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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INI SPECIAL] <아리랑> 뮤지컬로 구현된 아리랑의 정서 [No.142]

글 | 송준호 사진제공 | 신시컴퍼니 2015-08-17 4,915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이 3년여에 걸친 제작 과정 끝에 드디어 뮤지컬 무대로 옮겨진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우리 민족의 저항과 투쟁, 해방의 역사를 그린 이 작품은  무대화 계획 발표 이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워낙 방대한 원작 세계의 무게감은 곧 인물 구성과 스토리 각색, 음악적 색깔, 무대 시각화 등 다양한 분야로 파생돼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연 소설 속 인물과 세계는 무대에서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했을까. 

고선웅 연출의 안내를 따라 이 장대한 대하소설이 뮤지컬이라는 영역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주요 부문 중심으로 따라가 봤다. 



2시간 40분에 축약된 30여 년의 대서사


『아리랑』은 한 챕터만으로 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밀도 높은 이야기로 알려진 소설이다. 그동안 영화화나 드라마화도 여러 차례 추진됐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결국 좌절된 바 있다. 이번 뮤지컬의 관건도 바로 이 점에 있었다. 도대체 무대에서 이 방대한 서사 중 어떤 부분을 선택하고 거기에 집중할 것인가. 이는 직접 각색을 맡은 고선웅 연출에 달려 있었다. 우선 그는 책을 읽은 느낌을 어레미로 걸러내듯 인물과 사건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굵직한 사건과 인물 중심으로 큰 뼈대를 만들었고, 그런 다음 소소한 이야기들을 빼고 더하면서 대략의 그림이 그려졌다. 


뮤지컬의 이야기는 원작의 총 12권 중 대략 1권부터 10권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사 못지않게 등장인물도 많아서 각 인물의 비중과 에피소드를 어떻게 진행하느냐가 각색 작업의 관건이었는데, 원작은 송수익과 송중원, 송준혁 3대의 이야기가 다 들어가 있지만, 뮤지컬에서는 1대 송수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축한 후 큰 줄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 나머지는 과감히 생략했다. 아무리 매력이 있어도 그 줄기에서 벗어나는 캐릭터들은 과감히 제외됐다. 그 결과 송수익, 양치성, 방수국, 감골댁, 차옥비, 차득보, 방영근 등 주동 인물들이 주축이 돼 큰 맥락을 잡을 수 있었다. 메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일곱 명이 교류하고 충돌하며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꾸려지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전북 김제와 군산을 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배우들의 대사에는 기본적으로 전북 사투리가 활용된다. 뮤지컬 넘버 역시 사투리로 표현되는 가사가 상당 부분이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어로 말하고 노래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사실 『아리랑』은 각종 설문 조사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명작이지만, 정작 그 내용이나 인물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뮤지컬 <아리랑>은 원작 소설과는 별개로 공연 예술로서의 독자적인 재미를 보여줘야 하는 과제도 있다. 한마디로 원작의 맛을 살리면서도 뮤지컬만의 재미를 잡아야 하는 것. 고선웅 연출의 고민도 다르지 않았다. 원작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비난받지 않도록 그 정수를 잘 담아내고, 책을 읽지 않고 뮤지컬을 봐도 그 자체로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다듬는 게 고 연출의 몫이었다. 아울러 소설의 주요 장면을 뮤지컬에서 활용하고, 이를 무대 언어로 확장해서 새로운 예술성으로 승화시키는 작업도 함께 이루어졌다. 소설과 공연의 성격은 다르지만 주축이 되는 정서는 비슷하다. 고 연출은 원작을 관통하는 정서를 ‘애이불비(哀而不悲,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음)’로 보고 있는데, 한마디로 ‘강요하지 않는 슬픔’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쓴웃음 속에서 슬픔을 담아내는 고선웅 특유의 중의적인 연출과 표현들도 기대할 만하다. 



