까 노래하고 가겠다고 노래를 부르려는데 떨려서 못 하겠는 거예요. 지난 1년 동안 매일 보던 사람들 앞에서, 지난 1년 내내 불렀던 노랜데! 저는 그 분위기를 못 견디겠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작품 만들잖아요. 오디션 보기 싫어서. (일동 웃음)
기자 그런데 두 분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어요?
송용진 훈남. 진짜 인상 깊었던 게, 대표님이 몇 개 국어를 하시더라고요.
송한샘 언어도 마찬가지로 이것 조금, 저것 조금 하는 수준이에요.
송용진 영어도 하고, 일어도 하고, 근데 전공은 또 중국어과야. 진짜 인텔리구나 싶었죠. 게다가 몸도 좋아.
송한샘 그래, 인터뷰는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에서 해야 해.
송용진 아니 진짜로. 저희가 괌에 놀러 간 적이 있어요. 놀러 가서 옷 벗은 모습을 보고 다들 놀랐잖아요. 배우보다 몸이 더 좋아. 아니, 도대체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야 싶었다니까요.
기자 괌이요?
송용진 <헤드윅> 초연이 큰 성공을 거둬서 제작사에서 보너스로 모든 배우와 스태프를 괌으로 여행을 보내줬어요. 그때 다른 팀들 파이팅 구호가 “괌, 괌, 파이팅!”이었대요. (일동 웃음) 우리도 <헤드윅>처럼 잘돼서 괌 가자고. 3박 4일 동안 바다에서 작품 이야기하고 밤에는 우리끼리 연주하면서 놀고…. 그때는, 그냥 행복했어요.
송한샘 행복한 시기였지.
송용진 진짜 행복했어요. 사무실 앞에 다 같이 모여 담배 피우면서 했던 얘기들이 기억나요. 이게 될까? 모든 게 다 물음표였어요. 젊은 사람들끼리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용기를 가지고 한 거였는데 우리의 예상과 달리 너무 잘된 거죠. 그 작품을 하는 내내 진짜 행복했어요. 그때의 기억은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거예요.
송한샘 제가 용진이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이유는 책임감이 있어서예요. 그건 자기가 꾸리고 있는 집단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이 친구가 뮤지컬을 열심히 해서 번 수입을 해적(송용진이 설립한 인디 레이블)에 다 쏟아 붓는 걸 보면 진짜 멋있어요. 해적은 본인이 지향하는 정신을 그대로 담은 집단이잖아요. 이걸 어느 날 즉흥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예전부터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중에 레이블을 차릴 거라고.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서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결국 해내는 것, 너무 멋있더라고요.
송용진 아우, 진짜 훈훈하네.
송한샘 한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밴디트>를 할 때 답답하니까 직접 곡을 쓰더라고요. 그렇게 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내가 괜한 짓을 한 거 아닌가,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일인데도 작품에 대한 열정과 자기가 하는 작품이 작품으로서 잘돼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생각은 다 접고 돌진할 수 있는 건 용기 있는 거죠. 용기 있는 배우예요. (스튜디오를 둘러보면서) 이 모든 게 다 용기의 산물이잖아요.
송용진 용기의 산물이자 고통의 산물이야. 아우, 고통스러워. (웃음)
송한샘 제 꿈 중의 하나가 이렇게 큰 규모는 아니어도 홈 스튜디오를 차려서 제 음반을 만드는 거예요. 음악을 잘하진 못해도 워낙 좋아하니까. 음악 잘하는 사람이 제일 부러워요. 그런 면에서 용진이는 제가 가지고 있지 못한 걸 가지고 있어서 같이 있으면 좋고 항상 에너지를 받아요. 진짜 긍정적이거든요. 정말 해적스러워요. (웃음)
<치어걸을 찾아서>로 다시 만나다
송용진 제가 대표님께 감사한 건 홍대에서 <치어걸을 찾아서(이하 <치어걸>)>를 공연할 때 유일하게 보러 와 주셨다는 거예요. 이 공연에 관심이 있을 법한 젊은 프로듀서, 기획사 직원, 기자들한테까지 다 연락했거든요. 아무도 안 왔어요, 아무도! <치어걸>이 50만 원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에요. 그때 애들하고 밥을 먹으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형이 지금은 돈이 없어서 2900원짜리 밥밖에 못 사주지만, 야, 혹시 아냐? 우리가 대학로에 가서 공연하고, 공연이 매진되고, 뮤지컬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될 수도 있어. 그럼 너희들은 레드 카펫을 밟는 거야. 내가 열심히 할 테니까 너네는 나만 믿고 한번 해봐. 내가 조만간 5천 원짜리 밥 먹게 해준다! (일동 웃음) 대표님이 그 꿈을 실현 시켜 주신 분이죠. 공연 보고 나서 전화를 하셨는데 별 말씀 안 하셨어요. “대학로로 갑시다.” 그 한마디 하셨어요.
