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현실주의자
<맨 오브 라만차>의 주인공 돈키호테는 꿈과 이상을 좇는 몽상가의 대명사.
하지만 그의 보좌관 산초는 좀 다르다. 그는 돈키호테가 좋다는 이유 하나로 무모한 모험에 따라나설 만큼 천진하지만, 그렇다고 돈키호테처럼 현실을 망각하는 인물은 아니다.
이번 공연에 새로운 산초로 합류한 배우 김호영도 마찬가지다. 그는 꿈을 꾸되, 꿈만 꾸지 않는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알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며, 그것을 오늘 당장 행동에 옮길 줄 아는 그는 이상주의자라기보단 용감한 현실주의자다.
자신의 별명 ‘호이’가 ‘호이스럽다’는 말로 널리 통용되길 꿈꾼다는 김호영은 최근 자신의 회사 ‘호이컴퍼니’를 설립하며 그 꿈에 또 한 발 다가섰다.
산초와의 만남
처음 산초 역 제의가 들어왔을 때, 김호영은 사실 망설였다. 기존 배우들이 만들어놓은 산초의 이미지가 워낙 강한 데다, 하반기에는 공연보다 새로 벌여놓은 사업 쪽에 집중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마음을 돌린 건 전작인 <마마, 돈 크라이> 때문이다. “<마마, 돈 크라이>를 하면서 연기 늘었다는 칭찬을 엄청 받았거든요. 그게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의외였어요. 아니, 내 강점은 원래 연기인데 왜? (웃음) 가만 생각해 보니, 이번에 그런 반응이 나온 건 제가 여장을 안 해서인 것 같아요.” 데뷔작인 <렌트>에서부터 최근 <라카지>와 <프리실라>까지 김호영은 종종 여장 남자 역할로 무대에 올랐다. <모차르트 락 오페라>, <쌍화별곡> 등 다양한 작품의 주연을 맡아온 그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그를 ‘여장 남자 역할을 잘하는 배우’로만 기억했다. “사실 <마마, 돈 크라이>에서 프로페서V의 발랄하고 까불까불한 모습은 <라카지>의 자코브나 <프리실라>의 아담 때 보여드린 것과 비슷한 연기적 맥락이에요. 그런데 여장 없이 민낯에 평범한 옷을 입고 그걸 하니까 이전까진 ‘끼가 넘친다’고 표현하던 관객들이 이제 ‘연기 잘한다’고 인정하더란 거죠.” 그런 관객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김호영 스스로도 이도 저도 아닌 배우가 되느니 분명한 캐릭터를 가지고 그 영역에서 만큼은 캐스팅 0순위가 되는 게 좋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마, 돈 크라이>로 예상 밖의 연기 칭찬을 받고 나자 “기왕 이렇게 호평을 받을 때, 좋은 작품의 좋은 역할로 굳히기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중적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그런 점에서 차기작으로 적당한 작품이었다. 산초는 김호영이 곧잘 맡아온 밝고 유머러스한 캐릭터지만, 그럼에도 김호영 하면 떠오르는 기존의 화려하고 똘똘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김호영 역시 관객들이 기대하는 귀엽고 재기발랄한 모습보다는 산초가 지닌 인간적인 면에 더 집중할 생각이다. “산초는 돈키호테와 달리 이성적이지만, 그럼에도 ‘그냥 좋다’는 이유로 돈키호테를 따라나설 수 있는 인간적인 마음을 가졌어요. 그 사람이 나한테 뭘 해주지 않아도, 다른 사람 눈에 바보 같아 보여도, 그래도 나는 그가 좋다는 거죠. ‘좋으니까’라는 노래에 담긴 누군가를 무한 긍정으로 바라보는 시각, 그 사람 자체로 좋아한다는 의미가 관객에게 잘 전달되면 좋겠어요. 비록 그 노래를 부를 때는 멜로디나 제스처 때문에 귀엽게만 느껴진다 해도, 극이 더 진행된 뒤에 노래 속에 담긴 산초의 마음을 새록새록 떠올릴 수 있게요. 산초에게 왜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느냐고 물었던 알돈자도 나중에는 그의 노래를 되새기지 않았을까요?”
