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오페라극장이 남미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콜론극장 Teatro Colon
최대 규모의 공연장
한국은 가을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계절이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봄맞이가 한창이다. 백화점은 화사한 봄옷으로 쇼윈도가 꾸며졌고 거리의 사람들 옷차림은 한결 가볍고 경쾌하다. 이곳은 계절뿐 아니라 낮과 밤이 한국과 정반대다. 유럽이나 북미를 여행할 때 복잡한 시차 계산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오히려 쉽다. 정확히 12시간의 시차가 나기 때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20,000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현재는 어떤 항공사도 직항 노선이 없다. 왕래하는 이들이 적어서가 아니다. 보잉 777이나 에어버스 380 같은 대형 기종도 한 번의 주유로 운행할 수 있는 거리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 오기 위해서는 북미를 경유하든지 유럽을 경유하든지 한차례 이상 환승을 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달 달라스를 경유하는 비행 편을 이용했는데, 비행시간만 자그마치 25시간, 중간에 환승 대기 시간까지 포함하면 30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왕복 시간만 나흘이 소요된 셈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빈 슈타츠오퍼, 밀라노 라스칼라에 버금가는 최대 규모의 오페라극장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다. 객석 수 2,500석(입석을 포함하면 최대 3,000명 수용 가능)의 세계 최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콜론극장이다. 그러고 보니 극장이 있는 7월9일대로 역시 폭 140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큰 길이기도 하다. 간혹 최대 규모의 건축물들이 우리의 예상과 다른 나라에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대다수 사회주의 국가의 건축물일 경우가 많다.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고자 허세를 부린 독재 권력자가 건축주인 셈이기 때문이다. 콜론극장은 과거의 영광이 남아 있는 경우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세계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 만큼 부국이었다.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콜론극장은 세계 오페라 무대의 중심에 우뚝 섰다. 그러나 국가 부도 사태에 이르렀을 만큼 최근의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은 좋지 않다.
1889년 짓기 시작하여 완공까지 19년이 걸리는 동안 이탈리아 건축가 프란체스코 탐부리니와 비토리오 메아노, 그리고 벨기에인 쥘 도르말이 바통을 이어가며 설계했다. 1908년 전형적인 이탈리안-프랑스 르네상스 스타일의 콜론극장은 오페라 <아이다>를 개막작으로 그 화려한 문을 열었다.
이번 여행 중 콜론극장에서 만난 오페라는 쥬세페 베르디의 그랑오페라 <돈 카를로>였다. 프랑스의 공주 엘리자베트는 스페인의 왕자 돈 카를로의 약혼녀였으나 열네 살 때 그녀가 실제로 결혼했던 것은 약혼자의 아버지, 시아버지가 될 뻔했던 펠리페 2세였다. 왕세자가 약혼녀를 아버지에게 빼앗겼다는 그 비극적인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쓰리게 했고, 이 역사를 바탕으로 픽션을 가미한 많은 소설, 희곡, 영화가 탄생했다. 막장 이야기는 오페라의 소재로도 제격이었다. 역사 속에서 펠리페 2세는 무려 네 번 결혼한다. 첫 아내는 포르투갈의 공주 마리아, 바로 돈 카를로의 생모다. 이후 영국의 메리 1세 그리고 프랑스의 공주 엘리자베트와 결혼하고 끝으로 합스부르크가의 안나까지 맞아들인다. 정치적 이유로 유럽 여러 왕가와 정략적인 결혼을 한 것이다, 왕 노릇 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처음 콜론극장을 방문해서 만난 오페라 역시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였다. 유독 베르디의 오페라가 많이 공연된다. 어쩌면 이는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겠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이태리 이민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도시이기에 영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에는 경제적인 여파로 예전같이 활발히 시즌별로 작품들이 올라가지는 못하고 있다.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는 이태리 남부의 몇 오페라극장처럼 분기별로 한두 작품을 올리는 상황이어서 콜론극장에서 오페라를 보려면 반드시 날짜를 맞추어 가야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화 여행
부에노스아이레스 하면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고픈 곳이 있는데, 흔히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 일컫는 엘 아테네오(El Ateneo)이다. 과거 오페라하우스였던 공간을 서점으로 리노베이션 해서 공간이 아주 이색적이고 매력적이다. 객석은 책장과 고객의 이동 동선으로 무대는 카페로 활용하고 있어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꼭 한 번씩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다운타운인 코리엔테스(Av. Corientes)를 지나다보면 한 집 건너 서점이 있어 놀라게 되는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같은 소설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저력은 이런 문화적인 힘에 있지 않을까.
필자는 새로운 도시를 방문하게 되면 공식처럼 찾는 곳이 오페라극장과 더불어 콘서트홀이다. 도시를 대표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필하모닉은 콜론극장에 상주해 있지만 아르헨티나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2년 전 리노베이션 한 키르츠네르 문화센터(Centro Cultural Kirchner)의 오케스트라 전용 홀인 발레나 아줄(La Ballenea Azul, 직역 하면 푸른 고래라는 뜻)에 상주해 있다. 마침 일정 중 아르헨티나 북부 살타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있어서 이 홀을 방문할 수 있었는데, 오래된 건물의 로비를 리노베이션 해서 만든 공연장이 이색적이었다.
이 도시를 이야기하면서 탱고 이야기를 빠트릴 수 없다. 혹자는 탱고가 이웃 우루과이에서 태어났다는 사람도 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보카 지구에서 이 매력적인 춤이 잉태되었다고 하는 게 정설이다. 과거 부두였던 라 보카에선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과 선원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춤을 추기 시작한 데서 지금의 탱고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다. 또 유곽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추는 춤이 기원이라는 말도 있기에 실제 처음은 남남 커플이 추는 춤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땅게로(남자)의 까베세오를 받아 땅게라(여자)가 함께 추는 춤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곳곳에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탱고 레슨을 하는 곳이 많지만, 전문적으로 동호인들이 모이는 밀롱가에 가면 현지인들의 탱고 문화를 직접 접해볼 수도 있다. 팔레르모 지구의 라비루타(La Viruta)와 살롱 칸닌(Salon Canning), 첸트로에 위치한 컨피테리아 이데알(Confiteria Ideal), 그리고 코리엔테스 거리에 위치한 엘베소(El Beso)가 현지 땅게로스들이 찾는 유명 클럽들이다.
만약 탱고를 추지 못하더라도 한 번쯤 찾을 기회가 있다면 멋진 탱고 밴드의 라이브 음악과 열기 넘치는 밀롱가를 경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탱고 전문 댄서의 공연을 보고 싶다면 개인적으로는 푸에르토 마데로 지구에 위치한 호텔 파에나(Faena)의 로호 탱고 쇼(Rojo Tango Show)를 추천한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이 디자인한 호텔 파에나는 벨에포크 시대의 퇴폐미를 컨셉으로 만든 세계적인 호텔이다.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볼거리가 있는데 매일 저녁 최고의 탱고 쇼가 열리며, 한때 뉴욕에서 명성을 날렸던 끌라우디오 비야그라(Claudio Villagra)가 무대에 오른다. 그는 십여 년 전 <포에버 탱고>로 내한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6호 2015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