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CULTURE IN MUSICAL]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낳은 팬덤 [No.146]

글 | 안세영 2015-12-02 5,433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위대한 영화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1936년 소설로 시작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열풍은 1939년 비비안 리와 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영화를 기폭제로 세계로 퍼져 나갔다. 특히 개척 정신을 중시하는 미국인에게 남북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강인함은 남다른 인상을 남겼다. 지금까지도 미국 내 가장 인기 있는 책·영화 설문 조사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며 열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위대한 작품만큼이나 특별한 그 팬들의 문화를 살펴보자.  




관련 물품 수집하기


좋아하는 작품과 관련된 무언가를 손에 넣고 싶다는 것은 팬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아닐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관련 경매품은 등장만 하면 기록적인 낙찰가를 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 4월 캘리포니아 비벌리 힐스에서 열린 경매에서는 비비안 리가 입은 스칼렛 오하라의 드레스가 13만 7천 달러(약 1억 5천만 원)라는 고가에 낙찰되었다. 같은 경매에서 레트 버틀러의 정장은 5만 5천 달러, 스칼렛의 밀짚모자는 5만 2천 5백 달러, 스칼렛과 멜라니가 쓴 검은색 보닛은 3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과거에는 비비안 리가 애틀랜타 화재 장면에서 입은 드레스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스칼렛’이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한 여성 수집가에게 9만 5백 달러(약 2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경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의상만이 아니다. 영화 프로듀서 데이비드 셀즈닉이 받은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트로피의 경우, 1999년 154만 2천5백 달러(약 17억 5천만 원)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낙찰됐다. 이때 트로피를 낙찰받은 인물은 팝가수 마이클 잭슨. 그는 아카데미 영화상 기념품 공매에서 전화와 대리인을 통해 이 트로피를 예상가보다 다섯 배 높은 가격에 낙찰받아 종전 최고가를 경신했다. 또한 클라크 게이블이 사용한 영화 대본은 1996년 경매에서 24만 4천 달러(약 3억 원)에 낙찰되어, 2005년 말론 브란도가 사용한 영화 <대부> 대본이 31만 2천8백 달러에 낙찰되기 전까지 최고가를 기록했다. 2014년 8월에는 텍사스 달라스에서 또 다른 결말의 영화 대본이 경매에 입찰되었다. 입찰 시초가는 5천 달러(약 5백만 원). 실제 영화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라는 유명한 대사로 끝나지만, 이 대본은 스칼렛이 떠나는 레트를 향해 “레트! 레트! 당신은 돌아올 거야. 돌아올 거야. 그러리란 거 알아(Rhett! Rhett! You'll come back. You'll come back. I know you will)”라고 소리치며 끝난다.



대표적인 수집가 
제임스 텀블린(James Tumblin)

13만 7천 달러에 판매된 비비안 리의 드레스는 개인 수집가 제임스 텀블린이 소장해 온 의상이다. 
제임스 텀블린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컬렉션 소유자로,  총 30만 점 이상의 관련 물품을 보유하고 있다. 전직 유니버설스튜디오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였던 그는 1960년대 초 어느 날,  바닥에 놓인 한 벌의 드레스를 발견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늘 다른 이의 물건을 소중히 하라고 가르치셨죠. 그래서 전 그 옷을 집어 들었어요.  그랬더니 누군가 ‘버릴 것을 굳이 주을 필요없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그는 곧 옷에 달린 ‘셀즈닉 인터내셔널 픽셔스’라는 라벨과 ‘스칼렛’이라는 글씨를 발견했고,  단돈 20달러에  드레스를 구매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수집을 시작해 비비안 리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 아카데미 편집상 트로피, 아카데미 촬영상 트로피,  흑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해티 맥다니엘(유모 역)의  대본과 모자 등을 소유하고 있다. 



애틀랜타 여행하기


애틀랜타를 찾은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바로 “타라는 어디 있나요?”라고 한다. 스칼렛이 사랑한 땅 타라는 물론 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이다. 하지만 작품의 무대가 된 애틀랜타를 방문하는 것은 팬들에게 일종의 성지 순례나 마찬가지다. 그런 팬들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도 심심치 않게 마련돼 있다. 다음은 투어 프로그램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명소들이다. 