돈키호테(세르반테스) 역을 맡은 류정한, 조승우와의 생소한 조합도 관객들이 김호영의 산초를 기대하는 이유다. 특히 김호영과 류정한이 한 작품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 “정한 형과는 심지어 행사나 콘서트에도 함께 선 적이 없어요. 사석에서 인사만 나눈 사이죠. 그래서인지 관객들도 ‘류돈키’와 ‘호산초’의 호흡을 많이 기대하시더라고요. 저희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그림 자체가 상상이 안 된다고요. (웃음)” 김호영과 조승우가 한 무대에 서는 것 역시 2007년 <렌트> 이후 8년 만의 일이다. <렌트> 공연 당시에도 엔젤 역의 김호영과 로저 역의 조승우는 서로 교감할 만한 장면이 거의 없었다. 그랬던 두 사람이 <맨 오브 라만차>를 통해 원 없이 붙어 다니게 된 것이다. “승우 형은 무대 위에서 그때그때 자기만의 애드리브를 보여주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관객들은 제가 그걸 받아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조돈키’랑 ‘호산초’가 공연하면 세 시간이 넘을 수도 있겠다고. (웃음) 아직 본격적인 연습 전이라 어떤 케미가 날지 저도 궁금해요.”
‘드림 노트’에서 ‘호이컴퍼니’까지
불가능한 꿈을 향해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는 <맨 오브 라만차>의 메시지는 김호영이 지켜온 삶의 태도와도 일맥상통한다. 늦은 나이에 들어간 군대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노트 4~5권에 걸쳐 반복해 썼다는 ‘드림 노트’가 바로 그 증거다. “군대에서 사건사고가 정말 많았거든요. 그때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속내를 글로 쓴 게 드림 노트의 시작이에요. 저만의 치유 방식을 터득한 거죠.” 당시 그가 노트에 제일 많이 쓴 말은 ‘나는 지금 물에 발을 담근 상태다.’ 물에 발을 담갔기 때문에 양말이 젖고 바지에 물이 튀는 게 당연한데, 그걸 가지고 왜 이렇게 젖느냐 튀느냐, 짜증 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어차피 지금 물에서 나올 수 없다면, 이참에 외려 잠수도 해보고 즐기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지금의 시련도 언젠가는 ‘아, 이런 걸 배우려고 그랬구나’ 생각하는 날이 올 거다. 결과적으로 모두 나한테 좋은 경험이 될 거다. 그렇게 반복해서 노트에 적다 보니 힘든 일이 있어도 금방 긍정적으로 생각을 전환하고, 극복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쓰기 시작했죠. 지금은 거기 썼던 것의 99.9%가 이뤄졌어요.”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를 만드는 것도 그의 드림 노트에 적혀있던 꿈 중 하나다. “군대에 있을 때부터 전우들 상담을 많이 했어요. 드림 노트에 대한 강의도 하고요. 그러면서 내가 사람들과 소통하고 치유하는 일에 소질이 있단 사실을 깨달았어요.”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좀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은 제대 후 힐링 토크쇼를 만들겠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그는 작년 9월부터 토크 콘서트 ‘호이 스타일 매거진 쇼’의 MC이자 기획자로 활약하고 있다. 컨셉은 힐링이 아닌 버라이어티 쪽으로 수정됐지만, 이걸로 만족할 생각은 아니다. 그의 궁극적인 꿈은 다양한 컨셉의 컬러별 ‘호이쇼’를 만드는 것이다. ‘호이쇼 핑크’는 ‘호이 스타일 매거진 쇼’와 같은 버라이어티 쇼, ‘호이쇼 블랙&화이트’는 처음 계획했던 힐링 토크쇼, ‘호이쇼 블루’는 음악에 특화된 콘서트, ‘호이쇼 그린’은 게스트를 불러놓고 얘기를 듣는 초대석 형식이 될 예정이다. “예전엔 조승우 같은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다면, 지금은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지난 5월에는 벌써 ‘치유포유’라는 이름의 새로운 힐링 토크쇼를 시도했다. 