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이라는 타이틀로 인터뷰를 진행할 때, 지키려고 하는 컨셉은 딱 한 가지다. 함께 있을 때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두 사람을 섭외하고, 그들이 마음을 놓고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근한 장소를 찾을 것. 첫 번째 조건을 생각했을 때 조광화 연출과 엄기준은 정답처럼 떠오른 이름이었다. 동네 이웃이던 엄기준이 이사를 간 후로 한동안 술자리가 뜸했다는 두 사람에게 평소 즐겨 찾던 곳을 물었는데, 입을 맞춘 듯 한 곳을 지목했다. 대학로 성대 방향에 있는 골목길 깊은 곳에 숨어 있는, ‘파라솔’이라는 아담한 술집이었다. 하지만 한창 성시를 이룰 늦은 시각에 조명기기를 대동한 사진 촬영이 진행되어야 하는 인터뷰를 달가워 할 주점이 세상 천지에 있을까. 통화 연결음을 듣는 동안에도 일찌감치 차안을 생각해 내려고 머리를 굴리는데, 신기하게도 파라솔 사장님은 두 남자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쾌히 승낙을 했다. 그리고 인터뷰 당일. “이 막걸리 잔, 제가 사다 놓은 거예요. 선생님이랑 같이 다이소에서.” 막걸리 주전자, 김치전과 함께 세팅된 노란 양은그릇을 여봐란 듯이 들어 보이면서 자랑스러워 하는 엄기준을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말수 적은 두 남자가 지금껏 평생 나눈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냈던 술자리의 일부를 기록했다.
기자 <미친 키스> 연습실에서 짧게 두 분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그게 2007년인데 그 후로는 같이 작업을 한 게 없으시죠?
조광화 얘가 만날 튕겨요. 숫자를 말하면 내가 자존심이 상해서 안 되고.(웃음) 그런데 사실 기준이한테 딱 맞다 싶은 작품이어서는 아니고, 이쯤에서 연극을 한번 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권한 거긴 했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그쪽에서 자리를 좀 더 확고하게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기준이는 TV에 나왔을 때 보면 거기서 연기를 더 잘하는 거 같더라고요. 얘가 다리 긴 것 하나로 무대에서 먹고 산다고 놀렸는데 아니 이게 웬걸 텔레비전에 가서 연기상도 받고…
엄기준 저 무대에서는 상을 한번도 못 받았어요.(웃음) 항상 선생님은 저한테 ‘그걸 연기라고 하는 거냐?’ 이런 말씀만 하셨는데, 처음 칭찬을 받은 게 영화 <파괴된 사나이> 때였어요. 작년이었으니까 선생님을 뵌 지 8년째였죠.
조광화 내가 뭐라 그랬지? 하산해도 되겠다고 했던가?
엄기준 ‘이제 좀 배우 같다’라고 하셨죠.
조광화 아 맞아. 배우 같다고 그랬지. 나는 좀 진한 걸 좋아하는데 <파괴된 사나이>는 작품 자체로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데, 거기서 기준이가 딱 보이더라고요. 그 전에는 얘가 지 타고난 매력을 가지고 사는구나, 그 매력이 나도 좋기는 한데 연기를 더 잘했으면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 작품에서는 그런 문제를 떠나서 배우로서 기준이의 존재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기분이 좋았어요. 기준이를 보면서 불안해했던 게 너무 다작을 하는 거 아닌가, 오래 가는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내공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지금 보니까 그것도 그냥 저희 식의 생각이었던 거 같아요. 나는 하나를 하더라도 목숨 걸 듯이, 10년을 바쳐서라도, 이런 식의 약간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꾸준히 성실하게 사는 걸로도 내공이 되더라고요. 사실 제 또래의 동기들을 보면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실 되게 살고 성실하게 살면 그게 쌓여 연기에서 맛이 나고 색과 냄새를 갖게 되는구나 느낄 때가 있어요. 후배들 중에서는 기준이한테서 그걸 처음 봤어요. 그런데 신기한 게 보통 그게 잘 안 팔리고 고생을 하면서 오래 견디다 보면 갖게 되는 건데 얘는 그런 것도 아닌데… 다작을 하면서 남들 10년 사는 걸 몇 년 만에 당겨서 살아서 그런가?(웃음)
기자 보통 다작이라고 하면 배우로서 소비되고 소모되는 지름길이라고 걱정을 하잖아요.
