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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 <위대한 캣츠비 RE:BOOT> [No.147]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문화아이콘 2016-01-27 4,617

‘캣츠비’가  위대해지기 위해 해야 할 일들




‘이것은 순정이 아니다’      

기호를 단어로 읽어 웃음거리가 된 적이 종종 있다. 과외 선생 하던 시절 HOT를 ‘핫’이라고 불렀다가 수업 내내 복식호흡으로 이어진 녀석의 웃음을 견뎌야 했고, 차를 타고 가던 중에 VIPS라는 간판을 보고 ‘브이아이피들?’이라고 중얼거렸다가 뒷자리에 앉은 까마득한 후배의 놀림을 한 바가지 들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에쵸티’에는 핫한 아이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빕스’라는 이름에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브이아이피로 모시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잖나. 차용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단어는 발음의 조합이 다를 뿐 기존의 뜻에 온전히 의지하게 마련이다. 


<위대한 캣츠비>도 마찬가지다. 원작 웹툰의 작가 스스로 자기 작품은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했지만 이 작품이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가 ‘지독하게 아픈 순정’인 걸로 보자면 ‘캣츠비’라는 이름에는 ‘개츠비’의 이미지가 작가의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배어있다고 볼 수 있다. 어리석을 만큼 지고지순하고 이해하기 힘들 만큼 집요한 사랑의 이야기라는 패러다임이 애초에 부여되고 있는 거다. <셜록홈즈>의 경감 흉내를 내자면, ‘개츠비의 사랑과 캣츠비의 사랑은 같은 선상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둘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한다면 개츠비가 억울해할지도 모른다. 웹툰에서 작가는 이걸 순정이라고 썼겠지만 사실 치정으로 읽히는 대목이 적잖기 때문이다. 일방적이고 자의적이며 폭력적인 집중 몰입 감상을 남자의 순정이라고 부른다면 이 자리를 빌려 분명히 말해주고 싶다. 그거, 순정 아니다. 이 웹툰은 지독한 사랑에 대한 남성적 판타지에 가깝다. 이 작품의 여자 캐릭터들을 보면 그 혐의는 더 짙어진다. 모든 걸 희생하는 여자, 모든 걸 배신하는 여자.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 남자를 품어주는 여자. 자기 욕망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타자의 시선으로 철저히 대상화된 여성상을 집약해 놓은 셈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를 때리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걸로 알겠다’는 여자의 장난이나, ‘일주일만 더 쓰고 니 애인으로 넘겨주겠다’는 남자들의 뒷담화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이 그려내는 사랑의 풍경과 관념에는 문제가 많다. 



주인공을 고양이와 개로 설정한 것은 이런 맹점을 피해 가기 위한 나름대로의 전략이었는지도 모른다. 동물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 통념으로 끌어안기 힘든 이야기는 의인화라는 거리 두기로 이해될 수 있고, 이러한 거리 두기는 이야기 자체를 우화라는 틀로 감쌀 수 있기 때문이다. 웹툰이라는 형식이 담당한 몫도 크다. 지금처럼 웹툰이 많지 않았던 시절, 스크롤을 내릴수록 구체적으로 발견되는 장면의 서사는 형식 자체로 독자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었다. 이 작품의 대중적 인기는 서사의 치명적 약점에 대한 영리한 자의식과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식이 한데 어우러지는 지점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뮤지컬로 장르의 옷을 바꿔 입을 때도 같은 전략이 동원되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서사는 나름의 논리를 갖춰야 하고 형식은 한 발 앞서 나가야 하는 거다. 고양이와 개로 의인화했던 주인공들이 사람의 옷을 입는 순간 이야기가 갖게 될 태생적 무리수를 어떻게 현실의 논리에 맞게 바꿀 것인지, 이 진부하고 통속적인 이야기에 개성 있는 색채를 부여하기 위한 뮤지컬다운 형식은 무엇인지,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들이 줄을 잇는다. 핫한 아이돌 그룹이 된 에쵸티와 망하지 않고 여전히 고객을 모시고 있는 빕스처럼 뮤지컬 ‘캣츠비’도 작품의 표피와 그 의미를 일치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캣츠비’의 진짜 문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다지 성공적인 것 같진 않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이야기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전략까지 가기도 전에 첫발부터 삐끗댄다. 캣츠비와 하운두, 페르수의 사랑은, 창작진의 의도대로라면, 막장이라는 표피를 거쳐 순정이라는 의미까지 파고들어가야 하건만 정작 이들의 사랑이 이해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의 사랑이 막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줄거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일차적인 결함에 있다. 복선이 깔리고 상상이 더해져 반전으로 이어지는 원작의 구성은 아주 단순하게 요약되었지만 그 요약은 기본적인 줄거리를 설명하는 데에서도 미숙하다. 원작 선행 학습이 필요할 판이다.


