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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잭 더 리퍼>, <삼총사> 유준상 [No.94]

글 |김유리 사진 |심주호 장소협찬 | 가로수길 비스코티 하우스(02-576-3550) 2011-07-25 5,522


우리가 알고 있는,  또는 모르고 있는

 

최근 2년 사이 영화와 뮤지컬을 오가며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유준상, 우리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초반에는 히트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알리고, 최근에는 스크린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중견 배우, 그리고 뮤지컬에 대한 애정으로 매년 뮤지컬 한두 편에 꼭 참여하는 배우? 앞에서 언급한 몇 마디 말로 유준상을 설명한다는 것은 부족하다. 그리고 실례다. 그는 뼛속 깊이 무대를 그리워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뮤지컬을 오가며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유준상, 우리가 알고 있는 또는 모르고 있는 유준상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그는 과에서 유일하게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학생이었다. 예술도 시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1980년대가 지나가고 예술이 개인과 예술 그 자체에 집중하는 90년대가 왔지만, 여전히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을 꿈꾼다는 것은 이해받기 쉽지 않은 꿈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윤복희 선배님의 <피터팬>을 보고, 영화 <싱잉 인 더 레인>을 보면서 키워온 뮤지컬 배우의 꿈은 누구에게 이해를 구할 것이 아니었다. 무엇을 하든 ‘뮤지컬을 하고 싶어서’였다. “뮤지컬을 하고 싶어서 동기들이나 후배들에게도, 배우는 노래와 무용은 꼭 배워야 한다며 얼마씩 걷어서 선생님들 모시고 노래와 무용을 배웠어요. 당시에 서울예대는 뮤지컬 동아리도 있었는데, 너무 부러웠죠.”


졸업 후, 그는 조광화 작, 김창화 연출의 연극 <여자의 적들>로 무대에 처음 서게 되었다. 그렇게 무대를 향해 한 발 내딛고 있을 때, 가장이 되면서 잠시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일정 기간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방송국 공채 시험에 합격해 몇 년간 단역을 거치면서도 무대에 대한 꿈은 놓지 않았고, 98년에는 <그리스>로 드디어 뮤지컬 무대에 서게 된다. 이후 <더 플레이>(2001), <투맨>(2004), <천사의 발톱>(2007), <즐거운 인생>(2008), 그리고 초연부터 참여한 <잭 더 리퍼>나 <삼총사>도 국내에서 창작한 부분이 많은 작품임을 감안할 때, 출연작의 대부분을 창작뮤지컬로 채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작은 배우와 스태프가 만들어서 뭔가를 펼칠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재미있어요.”

 

마흔, 통제와 여유를 알아가는 나이


그가 드라마에서 활약하던 무렵,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조개를 콕 새기며 씩 웃는 인상 좋은 배우로 사랑받았다. 그 표정은 남자의 귀여운 허세를 보여주기도 했고, 페이소스를 더욱 진하게 보여주기도 하는 그만의 전매특허였다. 약간은 과장된 제스처와 표정 때문에 당시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에서 ‘뮤지컬 연기한다’고 지적을 받았다. “그때 고개만 돌려도 ‘턴하는 거냐’고 얘기를 들었는데, 그런 것들이 많이 자극이 된 것 같아요. 도리어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는 연기, 뮤지컬에서 하는 연기 이런 게 따로 있다기보다는 장소와 공간이 다를 뿐 표현하고자 하는 건 똑같이 두어야겠다는 것을 계속 염두에 두게 되었죠.”   


