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고 진지한 젊은 배우 김무열과 강렬한 생명력과 끼의 화신 같은 여배우 정선아는 자신들의 기질과 성향을 거울에 비추듯 반전시켜서 옛 뉴욕의 밤거리에 선다. 믿지 못할 도박사 스카이의 불가사의한 매력을 표현해야 하는 바른 생활 배우 김무열은 ‘여자 무릎을 베고 눕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며 쑥스러워 했고, 죄 많은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성심을 다하는 정숙한 선교사 사라 역의 정선아는 거리낌 없이 시원시원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아직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동료이자 청춘 남녀인 두 사람이 한 뼘쯤 가까워졌을 때, 초여름 해변의 가볍고 상쾌한 풍경이 자연스러워졌다.
당신이 오래 기억하게 될, 멋진 남자 김무열
<광화문 연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차기작은 <아가씨와 건달들>이다. 두 작품 모두 복고적인 정서를 갖고 있는데, 작품 선택의 이유가 궁금하다.
<아가씨와 건달들>은 남경주 선배님이 나온 공연 실황을 TV에서 방송해줄 때 처음 봤는데 정말 넋을 잃고 깔깔 웃으면서 봤던 기억이 있다. 나는 TV 앞에 앉아 있는데, 저 배우들이 TV를 넘어와서 나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재미있었다. 클래식한 작품이라서 지금 관객들에게 예전만큼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조금 걱정스런 맘도 있었는데 <광화문 연가> 때 이지나 선생님께서 작품을 새롭게 만드는 데 정말 뛰어난 분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에 이번에도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지나 선생님과 한 번 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믿음도 있었고, LG아트센터라는 극장에 서보고 싶은 마음도…(웃음) 옛날 남자들처럼 멋있는 정장을 입고 폼도 한번 잡아보고 싶었다.
영화에서는 멋있는 옛날 미국 남자, 말론 브란도가 스카이를 연기했다. 그의 스카이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나.
말론 브란도는 진짜 멋있다. 극 중에서 그 사람은 사실 어떻게 보면 양아치처럼 건들거리기도 하고, 싸게 보일 수 있는 행동도 하는데, 그래도 어쨌든 멋있더라. 어쩌면 뭘 어떻게 해도 그렇게 멋있을 수 있는지. 그걸 찾아내야 한다. 아마 그게 스카이라는 캐릭터겠지.
스카이는 클래식 뮤지컬에서 종종 보게 되는 자유로우면서도 멋진 남자 주인공의 전형 같으면서도 연기하기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역인 듯하다.
뭘 해도 멋있다고는 말했지만 그게 또 무조건 멋있기만 한 역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 부분이 스카이라는 역의 인간적인 매력이고 재미있는 점이다. 이런 면과 저런 면이 다 있다는 게 참 좋다. 사실 기존에 했던 역과 같아 보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쓰릴 미>의 리처드처럼 정장 쫙 빼입고 나와서 무게 잡고 거들먹거리기도 하니까.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일단 잘나가는 남자고, 똑똑해 보였으면 좋겠다. 그 똑똑하다는 의미는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게 아니라, 타고난 감이 좋고 많은 일을 경험한 후에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지혜를 말한다. 스카이에게는 차가움보다는 여유로운 완벽함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한마디로 멋진 남자인데 그런 사람이 사라라는 여자를 만나서 망가지고 무너지는 거지.(웃음) 오랜만에 코믹도 들어가고 로맨스도 있어서 기대가 크다.
<아가씨와 건달들>은 꽤 오래 국내에서 공연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렴풋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희미한 이미지만 갖고 있는 관객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나.
중간에 사라와 스카이가 함께 부르는 발라드 곡은 작품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들어보면 ‘아, 그 노래!’ 하고 알더라. <아가씨와 건달들>은 그런 작품인 것 같다. 대학에 다닐 때 밀양연극제에서 베니 역으로 이 작품을 공연한 적도 있다. 그때도 물론 스카이 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후에 교내에서 연기 실습을 할 때 스카이 역으로 이 작품의 한 장면을 한 적도 있다. 그때는 뭘 모를 때였으니까 무조건 멋있게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만 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 더 시야가 넓어졌고, 그래서 어딘가에 있을 수 있는 남자, 완벽한 줄 알았지만 사랑 때문에 흔들리고 변화하게 되는 남자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역시 살아봐야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알타보이즈>, <김종욱 찾기>, <삼총사> 같은 밝은 작품도 했지만 김무열의 이름을 더 선명하게 각인시키는 건 무겁고 진한 작품들이다. 그렇지만 코믹한 작품에서 얻는 또 다른 성취가 있는지?
극적으로 희화화하거나 과장되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배우가 아주 작은 디테일로 극 중 상황에 의미를 더하고 새로운 감정을 이끌어내서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이 참 재밌다. 어려운 작업이지만 그런 것들을 살리는 게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하나다. 진하고 격정적인 작품을 많이 했는데, 그런 작품을 하면 솔직히 객석에서 느끼는 감성만큼 표현해야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내 안에 감정을 담는데, 그걸 무대에서 쏟아낼 수도 없다. 관객 앞에서는 절제를 해야 제대로 표현을 할 수 있으니까, 그 해소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많이 힘이 드는데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정말 좋다. 전에 없던 다른 뭔가를 하게 되었고, 그 부분을 제일 많이 생각하고 있다. 아무리 뜯어고쳐도 이걸 지금 현재의 시대로 끌어올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정하고 있지만, 어쨌든 사람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이야기인 이 작품을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한 관객들이 폭넓게 공감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열심히 찾아가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5호 2011년 8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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