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발견한 배우
팬덤 뮤지컬의 귀환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가장 의외의 캐스트는 홍우진이 아니었을까. 스무 편 남짓한 출연작 가운데 몇몇 작품을 뮤지컬로 채우고 있지만, 여전히 연극 배우라는 인상이 더 강한 그이니까. 올 하반기 연달아 두 편의 뮤지컬에 참여하며 본격 뮤지컬 활동에 시동을 건 홍우진은 요즘 목에 좋은 꿀을 항상 가지고 다니고, 목 상태 체크를 위해 이비인후과를 들락날락하고, 음악 레슨에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진정한 뮤지컬 세계에 입문하기 위해서.
“흘러가는 대로 살았던 8년과 의지대로 산 2년.” 배우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은 자신의 지난 10년에 대해 홍우진은 이렇게 한 줄로 정리했다. 10년 전 처음 무대에 선 이후 지금까지 한길을 고집해 온 그에게 의외로 배우는 인생의 선택 사항에 없었던 일이다. “하나를 뛰어나게 잘하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조금씩 잘하는 사람 있잖아요. 어렸을 때 제가 그랬어요. 처음으로 나 이거 제대로 해볼래, 했던 게 미술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갑자기 집이 기울면서 그럴 형편이 안 됐죠. 졸업하고 뭐 하지. 직업반 가서 미용 배울까. 앞날을 고민하는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다 고 3때 친구 따라 연기 학원을 갔어요.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 됐죠. 학원을 한 달 정도 다니고선 예대 연극과에 붙었거든요.”
그가 그렇게 우연히 들어간 곳이 한예종 연극원이다. 현재 공연계를 이끌고 있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연극원에서 꿈을 키우던 시절, 가히 연극원의 르네상스였다고 할 만한 시기에 그도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러니 그가 사회 첫 발을 무대에서 내딛게 된 건 당연한 결과. 홍우진은 자신의 진짜 여정이 시작된 때를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첫 작품은 학교 형 때문에 얼결에 하게 된 거라 사실 별 생각이 없었어요. 재밌는 거하면서 돈도 벌고 신 난다, 그런 느낌? 그런데 다음해 연극 <쉬어 매드니스>를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죠. 리딩 첫날 이성민 형님이 대사를 읽는데, 와. 처음하는 리딩인데도 어떻게 이렇게 생활 연기를 하지?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연기를 어떤 방향으로 해나가야 할지, 그 작품에서 형을 통해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그 영향 때문일까. 그는 무리하지 않는 성격일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자연스러운 인물을 보여주며, <모범생들>이나 <나쁜 자석>, <트루웨스트>와 같은 주목할 만한 작품에 출연해 ‘나만 알고 싶은 배우’에서 ‘모두 아는 배우’로 점점 바뀌어 갔다. “따져보면 저는 데뷔도 아는 형 덕분에 했고, 작품도 두세 개 빼곤 다 학교 선배나 동기들과의 인연으로 했어요. 저를 불러주는 사람이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별로 안 따져보고 했죠, 그냥. 우리끼리 재밌게 만들다 보면 뭐든 될 테니까.” ‘우연’과 ‘운명’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는 그의 배우 생활 얘기를 듣다 보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데뷔 이후 상업과 비상업의 경계를 줄타기하면서 입지를 다져온 홍우진은 관객들에게 눈에 띄는 작품을 하면서 도리어 슬럼프를 겪게 됐다고 했다. “관객들에게 인기가 생기는 건 좋지만, 한편으론 얼굴이 알려질수록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으니까 종종 소모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2년 전쯤 제가 예전부터 정말 하고 싶었던 <나와 할아버지>를 하게 되면서 새로운 기분을 느꼈어요. 그때 제 인생의 멘토인 민준호 연출 형이 제게 말하길, 배우들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지향하다 자연스러운 척만 하는 함정에 빠질 때가 있는데 제가 그런 상태였대요. 연기에 대한 생각이 다시 한 번 깨지는 순간이었죠.”
슬럼프에서 벗어난 홍우진은 그해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2013년 <아가사>로 뮤지컬 무대에 올라 주위를 놀라게 한 것. 우연한 기회에 뮤지컬 앙상블로 데뷔했지만, 뮤지컬과는 상관없는 길을 걸어온 지극히 연극적이었던 배우의 뮤지컬 출연 소식은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뮤지컬에 도전한 지 2년, 벌써 네번째 작품.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2인극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그는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작품보다 많은 뮤지컬 넘버를 소화해야 하지만, 관객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건 압도하는 가창력이 아닐 것이다. 홍우진에게는 그에게서만 바랄 수 있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진정한 뮤지컬 배우’를 희망하는 그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꿈꾸고 있을까. “글쎄요, 당장 다음 작품으로 뭘 할지도 모르는데. 하하.” 멋쩍게 웃던 그가 잠시 사이를 두고 말한다. “며칠 전에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조연출한테 나중에 네가 연출하면 내가 출연해줄게, 그랬더니 자긴 십 년 후에 <맨 오브 라만차>를 할 거라고 준비하래요. 제가 라만차를 하려면, 차라리 인기발로 캐스팅될 수 있게 스타가 되려고 노력하는 게 더 가능성 있으려나.(웃음)” 그가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로 무대에 오를 날이 올지, 그가 뮤지컬을 발견한 것처럼 뮤지컬이 그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날이 빠르게 올지, 우린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언제 어디가 됐든 홍우진은 자신이 서야할 자리에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전진해 가면서. 그는 그런 믿음을 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7호 2015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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