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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명성황후> 김소현 [No.142]

글 | 송준호 사진 | 김수홍 장소협찬 | 무이무이 (02-515-3981) 2015-08-14 6,180

관객 한 명마다 눈을 맞추는 마음으로   

한국 창작뮤지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명성황후>가  올해 20주년을 맞아 변신을 시도한다. 

그 변신의 선두에 새로운 명성황후 김소현이 있다.  어느덧 ‘황후 전문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녀지만  명성황후는 그동안 맡아온 인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캐릭터다. 

늘 밝고 해맑은 성격의 김소현이 새로 만들 명성황후는 어떤 모습일까. 



명성황후와 성악이라는 뿌리

<명성황후>의 시작이 1995년이었죠. 그때 뭐 했어요?
어렸죠. (웃음) 대학생 때였어요. 그 이듬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라보엠>의 미미 역할로 오페라에 데뷔했는데 거의 20년 만에 <명성황후>로 같은 무대에 서네요.


그때 이 작품을 알고 있었나요?
전혀 몰랐죠. 그래도 제일 먼저 알게 된 뮤지컬이 <명성황후>예요. 저처럼 뮤지컬에 전혀 관심 없던 일반인도 들어봤을 만큼 당시 사회적으로 많이 회자가 됐던 작품이죠. 그래서 이번에도 걱정이 됐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봤고 여러 선배님들이 잘해 오신 작품이라서요. 


그때는 뮤지컬계로 오리라 생각 못했겠죠?
상상도 못했어요. 2001년 <오페라의 유령> 때 대학원 첫 학기였는데, 당시 오디션을 보면서도 이게 평생 직업이 될 거라고 전혀 생각 안 했어요. 오페라로 유럽에 가려고 준비하는 기간에 오디션을 갑자기 봤고, 실제로 오디션 끝내고 이탈리아에 갔거든요. 그때 <오페라의 유령>에 캐스팅이 안 됐으면 저는 이 길을 걷고 있지 않았을 거예요. 운 좋게 크리스틴이 됐고 저를 유럽 무대에서 지도해 주시기로 한 분이 <오페라의 유령>까지만 기다려주겠다고 했는데 제가 그냥 이쪽 길을 선택하면서 성악가의 길은 끝났죠.


왜 이 길을 선택했어요?
그냥 좋았어요. 제가 데뷔한 날이 2001년 12월 4일인데 그때 그 무대에서 들었던 박수 소리와 느낌을 아직까지 기억해요. 다른 장르도 그렇겠지만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면 그게 어떤 건지 잘 알 거예요.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 짜릿함, 즐거움, 살아있다는 느낌, 많은 감정이 교차한 것 같아요. 연습 때 힘들었던 만큼 공연에서 쾌감이 있는 특이함이랄까요? 


이번 공연 캐스팅이 발표되기 전까지 차기작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죠.
많은 사람들이 제가 <엘리자벳>을 할 거라고 생각했겠죠? (웃음) 마침 제가 EA&C에 들어가는 바람에 더 그랬겠죠. 고민을 많이 했어요. 물론 <엘리자벳>은 한 번 했던 작품이고 다시 다지기에도 좋은 시기여서 했어도 괜찮았어요. 반면 <명성황후>는 관객들에게도 저에게도 정말 큰 모험이죠. 행복한 고민 끝에 결정을 했어요. 그리고 요즘 정말 감사하고 좋은 날을 보내고 있어요. 그동안 여러 무대에서 행복한 전율을 느꼈는데 ‘명성황후’라는 인물은 역시 우리나라 사람이라 그런지 감동이 더 커요. 며칠 전에 보컬 런스루를 했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웃음) <엘리자벳>에 이어 이번에도 같이하는 김문정 음악감독님이 <명성황후>만의 감동이 다른 걸 느낄 거라고 했는데 그날 그 느낌이 딱 오더라고요.

전통적인 의미에서 정말 ‘한국적’인 작품이라 이전 작품들과 느낌이 다를 듯해요.
얼마 전에 <불후의 명곡>에 나갔을 때 국악 하는 선생님 노래를 듣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거든요. 국악을 몰라도 피가 반응한다고 할까요. 본능은 어떻게 할 수 없나봐요. 한 번도 국악에 심취한 적이 없었는데 그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느껴지더라고요. 뿌리를 의식하지 않아도 느껴진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당시 우리나라 역사도 오랜만에 다시 공부하고, 그동안 메르스 때문에 못 갔는데 장호원도 조만간 방문할 생각이에요. 