조광화 그러니까 보통은 그런데 그게 기준이의 놀라운 능력이랄까. 얘는 스스로 자기가 연기자로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그게 재능인 거 같아요. 그걸 견뎌내고 끝까지 해내는 게. 야, 이거 극찬이야.(웃음) 예술하는 사람들은 다 천재에 대한 선망이 있지만, 결국 끊임없는 정열로 끝까지 가는 거, 그 꾸준함이 있으면 승리하는 거 같더라고요. 기준이가 닥치는 대로 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게 너무 맘에 안 들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거꾸로 내가 부끄러워졌어요. 젊을 때 저렇게 했어야 하는데, 내가 기준이보다 좀 모자랐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이건 공적인 인터뷰 멘트에요.(웃음)
엄기준 아무리 공적인 멘트라도 너무 띄워 주시는데요.
조광화 사실은 진심이야. 오늘 나오기 전에 트위터에서 특별한 예술은 사라져야 한다, 예술도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이 뜬 걸 보고 왔는데 성실하게 살아가는 생활인 같은 예술, 그런 작업 태도가 되어야 하지 않나, 그런 걸 기준이한테 배우고 있어요. 야, 할 말 없을 줄 알았는데 되게 많다?(일동 웃음)
기자 어떤 말씀인지 알 거 같아요. 저도 그 생각했거든요.
엄기준 에에? 왜요, 왜? 제가 날나리 같은가요?(웃음)
기자 날라리 같다고는… 엄기준 씨를 보면 어라, 이상하다 싶게 내공으로 쌓여가는 게 보이더라고요. 본인 스스로도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 같은 변화를 느끼세요?
엄기준 그렇다기보다는… 일단 저는 쉬는 걸 안 좋아해요. 쉬면, 연기를 할 때의 감이… 대본을 봤을 때 신마다의 목적성, 내가 가져가야 할 방향성, 있어야 하는 존재의 이유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분석할 수 있어야 그 작품 안에서 연기를 할 수 있는데 쉬면 그런 끈을 놓칠 것 같아요. 그래서 안 쉬고 작품을 해요.
기자 불안한 건가요?
엄기준 불안한 것도 있죠. 못하니까. 못하니까 좀 더 잘하려고 계속 일을 하는 게 옳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조광화 그게 기준이의 장점이에요. 자기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점점 더 나아져요. 나는 내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했거든.(웃음)
엄기준 진짜로 끝이 없는 거 같아요. 살아온 시간이 10년이면 10년, 20년이면 20년, 그 시기마다 배우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다르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시간을 당기고 싶어요. 마흔이 되어야 할 수 있는 만큼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하고 싶어요. 내 스스로 됐다고 느낄 때가 저는 없을 거 같아요. 지금 제 나이에 누구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 노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분들을 넘어설 수는 없어요. 그냥 따라가는 건데 좀 더 가까이 따라가고 싶어요. 제가 지금 정확하게 서른여섯인데, 다른 서른여섯 살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말고, 마흔 넘은 선배님들처럼 하고 싶어요. 이번에 <드림하이>라는 드라마를 하면서 수현이라는 친구랑 같이 했는데 저랑 띠동갑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친구를 보면서 내가 저 나이 때 저렇게 연기를 했으면 지금 많이 달라져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아직 어린데, 벌써 자기가 여기서 뭘 해야 하는지를 다 알더라고요. 아니 스물네 살이면, 저는 막 제대하고 앙상블을 할 때인데.(웃음)
조광화 <그리스>에서 기준이를 처음 봤는데, 누나들이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화려하고 폼나는 그런 역을 하고 있는데도 넌 뭔가 처량하고 측은한 데가 있더라. 나도 모르게 거기 끌렸어. 기준이는 한동안 그걸로 먹고 산 거 같아요.
엄기준 저는 제 매력이 뭔지 모른다고요.(웃음)
조광화 그런데 지금도 그래요. 제가 사실은 사람 만나는 걸 좀 힘들어 하는데, 연출을 하고 이제 내가 선배가 되어가니까 뭔가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드는데 이상하게 얘는 언젠가부터 집안의 문제가 많은 사촌동생처럼 계속 돌봐줘야 할 것 같은, 그런 측은지심이 들어요. 제가 스스로 생각하는 저의 불쌍한 면과 비슷한 면이 있는 거 같고. 넌 뭐냐 진짜? 그리고 너는 왜 자꾸 나한테 같이 술 먹자고 그래?
