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의 여섯 번째 작품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황산』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었다. 작품 배경은 한국 전쟁. 북한군과 한국군이 함께 난파된 무인도에서 탈출하기 위해 가상의 여신님을 만들고 존재하지 않은 여신님으로 인해 변해 간다는 내용이다.
6.25 전쟁이 한창 중인 시점, 영범이 북한군 포로 이송 중 배가 파도에 휩쓸려 무인도에 난파한다. 영범과 한국군은 북한군에 포로가 되는 역전된 상황에 처한다. 배를 수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북한군 류순호, 그러나 그는 제정신이 아니다. 부하인 석구의 총살을 면하기 위해 배 수리공이라고 거짓말을 한 영범은 순호에게 섬에 여신님이 있다고 속여 배를 고치게 만든다. 북한군도 여신님 프로젝트에 동참하는데 각자의 여신님을 떠올리며 점점 변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전쟁 중 평화를 유지하는 무인도, 여신님의 생일 파티를 위해 터뜨린 수류탄으로 정찰선이 찾아오고 이들은 한편이 되어 정찰선과 싸운다. 전쟁, 남북 분단의 소재를 발랄하게 다루고 노는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한정석 작가와 이선영 작곡가에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프로필을 보니 콘서트 구성작가 이력이 많다. 뮤지컬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한정석 아르바이트로 했던 거다. 프롬프터로 시작해서 가사들을 옮기는 작업을 많이 했다. 가사를 곱씹으면서 내가 노래 가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고 가사에 매력을 느꼈다. 중앙대 공모전에 당선이 돼서 뮤지컬 창작 과정인 ‘연필과 지우개’에 무료 수강할 수 있었다. 방송작가 교육원에서 드라마 수업도 듣고, 영화사에서 시나리오나 시놉시스 쓰는 것도 익혔다. 지금은 콘텐츠진흥원에서 유아용 콘텐츠 작업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뮤지컬 음악 조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이선영 ‘연필과 지우개’로 뮤지컬 공부를 시작했다. 원래 방송 음악을 했는데 그때 양주인 음악감독이 <라비다> 음악 조감독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그때 이후로 양주인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음악 조감독 역할을 많이 해서인지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음악이 드라마틱하다.
이선영 (뮤지컬 작곡을 하는데) 음악만 공부해서는 부족하지 않나. 드라마도 알아야 하고 배우의 호흡도 알아야 하는데 현장에서 많이 배웠다. 연출님이 지도하실 때 옆에서 지켜보면서 메모도 해놓고 배우려고 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나오는 코믹한 언어 감각이 뛰어나다.
한정석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데 글로는 그런 거 좋아한다. 원체 재밌는 것이나 언어유희를 좋아하고 진지하고 엄숙한 걸 못 견디는 편이다. 의식적으로 풀어주려고 한다. 그래서 작품들도 유쾌함 속에 좋은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나 <빌리 엘리어트> 같은 좋은 작품을 보면 좋은 기운을 얻는데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 유머를 담고 있으면서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어떤 작품들을 좋아하는가?
이선영 나도 <맨 오브 라만차>처럼 삶으로 돌아왔을 때 원동력이 되고 꿈꿀 수 있는 작품들이 좋다. 스팅 콘서트를 봤는데 음악적 장르나 한계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 한국인들은 되게 억압되어 있는 거 같다. 음악 할 때조차 예술인데도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고 눈치를 본다. 뮤지컬을 하면서 나만의 음악을 개발하고 싶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영화 음악을 하지만 자신의 음반을 지속적으로 발표하지 않나. 음반 작업을 통해 나만의 색깔을 개발하고 그것을 뮤지컬에 담고 싶다.
캐릭터가 분명하고 입체적이어서 드라마가 잘 전달됐다.
한정석 여신이 우리에겐 생뚱맞은 개념인데 그것을 가져오는 인물이 영범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도 참고했는데 거기 주인공보다는 현실감이 있고 잔머리도 잘 굴리며 뺀질거리면서 말은 청산유수인 인물이다. 이런 영범이 여신이라는 가상의 신을 만들어도 어색하지 않겠구나 싶었다. 영범이 군인이지만 군인답지 않은 인물이라면 창섭은 군인다운 군인이다. 창섭이 여신을 만나 군인의 엄격함이 무너졌을 때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순호는 미친 것이 아니라 선을 지향하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
음악적으로도 캐릭터들이 잘 드러났다.