작은 카페에 30명 정도의 인원이 모여 소통과 치유의 시간을 갖는 자리다. “거기서 제 군 생활과 드림 노트에 대한 강의를 했어요. 그리고 종이를 주면서 지금 당장 듣고 싶은 말을 쓰라고 했죠. 그런 다음 두 명씩 짝을 지어서 서로의 종이에 쓰인 말을 상대방에게 읽어주도록 했어요. 그 순간 모두 자신이 듣고 싶던 말을 들을 수 있게요. 그런데 살펴보니 다들 비슷비슷한 말을 썼더라고요. ‘지금도 잘하고 있어’, ‘널 믿어’ 이런 말들이요. 결국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남들도 듣고 싶어 하는 말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핸드폰을 꺼내 자기가 듣고 싶었던 말을 생각나는 사람에게 문자로 보내라고 했어요. 어떤 분은 딸에게 ‘넌 지금도 잘하고 있어, 사랑해’라고 보냈는데, 딸도 ‘엄마 사랑해’라고 답장을 보냈더라고요. 듣고 싶은 말이 그대로 돌아온 거예요.” 듣고 싶은 말은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내가 먼저 하면 된다는 것, 우리는 다 똑같이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그가 전하고픈 메시지다.
꾸준히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면서 김호영은 자신의 별명인 ‘호이’ 자체를 브랜드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드림 노트를 ‘호이 스타일 매거진 쇼’ 자체 MD로 판매하고, 또 직접 디자인한 ‘호이 양말’을 론칭해 ‘호이 스타일 매거진 쇼’에서 여는 자선 바자회에 출품했다. 지난 4월에는 독자적으로 공연 제작사 ‘호이컴퍼니’를 설립해 ‘호이 스타일 매거진 쇼’의 기존 제작사였던 ‘뮤지컬퍼블릭’으로부터 독립하기에 이르렀다. “제 이름으로 된 토크쇼인데 제작에 다른 회사 이름이 들어가는 게 마음에 걸렸어요. 오롯이 제 걸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제 토크쇼를 제작하면서, 노트나 양말 같은 다른 제품까지 만드는 회사를 하나 세우자고 결심했어요.” 이 과정에서 그는 지인이 운영하던 카페를 흡수해 ‘카페 호이컴퍼니’라는 독립된 공간까지 마련했다. “이전에 했던 자선 바자회나 강의 프로그램을 카페로 옮겨올 생각이에요. 지인의 음식 솜씨를 활용해 팬들이 배우에게 보내는 도시락을 주문받는 ‘호이 도시락’도 론칭할 거고요.”
그의 말을 다 듣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다 할 수 있냐며 놀라자, 김호영은 안 그래도 머리가 아프다며 짐짓 앓는 소리를 했다. ‘카페 호이컴퍼니’에 앉아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아래층에는 그를 기다리는 또 한 그룹의 손님이 대기 중이었고, 그의 핸드폰은 계속 울려댔다. 비즈니스 때문에 공연을 쉴 생각까지 했다는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호이컴퍼니’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서도 배우 일에 더 열심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배우 김호영이 인지도와 공신력이 있어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다양한 컬러의 호이쇼를 만들고픈 것처럼, 배우로서도 제가 가진 다양한 색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언젠가 제 바람대로 ‘호이스럽다’, ‘호이리시’라는 표현이 쓰이게 됐을 때, 저 스스로 그 말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당당한 배우가 될 겁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2호 2015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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