엄기준 편하니까요. 좋으니까.
조광화 하긴 배우하고 서너 시간을 같이 있으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도 괜찮은 건 신기하긴 해. 보통은 ‘너 연기는 이렇게 해야 해’ 식으로 뭐라도 말을 해줘야 할 것 같고 불편할 텐데. 포기를 해서 그런가?
기자 아니 왜 이렇게 구박을 하면서 좋아하세요?(웃음)
엄기준 작년 11월에 이사 가기 전까지는 저희 집에서 30초 올라가면 구소영 음악감독, 거기서 또 30초 거리에 선생님 댁이 있었어요. 술 마시고 싶으면 누구든 전화해서 ‘오늘 삼겹살 어때요?’ 하고 맥주 사 가지고 불판 놓고 고기 구워 먹으면서 한잔하고… 급번개를 하는 거죠.
기자 그런 게 꿈인 사람들이 많아요. 1분 거리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고 언제든 불러서 같이 술 마실 수 있는 거요. 그런데 그렇게 지낼 수 있는 시간들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길지는 않은 것 같아요.
조광화 좀만 기다려. 돈 벌어서 나도 한남동으로 갈게.(웃음)
기자 두 분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아요. 2003년 <베르테르> 공연 후에 선생님과 <더뮤지컬> 독자들이 만나서 대화를 하기도 했죠.
조광화 그 자리는 기억을 해요. 사실은 그때 나름 되게 용기를 낸 자리였어요. 관객하고 그렇게 직접적으로 안 만났는데, 베르테르 때는 뭔가 좀 직접 대화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만나려고 시도를 했던 거라. <베르테르>는 제가 한참 슬럼프였을 때 (고)선웅이가 가지고 와서 하게 됐는데 저한테 새로운 에너지를 많이 줬어요. 그런데 기존의 마니아들이 작품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확실해서 다른 걸 했을 때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경향이 있어요.
기자 저도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없어져서 섭섭하다고 말씀드렸던 거 기억나네요. 베르테르가 독백처럼 부르는, 바람이 셔츠를 부풀리고…라는 가사가 있는 노래였는데.
엄기준 선생님이 내레이션으로 넣으셨던 노래네요. 롯데랑 뽀뽀하고 나서 나오는 노래. 원래 그게 2002년에 승우랑 할 때도 처음에는 없었어요. 너무 중복된다고 해서 안 넣으려고 하다가 마지막에 들어갔어요. 공연 1주일 전쯤에 런스루를 하는데, 승우가 우느라고 그 노래를 못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래? 한번 해보지 뭐, 하면서 들어갔는데 저도 똑같이 우느라 노래를 못했어요. 그런데 그게… 뭐가 맞는지는 사실 모르겠는데 어쨌든 2002년에도 안 넣으려고 하다가 승우랑 저랑 고집을 해서 넣었어요.
기자 지금은 가사도 멜로디도 정확히 생각이 안 나는데,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마음에 와 닿았던 무게감은 생생해요. 엄기준 개인적으로 선생님과 함께했던 2003년 베르테르가 참 좋았던 게 연극이 가진 장점과 뮤지컬이 가진 장점이 적절하게 섞인 거 같아서였어요.
조광화 사실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절절하게, 온몸을 던져서 뒤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법을 잊어버렸죠. 그런데 본능 속에는 던지고 싶은데, 다칠까봐, 상처받기 싫어서, 망가질까봐, 쿨해야 하니까 가다가 말아버리거든요. 그래서 마음껏 가버리는 사람을 보면 대리만족을 하게 되는 거죠. <베르테르>의 현대판인 게 네가 했던
<클로저>지. 그 조금 전이 <미친 키스>고. 넌 그 감성인 거야. <베르테르>에서 <미친 키스>를 거쳐서 <클로저>까지. 똑같은 모티프인데 패션만 바뀌는 거잖아?
엄기준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또 영국으로 갔는데 계속 그러고 있네요.
기자 그런 테마를 좋아하세요?