음악적으로 소현 씨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작품이지만, 그래서 더 준비할 게 많을 것 같아요.
맞아요. 성악 발성이 주가 돼도 굉장히 드라마틱한 성악이 필요해요. 음폭이 굉장히 넓고 저음을 많이 쓰는 작품이라 전에는 해보지 않은 발성도 필요해요. 그래서 두 달 전부터 레슨을 매주 받고 있어요. 오랜만에! (웃음). 그리고 성악을 전공했지만 그동안 그 발성을 버리려고 노력하다 목이 상하기도 했거든요. 그런 시행착오를 겪어서 이번에는 미리 트레이닝을 하고 있어요. 이태원 선배님이 오래 하신 만큼 넘버의 음역도 거기에 맞춰져서, 이번에 새로 편곡을 통해 바뀐 부분이 많아요. 그렇게 절충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중이에요. 


성악 얘기가 나온 김에, 최근 성악가들의 뮤지컬 진출이 이슈가 됐죠. 아는 분도 많을 법한데, 현직인데도 이렇게 뮤지컬에 출연하는 분들을 보면 어때요?
제 동기(임선혜)가 뒤늦게 데뷔를 했더라고요. 글쎄요. 그 친구들에 대한 생각보다 사실 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아예 그쪽과 담을 쌓고 살았잖아요. 선혜도 뮤지컬을 하는데 나도 다시 연습해서 오페라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요즘 오페라나 뮤지컬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가 섞여 있잖아요. 그래서 나는 뮤지컬 배우다, 같은 건 의미 없는 듯해요. 가수 세븐 씨도 <엘리자벳> 하고, (신)성록이는 얼마 전에 ‘카톡개’로 활동했고. (웃음)



어렵고 까다로운 황후, 명성

황후만 벌써 세 번째예요. 그래도 명성황후는 상당히 다르죠? 
일단 복식이 너무 다르죠. 그래서 감정을 표현할 때도 한국적인 작품은 더 어려워요. 대극장 연기는 몸 전체나 손짓이 주는 느낌이 굉장히 크잖아요. 근데 이 작품은 손을 많이 못 쓰기 때문에 그 부분이 제일 고통스러웠어요. 지금도 큰 숙제예요. 사실 외국의 황후 역도 황족의 품위를 지키면서 배우의 개성을 표현하기 힘든데, 한국의 황후는 더 조심스럽거든요. 조금만 잘못해도 ‘나댄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웃음) 특히 명성황후 이미지가 드센 부분이 있기 때문에 쉽지 않아요. 


그런 부분도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의 해석이 지닌 태생적인 반감도 극복해야 할 과제겠죠.
인터뷰하면서도 조심스러워요. 물론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고, 드라마나 뮤지컬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잖아요. 앞으로 연구를 더 많이 해서 명성황후를 잘 표현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녀는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걸 보여줘야 하는 게 저의 숙제이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설득해야겠죠. 그래서 국내 문헌뿐만 아니라 외국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기술했던 기록들을 많이 참고하고 있어요. 굉장히 상냥하고 현명한 여자였고, 한편으론 여린 여자였다는 표현이 많은데, 거기에 눈길이 갔어요. 


이렇게 역사적 평가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을 연기할 때는 신경 쓸 게 많겠어요.
엘리자베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했을 때도 똑같은 고민을 했어요. 나쁘게 보면 끝없이 나쁘게 볼 수 있는 캐릭터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들을 연기할 때 그냥 ‘못돼 먹은’ 모습을 그리는 게 아니라 ‘왜 못돼 먹을 수밖에 없는가’를 표현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요즘 고민이 많아요. 


명성황후를 알기 전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명성황후도 성품이 강하고 사치스러운 황후로 알고 있었죠. 억울한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 비운의 왕비고요. 너무 젊은 나이에 비참하게 죽었잖아요. 엘리자베트는 그래도 누릴 만큼 누리고 죽었더라고요. (웃음) 세 왕비의 공통점은 어렸을 때 아이를 허무하게 잃은 건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아픔과 고통이 얼마나 클지 정말 잘 알 것 같아요. 정신병 걸릴 만한 일이죠. 명성황후 입장에서는 시아버지가 자기의 목숨을 위협하는데 어떻게 자기 편을 만들지 않겠어요. 조선의 마지막을 살았던 국모로서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연민이 느껴지죠. 


그런 데다 캐릭터의 특성상 작품 전체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까지 있어야 하죠.
그동안 모든 작품이 저에게는 다 모험이었는데, <명성황후>도 마찬가진 것 같아요. 말씀대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필요하고, 이미 카리스마 넘쳤던 선배님들의 버전과 비교될까봐 걱정이 됐죠. 그때 윤호진 대표님이 <명성황후>는 같은 연출, 같은 대사, 같은 노래여도 배우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는 작품이니까 괜찮다고 말해주셨어요. 제가 망설일 때도 완전히 새롭게 바꾸려면 제가 필요하다고, ‘너만의 것을 보여줘라’라고 하셔서 용기가 났어요. 앞으로의 20년을 책임져 달라고 하시는데 사실 부담스럽죠. 부제가 ‘또 다른 20년’이잖아요. 그 문구를 볼 때마다 더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웃음)


게다가 대사도 거의 없지요.
그래서 더 힘들어요. 대사가 좀 나온다면 캐릭터에서도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을 텐데 거의 다 레치타티보랑 성스루여서 쉽지 않아요. 대사의 말도 되게 어려워서 많이 바꿨어요.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 ‘이건 무슨 말이지’ 하면서 사전까지 찾아봤거든요. 


