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나은 내일
<유린타운>의 ‘바비 스트롱’으로 처음 대극장 뮤지컬 주연을 꿰찬 정욱진은 싱그러운 미소와 어린 시절부터 다져온 독특한 유머 감각으로 자신만의 인장을 새겨왔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아직 무대에서 보여주지 않은 것이 더 많다.
관객들의 질문에 유난히 긴장한 모습으로 답했던 정욱진의 이야기다.
소년과 청년 사이
THE MUSICAL 바비 스트롱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bobae_k)
정욱진 배우로서의 나를 소년에서 청년으로 이끄는 친구
“제 나이 대에 주로 맡는 배역은 청년이나 소년이거든요. 처음 연기 시작할 때는 소년의 이미지가 강해 소년의 입장에서 연기했는데, ‘바비 스트롱’은 소년으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더라고요. 익숙하고 편했던 것들을 버리고 나니 아무것도 없이 뚝 떨어진 것 같아 힘들었어요. 계속 버텨 보니까 이제 조금 청년의 세계에 이른 것 같아요.”
THE MUSICAL <유린타운>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점과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요? (silverain023)
정욱진 음역대가 많이 넓어진 것 같아 행복해요.
처음에 악보를 받고 음원을 들어봤을 땐 겁이 나고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고음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졌어요. 힘든 부분은 바비가 리더십이 강한 성격인 데 반해, 저는 그렇지 않아서 계속 도전하고 있어요. 공연 중반쯤 왔는데 완벽하진 않지만 계속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 하고요.
“<유린타운> 전까지만 해도 이해 안 되면 정말 못했거든요. 그런데 블랙 코미디란 장르는 배우의 이해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연습 중반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김)승대 형도, 저도 연출님과 굉장히 많은 얘길 했어요. 대본만 보면 이해가 안 되는데 밖에서 극 전체를 보면 그게 또 이해되더라고요. 남은 배우 인생에서 갇혀 살면 안 되겠다는 걸 배운 것 같아요.”
THE MUSICAL 지금 현재 공연 중인 <유린타운>에서 같이 연기하는 배우 중에 캐릭터를 잡는 데 도움 준 분은? (bobae_k)
정욱진 연습 중에는 더블 캐스팅인 승대 형이 가장 큰 도움을 주셨고요. 공연 중에는 클로드웰 역을 맡은 성기윤 선배님과 스트롱 노인 역할의 정수한 선배님이 많은 도움을 주세요.
THE MUSICAL 아이비 배우와의 호흡은 어떤가요? (lccccc)
정욱진 저도 긍정적인 편인데 아이비 누나는 정말 무대 위에서도 그렇고 무대 밖에서도 정말 긍정적인 에너지가 강해요.
옆에 같이 있으면 힘이 나요. 무대 위에서 연기 호흡은 말할 것도 없고 굉장히 좋은 배우 같아요.
THE MUSICAL 끝이 조금은 충격적인데 결말을 처음 접했을 때의 반응이나 느낌은? (silverain023)
정욱진 결말을 처음 봤을 때 한 번에 바로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 대본을 계속 읽었던 것 같아요. 읽었을 때 정말 몇 십 년 있다가 물 부족이 계속 진행되면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 실제로도 물을 아껴 쓰고 있어요.
“<유린타운> 얘기가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게 아니거든요. 유럽 가면 화장실 갈 때 돈 내잖아요. 지금처럼 가뭄이 계속되면 한국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전 물을 아끼고 사랑해요. 많이 마시고. 물은 목에도 좋고, 피부에도 좋아요. 물을 아끼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책 사서 봐야겠어요.”
THE MUSICAL <유린타운>에서 제일 좋아하는 넘버는 무엇인가요? (hsyclick)
정욱진 ‘Run Freedom Run’
다양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THE MUSICAL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dltmf235)
정욱진 일단 대본을 보고 가슴이 뛰는 작품이나 역할을 선택하는 편이에요.
THE MUSICAL <유린타운>은 대부분 원 캐스트잖아요. 요즘은 멀티 캐스팅이 대세인데 원 캐스팅과 멀티 캐스팅 중 어떤 것을 선호하나요? (eeekteen)
정욱진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원 캐스트는 규칙적이기 때문에 굉장히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무대에 그 역할로 매일 살다보면 그 인물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멀티 캐스팅의 장점은 다른 배우들이 하는 걸 보면서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어요. 또 컨디션 관리가 용이해서 원 캐스트보다는 무대에서 더 많은 걸 쏟아 부을 수 있죠.