조광화 이제는 안 좋지 않아? 옛날에 좋았지.
엄기준 이제 좀 바뀌었어요. 그래서 여자를 못 만나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해봤고, 자살은 못 해봤지만요.(웃음) 어쨌든 그랬던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도 그런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사랑을 하고 싶기도 한데… 뭔가 좀 달라진 거 같아요.
조광화 그만큼 했으면 충분해.(일동 웃음) 난 요즘 뭘 좀 키우고 싶어졌어. 엊그제 집에 고구마를 사다놨는데 하나 남은 게 싹이 좀 튼 거야. 그래서 어쩔까 하다가 원래는 그걸 잘라서 심어야 하는 걸로 기억하는데 그냥 통으로 심어놨어. 고구마나 감자는 수확할 때 정말 재밌어. 시골 집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고구마 감자 캘 때 줄줄이 나오는 거 찾아내는 그 재미가 참! 다 수확한 후에 땅을 뒤집어 보면 거기서 또 몇 개 남아 있던 게 나오고…
기자 그런 농사일에 비하면 작품을 만든다거나 연기를 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노력 대비 수확이 아닌 거 같지 않으세요?
조광화 노하우가 별 도움이 안 되는 분야죠. 예를 들어 어떤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공산품을 하나 만들고 특허도 받았다면 그거 하나를 가지고 평생 먹고 살 수도 있잖아요. 물론 뮤지컬도 그럴 수 있는데, 한 작품 만들고 끝나면 작가가 아닌 거 같잖아요. 그럼 새 작품을 써야 하는데, 그때 이전 작업에서 깨우친 노하우가 별 소용이 없어요. 오히려 다 지우고 시작을 해야 해요. 그게 괴롭죠. 지난번에는 내가 가시밭길을 걸어서 지옥을 갔다왔다, 그러니까 이제는 조금 익숙해져서 자갈밭이라도 되겠지 싶지만 결국 다시 가시밭길, 매번 가시밭길이죠. 그러니까 나이가 들고 보니 그 가시밭길을 걷기가 싫어서 꼼지락거리면서 ‘아 좀만 더 있다 갈게’ 그러고 버티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기준이의 성실함을 본받아야겠다 싶은 거고.(웃음)
기자 엄기준 씨는 작품을 어떻게 고르세요?
엄기준 캐릭터요. 그 작품 안에서의 캐릭터를 봐요.
조광화 캐릭터의 어떤 면? 너하고 맞는 거?
엄기준 아니 약간…. 일반적이지 않은 걸 좋아해요.
조광화 변…
엄기준 변태…? 찌질한 거? 으하하. 어느 순간부턴가 그쪽 전문이 돼버렸어요.
기자 심각한 작품을 하는 배우를 진지한 배우라고 쳐주는 경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엄기준 그런 생각에 동의 안 해요. 일단 밝은 작품을 좋아하고요. 솔직히, 객석에서 관객들이 공연을 보면서 즐기는 것처럼 저희도 무대 위에서 즐겨요.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베르테르> 같은 작품을 하면서 즐기기는 좀…. 무대 위에서 그럴 수 있는 작품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삼총사>나 <그리스> 같은 작품은 무대 위에서 정말 즐길 수 있단 말이에요. 저는 양쪽 다 좋아요. 남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요. 작품이 유쾌하다고 해서 배우가 유쾌해지는 게 아닌 것처럼 심각한 작품을 하면 진지한 배우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봐요. 저 밑까지 내려가는 어두움과 슬픔을 갖고 있는 작품을 할 때와, <삼총사>보다 더 까부는 작품을 할 때, 각각의 작품에 맞게 연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자 관객들이 하는 말에 영향을 안 받는 편이세요?
엄기준 공연을 할 때 많은 코멘트들이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그 코멘트를 듣기 전에 저와, 제 상대 배우, 연출님, 음악감독님, 안무 선생님, 이렇게 같이 연습을 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가자고 정해진 게 있는데 오늘 처음 공연을 본 관객이 ‘아니 왜 그 방향으로 가요? 이쪽이 맞는 거 같은데?’라고 했을 때, 거기 솔깃해서 그동안 술 먹으며 싸워가면서 만든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배우가 있다면, 저는 오히려 그 배우가 이해가 안 가요. 그건 우리가 그동안 다 함께 작품을 만들어왔던 그 시간을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조광화 그런데 그런 건 있어. 우리가 작품을 같이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아, 이거 중요한데 하면서도 못 건드리고 지나간 걸 관객이 이야기할 때, 그럴 때는 아차, 하면서 다시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지.