배우들의 해석으로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지만, 그래도 명성황후 본연의 장부 스타일이 있잖아요. 사실 관객들이 가장 궁금한 점은 김소현이 이걸 어떻게 표현하느냐일 것 같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매일 혼자 집에서 런스루를 하면서 그 호흡을 어떻게 가져가나 고민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웃음) 아직 신 연습이 거의 안 돼서 음악과 안무 위주로만 연습하고 있어요. 혼자 백 번, 천 번씩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겠죠. 


대표곡인 ‘백성이여 일어나라’를 포함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곡이 있나요?
마지막 아리아 직전에 ‘어두운 밤을 비춰다오’가 있어요. 어린 아들과 남편을 두고 다가올 일들을 불안하게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인데, 지난 세월과 앞으로의 걱정을 다 품은 곡이거든요. 가사가 좋기도 하지만 선율만 들어도 울컥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이 노래는 대극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관객과 가까이서 만난다는 생각으로 하려고 해요. 내 얘기를 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고 작품 전체에서 유일하게 관객과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장면이거든요. 짧은 아리아여도 저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노래예요.



김소현의 명성황후

그동안 서양 황후 복장에 익숙해졌는데 가채를 쓴 프로필을 보니 살짝 낯설더라고요. 전에 <대장금>을 했지만 오랜만에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서니 어때요?
관객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프로필 찍을 때 되게 낯설었어요. (웃음) 제가 익숙해져야 보는 분들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텐데. 그래서 빨리 적응하려고 집에 혼자 있을 때 한복을 꺼내 입고 있어요. 그런데 <마리 앙투아네트> 할 때 경사 무대에서 크기나 양에서 최고였던 가발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고생은 그걸로 끝일 줄 알았거든요. 근데 <명성황후>는 더 무겁더라고요. 복식이 주는 불편함이 확실히 있어요. 게다가 또 경사 무대고, 회전 무대예요! 이게 끝이 아니고 험난한 길이 남았지만 적응이 되면 또 다들 하더라고요.  


그렇게 의상이나 캐릭터 등 제한된 환경에서 많은 걸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겠네요. 
캐릭터 분석을 할 때도 모든 자료를 다 쏟아놓고 보고, 단어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민감한 캐릭터라서 이걸 어디까지 봐야 하나 할 정도로 매일 인터넷, 유투브를 찾아보면서 난리를 치고 있어요. 모든 걱정의 집합소죠. (웃음) 한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제처럼 새로운 20년을 만드는 출발점에 있는 공연인데, 김소현의 명성황후를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싶어요?
말 잘못했다간 ‘악플’에 시달릴 것 같아서 걱정인데요. (웃음) 제가 이해한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겪었던 아픔 때문에 누구보다 조숙했던 여자였던 것 같아요. 정세를 내다볼 줄 아는 눈도 있었고요. 여자로서 사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하지만 세간의 평가와 달리 남편을 쥐고 흔들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극 초반부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남편에게 조언을 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수위 조절이 힘들어요. 계산적이고 권력욕이 있는 인물이 아니라 ‘현명한 여자’라는 성격이 전면에 있어야 하니까요. 그걸 단계별로 보여줘야 한다는 숙제가 있어요. 하지만 제가 확실히 보여주고 싶은 건, 연약하고 아픔이 많은 이 여자가 그 시대의 마지막 왕비로 태어나서 살아남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이에요. 기존에는 명성황후를 그저 나라를 망친 못된 여자로 기억했다면, 이 사람을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는 거죠. 두 시간 만에 해내긴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부분을 조금이라도 관객들이 느낀다면 숙제를 한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이제까지 소현 씨의 공연을 보러 왔던 관객과는 또 다른 관객을 만나게 될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몇천 명의 관객이 보고 있어도 전 일대일로 만나는 기분이거든요. 제가 진심으로 이 역을 연기한다면 명성황후에 반감을 가진 분이나 설령 일본 관객들도 그녀의 아픔과 고뇌를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서 원래의 반감도 잊어버릴 수 있고 작품의 올드한 느낌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겠죠. 매일 밤 무대에서 해낼 숙제가 많네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2호 2015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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