송한샘 거기에 사연이 있어요. 저희 회사에서 송용진, 이영미 조인트 콘서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딕펑스가 오프닝 공연을 했는데, 이 친구들이 너무 잘하는 거예요. 그날 뒷풀이를 하면서 용진이한테 딕펑스 노래를 가지고 뮤지컬을 만들어도 좋겠다고 말했더니 이미 구상 중이라는 거죠. 그러고 나서 1년인가 후에 공연을 보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갔죠. 저는 저 혼자 그 공연을 본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프로듀서들이 봤으면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웃음)
송용진 만약에 다른 프로듀서와 했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표가 있어요. 꽤 파격적인 내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님은 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거든요. 그리고 아이디어를 많이 던져주셨어요. 내가 어느 지점에서 막혔을 때, 아이디어를 툭툭 던져주시는 거죠.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냐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돌려서 많은 정보를 주세요. 이거 한번 봐 이런 식으로. 그럼 제가 그걸 보고 영감을 얻어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게요.
송한샘 이 작품은 다른 사람이 어설프게 드라마터그를 하고, 연출을 하려고 하면 오히려 망가질 것 같더라고요. 색깔이나 방향이 워낙 확실한 작품이니까. 이건 송용진만이 할 수 있는 거고, 그래서 백 퍼센트 믿고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했어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송용진 제일 기뻤던 건 대학로 공연이 후반부로 갈수록 매진이 되고 잘되니까 관계자들이 보러 왔다는 점이에요. 공연이 끝나고 가면서 “이거 내가 먼저 봤어야 했는데” 그런 말씀들을 하시더라고요. 속으로는 고소했죠. 하하. 어쨌든 이 작품으로 대학로에서 조금이나마 요란을 떨고 끝나서 좋아요.
송한샘 이 친구는 언젠가 자기 말대로 진짜 영화감독이 될 거예요. 자기 꿈을 계속 착착 이뤄가고 있잖아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학습 효과를 체험하고 있는 셈인데, 그게 굉장히 중요하죠. 에너지가 계속 생기니까.
송용진 뭐, 지칠 때도 있지만 재미있어요. 떼돈을 준다 해도 이렇게 살라고 하면 못할 거예요. 하지만 좋으니까, 재미있으니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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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우리 지금 너무 훈훈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웃음) 서로에게 서운했던 적은 없으세요?
송한샘 용진이한테는 늘 플러스알파만 받았어요. 예를 들어 개런티 문제만 해도 그래요. 송 대표님이니까 그냥 할게요! 이런다고요. 이런 사람하고 작업하는데 내가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송용진 물론 저도 어느 회사하고 일하든 다 그런 건 아니에요. 내가 받는 수준이 있어서 그만큼은 꼭 받아야 한다고 말할 때도 있고, 개런티는 상관없으니까 열심히 하겠다고 할 때도 있어요. 왜냐면 작품을 하면서 행복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과정이 행복한 작품이 의외로 많지 않아요. 제작자나 배우, 스태프 중 누구 한 사람이 이기적으로 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거든요. 대표님하고는 대표님이 프로듀서로서, 제가 배우로서, 그 시작을 함께한 사이여서 서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고, 과정이 진짜 행복했어요.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치어걸>이 상업적으로 성공해서 대표님께 어떤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가 그렇게 크게 성공하진 못했어요. 미안한 거죠. 전 제가 제작도 하니까 제작자의 마음을 알잖아요. 무언가를 제작한다는 것에는 많은 책임과 고통이 따르거든요.
