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꿈을 꿉시다
“죽기 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꿈에 관한 명언을 남긴 주호민 작가의 웹툰 <무한동력>이 무대로 옮겨진다.
뮤지컬 <무한동력>의 주인공은 이루지 못할 꿈을 향해 고집스럽게 나아가는 기성세대 한원식과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 세대 장선재.
꿈 앞에서 하찮은 인생은 없다고 따뜻하게 위로하는 <무한동력>의 주인공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박희순, 한 계단 더 올라서서
<무한동력>의 방황하는 청춘 장선재는 노래한다. 낯선 나이 스물일곱,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장선재의 노래 ‘모르겠어’를 흥얼거리던 박희순은 자신이 어느새 마흔여섯이 됐는지 모르겠다며 큰 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박희순은 분명히 알고 있다. 주어진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행복을.
박희순은 이제 막 배우에서 연출이라는 길에 새로운 걸음을 내디디려 하고 있다.
뮤지컬 <무한동력>과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요?
2년 전쯤 평소 알고 지내던 이지혜 작곡가 초대로 워크숍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무슨 공연인지 모르고 간 거였는데, 알고 보니 이지혜 작곡가가 직접 쓴 <무한동력> 뮤지컬 넘버를 선보이는 자리였어요. 저는 그 친구가 심오한 음악만 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소극장 공연에 어울릴 만한 아기자기한 곡도 굉장히 잘 쓰더라고요. 노래가 재밌고 독특했죠. 이거 공연하면 잘되겠다고 덕담을 했더니, 저보고 같이하재요. 하숙집 주인 아저씨 역할을 시키려는 건가 싶어 ‘난 노래 못해’ 그랬는데, 연출을 맡아 달라는 거예요. 놀랐죠. 그래도 재밌을 것 같았어요.
극단에도 오래 있었고, 배우 생활도 오래 했으니까, 연출에 대한 생각은 한 번쯤 해봤을 것 같은데, 다른 장르가 아닌 뮤지컬 연출을 한다고 해서 좀 의외였어요.
연출에 대한 꿈은 옛날부터 있었어요. 옛날에 목화(과거에 소속돼 있던 극단)에서 조연출 역할을 했고, 그 시절에 외부 의뢰로 대학극 연출도 하고 그랬으니까. 언젠가 마흔쯤 되면 연출을 해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마침 이런 기회가 온 게 하늘의 계시 아닐까 싶었죠. 사람들이 잘 몰라도 나름대로 뮤지컬 출연 경험도 있고(웃음), 극단 시절에 했던 대학극 연출 중에서 음악극 작업을 참 재밌게 해서 이번 결정을 망설이진 않았어요. 뮤지컬계에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서툴러도 많이 도와주겠지 하는 생각에 하게 됐죠.
자기 캐릭터에 깊이 파고드는 게 배우의 일이라면, 연출은 전체 그림을 보면서 상황마다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잖아요. 직접 연출을 해보니 어때요?
연출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워요. 요즘 사람들한테 그래요. 다신 연출 안 할 거라고. (웃음) 저는 뭐든 오래 생각하는 편이라 어떤 사안에 대해 빨리 결정해 줘야 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또 모든 파트의 고충을 들어주는 것도요. 그래도 배우들하고 연습하는 건 재밌어요. 자기 틀에 갇혀 있던 배우가 어느 순간 그 틀을 확 깨고 나오는 걸 볼 때, 아, 그때 기분 정말 좋아요. 어쨌든 앞으로는 연출이나 작가한테 반항 안 하고, 말 잘 따르려고요. 하하.
흔히 웹툰 <무한동력>을 꿈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 작품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한원식은 무한동력 기관 연구에 인생을 거는 인물인데, 과연 언젠간 그 기계가 작동할 거라고 믿는 걸까. 웹툰을 읽으면서 이게 궁금했는데, 원작자 주호민 작가 인터뷰를 찾아보니 한원식 아저씨는 무한동력이 영영 안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대요. 그래도 하는 거래요, 멈출 수 없으니까. 그 말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꿈을 간직한 사람, 꿈을 잠시 접어둔 사람, 꿈을 되찾는 사람, <무한동력>에는 꿈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들을 통해 꿈을 이루는 것보다 꿈을 꾸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야기가 좋아요. 내가 원하는 게 뭐였지? 내 꿈은 뭐였지? 하고 되뇌게 하는 작품이죠.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예요.