이선영 오프닝 곡 ‘누구를 위해 우리는 지금’은 합창으로 부르는데 각각 솔로 부분이 있다. 곡의 모티프는 똑같지만 캐릭터에 맞게 다른 화음과 반주로 연주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창섭에게는 저음을 주었다. 음역대도 낮추고 반주도 빼고 베이스와 드럼 정도로만 표현했다. 동현은 목표 의식이 가장 뚜렷한 인물이다. 그래서 기본 멜로디에 충실하려고 했다. 영범은 음악 색깔을 확 바꿔서 다들 심각한 분위기인데 혼자만 이 상황을 감지하지 못하는 느낌을 주려 했다. 실로폰을 이용해 재밌게 표현해보았다.
‘나는 울지 않는다’나 ‘그대가 보시기에’ 같은 곡에서 낙천적인 영범과 순수한 순호의 성격이 잘 드러났다.
이선영 오프닝 곡은 배 위에서 벌어지는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니 스펙터클하게 가고 무인도에 왔을 때 파도 소리나 갈매기 소리가 느껴지도록 대비를 주려고 했다. 다음 곡으로 아이엠송(I Am Song 인물의 캐릭터나 상황을 설명해주는 노래)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이미 오프닝에서 영범의 성격은 어느 정도 보여주었고 재밌는 성격을 드러내려고 보니 그가 처한 상황이 죽기 일보 직전이다. 그래서 자기는 진지하게 부르지만 관객들이 보기에는 웃기게 보이도록 하려고 했다.
드라마의 구조를 보면 가상의 여신을 통해 남북군이 서로 화합하고 정찰선의 등장으로 새로운 반전을 맞게 된다. 첫 번째 구성점은 ‘여신의 등장’인데 굉장히 늦은 구성점으로 설정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중간 발전 과정이 빨래하는 두 장면으로 매우 짧게 나타난다.
한정석 시간이 부족했다. 앞부분에 집중하다 보니까 중간 부분과 뒷부분이 급하게 마무리됐다. 여신의 존재가 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노래와 맞물려서 보여주려고 하는데 다 솔로 곡을 줄 수도 없고 너무 도식적이지도 않으면서 사연들이 엇갈려서 나오게 하고 싶었다. 리딩 공연에서는 밝게만 보여줬는데 중간 과정에서 현실적인 부분을 놓지 않고 긴장을 유지한다. 여신을 만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장면이 빠졌다. 동현이 그런 것을 설명해줄 수 있는 인물이다. 동현만 여신이 없는 인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배를 고장 내기도 한다.
두 번째 구성점으로 정찰선을 등장시켰다. 어떤 역할을 하기를 바랐나.
한정석 돌아가려는 사람과 남으려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 생긴다. 서로 갈등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여신님의 생일 파티가 열리는데 그때 수류탄으로 폭죽을 터트리다가 정찰선에 발각되는 것이다. 정찰선은 이들의 마지막 시련으로 설정했다. 정찰선의 등장으로 순호를 보호하면서 다시 힘을 합쳐 싸우게 된다. 순호는 원래 미친 척을 한 것이지 실제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다. 실제 여신을 믿지 않는데 ‘보여주세요’란 곡에서 순호의 내면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여신, 즉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이 밖에서 싸우고 있는 동료임을 깨닫고 함께 싸우는 것으로 설정했다.
여신이란 가상의 어떤 존재를 통해 내가 달라진다는 설정이 매력적이다. 그런데 마지막 정찰선 장면은 지금까지 이끌어왔던 모티프를 충분히 증폭시키지 못한 느낌을 준다.
한정석 처음에 여신을 거창한 존재로 시작하지만 여신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지면서 나에게 소중한 직접적인 인물로 변하도록 하려고 했다.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으로 이루어졌다.
이선영 동요도 있고, 어둡거나 리드미컬한 음악도 있고, 팝적인 것도 있고 다양하긴 한데 톤이 많이 다르지는 않다고 본다. 그 상황과 캐릭터가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자는 생각도 있었다. 이 작품은 다양하고 입체적인 음악을 써보자는 의도였다. 통통 튀고 생뚱맞으면서 언밸런스하면서도 어우러지는 음악을 해보려고 했다.
무대에 대해서 고민한 것이 있는가?
한정석 중극장 충무아트홀 블랙 같은 원형 무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 부분은 연출적으로 처리하고 웬만하면 섬 원 세트로 가려고 한다. 섬의 계곡이나 절벽 아래 등등 섬의 주변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다. 섬에서 싸우기도 하지만 휴양을 왔나 싶을 정도로 풍경 자체가 상큼하고 예뻤으면 좋겠다.
* CJ아지트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는 신인 뮤지컬 창작자에게 작품 개발을 돕고 작품의 가능성을 선보일 리딩(Reading) 공연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리딩 하이라이트 공연은 더뮤지컬 홈페이지(www.themusical.co.kr) 멀티미디어 섹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3호 2011년 6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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