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동력’이 돌아가는 그날까지 뮤지컬 <무한동력>
꿈, 현실의 또 다른 이름
꿈꾸는 삶은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꿈을 꾸는 건 피곤한 일이다. 잠자리에서도 꿈이 많으면 다음 날 엄청 피곤하잖나. 하룻밤 꿈에도 몸과 마음이 휘둘리기 일쑤인데, 꿈을 품고 일평생을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꿈이란 곧 뜻이기 때문이다. 뜻은 의미를 찾아가는 의지를 말한다. 본질적으로 꿈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요즘에는 꿈이 장래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좁아져버렸지만 언제나 꿈은 ‘무엇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였다. 이 문제를 붙잡는 순간 삶의 질문에 쉬운 대답이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꿈을 가진 사람의 삶은 힘들다.
꿈을 가진 자의 고단한 삶을 잘 보여주는 사람으로 공자만 한 이는 없을 것이다. 불의와 폭력이 판치는 세상에서 사랑(仁)의 정치가 가능하다고 외쳤던 공자는 사람들의 눈에 몽상가로 보였을 게 분명하다. 칼이 정의인 곳에서 의로움(義)만이 인간의 길임을 주장했던 이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고 기회를 선물한 권력자는 없었다. 그래도 공자는 인간과 세상을 향한 자기만의 꿈을 품었다. 꿈을 품은 자만이 세상에 홀로 설 수 있으니, 이립(而立)이란 단지 서른의 젊은 패기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꿈을 붙잡고 삶을 돌파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염려와 냉소도 괴롭겠지만 무엇보다 자기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회의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몇십 년의 시간 동안 열매 하나 맺지 못한 이 꿈을 버려야 할 것인지 품어야 할 것인지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허무해진다. 공자는 이때를 가리켜 불혹(不惑)이라 했다. 의심과 회의는 반드시 온다, 그래도 흔들리지 말 것. 자기의 꿈이 곧 하늘의 뜻임을 아는(知天命) 그 순간까지 견디며 나아갈 것. 공자는 큰 사람(偉人)이 아니라 현실의 사람이었다.
이처럼 꿈은 오로지 현실과의 긴장 관계에서 그 의미와 가치가 명확해진다. 꿈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구축된 안전함과 확실함에 부딪힘으로써 이 세계의 논리에 실체가 없음을 드러내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꿈이 예술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술이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행위인바, 지금 여기 없는 것이야말로 지금 여기 절실히 있어야 하는 것임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꿈과 예술은 만나는 거다. 그 만남의 교집합에는 언제나 현실과 비현실의 투쟁이 있다. 꿈을 꾼다는 건 무엇이 진짜인지 가려내기 위한 싸움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꿈을 꾸는 자, 꿈은 아름다운 환상이 아니라 갈등의 현실 속에서만 완성될 수 있음을 기억할지니.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를 떠맡는 불가능한 꿈(impossible dream)일 뿐이라고? 톰 크루즈가 몇 편에 걸쳐 지금껏 임무 수행 중이고 라만차의 기사도 주춤하기는커녕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위안 삼으면 너무 우스워질라나.
‘무한동력’의 비현실성
뮤지컬 <무한동력>에서 꿈과 현실의 싸움을 기대하게 되는 까닭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무한동력은 그야말로 꿈이다. 연료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기계를 만들겠다는 것은 물질세계의 진리인 물리학의 법칙을 깡그리 무시하는 태도에 불과하니 말이다. 이런 기계에 평생을 바친 수자 아버지는 물질세계의 논리로 볼 때 인생을 완벽하게 낭비해 버린 폐인이다. 그런데 이 집에는 사회의 잉여가 되지 않으려는(취직을 해야 하고 빚을 갚아야 하며 대학에 가야 한다!) 젊은이들이 한데 모여 산다. 두 세계가 함께 존재하는 셈이다. 수자 아버지가 꿈의 세계에 산다면 하숙생들은 온전히 현실의 세계에 산다고나 할까. 무용지물인 무한동력과 무용지물이 되고 싶지 않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때로는 재밌게 때로는 거칠게 이야기는 만들어진다. 아니, 만들어져야 한다.