 

첫 작품 <여성의 적들>에 출연하면서 가까워진 조광화 작가로부터 ‘통제’라는 두 글자가 쓰인 편지를 받았다는 인상적인 일화는 유명하다.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을 담은 그 편지는 여전히 마음에 새기고 있을 정도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유준상은 한 인터뷰에서 “마흔이 넘은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연기를 주의 깊게 본 관객이라면 언젠가부터 유준상의 연기에서 섬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지난해, 판이하게 다른 스타일로 ‘배우 사단’을 형성하고 있는 두 감독,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와 강우석 감독의 <이끼>에 출연했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이질감 없이 캐릭터마다 편하게 다른 옷을 갈아입은 듯 자연스럽게 유준상화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드라마를 통해 발견했던 그 특유의 유쾌함과 코믹함이 예전에는 홀로 돋보이는 개인기처럼 보였다면, <하하하>에서는 웃으면서 우울증 약을 먹는 아이러니함과 <이끼>에서는 진지함이 덧입혀지면서 풍부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어도 탄탄한 골격이 자연스럽게 돋보이는 그런 느낌이랄까. 어쩌면 십여 년 전 받은 ‘통제’의 메시지를 이 배우는 진심으로 이해하고 행하고 있는 듯하다.


 

변화에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를 묻자 ‘배우의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토지>에서 길상이로 출연하면서 배우의 인생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어요. 그때가 마흔 전이었는데 거울로 내 얼굴을 보니 30대의 얼굴도 아니고 40대의 얼굴도 아닌 애매한 얼굴이더라고요. 배우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어요. <토지>를 끝내고 1년 푹 쉬고 나서 정재영 씨와 함께 <나의 결혼 원정기>를 찍었는데, 처음 배우의 여유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죠.” 그렇게 여유를 머금고 돌아와 한 발 한 발 내딛었던 행보에 탄탄한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은 ‘연출가에 대한 믿음’이었다. “왕용범 연출가와의 작업이 큰 기폭제가 되었어요. <삼총사> 초연 때였는데, 처음 연습을 하는데 동선을 다 짜왔더라고요. 배우에겐 구속이 될 수도 있는데, 무대에 올라 움직여보니 제가 움직이고 싶은 동선과 정확히 일치하더라고요. 그 순간 ‘아, 이 사람 믿어야겠구나.’ 싶었어요.”


유준상은 연출가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캐릭터의 옷을 입고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드는 스타일의 배우다. 많은 배우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을 물을 때 역할 이름을 기다렸다는 듯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배우다. “그런 것은 특별히 없어요. 주어진 역할을 잘하려는 생각밖에는. 어느 순간부터는 연출가가 바라는 공연을 하는 게 일순위예요. 연출가가 ‘아, 오늘 공연 정말 좋았습니다’ 하면 제일 좋은 공연이었다고 봐요. 연출가가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바가 분명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었을 테니까. 그건 영화든, 드라마든, 뮤지컬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연출가에 대한 신뢰는 그로 하여금 조연과 주연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롭게 한 듯하다. 영화 <리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 <이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그리고 <비상: 태양 가까이>, 그리고 뮤지컬 <삼총사>와 <잭 더 리퍼>까지 2000년대 후반에 출연한 그의 작품들은 다수의 주연군이 합을 만들어 가거나, 조연으로 출연하는 작품이 대다수다. 여기서 유준상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덜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더 나아가지도 않는다. 어쩌면 아직까지는 연출가에 따라 바뀌고 새로이 만들어지는 자신의 모습, 다수와의 합과 그 안에서의 자기에 대한 시험인지도 모른다.     


 

십년, 이십년 후에도 무대에 서고 싶다

 

유준상에게 <잭 더 리퍼>와 <삼총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두 작품 모두 초연부터 참여했고, 초연 멤버의 다수가 여전히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에 온 기분이에요. 두 작품 모두 주조연의 대부분이 40대 이상의 배우들이고, 초반부터 함께해 온 친구들이 많아요. (민)영기, (김)법래랑 셋이 함께 서면 우린 평소에도 그냥 삼총사죠. 무대에서 누가 틀려도 서로 커버해줘요.(웃음)”

 