꿈을 잊고 살아갈 기성세대인 한원식이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마음에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배우 입장에서 한원식에 특히 공감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예술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한원식 같은 유형이 많죠. 저 또한 어려서 연극하던 시절에는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미래는 아예 생각할 수도 없었죠. 그 당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돈을 벌어야 했는데도, 이기적이게 연극을 계속했어요. 가족들은 저 때문에 힘들었겠죠. 그런데도 이걸 놓을 수가 없더라고요. 할 줄 아는 것도 이것뿐이고 무대에 있을 때만큼은 행복했거든요. 한원식도 한곳을 향해 돈키호테처럼 달려가잖아요. 누군가는 현실을 돌보지 않는 그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할지 몰라도, 그냥 그런 인생도 있는 거 아닐까요. 꿈을 좇는 사람, 현실을 사는 사람,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쉽게 단정할 순 없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한원식의 집념으로 관객들이 자신의 꿈을 되돌아보면 좋겠어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박희순이란 사람이 한원식 그 자체였네요. 영화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까지 오랜 시간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올 수 있었을까요?
어렸을 때 전 숫기도 없고, 자신감도 되게 없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어쩌다 학예회 때 앞에 나가면 앞자리 친구들 얼굴이 하나도 안 보이고, 꼭 상상의 세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 느낌이 되게 좋았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줄곧 배우를 꿈꿨어요. 내성적이라 어디 가서 배우가 꿈이라는 말은 못했지만. 극 중 한원식 대사 중에 “멈출 수 없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제가 그랬어요. 십 년 넘게 극단 생활을 하는 동안 사람들 눈엔 제가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무대에 서서 움직여야 살 수 있지, 안 그러면 죽을 것 같았어요. 멈출 수 없었다, 그 말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무한동력> 속 젊은 주인공들은 매일 현실과 꿈의 괴리감을 느끼죠. 아마 <무한동력>을 찾는 젊은 관객들도 비슷한 상황일 테고요. 세상의 무수한 장선재들에게 어떤 격려를 해주고 싶으세요?
제가 한 작품 중에 <맨발의 꿈>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가난하면 꿈도 가난해야 하나?” 꿈은 자기 맘대로 마음껏 꾸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꿈꾸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과정이 중요한 거지, 꼭 꿈을 이루는 사람만이 성공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아, 그리고 저희 뮤지컬은 장선재의 꿈인 대기업 입사가 좌절되는 걸로 끝나요. ‘-ing’, 현재진행형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서요. 한원식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계속 나아가듯이 선재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 우리 모두 상처투성이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이런 얘기를 관객들에게 건네고 싶어요.
그렇다면 지금의 박희순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꿈은 뭘까요?
제 꿈이요? 하하. 연출이 제 작은 꿈이었어요. 지금 이렇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으니까, 다시 한 걸음 더 내딛게 할 또 다른 꿈을 가져봐야죠.
박영수 · 박정원 · 이상이
무모한 꿈? 무한한 꿈!
박영수, 박정원, 이상이. 나이도 외모도 성격도 그리고 꿈도 각기 다른 세 배우가 같은 이름을 공유하게 됐다.
바로 <무한동력>의 장선재.
대기업 입사를 꿈꾸는 대한민국 평범한 20대의 대변인 장선재, 세 배우는 그와 함께 어떤 꿈을 그려 나갈까?
꿈을 찾아가는 과정
세 사람이 만난 건 이 작품이 처음이죠? 같은 역을 맡은 만큼 겹치는 이미지가 있을 것 같은데, 서로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박영수 정원이는 워낙 순하게 생겨서, 마냥 순둥이 같았어요. 상이는 이미지가 여러 가지인 것 같은데, 처음 봤을 땐 살짝 차도남 느낌? 그런데 보면 볼수록 애구나 싶었죠. (웃음)
이상이 전 고등학교 때 연기 선생님이 해준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어요. 사람이 남는 작업을 해라, 그리고 배우는 항상 순수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 순수함을 두 형들에게서 많이 느꼈어요.
박정원 첫인상이 어둡고 차가워서 가까이 가기가 힘들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반면 영수 형을 처음 봤을 때 굉장히 밝은 기운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다가가고 싶고,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이는 천생 남자 같았고요.