① 마가렛 미첼 하우스(Margaret Mitchell House): 작가 마가렛 미첼의 생가. 세계 각국에서 발간된 책, 영화 포스터, 작가의 삶과 영화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 등을 전시한다.
② 애틀랜타-펄튼 센트럴 라이브러리(Atlanta-Fulton Central Library): 마가렛 미첼의 아버지가 공동 설립한 도서관. 작가의 타자기와 소설  집필 시 참고한 책 등을 전시한다.
③ 오클랜드 묘지(Oakland Cemetery): 마가렛 미첼이 묻힌 곳. 남북전쟁 때 사망한 수많은 병사도 이곳에 묻혔다. 
④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박물관(Marietta Gone With The Wind Museum): 영화 홍보자료, 영화 속 스칼렛의 허니문 가운, 오너 먼슨(벨 와틀링 역)의 대본 등을 전시한다.
⑤ 로드 투 타라 뮤지엄(Road to Tara Museum): 존즈버러 기차역에 세워진 박물관. 영화에서 유모가 스칼렛에게 입혀준 판탈레츠 등을 전시한다. 
⑥ 조지안 테라스 호텔(Georgian Terrace Hotel): 1939년 애틀랜타에서 영화 프리미어 행사가 열렸을 때 비비안 리, 레트 버틀러,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멜라니 해밀튼 역)가 묵었던 호텔. 1935년 마가렛 미첼이 편집자에게 소설 초고를 넘겼던 곳이기도 하다. 
⑦ 애틀랜타 사이클로라마(Atlanta Cyclorama): 애틀랜타 전투를 그린 360도 원형 파노라마. 프리미어 행사 당시 이곳을 방문한 클라크 게이블은 ‘이 그림이 더 장엄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포함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그림 앞에 설치된 병사 모형에 그의 얼굴이 들어가게 됐다.




⑧ 스테이틀리 오크스(Stately Oaks): 타라 농장과 가장 흡사한 곳. 1839년 지어진 저택 내부는 19세기 가구로 꾸며져 있다. 당시 복식을 차려입은 안내원과 함께 저택을 돌아볼 수 있다. 
⑨ 트웰브 오크스(Twelve Oaks): 윌크스가의 모델이 된 저택. 정면의 새하얀 그리스식 기둥이 특징이다. 1836년 지어진 이 저택은 2012년부터 숙박 시설로 쓰이고 있다.
⑩ 블루 윌로우 인(Blue Willow Inn): 마가렛 미첼의 첫 번째 남편이자 레트 버틀러의 모델로 알려진 레드 업쇼가 살던 집. 역시 현재는 숙박 시설로 쓰이고 있다.

뒷이야기 상상하기

팬이라면 응당 결말 이후 주인공들의 삶을 궁금해하기 마련. 특히 이별한 스칼렛과 레트의 재회 여부를 놓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팬들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런 팬들의 열정에 힘입어 두 편의 속편이 원작자 마가렛 미첼의 유가족 허락하에 출간되었다. 1991년 출간된 첫 번째 속편 『스칼렛(Scarlett)』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다시 만난 스칼렛과 레트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속편의 작가 알렉산드라 리플리는 수십 명의 현역 작가들이 경합한 공개 모집을 통해 선발되었다. 『스칼렛』은 양장본 400만 부, 문고본 200만 부가 판매되며 34주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머물렀고, 동시에 원작 소설도 10주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1994년에는 티모시 달턴이 레트 버틀러 역을, 조앤 왈리가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아 TV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다. 2007년에는 도널드 맥크레이그가 쓴 두 번째 속편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Rhett Burtler's People)』이 출간됐다. 젊은 레트와 아버지의 갈등, 레트 시점에서 본 스칼렛과의 사랑, 그리고 벨 와틀링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후문에 따르면 도널드 맥크레이그는 속편을 내기 위해 유가족과 출판사에게 이렇게 어필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남부 사람들에게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북부를 향해 내민 주먹이자 도전의 송가였다.” 



타라의 수호자  피터 보너(Peter Bonner)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피터 보너는 20년 넘게 ‘남부 역사 투어(Peter Bonner Historical And Hysterical Tours)’를 운영해 온 애틀랜타의 유명인사다.  그는 남부의  꺾이지 않는 정신을 상징하는 스칼렛 오하라의 농장 타라를 되살리기 위해 ‘타라 구하기 프로젝트(Saving Tara Project)’를 제안했다.  영화 촬영을 위해 지어진 타라 농장 세트는 제작사가 문을 닫은 뒤 해체되어 방치된 상황.  하지만 애틀랜타의 상징이자 남부의 상징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한 피터 보너는 세트를 모아 타라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관련 정보는 프로젝트 공식 홈페이지(savingtar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6호 2015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