<무한동력>이 매력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매무새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집에는 비현실적인 꿈을 상징하는 무한동력을 향해 의심하며 갈등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한마디로 말해 이 집의 하숙생들은 모두다 너무 ‘착한 거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착한 게 아니라 맹한 거다. 무한동력? 아저씨가 만드는 기계? 아저씨, 우린 아저씨를 믿어요, 꼭 성공하세요! 아무 생각 없이 해맑기도 하지. 대학 교육까지 받았으면 이 기계가 말도 안 되는 거라는 사실을 알 법도 한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니. 이 작품에서 비현실적인 건 무한동력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다. 무대 전면에 떡 버티고 서있는 기계가 상징적인 의미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등장인물 중 아무도 이 상징물과 대립하지 않고 자기의 좌절된 꿈을 투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꿈(대기업 입사!)을 이루기 위해 조용한 동네로 이사까지 온 선재마저 무조건 이 기계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건 억지스러운 설정이다.
원작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텍스트이든지 극의 형태로 전환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갈등이다. 등장인물은 갈등을 통해 자기의 내면을 드러내고 부딪침을 통해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다. 이런 갈등의 설정이 없다면? 극은 여러 개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첫 번째는 에피소드의 함정. 이야기의 성근 연결지점을 소소한 에피소드로 메우는 거다. 설정의 재치는 빛나고 몇몇 장면은 인상적일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갈 수는 없는 법이다. 연결이 뻑뻑하고 어색해지면 잡스러운 농담이 개입하기 쉬우니(진기한이 LED 여자 속옷을 입을 필요가 있었을까?) 이런 코드는 극에 오히려 해가 되기 십상이다. 두 번째 함정은 인물의 전형적인 묘사이다. 갈등이 없는 인물은 구체적일 수 없다. 구체적이지 않을 때 가장 안전한 틀은 익숙한 전형의 거푸집일 터. 수자 아버지는 폐인이라기보다는 도인에 가깝고, 수자는 19세에 도저히 불가능한 성숙함을 갖춘 효녀일뿐더러, 선재는 이 사람들에게 감동, 감화받아 대기업 입사의 꿈을 내려놓는 현명한 청년이다. 어떤 계기를 통해 그렇게 변했는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세 번째 함정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느닷없는 결말. 아저씨가 왜 쓰러지는지, 선재는 어떻게 자기의 생각을 바꿔 나가는지 이유는 없는데 결론은 있다. 그 메시지는 아름답다(당신의 꿈이 무엇인지 꼭 붙잡으세요!). 하지만 설득의 힘이 없다.
이런 패착은 어쩌면 꿈을 바라보는 피상적인 시선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꿈은 선량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것이지만 그것은 과정을 통과한 결과여야지 그저 주어진 당위여서는 안 되는 거다. 꿈과 희망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7포세대의 자조가 넘치는 지금 같은 때에 웹툰 <무한동력>이 무수한 독자를 모은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만화가 놓치지 않았던 고민하는 청춘의 디테일을 섣부른 착함에 대한 강박으로 무대 위에서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무한동력’은 가능하다
그런데 말이다. 이야기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무한동력>에는 작품을 굴러가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흉물스럽게 보여야 할 기계의 상징적 면모를 지운 채 너무 매끈하게만 다듬은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커다란 바퀴의 구조물과 간결한 연기 구역으로 구성된 무대는 일단 보기에 예쁘다. 배우들의 연기도 재미나다. 장선재 역의 이상이는 안정적인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고, 진기한 역의 유제윤과 김솔 역의 안은진은 극의 분위기를 발랄하게 이끈다. 이 작품으로 데뷔하는 19세의 신인 배우 김지웅, 김경록의 연기 재능을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도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은 음악이다. 이 작품에서 음악은 극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오히려 이야기가 음악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일 거다. 작곡가이자 번역가로 유명한 이지혜는 이 작품에서 작가로서보다는 작사가이자 작곡가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적지 않은 수의 넘버임에도 장면의 적재적소에 배치된 음악은 분주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으니,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친근하면서도 극적인 선율도 좋지만 군더더기 없이 서사와 서정을 전달하는 탁월한 가사는 뮤지컬에서 음악이 어떻게 기능해야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더 데빌>의 스타일 충만한 모습도 좋지만 <무한동력>의 대중적 면모 또한 반갑다. <무한동력>이 앞으로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뮤지컬로서 이 작품의 기초는 튼튼하다. 집을 짓는 건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5호 2015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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