<무한동력>에서 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세 분의 어린 시절 꿈은 뭐였어요?
박영수 과학자요. 어렸을 때 뭐 하나에 푹 빠지면, 방에 갇혀서 안 나왔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미니카에 빠져 모토를 다 분해하고 회전력이 왜 안 나올까 한참 고민했죠. (웃음) 호기심이 많고, 상상하는 걸 좋아했어요.
이상이 영수 형은 지금도 아이디어 뱅크에요. 연습실에서 항상 많은 아이디어를 던져주시거든요. 전 초등학교 때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잠깐 투포환을 배우기도 했고요.
박정원 전 119 구조대랑 군인이요. 극 중에서 선재의 어린 시절 꿈이 버스기사가 돼서 가족들을 태우고 여행을 다니는 거예요. 저 또한 가족들과 소풍 가서 오순도순 재밌게 노는 꿈을 꾸었죠.
어떤 계기로 배우를 꿈꾸게 된 거예요?
박영수 학창 시절 농구 선수를 꿈꾸다가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꿈을 잃고 방황을 했어요. 그러다 TV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고3 때 연기를 시작하게 됐죠.
박정원 전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한창 비와 세븐이 인기를 누릴 때,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잘나갈까, 궁금했어요. 알고 보니 다 안양예고를 나왔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안양예고에 입학하게 됐죠. 그러다 학교에서 공연을 하게 돼 무대에 오르는 순간, 깨달았죠. 아, 연기를 해야겠다!
이상이 초등학교 때 <사운드 오브 뮤직> 영어 연극을 하고 난 뒤 중1 때 연기 학원을 다니고, 안양예고에 진학했어요. 그러곤 EBS 방송이나 독립영화 등에 출연하면서 점차 배우의 꿈을 키우게 됐죠.
지금은 배우란 첫 번째 꿈이 이뤄진 상황이잖아요. 그 과정에서 꿈을 포기하고 싶던 순간은 없었어요?
박영수 <윤동주, 달을 쏘다>로 첫 주역을 맡아 연습할 때, 정말 다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토록 꿈꿔 온 무대였는데,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처음 큰 역할을 맡게 돼 과부하 상태가 온 것 같아요. 답답한 마음에 혼자 관악산에 올라가 돌에 누웠는데, 이대로 돌로 굳어버렸으면 싶더라고요.(웃음)
박정원 전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순호를 맡았을 때 그랬어요. 제 실제 성향이랑 너무 달랐거든요. 근데 연기를 하다 보니 제가 바뀌더라고요. 애교가 늘었죠.(웃음) 때론 주변 상황 때문에 회의감이 드는 순간도 있어요. 그럴 때 위기가 오는데, 지나고 나니 다 찰나더라고요.
이상이 포기하고 싶다기보단 위기의식을 느낀 적이 있어요.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다른 동기들이 각자의 역할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니 괜히 겁이 났죠. 난 지금 뭐하는 거지? 주변 동기들을 보며 자극을 받았던 거죠.
이처럼 꿈을 잃을 뻔했던 순간들을 어떻게 극복해 냈나요?
박영수 책임감 때문이었죠. 이것만 끝내고 그만두자. 그러고 끝냈더니 또 시작할 힘이 생기더라고요.
박정원 영수 형 말대로 어떻게든 하게 되더라고요. 한 작품이 끝나고 나면 내가 많이 배웠구나! 또 한 번 성장했구나! 깨닫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이상이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중요하지만, 늘 답은 제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안에서 답을 찾고, 그 생각들을 선명하게 하려고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요. 이런 방법으로 어려움을 극복해왔어요.
이상과 현실의 삶
<무한동력>의 장선재는 한국의 20대 현실을 대변하고 있잖아요. 그의 어떤 면에 공감하나요?
박영수 낙방한 경험에 엄청난 공감을 했죠. 장선재가 상반기 공채에만 18번 떨어져요. 저도 예대에 입학하려고 사수를 했어요. 일 년에 한 번 있는 오디션에 떨어지고 나면 또 일 년을 준비해야 해요. 그러면 정말 하늘이 다 무너져 내리죠. 세상과 벽을 두고 혼자 걷고 있는 느낌…. 중요한 시험에 떨어져본 사람들은 다들 선재에게 공감할 거예요.
