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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INTERVIEW] <천변살롱> 황석정 [No.147]

글 |송준호 사진 |김수홍 2016-01-06 4,655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이끄는 데로


예능과 드라마를 오가며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황석정이 <천변살롱>의 모단으로 오랜만에 무대에 돌아온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모습이 강점이었던 그녀가 부르는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는 어떤 느낌일까. 평생을 무뚝뚝하게 살아서 이런 역이 처음이라는 그녀는 자신조차도 어떤 모단이 나올지 기대된다고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다.




처음 만나는 캐릭터, 모단




작년 <혜경궁 홍씨> 이후 거의 1년 만의 무대 복귀작이네요. 왜 이 작품을 선택하셨는지.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전에 제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쓴 <몬스터>라는 카바레 연극을 했는데, 그때 주인공인 카바레 가수 역도 맡았거든요. 노래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천변살롱>과 비슷한 형식이었죠. <천변살롱>은 1930년대가 배경인데 일제 치하에서 문화 예술이 확 발전했던 이유가 궁금했어요. 노래들도 정말 좋고요. 또 하나는 제가 무대에서 노래를 길게 해본 적이 없어서 도전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동안 드라마 촬영으로 힘들어서 좀 쉴까도 생각했지만, 마침 제가 좋아하는 남자가 ‘힘들어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버겁고 두렵지만 용기를 냈죠.


공연 내내 극을 이끌어야 하는 역인데, 기대와 걱정 중 어느 쪽이 더 커요?
하림 씨가 있으니 혼자 공연을 이끄는 건 아니지만, 걱정이 훨씬 많아요. 물론 염려되는 부분은 연습을 통해서 극복하면 되는데, 이 연습은 정극과 너무 달라서 점점 걱정이 돼요. 대개 연출이 설정을 해주고 협의하면 되는데, 이번엔 세상에 버려진 고아 같은 느낌이에요. 혼자 책임지는 게 너무 많으니까. 그래도 끝까지 해내야죠.


어떤 부분이 제일 어려우세요?
배우는 누군가가 봐주고 조율을 해줘야 하는데 이번엔 그게 없어서 두려워요. 나를 스스로 연출할 줄 알아야 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런 성격의 역할을 제가 해본 적이 없어요. 모단이는 ‘모던걸’이 되기를 열망하는 소녀적인 감성이 강한데, 저는 그냥 ‘바야바(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빅풋)’ 같고 털털하잖아요. (웃음) 저와 너무 달라서 흥미로운 면도 있지만, 어렵죠. 차라리 트랜스젠더 역 같은 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마디로 모단은 어떤 여자인가요?
굉장히 낙천적이고 매 순간을 즐거워해요. 언제나 사랑을 기다리고 긍정적이죠. 그런 게 우리나라 여자들의 모습인 것 같아요. 전쟁 같은 힘든 시기를 겪고, 남자에 배신당하고, 그래도 항상 사랑을 꿈꾸고, 끊임없이 살아가고 또 다음을 희망하죠. 그런 것들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져요. ‘그 새끼 죽여버려!’ 이런 게 없어서 좋아요. 모단은 성격이 꼬이거나 남을 해치려는 사람이 아니라서 좋아요. 전에 살인자 역을 한 적이 있는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밤새 악몽을 꾸는 거예요. 내가 받아들여야 그 역을 할 수가 있는데 그러기가 너무 힘들었던 거죠. 물론 모단이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요, 열일곱 살이에요’ 이 부분을 부를 때마다 속으로 ‘아~ 진짜!’ 하는 내면의 소리가 버럭 나오긴 하지만. (웃음)


아까 보니까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등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책들이 있던데 그 밖에도 인물 해석에 참고하는 게 있나요?
참고라기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바람을 그리는 거죠. 현대 여성이 되려고 했던, 자유를 갈망했던 그 여성들의 에너지, 그리고 절망을 가슴에 담아서요. 그때는 그들의 자유와 희망이 다 꺾일 수밖에 없는 시대였잖아요. 여전히 봉건적인 남성 중심의 시각과 편견이 모던걸이 되고자 했던 여성들을 지옥으로 내몬 것 같아서 정말 가슴이 아파요. 그래서 그 시대 여성의 심정을 담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들을 모으고 있는데 공연 개막쯤이면 뭔가 완성이 될 것 같아요.