엄 그런데 저는 그런 말에 흔들려서 연기를 바꿨다가 고생을 하는 배우들도 보고, 저한테 자문을 구하는 배우들을 많이 봐서….
조광화 아, 그건 그렇지. 공연을 올리고 한 일주일쯤 지나면 배우들이 모니터를 하면서 연기가 바뀌어버려요. 그럼 딴 배우와 호흡이 안 맞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한 열흘째쯤 되면 신경이 예민해져 열을 내고 있어요. 사실 난 모니터를 굉장히 많이 해. 대본을 쓸 때부터 습관이 되어서 그래. 극작 워크숍을 할 때부터 항상 대본을 쓰면 주위 사람들에게 읽히고 어떤지 이야기를 듣는 게 버릇이야. 왜 그렇게 됐나 생각을 해보니까 처음에는 생각 없이 쓴 걸 사람들이 읽고 칭찬을 해주는 게 좋더라고. 그런데 좀 더 지나니까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그러면 오기도 생기고(웃음) 사실 속상할 때도 있는데 실컷 다 들으면서도 응, 그래도 난 내 식대로 할래, 그런 편이야. 그러면서도 왜 모니터를 하냐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다보면 좋은 아이디어를 얻게 될 때가 간혹 있어서, 엄청나게 미끼를 던져서 하나가 간신히 딱 걸릴 때의 그 재미 때문이야.
엄기준 사실 저도 가끔은 봐요. 제가 욕먹고 있는 걸 볼 때도 있고. 그런데 다 읽고 ‘그런가? 아닌 거 같은데?’ 하고 또 바로 돌아가죠.
조광화 배우가 무대 위에 계속 서려면 어찌됐든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해. 기준이 네가 잘하고 있는 거지. 사실 배우라는 게 아무것도 없는 데서 나는 베르테르야, 나는 몬테크리스토야, 라고 믿고 가는 건데 그 믿음이 흔들리면 다 무너져버리는 거니까.
기자 혹시 선생님이 쓴 대본 중에 엄기준 씨를 염두에 둔 작품이 있으세요?
조광화 사실은 아직 완성을 못한 게 하나 있어요. (유)준상이하고 기준이하고 몇몇 같이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반 정도 썼어요. 1막은 조선시대, 2막은 현대. 술에 대한 이야기에요. 조선 시대에 혁명 이후 실세가 된 세도가의 사랑방에서 한 사람이 몇 날 며칠 술을 먹고 있어서 사람들이 걱정이 돼서 들여다보니까 죽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수사를 해보니까 술이 원인인데, 그 술을 마시면 몹시 마음에 맺힌 사람,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보인단 말이죠. 그래서 그 사람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진해서 죽어 가는 건데, 그 술을 현대에서 복원을 한 거예요. 이것도 또 <베르테르>풍이야, 기준아!(웃음) 항상 내 작품은 외로움이라고 할까, 잡지 못하는 뭔가, 영원한 어떤 것을 찾지만 붙잡지 못해서 헤매는 그런 이야기 같아요.
기자 그런데 사실 잡지 못하는 게 좋지 않아요? 잡으면 뭐해요.
엄기준 사랑해야죠.
기자 시간이 더 지나면 당연히 있는 가구 같은 대상이 되고요?
엄기준 다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사랑에 회의적인 사람들의 생각인 거 같아요.
조광화 얼마 전까지는 나도 그랬는데 이제는 잡으면 잘 가꾸고 싶어.
엄기준 남자들에 대해 극단적으로 말하는 게 저 여자를 갖기 위해 온갖 공을 들이다가 막상 갖게 되면 식어버린다는 이야기잖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왜냐면 관계에는 어느 정도 책임감이 따른다고 봐요. 책임감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 자체를 여자들은 싫어하는 것 같지만, 내가 이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어서 노력해서 결혼을 해서 같이 살게 됐다면 거기 대해서 행복해하고 쭉 가는 게 정상이잖아요. 그런데 1~2년이 지나면 식는다, 어느 정도 식는 건 이해를 하겠어요. 하지만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해요. 상대를 위한 노력이 없으면 관계는 끝나는 거예요.