‘애이불비’를 담아낸 아리랑 음악


원작 소설의 무대화가 결정됐을 때 음악에서 아리랑이 어떻게 쓰일까도 관심사 중 하나였다. 물론 뮤지컬에서 아리랑이 모든 음악의 기반이 되는 건 맞다. 단 같은 곡을 지나치게 반복해서 사용하면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만큼, 서양 음악의 문법을 중심으로 다양한 아리랑이 더해졌다. 극 중에서 아리랑은 진도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신아리랑의 세 종류가 쓰일 예정인데, 중심은 진도아리랑과 신아리랑이다. 김대성 작곡가는 진도아리랑과 신아리랑의 변형된 버전을 통해 극 중 인물들의 모습이 당시 민중의 삶을 대변하게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리랑과 국악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쓰지만 <아리랑>은 ‘뮤지컬’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 아리랑의 빈도와 색채를 적절하게 조율하는 것이 중요했다. 고선웅 연출이 생각하는 활용법은 ‘아리랑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에만’ 쓰는 것이었다. 감정의 과잉에 빠지면 신파가 되기 때문에 서사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이 같은 중용의 미학은 중요한 컨셉이었다. 고선웅 연출은 음악에서도 ‘애이불비’의 정서를 원했다. 슬픈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일지라도 마냥 슬픔에 빠지지 말자는 주문이다. 반대로 기쁜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도 단순하게 들뜨는 음악이어서는 안 됐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고자 김대성 작곡가는 어쿠스틱한 19인조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아리랑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면서 민초의 핍진한 삶을 그 안에 담아냈다. 바이올린, 첼로, 오보에 등 서양 악기의 선율에 해금과 북을 덧입혀 우리의 정서를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재해석했다. 그 결과 아리랑을 포함해 ‘꽃이여’ ‘절정’ 등 50여 곡의 음악들이 완성됐다. 

테크놀로지와 여백이 공존하는 무대 미학 


2시간 40분으로 축약했지만 여전히 장대한 서사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장면 전환이 필수다. 특히 <아리랑>의 장면 전환은 30회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신속한 교체를 위해 오토메이션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트레블레이터(평면으로 움직이는 보도)를 도입했다. 이는 지난해 공연됐던 <고스트>에서 사용됐던 것과 같은 기술로, 극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인물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격동기의 인간 군상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해 기본 무대는 흙벽으로 바른 전통 가옥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었다. 이로부터 서민들의 삶의 터전을 생생하게 그린다는 생각이다. 다양한 사건들이 이어지는 여러 장면을 담기 위해 박동우 무대디자이너는 특유의 미니멀하고 소박한 무대를 최대한 활용한다. 오히려 단순한 무대여야만 각 장면들을 다른 느낌으로 담을 수 있는 역동성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다. 


흥미로운 것은 <아리랑>이 언뜻 아리랑의 정서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LED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고선웅 연출은 LED가 지닌 첨단의 느낌이 오히려 우리의 전통적인 소재와 잘 어울릴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는 이를 단순히 시각적인 장치 역할뿐만 아니라 정서까지 담아내는 도구로 사용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아리랑>에서 LED의 쓰임새가 어떨지에 기대가 모아진다. 


MINI INTERVIEW   고선웅 연출



조정래 작가의 원작을 파면 팔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조정래 선생님처럼 대문호의 작품을, 그것도 12권의 방대한 이야기를 2시간 40분에 담아내는 건 커다란 부담이다. 내가 잘하고 있나? 방향이 맞나? 이런 생각들이 들기도 하는데, 이 시대에 관해서 나름 10년 넘게 스터디하기도 했고, 연출가로서 다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던 차였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간담회에서 조정래 작가 옆에 있는 자신이 지푸라기 같다는 말을 했다. 그건 진심이었겠지만, 공연 예술가로서 원작과 다른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을 터. 뮤지컬 <아리랑>이 원작보다 매력적일 수 있는 부분이라면 무엇일까. 
무대화했을 때 미장센이나 정서 면에서 소설과는 다른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완전히 다르다기보다는 무대 언어로 영리하게 잘 바꿨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조정래 선생님이 말씀하신 진실과 내가 무대로 말하고 싶은 것이 거의 같기 때문에 그 진심이 잘 표현된다면 매력적인 뮤지컬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작가이자 연출가이자 관객으로서, 이번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을 꼽는다면. 
진짜 많다! 시작부터 끝까지 사랑하지 않고 만든 장면은 없다. 그 모든 장면들의 미학적인 부분들도 계속 고려하면서 지금도 모든 멤버들이 연구하고 있고, 스스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도 장면마다 높은 밀도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기다리는 원작 팬들과 관객들에게 소개하거나 당부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일단 원작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고 그냥 공연 예술로서의 <아리랑>, 뮤지컬로서의 <아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왜 이 작품을 이런 형식과 방법으로 접근했는지 봐주시길 바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2호 2015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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