초연 이후 오랫동안 박준면이 모단을 연기했는데, 이번에 새로운 모단이 탄생하는 거잖아요. 황석정의 모단은 어떤 특징을 갖게 될까요?
준면이랑 굉장히 친한데 제가 이걸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준면인 워낙 기가 막히게 잘했거든요. 공연 전체를 그렇게 잘 끌고 가는 건 어려워요. 준면이는 사람들을 막 북돋워 주는 힘이 있어요. 사람들을 확 일으켜 세워서 같이 가자고 하는 거죠. 저는 그런 건 없어요. 대신 다들 피식거리면서 즐기게 하는 힘은 있는 것 같아요. 그건 배우로서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이기도 해요. 무대에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줘야 하는 배우의 입장에 서면 일단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 나만의 감정과 눈빛과 행동들이 나오면서 ‘황모단’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랑 표현을 잘 안 하고 살아서 지금도 그걸 끊임없이 계발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뭐가 나올지 저 자신도 기대가 돼요.


‘천변살롱’은 1930년대 예술인들의 아지트라는 설정이잖아요. 실제로 동료들과 모여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지트를 마련했다고 들었어요.
개인 작업실을 만들었는데 정작 제가 너무 바빠서 못 가고 있어요.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카페처럼 바도 만들어놨어요. 음악에 맞춰서 콜라텍처럼 조명도 돌아가고요. (웃음) 무엇보다 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쓰고 싶은 사람 누구나에게 개방된 곳이에요. 지금쯤 한 번 모여야 하는데 제 스케줄 때문에 못 모이고 있네요. 연말이 되기 전에 감사한 분들을 초청해 표현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부딪치고 극복하며 사는 인생, 그리고 연기




데뷔 이후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 그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저희 가게(오빠와 운영하는 ‘황씨네’)도 못 갈 정도예요. 예전엔 쉬러 갔는데 이제는 그곳을 찾아주신 분들과 사진 찍고 같이 한잔도 해야 해서 봉사하러 가는 기분도 들어요. 원래 개인 생활은 허름하고 소박한 걸 좋아하는데 이제는 편하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제가 그분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거잖아요. 제가 나쁜 인상을 주면 그분은 종일 기분이 언짢겠죠. 저는 이제 평소에도 사람들을 즐겁게 해야 하는 사람이 된 거고, 그것에 익숙해지려고 해요. 왜냐하면 저도 유명한 사람을 만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거든요. 그게 기쁨인 거죠. 연기 외에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됐다는 거니까요.


바쁠수록 배우가 아닌 ‘연예인 황석정’으로 소비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을 것 같아요.
방송이란 게 특징을 잡아내서 소비하는 구조니까 재미를 위해서 그런 식으로 소개가 되고 원치 않는 질문을 계속 받는 게 처음에는 불편했어요. 지금은 그것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거니까 안 좋은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게 제 인생의 목표니까 그런 삶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제가 연예인이라는 생각은 솔직히 하나도 없어요. 그냥 내 역할을 잘하면 그날 잠이 잘 오는 사람이고, 그걸 잘 해내기 위해서 전날 불안해서 잠을 못 자는 사람일 뿐이에요.


왜 사람들이 ‘황석정’의 모습에 이토록 호기심을 느낄까요.
이렇게까지 좋아하실 줄 몰랐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더니 실제 제 모습과 TV에 비치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인 듯해요. 이중적이지 않고 평소 모습 그대로 나오니까 편안하신 거죠. 이 나이에 시집도 안 가고 애도 없이 사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할 테고요.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이건 못하고 이건 해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있는데, 저는 원래 그런 게 없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여자든 남자든 획일화된 편견에서 자유로워져 자신만의 삶을 시작하는 데 자극제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가치관은 언제부터 어떻게 생긴 건가요?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난 누굴까? 죽음은 뭘까? 왜 죽음이 있는 걸까? 삶은 왜 나한테 주어진 걸까? 이런 고민은 어릴 때 한 번쯤은 다 하잖아요. 그런데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다 잊혀요. 그러다 죽을 때가 되면 다시 그 생각이 떠오르는 거죠. 저는 이 명제들이 삶이 주어진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 명제들의 답을 찾아 나서는 여행이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해보며 매일 새로운 걸 찾으며 사는 습관을 갖게 된 것 같아요.