“원 캐스트로 공연할 때는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공연 전에도 굉장히 노력해요. <유린타운>은 절대 익숙해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짜인 틀이 있지만 열려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래서 뭘 준비해서 공연하는 것보다 인물로서 가져야 하는 굵은 선 하나만 명확히 갖고 하는 게 재밌어요.”
THE MUSICAL <쓰릴 미>를 하고 나면 더 이상 남자한테 뽀뽀 받아도 충격 받지 않는다는데 정말인가요? (mstillhere)
정욱진 네. 제가 며칠 전에 남자랑 사진 찍을 일이 있었는데요. <쓰릴 미> 하기 전에는 남자가 옆에 있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그런 건 많이 없어졌어요. ‘남자도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크크크.
THE MUSICAL 지금까지 한 공연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는? (dltmf235)
정욱진 <원스> 안드레이.
“안드레이는 저와 나이도 비슷하고 외국에서 와서 부모님을 위해 일하잖아요. 저는 외국은 아니지만 지방에서 온 점이 비슷하고. 큰 꿈을 갖고 있다가 좌절한 경험도 많아요. 허리 다친 것도 그랬거든요. 안드레이가 극 중 좌절해서 5분 동안 무대 바닥에 누워있는데 그러면 허리가 아프거든요. 허리 다쳤던 걸 떠올리면서 접점을 찾아가는 거죠.”
THE MUSICAL 성별을 뛰어넘어 혹시 해보고 싶은 여자 배우 역이 있나요? 있다면 이유도 함께요. (reno)
정욱진 전미도 누나의 메피스토?
“미도 누나의 이미지가 전혀 메피스토 같지 않잖아요. 내면에 그런 인물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작품에 출연을 결정했을 것 같아요. 저도 생긴 것만 착하게 생겼거든요. 내 속의 내가 궁금하고. 계속 새로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요?”
THE MUSICAL 다음엔 어떤 장르나 캐릭터의 공연을 하고 싶나요? (mstillhere)
정욱진 이 세상에 정말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캐릭터가 있잖아요. 연기라는 게 일상을 무대로 옮긴 거니까. 조금씩이라도 결이 다른 역할을 보면 가슴이 뛰어요.
“저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역이 많아요. 어떤 역이든 맡으면 그 역이 다 좋아요. 지금까지 했던 역 모두 다 좋거든요. 죽기 전에 어떤 역을 꼭 해봐야 한다는 건 없어요. 하고 싶다고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기대했다가 안 되면 얼마나 상처받겠어요. 오히려 하고 싶은 작품을 정해놓으면 나중에 허탈할 것 같기도 하고요. 안 되면 허탈할 거고, 다 하면 시시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THE MUSICAL 평소엔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인데 무대에 서면 그런 얼굴이 싹 사라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죠? (eeekteen)
정욱진 장난기가 많은 역이면 분장실에도 장난치면서 들어가는데 그런 역할이 많지 않아요.
<쓰릴 미>도 그렇고 <유린타운>도 그렇고 진지한 역할이기 때문에 캐릭터를 계속 생각하다보면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아요. 평상시 웃는 이미지고 스스로도 그런 게 편한데 그걸 버리고 진지한 마음을 갖고 몰입하면 저와 멀어지면서 극 중 인물과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어떤 자리인지, 누굴 만나는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저도 제 안에 너무나도 다양한 제가 있는 거죠. 사람들이 가장 저답다고 믿고 싶어 하는 제 모습이 있겠지만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속에 다양한 또 다른 자신이 있는 것 같아요.”
THE MUSICAL 배우 생활하면서 가장 잊혀지지 않던 순간이 있나요? (dnunb78)
정욱진 크리스마스 때 <완득이> 공연 중이었는데 대학로 일대 전기가 나갔어요. 공연 도중에 조명도, 음향도 다 나가고 마이크도 다 꺼지고 MR(반주)도 꺼졌죠. 그런데 관객 분들이 박수를 쳐주시는 거예요. 그 박자에 맞춰서 끝까지 했던 기억이 있어요.