조광화 기준이가 나보다 형 같은데?
기자 건강하고 반듯한 중산층 남자 느낌이 나요.
조광화 퇴폐적일 줄 알았는데 다르죠?
엄기준 저 아는 동생은 형만큼 집시 같은 사람 처음 봤다는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말도 들어요.(웃음)
조광화 그런 사람이 거꾸로 그런 안정된 관계나 가족에 대해서 그리워하지. 그렇게 그리워하지만 아직 몸은 준비가 안 됐을 수도 있고.(웃음) 나도 사실은 그래.
기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한 첫 번째 지침은 아무리 부부고 오래 함께 있어도 결국은 각자인 두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거래요.
엄기준 그 이야기 있잖아요. 아무리 행복한 신혼이어도 잠은 따로 잔다고. 비슷한 말인 거 같은데요. 아무리 사랑하고 끌어안고 잔다고 해도, 우리 이제 자자, 하고 나서 ‘같이’ 잠이 드는 건 아니잖아요. 그거 아닌 상황에서는 모든 걸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사랑이 아닌가 해요. 사랑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건 방치에요.
조광화 야, 너랑 나랑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지금 같은 단계를 지나가고 있는 거 같잖아?(웃음)
기자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더 좋은 작품이 있고 덜 좋은 작품이 있어요?
엄기준 아니 없어요. 진짜. 물론 아주 조금 음, 뭐 그런 게 있긴 하지만 어쨌든 더 좋고 덜 좋고를 떠나서 후회가 남는 작품은 없어요. 말이 좀 다른데, 제 연기에 대한 후회가 있는 작품은 있되, 내가 이 작품을 괜히 했다, 내가 이걸 왜 했을까 하는 작품은 없어요. 왜냐면 저는 그 작품을 통해서 좋은 배우들을 많이 만났고, 그 사람들과 함께 연기를 하면서 많이 배웠으니까요.
조광화 나는 기준이가 나랑 한 작품 말고 무대에서 한 것 중에 제일 좋았던 게 <벽을 뚫는 남자>에요. 사실 그때 ‘에이, 그냥 하지 말지’ 생각을 했거든요. 그 작품은 인생을 좀 살아본 후에 차분하게 해야지, 그렇게 정신없이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닌데 싶었어요. 그랬는데 의외로 기준이하고 잘 맞더라고요. 서민적인 것, 그 소탈함, 일상의 진실 같은 것을 보면서 아, 내가 기준이를 잘못 평가했구나, 그냥 닥치는 대로 작품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살고 있는 거였구나 처음 인정을 하게 했던 작품이에요. 내가 워낙 그런 정서를 좋아하지만 얘의 그 애잔함이… 그 전까지는 그걸 안정되지 않은 미숙한 청년의 것이라고 봤는데 <벽을 뚫는 남자>에서 처음 어른의 느낌으로 왔고 아, 기준이가 이 모습이었구나 싶었어요.
엄기준 그걸 왜 이제 말씀하세요.
조광화 나 원래 남 인정 잘 안 해주잖아.(웃음) 사실 그 정서를 보여줄 나이도 아니고 상황도 아닌 것 같아서 걱정을 했는데, 내 섣부른 판단을 뛰어넘어서 해냈으니까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 너 잘했다 하면 다작을 하는 걸 괜찮다고 인정하는 게 될 거 같았거든. 그때는 그게 찜찜해서 말을 안 했지 싶어.
기자 무리한 스케줄로 무대에 서는 게 무서울 때는 없어요?
엄기준 무섭지 않아요. 선택을 한번 했으면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한번 같이해 보자고 제안을 받을 때도 있고 제가 찾아갈 때도 있죠. 그렇게 대본을 읽고 노래를 들어보고 하기로 하면, 내가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선택한 그 순간부터는 핑계를 대면 안 돼요.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연기도 망가지고 관계도 망가지고 다 망가져요.
조광화 이래서 기준이를 인정하게 된 거죠. 그래서 언제 시간 비워줄 거야? 아까 이야기한 작품…
엄기준 일단 탈고를 하시면…(웃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4호 2011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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