송한샘 <치어걸>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으면 훨씬 잘됐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고요. 갑자기 이 생각이 나네요. 제가 뭉클했던 건 더 뮤지컬 어워즈 때예요. 우리 작품이 노미네이트가 돼서 시상식에 가게 됐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시상식을 재미있게 만들겠다고 멤버 전원이 해적 복장을 하고 온 거예요. 스쿠터 타고 등장해서 극장 앞에서 라이브 연주도 하고 재미있게 놀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배우들은 그렇게 못해요. 자기의 작품을 진짜 사랑해야지만 할 수 있는 행동이죠. 그리고 결과 발표가 났을 때 상이 다른 팀에게 돌아가자 동생들은 순간적으로 실망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이 친구는 그런 기색 없이 동생들을 챙겼어요. 그런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이 친구 진짜 흔치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송용진 전 레드 카펫을 밟는 거 너무 민망해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게 우리는 B급 인디 뮤지컬이니까 우리 식대로 하고 가는 거였어요. 주최 측에 공연 의상을 입고 가겠다고 했더니 아이디어가 재미있다고 소극장 뮤지컬은 다 그렇게 진행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어, 그거 내 아이디어인데 왜 따라 하지? 그랬죠. (웃음) 사람인 이상 노미네이트가 되니까 상 욕심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거기까지 올라간 게 어디에요. 감사하죠.
송한샘 아, 이번에 <조로> 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조로>로 성공해서 <치어걸> 좀 다시 해달라고 그러더라. 어쨌든 우리 두 사람에게 비슷한 성향이 있다면, 저나 용진이나 남들이 다 하는 것도 하지만 기왕이면 남들이 안 하는 것도 좀 하자 주의예요. 그리고 남들이 안 하는 걸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자는 마인드도 있고. 그래서 저는 용진이가 구상 중인 차기작도 진짜 궁금해요. 용진이 꿈이 송용진이 연출한 이상한 뮤지컬 시리즈를 완결하는 거잖아요. 전 이 시리즈의 골수팬들이 생길 거라고 봐요.
송용진 언젠가는 <록키 호러 쇼> 같은 작품을 만드는 게 제 꿈인데, 그때도 대표님이 협력자로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시작을 함께했으니 끝도 함께해야죠. 생각해 보면 대표님도 뮤지컬을 진짜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돈이 되는 공연만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걸 하시잖아요. 뮤지컬계에 이런 작품도 있어야 되지 않나 하는 시도를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그래서 힘들어지실 때도 있어요. (일동 웃음) 마음이 참 아프죠. 하지만 우린 아직 젊고, 젊은 우리들이 무언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나라 뮤지컬계에 다양성이 생기는 거니까.
기자 그런데 용진 씨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일을 벌이는 걸 좋아했어요?
송용진 아뇨. 어릴 땐 그냥 음악만 했죠. 뮤지컬을 하면서 음악 외의 것들에 눈을 뜨게 됐어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작품이 <헤드윅>과 <록키 호러 쇼>였고요. 두 작품을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 같아요. 아, <록키 호러 쇼>를 공연하면서 리처드 오브라이언을 전화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제가 당신은 게이냐고 물었거든요. 그랬더니 뭐라고 답한 줄 아세요? 난 게이도 아니고, 바이섹슈얼도 아니고, 그것과는 또 다른 제3의 성이야. 칠십의 할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내가 아직도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느꼈죠. 만약에 두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도 대충 아무 작품이나 해서 돈이나 벌면서 살고 있을지도 몰라요.
송한샘 저나 용진이나 어떤 작품을 함으로써 무언가가 일어나고, 영향을 끼치고, 그로 인해서 누군가는 변화한다는 걸 알아요. 항상 그런 작품을 하고 싶은 거죠. 그게 아주 상업적인 작품이어도 좋고, 아주 컬트적인 작품이어도 좋아요. 내가 어떤 작품을 할 때는 스스로 당위성이 있어야 하고, 그 당위성을 다른 누군가가 공감해줄 때 작품의 의미가 생기는 거니까요. 그런 원칙이 깨지면 의미가 없는 거죠. 사실 그렇잖아요. 내가 부족하면 내 스스로 알고, 부족함이 조금 더 깊어지면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이 알고, 그게 좀 더 심해지면 관객이 알게 되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죠. 그리고 만약에 그런 날이 오면 서로 충고해주겠죠. 그래서 이런 교류가 중요한 것 같아요.