줄거리의 요약에 그친 각색은 작품 안에서 적잖은 문제를 노출시킨다. 이 작품에서 요약되는 건 오로지 결과로서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중을 설득했던 원작의 디테일들은 사라진 채 결과만 남은 이야기는 그저 통속적인 전형을 재현할 뿐이니, 인물의 행동과 사건에서 설득력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보니 원작의 빈틈이 메워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단점이 있는 대로 부각되고 만다. 만남이든 이별이든 기다림이든 돌아옴이든 관계는 결여되어 있고 감정은 과장되어 있으며 사랑은 왜곡되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거 순정 아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야 할 일이다. 이야기의 소재나 극의 주제에 집중하기보다 먼저 창작 대본으로서의 기본 요소를 갖추고 있는지 점검하는 게 급선무다. 주제나 소재는 그다음의 문제다.  



이 작품을 곰곰 들여다보면 창작된 극이라는 이름을 붙일 아무런 조건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극을 이끄는 주인공도 명확치 않고(캣츠비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갈등의 원인도 분명치 않으며(가난 때문인지 치정 때문인지!), 사건의 진전에도 계기가 없고(페르수가 캣츠비를 다시 찾는 이유!), 구축되지 않은 반전은 생뚱맞을 뿐이다(하운두의 순정이라니!). 원작의 사건을 잇고 채우는 무대 위의 맥락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랑에 대한 통념을 부수고 싶다면 과정을 설득력 있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파격적인 결론의 공감은 과정의 설득력 위에서만 유효한 법이니까.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미리 주어진 전형의 틀 안에서 각자 정해진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가난한 애인은 싫고 떠나간 애인은 아쉽고 잘 해주는 사람은 고맙고 돌아오는 사람은 받아주고 등등.


물론 이런 설정은 멜로 장르의 공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 반복의 클리셰가 되지 않으려면 장르의 규칙 안에서 새롭게 엮어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내야만 한다. 상큼한 청춘의 사랑과는 거리가 먼, 구부러지고 질척대는 사랑의 풍경이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을 고민하고 찾아야 하는 거다. 하지만 지루할 만큼 아무런 상상력도 가미되지 않은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기란 어려운 법이다. 창작진은 이 작품을 통해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통념을 부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장르의 통념에 사로잡힌 게 누군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무대 위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가 기계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이 설정한 뮤지컬로서의 포인트는 아마도 음악이었던 듯싶다. 라이브 밴드의 연주로 거의 성스루에 가깝게 이어지는 음악은 록 뮤지컬의 스타일을 추구하는데, 이야기에 비하자면 음악의 완성도는 높다. 하지만 그 쓰임새가 적절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성스루 록 음악이라면 내적 행위의 격렬함이 담긴 극적 행동과 연결되어 사건을 진행시키는 언어로 작동해야 하건만, 이 작품에서 록 음악의 쓰임새는 격렬한 에너지라기보다는 내적 고백과 상념에 가득 찬 발라드의 그것(그 많은 노래를 가만히 서서 부르다니!)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통념을 부술 만큼 충격적이고 강렬한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해 록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선택한 것은 전략적으로 옳은 결정이었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틀에 박힌 이야기 위에서 음악이 평범해지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결론이다.  결과적으로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지독한 사랑 근처에도 못 가보고 끝난 셈이다. 캣츠비의 사랑이 왜 위대한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사랑이 원래 위대한 거라는 설명은 사절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7호 2015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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