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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LOSE UP] <데스노트> 현실과 판타지의 기묘한 공존 [No.142]

사진제공 | 씨제스컬쳐 정리| 안세영 2015-07-30 5,897

지난 6월, 일본 뮤지컬 <데스노트>가 국내 라이선스 초연을 올렸다. 
일본 공연의 대본과 음악을 그대로 유지했지만, 비주얼 면에서는 변화가 눈에 띈다. 
일본 무대디자이너 후타무라 슈사쿠가 한국 공연을 위해 기존 무대를 손보고, 
연극·뮤지컬·영화에서 두루 활동해 온 의상디자이너 정경희가 새로운 의상을 디자인한 것.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과의 치열한 논의를 거쳐 탄생했다는  <데스노트>의 무대·의상 이야기를 들어봤다.



▶무대디자이너 : 후타무라 슈사쿠             

 빛과 어둠                                          
어떻게 <데스노트>의 세계관을 심플하게 표현하면서,  동시에 원작 만화에 지지 않는 연극적 재미를 줄 수 있을까? 
무대 디자인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처음에 쿠리야마  연출이 요구한 세계는 넓은 노트를 펼친 것처럼  하얀 공간이었다. 

막 열어 본 노트의 첫 페이지처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여기에 인물이 등장하며 이야기가 시작되고, 피의 빨강, 죄의 검정, 달빛의 창백함이 풍경을  물들이다 꿈처럼 사라진다. 

이러한 컨셉을 토대로 하얀 공간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빛과 어둠의 대비를 고려했다. 
그 결과, 중심부의 하얀 세계가 어둠에 에워싸인 지금의 무대가  탄생했다. 

여기에 작품이 지닌 건조하고 경질된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철제 발코니를 설치했다.       

 긴쿄                                         
오케스트라 피트 안에 설치된 특별 무대는 ‘긴쿄(銀橋)’라고 부른다. 
긴쿄를 사용하면 오케스트라 피트에 의해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관객과 배우의 거리가 가까워질 뿐 아니라,  긴쿄 안에서 별도의 장면을 진행할 수 있어 연출 면에서 이점이 많은 무대다. 
일본에서는 극단 다카라즈카에서 많이 사용해 왔다. <데스노트>의 첫 장면은  메인 무대가 아닌 이 긴쿄에서 시작된다. 

긴쿄 위의 공간을 사신계로 설정하여, 관객을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역시 쿠리야마 연출의 아이디어다. 

한국 무대에서는 긴쿄가 하얗게 빛나며  사신계에 한층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의상디자이너 : 정경희           

 현대인의 군상                                   
<데스노트>는 사신의 노트라는 판타지적 소재에서 출발하지만,  알고 보면 현대인의 삶의 패턴을 고스란히 담은 이야기다. 
작품 속에 묘사된 반복적 일상, 무감각한 사람들, 개인의 잣대로  모든 걸 판단하고 파괴하는 행위는 섬뜩하리만치 현실과 닮아 있다.
의상 디자인의 중점은 이 현실성을 살리는 데 있었다.  오늘날 젊은 세대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니, 옷도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요새 젊은 세대의 옷이라는 게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트렌드가 있는 듯  없는 게 요즘의 옷이랄까.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작업 방식을 택했다.  이전까지 배우에게 일방적으로 옷을 만들어 입혔다면, 이번에는  먼저 배우가 입고 싶은 옷의 자료를 보내도록 하여 그것을 적극 수용한 것이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일본에서 쿠리야마 연출이 도착한 뒤에 터졌다. 

알고 보니 쿠리야마 연출은 다양한 현대인의 군상을 담기 위해  거리의 행인에게도 일일이 직업과 나이 등의 디테일한 설정을  부여해 놓았던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앙상블 의상을 디자인한 나는  연출과 함께 한 명 한 명 컨셉을 재조정하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데스노트>의 의상은 이렇듯 많은 이와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탄생했다.       

 미사와 L의 변화                                   
일본 공연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것은 미사와 L의 의상이다. 
10대 아이돌이었던 미사는 한국에서 20대로 설정이 바뀌었는데,  미사 역을 맡은 정선아의 몸매를 살려 바비인형 컨셉의 의상을 제작했다. 
L의 의상도 확 달라졌다. 일본 공연의 L은 원작처럼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지만, 한국 공연의 L은 넓은 통바지를 입는다. 
청바지를 입으면 무릎을 세우고 구부정하게 앉는 L 특유의 자세를  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L 역의 김준수가 먼저 통바지 입기를 희망했고,  그의 제안대로 바지 길이도 (원작의 질질 끌리는 길이 대신)  발목 길이로 짧아졌다. 

여기에 한복 바지의 선을 활용,  L의 다리를 오자형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아주 색다른 L이 탄생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  



 붕대를 감은 사신                                   
가장 품이 많이 든 건 사신의 의상이다.  사신은 나머지 인물과 달리 판타지적 존재라서, 의상을 디자인하는 데  많은 상상력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원작 만화 속 이미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뼈마디를 형상화한 옷을 만들고,  와이어에 다양한 천을 덧대 날개도 달았다.  비싼 천까지 써가며  공을 쏟았는데, 쿠리야마 연출이 보고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젓더라. 

쿠리야마 연출이 그린 여자 사신 렘의 이미지는 ‘300년 전의 미라가  소생한 모습’이었다. 몸을 감싼 천이 뜯어져 부드럽게 나풀대는 모습, 
죄까지도 포근하게 감싸 안는 모습 말이다. 그리하여 시조새 컨셉은  깨지고, 붕대 모양의 의상이 새롭게 제작됐다. 천을 여러 번 빨고 염색해,  낡았지만 하얗고 신비로운 느낌을 내려 했다. 거즈를 30마나 사용했지만 소재 자체가 가벼워서 무겁지 않게 완성됐다. 렘과의 통일성을 위해  남자 사신 류크의 의상도 미라를 컨셉으로 했다.  대신 류크의 옷은 바닥을 뒹굴어 구질구질해진 느낌이다. 그레이와 블루 톤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렘의 의상과는 대조적이다. 

사실 이런 붕대 의상을  만드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때 외국에서 붕대를 몸에 감은 듯한 의상이 유행했는데,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여러 소재의 붕대 의상을  연작해왔다. (그 중 하나가 영화 <역린>에서 자객들이 입는 옷이다.  거즈를 붕대처럼 두른 이 의상은 한 명을 입히는 데 20분이 걸렸다.) 5~6년의 연구 성과가 <데스노트>에서 빛을 본 셈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2호 2015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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