기자 대표님께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은 뭔가요?
송한샘 저는 <벽을 뚫는 남자>. 그 작품이 너무 좋아요.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 독특한 힘을 얻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거잖아요. 그런 정서가 좋아요. 음악도 좋고. 그리고 작년에 연강홀에서 공연했던 <레인맨>이 정말 좋았어요. 내가 이 작품을 왜 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그때 찾았어요. 몸이 무너지면서 소파 안으로 침잠해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억제가 안 되는 거예요. 펑펑 울면서 이 작품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한 작품에 대한 영감 때문은 아니에요. 우연이라면 우연이겠지만 제가 제 돈 내고 처음 샀던 카세트 테이프가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어요. 초등학교 때였는데 그때부터 카세트 테이프나 LP판 모으기 시작하고, 그때 들었던 음악들이 이런 일을 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그런 연장선상에서 대학교 때 재즈를 배우기도 했고, 음악적인 조우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결국은 이런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앞으로의 계획
송용진 올해는 <셜록홈즈>를 끝내 놓고도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요. 하반기에는 해적에서 음반도 나오고, 뉴욕에 공연 만들러 가는 것도 있어요.
송한샘 진짜 대단해.
기자 뉴욕에요?
송용진 뉴욕에 해외 뮤지션하고 교류해서 쇼케이스 공연을 만드는 공연 펀드가 있어요. 제가 거기에 참여하게 된 거죠. 모던 판소리라는 주제를 가지고 만드는 건데 배우로 참여할 수도 있고, 음악으로 참여할 수도 있고, 연출로 참여할 수도 있고,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협력 오퍼레이터로 참여할 것 같아요. 가을에는 영화도 찍을 예정이고요. 원래 작년 봄에 찍기로 한 거였는데 캐스팅이 안 돼서 촬영이 계속 미뤄졌거든요. 퀴어 영화인데 나의 상대가 캐스팅이 안 되고 있는 거예요! (일동 웃음) 감독님이 프리 작업을 시작하셨다고 하니 가을쯤에 찍지 않을까 싶어요.
송한샘 저는 <조로>가 우리 회사의 포지션을 조금 바꿔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우리 회사가 마이너 감성의 작품만 해왔던 건 아닌데 그렇게 포지셔닝이 돼 있어서 인식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좀 있어요. 그래야 투자도 더 잘 받을 테고요.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현재 새로운 시스템으로 창작뮤지컬을 한 편 준비하고 있어요. 저를 포함한 크리에이터 전원이 개런티를 안 받고 참여해요. 후에 상업화가 되는 단계에 서로 지분을 갖기로 하고 모인 거예요. 일종의 독립 뮤지컬인 거죠. 소재도 굉장히 비대중적이에요. 독립운동가 부부의 육아 일기를 뮤지컬로 만드는 거예요. 보통의 사람들이 가정을 지키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던 거였는데 알고 보니 그 분들이 독립지사였다는, 즉, 영웅이 사실은 보통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예요. 정말 예술적으로 자신 있을 때 내놓자는 게 우리들의 목표인데 기대가 돼요.
송용진 요즘에 이런 새로운 움직임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예술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프리 프러덕션부터 철저하게 준비해서 어느 정도 만들어졌을 때 상업화에 나서는 거요. 지금 제가 참여하고 있는 <셜록홈즈>도 프리 프러덕션 기간이 길었더라고요. 연출이 제작자인데, 이 작품을 하기 위해 몇 년 동안 학원을 하면서 돈을 벌었대요.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고 공연이 잘 안 되도 커버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하니까. 이런 움직임이 우리나라 뮤지컬계를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저도 그렇고 대표님도 그렇고 그 선봉에 설 거고요.
기자 뜻을 같이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의지가 될 것 같아요.
송용진 의지가 돼요. 대표님은 제게 어떤 공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제일 먼저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죠.
송한샘 찾아왔을 때 오케이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빨리 만들어야 될 텐데. (웃음)
송용진 <조로>가 잘될 거예요. 일단 캐스팅부터 말이 안 되잖아요. 100퍼센트 잘 될 거예요.
송한샘 참 해적 스튜디오 오픈한 거 널리 알려주세요. 적어도 대한민국 뮤지컬 사운드 트랙 녹음은 다 여기서 하시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5호 2011년 8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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