박정원 사람들이 뱀의 머리가 되기보단 용의 꼬리가 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선재도 대기업에 들어가기를 꿈꾸고. 저도 예전에 이런 마음이 든 적이 있거든요. 주인공 아니면 안 해! 큰물에서 놀아야 해! 이런 건 사람의 기본적인 욕심이잖아요.
이상이 어릴 적 친구들이 예전부터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너는 일찍부터 꿈을 찾아 예고로 진학해서 부럽다! 첨엔 대수롭지 않았는데, 아직까지도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특히 한국의 2030세대들은 성적에 맞춰 전공을 선택하고, 그러다 보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속상하고, 선재에게 더 공감하게 돼요.
장선재란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뭐죠?
박영수 자신의 꿈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할 수 있다면, 공연을 보고 잠들기 전에 자신의 꿈을 느낄 수 있다면, 정말 좋은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상이 동감이에요. 꿈에 대한 깨달음!
박정원 연습할 때 원작 웹툰을 읽었는데, 신기하게 잠들기 전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어린 시절 꿈은 뭐였지? 근데 뭔지 모르게 슬프더라고요. 지금은 현실에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지만, 어렸을 때는 순수한 마음으로 꿈을 꿨잖아요. 제가 그랬듯이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예전의 순수한 꿈을 떠올려보며, 미래를 새롭게 다짐할 수 있었으면 해요.
현실적인 장선재에 비해 한원식은 무한동력을 만들겠다는 무모하지만 이상적인 꿈을 꾸잖아요. 한원식이 장선재에게 건네는 명대사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가 인상적이었는데,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어땠어요?
박영수 제가 계속 꿈을 좇는 사람이다 보니, 당연한 말로 느껴졌죠. 근데 장선재 입장에서는 반감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내가 발가벗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다가 누군가가 ‘너 벗고 있어’라고 말을 해주면 수치심이 생기듯. 선재도 대기업 입사를 꿈이라고 여기다가 그것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잣대임을 깨달았을 때 수치심을 느끼고 그것이 반발로 나타난 거 같아요. 그래서 밥이 생각날 거라고 대답한 듯해요.
박정원 전 어떤 꿈을 꿔도 무모하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당연히 못 이룬 꿈이 생각날 거예요.
이상이 저도요! 근데 저 말을 들을 때 선재는 좀 단순했던 것 같아요. 정말 밥이 생각난 거죠. 그러다 무한동력을 만드는 한원식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면서 점차 수치심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과정을 거치면서요.
20년 후 내가 한원식과 비슷한 나이가 됐을 때, 과연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박영수 어렸을 때부터 구름 위를 걸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날개를 갖는 게 꿈이에요. 과학이 발달해서 죽기 전에 하늘 위를 한 번 날아보고 싶어요. 언젠가 ‘애플 윙’이 출시되지 않을까요?
박정원 행복한 가정을 꾸려서 귀농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제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게 하고 싶어요. 농사를 지으면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려고요. 풍년을 꿈꾸며.
이상이 전 구체적인 청사진이 있어요. 미국 서부로 가는 거예요. 인터스텔라에 나올 법한 큰 농장에서 청바지를 입고 워커를 신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이때 꼭 체크무늬 셔츠를 입어야 해요! (웃음) 그리고 옆엔 큰 개와 함께 서 있는 미래를 꿈꿔요.
세 배우를 행복하게 하는 힘! 나만의 ‘무한동력’은 무엇인가요?
박영수 공연이요. 공연을 하지 않으면 너무 무료해요. 공연을 준비하고, 작품이 무대에 오를 때, 제가 계속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얻어요.
박정원 전 가족이에요. 가족과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주변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삶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이상이 제 무한동력은 아버지예요. 아버지가 얼마 전 고향에 있는 산을 하나 사셨어요. 가족들을 불러 모으시곤, 내 이름을 딴 공원을 만드는 게 평생 꿈이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정말 큰 산인데, 지금 계속 공원을 만들고 계세요.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잠도 잘 안 주무시고 꿈을 위해 힘쓰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깨달았죠. 아버지가 나의 무한동력이구나! 존경합니다. 아버지!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4호 2015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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