우연찮게 두 작품이 7월에 동시에 공연되면서, 부득이하게 한 달 사이 정의의 기사 아토스와 염세주의를 짙게 풍기는 앤더슨 형사를 번갈아 연기해야 하게 되었다. 부담은 없는지 묻자, “두 작품에 각각 그간의 연습량이 굉장히 많았어요. 이제는 툭 치면 바로 나올 정도로. 칼싸움 같은 경우도 상대방이 방향만 딱 타주면 내 손이 알아서 움직여줘요. 이런 기술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지만 감정적인 부분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바로 대답한다. 그래서 관성화, 패턴화되는 것을 지양하기 위한 방법을 물었다. “항상 새롭게 한다고 생각을 해요. 기본적인 틀은 있고, 그 틀 안에서 상대방의 액션에 따라, 그날 관객의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서 늘 긴장하게 돼요.” 이렇게 한 작품을 오래하면 연출가나 배우나 그 작품에 천착해 늘 조금씩 새로운 걸 발견해 캐릭터와 작품을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하던 그는 얼마 전 또 하나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단다. “어느 날인가 (신)춘수 형님이 전화를 해선 ‘준상아, 오랫동안 작업을 하다 보니까 한 배우가 한 작품을 오래하는 게 참 좋은 것 같더라’고 하더라고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 배우가 한 작품을 오래 하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나의 작품이니까요. 유준상 하면 벌써 두 작품이 떠오르는 거잖아요. 영화 한 편을 본 관객도 저를 기억하지만, 뮤지컬을 본 관객은 10년이 지나도 그 역할로 저를 기억하더라고요.”  

얼마전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으로 프랑스 칸 영화제에 참가하는 한편, 2편의 영화 촬영과 뮤지컬을 오가며 한창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유준상에게 뮤지컬 무대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대는 제 인생이에요. 정말 제게 소중해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꿈꾸었던 곳, 그리고 제가 데뷔한 곳이 무대이기 때문에, 제가 마지막까지 있을 수 있는 곳도 무대라 생각해요.” 무대에 대한 사명감, 자신이 맡는 역할에 대해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연기한다는 그에게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지금까지도 영화 촬영장, 드라마 촬영장, 어디에서든 발성으로 목을 풀고, 여전히 노래 레슨을 받는 것, 꾸준히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음감을 익히고, 계속 운동으로 몸을 유지하는 것은 늘 가슴 한쪽에 무대에 대한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애정에서 취미가 싹텄다.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조그맣게 곡을 만들다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작곡가로 나선 것. 얼마 전 1집을 발표한 뮤지컬 배우 이영미의 앨범에 자작곡인 ‘우리 사랑 떠나간다’를 수록했다. “가요도 만들고, 연주곡도 만들고 있어요. 그전에는 간간히 하다가 근래 들어 많이 하고 있어요. 편곡이 되어서 나온 곡도 몇 곡 있고요. 발전시키고 싶은 취미죠.” 뿐만 아니라 그는 몇 번의 그림 전시회를 가진 그야말로 ‘르네상스 맨’이다.

 

10년 전의 자신과 비교해서 달라진 게 무엇인지 묻자, 그는 “연습을 많이 해서 조금씩 기량이 좋아졌고, 오래 무대에 선 경험만큼 좋은 에너지들이 생겨서 여유도 생겼고, 대신 그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생겼다”고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10년을 묻자 “<삼총사>와 <잭 더 리퍼>에 참여하고 있는 친구들끼리 이야기한다. 진짜 열심히 하자고. 50대에도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 하자고, 또 앤더슨, 대니얼, 잭 하자고. 진짜 우리 아들과 한 무대에 서면 정말 예술이겠지만, 그러려면 정말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웃음)”고 답한다. 그리고 딱 한 작품, <헤드윅>은 꼭 하고 싶다고 귀띔한다. 40대 배우로는 처음으로 말이다. 그러고 나서 입을 앙다물고는 눈에 익은 미소를 지으며 “자, 이제 시작이다.”외치며 일어서는데, 그의 휴대폰에서 울리는 벨소리의 가사가 의미심장했다. “Exactly!”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4호 2011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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