무대에서 일상으로
THE MUSICAL 항상 웃는 모습이 에너지가 넘쳐 보이는데, 생활의 활력소는 무엇인가요? (jellybean)
정욱진 ‘자전거 타기’였는데 누가 집 앞에 놔둔 자전거를 가져갔어요. 이후로는 음원 사이트에 가입해서 다양한 종류의 음악 듣기, 집에서 악기 연주하기. 박수 받는 공연 자체가 활력소예요.
“피아노는 시골집에만 있고 서울에 없어서 기타를 쳐요. 특히 <원스>를 통해 전혀 다루지도 못했던 악기로 오디션에 합격한거라 즐겨 치고 있어요. 자전거는 <원스> 연습 전에 쉬고 있을 때 시작했어요. 처음엔 10분만 타도 힘들었는데 타다 보니까 두세 시간도 탈 정도로 즐거웠어요. 힘들지만 어딘가를 향해 가는 게 좋아요. <원스> 때는 집과 극장이 가까워서 자전거를 타고 다녔어요. 그러던 중 누가 자전거를 가져갔는데 <원스> 팀에서는 낭만 도둑이라 불렀어요. 제 걸 가져가면서 자기 걸 두고 갔거든요. 그걸 타고 다녔는데 한 달 타고 누가 그것마저 가져갔어요. 그때부턴 자전거 대신 걸어 다녀요. 나중에 다시 타야죠.”
THE MUSICAL <유린타운>에서 바비의 아버지가 겪은 일이 바비 인생의 전환점이 된 시점 같은데 배우님에게도 지금까지 인생에서 전환점이 된 시기가 언젠가요? (hsyclick)
정욱진 2년 전에 허리 다쳤을 때. 그 전에는 욕심이 많고 마음이 급했는데 이제 호흡을 길게 갖게 됐어요.
“고등학교 때 한 번 허리디스크가 있어서 공익을 나왔어요. 나았는데 무거운 것 들다가 또 다쳤죠. 그래서 1년 정도 쉬었어요. 디스크가 있으면 굉장히 절망적이죠. 계속 운동하면서 관리해야 해요. 예전엔 제가 흥이 많아서 술도 많이 먹었지만 이제는 관리해야 하고, 안 하면 큰일 나니까 운동도 꾸준히 할 수밖에 없어요. 허리 디스크는 어떤 면에서는 배우인 저에게 축복인 듯해요.”
THE MUSICAL 자기 계발이나 관리를 위해서 꾸준히 하는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reno)
정욱진 자기 전에 항상 30~60분 정도 마사지를 해요.
<원스> 하면서 뮤지션(?)으로서 생긴 직업병인데 이젠 습관이 됐어요. 너무 좋아요. 여러분도 해보세요! 스트레스도 풀리고 몸도 풀려요.
THE MUSICAL 내일이 더 중요한가요? 오늘이 더 중요한가요?
정욱진 저는 항상 내일을 염두에 두는 스타일인데 <유린타운>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바비는 오늘이거든요. 그래서 바비를 하다 보니까 오늘의 가치도 알게 됐고, 실제로 삶에도 변화가 생겼어요. 그렇지만 아직은 내일이 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THE MUSICAL 배우가 아니었다면 어떤 직업을 했을까요?
정욱진 펀드 매니저가 되고 싶었을 것 같아요
“동사무소에서 공익 근무 요원을 할 때 같이 근무하는 분이 주식을 했어요. 저도 취미로 주식과 경제학에 대해 책도 읽고 공부를 하게 됐어요. 기업의 가치를 보는 거죠. 주식은 인생하고 많이 닮아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착실히 돈 모으고 있어요.”
THE MUSICAL 가장 가고 싶은 해외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정욱진 아프리카요.
“아빠가 원래 동물을 엄청 좋아하세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의 왕국’이나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를 만날 보셨어요. 시그널 들으면 어릴 때 기억이 떠올라서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어요. 덥긴 하겠지만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사자한테 치킨 한 마리 던져주고.”
THE MUSICAL 평소 무대 인사나 프레스콜에서 보면 애교도 많고 팀의 막내로서 귀여움을 많이 받는 것 같은데 귀여움 말고 본인만의 매력이 있다면? (mstillhere)
정욱진 귀여움 빼고 다.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2호 2015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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