피리를 전공하다 연기로 업을 바꾼 것도 결국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거였네요.
저는 원래 약간 독단적이고 외곬 기질이 있어서 관계 맺음을 잘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연극이라는 공동 작업을 하면서 그 기회가 훨씬 많아졌어요. 사람을 알아가고 서로 부딪치니까 나 자신을 알 수 있는 기회들도 많이 생겼죠. 또 연기를 하면 캐릭터를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게 되잖아요. 그런 게 저랑 잘 맞아 천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물론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는 내가 정말 뭘 원하는지 고민하는 힘든 시간이 있었어요. 그런 고민을 따라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앞으로도 다른 게 나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죠.





그 이후로도 긴 무명 기간을 거쳤는데요. 한국에서 연극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잖아요. 그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한 힘은 뭘까요.

나는 왜 이렇게 안 될까? 여기가 내 한계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이겨낼 것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잖아요. 저는 후자를 택했죠. 물론 그 결정 이후엔 엄청나게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면 발전이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되든 안 되든 싸우는 쪽을 택했던 것 같아요. 어차피 사람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걸 넘어서는 데는 1~2년으로 안 되거든요. 그 현실을 받아들인 거죠. 그렇게 많은 노력과 끈기를 통해서 자신을 넓혀가는 과정은 너무 고통스럽지만, 그런 습관에서 멀어지면 ‘꼰대’가 되는 거거든요. 저는 그렇게 되기 싫어서 어릴 때부터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하나하나의 선택들, 살아온 인생 자체가 투쟁이나 수행 같아요.
어릴 때는 정말 모든 게 투쟁이었고, 지금도 저 자신과 싸우고 있어요. 사람은 스스로를 성찰하고 그 본성을 밝히는 노력을 평생 해야 하는 듯해요. 저도 40대 중반이라는 이 중요한 시기에 연예인이든 뭐든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굉장히 고민하고 있어요.


연극계에 워낙 어려운 분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견뎌서 성공한 케이스로서 후배들에게 하나의 귀감이 될 수도 있겠네요.
일단 전 아직 성공하지 않았어요. ‘넌 금방 뜰 거다’라는 말을 20년 동안 들었어요. 그런데 계속 안 떠서 누굴 만날 때마다 ‘너 왜 안 뜨니? 어떻게 하니?’ 이런 얘기를 계속 듣기도 했죠. 사람마다 시기라는 게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좀 늦게 이름을 알렸지만 그 많은 힘든 일을 겪지 않았으면 지금 이렇게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을 때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게 맞는 시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져서 오히려 감사해요. 후배들 만나면 그런 얘기를 꼭 해줘요. 사람마다 생긴 게 다르듯 인정받는 시기도 다르다고. 또 자기만 시련을 겪는 것도 아니에요. 다들 나름대로 아픔이 있거든요. 그런 시련은 성장하라고 생기는 일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 비해 고통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공부를 하는 거죠. 그래서 시련은 아주 큰 스승이기도 해요.


그런 시련들을 극복해서인지 단단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렇게 단단하지는 않아요. (웃음) 그저 아픈 건 아프다고 하고, 못났으면 못났다고 할 뿐이에요. 그게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란 걸 살면서 깨달았어요. 그러고 나니까 남한테 어떻게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건 아무 가치도 없더라고요.


아까 너무 바빠서 아지트도 못 간다고 했는데, 방금 말처럼 자기 삶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바쁘기만 한 요즘의 삶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겠네요.
바빠서 사람을 못 만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서 바쁜 게 이 직업이잖아요. 그러니까 요즘은 하루하루가 무척 흥미로워요.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일을 해내야 하니까. 다만 쉬지 못해서 지친 건 있죠. 하지만 일을 통해서 회복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일이 있는 게 좋아요. 때가 되면 쉴 날이 오겠죠. (웃음)


이런 급변한 상황에 따라 꿈도 바뀌었을 것 같아요. 지금 황석정의 꿈은 무엇인가요.
모든 걸 관통하는 꿈은 하나뿐이에요. 내 역할을 잘 해내자! 배우는 그걸 통해서 사람들에게 기쁨과 사랑을 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이 일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 깊게 가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역할을 잘 해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데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그 역할을 잘 해냄으로써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는 그 일 자체가 중요해요. 그렇게 사람을 더 깊고 넓게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런 에너지가 제가 하는 배역에 더 잘 배어들 테니까요. 그게 저의 새로운 관심사에요. 나를 더 단련시키고 매일 반성해서 더 크게 사랑을 나누는 배우이자 사람이 되는 게 목표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7호 2015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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