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인생에서 중앙에 위치한 중년(中年, Midlife). 중년은 어떤 의미일까? 누구에게는 그저 노년으로 넘어가는 길목, 즉 삶이 종착지를 향해 간다는 의미일 수 있다. 또 다른 이들에게는 인생의 절정 혹은 클라이맥스, 즉 가장 화려하고 행복할 수 있는 시기일 수 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엘리엇 자크(Elliot Jaques)는 중년을 ‘위기’라고 표현했다. 청년 시절에는 삶의 목표가 있고,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며, 기회를 살릴 수 있는 몸의 힘과 마음의 깡이 있다. 하지만 중년이 되니 그동안 추구했던 삶의 목표도 흔들리며, 목표가 있다손 쳐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기회가 주어져도 감당할 만한 힘과 깡이 없다. 심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약해지는 시기다. 특히 피라미드 형태의 조직에서 중년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마땅치 않아 도태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나 노후를 위해 나가야 할 지출은 많지만, 수입은 한정되거나 감소된다. 중년의 삶을 위기로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중년의 우울증이 증가한다는 뉴스가 낯설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일 테다.
이와 달리 중년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Jung)은 중년을 자기실현의 기회라고 보았다. 청년 시절에는 에너지가 외부로 향했다. 사회의 관습이나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며, 특히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외모를 가꾸는 데 온 정신이 팔려 있다. 게다가 충동적이기까지 해서 ‘육체적 인간’이란 표현이 잘 어울린다. 반면 중년은 정신 에너지가 내부를 향해서 타인보다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몸의 아름다움보다는 마음의 아름다움과 인류가 그동안 쌓은 문화나 예술에 관심을 가지기도 할뿐더러, 정말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하는 소위 정신적 인간으로 변모한다고 융은 말한다.
중년은 이처럼 위기가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많은 중년들은 위기와 기회 사이에서 방황하는지도 모르겠다. <쿠거>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쿠거 바를 운영하면서 어떻게든 젊은 남자와 엮이기를 원하는 메리-마리, 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이혼 서류였던 가정주부 릴리, 결혼 따위에 인생을 담보 잡힐 수 없다며 독신을 고집하는 방송국 PD 클래리티.
메리-마리는 일찍이 아들로부터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의를 얻어서 아들뻘의 남자를 만나려고 애쓴다. 끊임없는 구애를 펼치는 동갑의 중년 남성을 외면하고 많은 연하남을 만나지만 결국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쓰라림뿐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연하남과의 쾌락적 관계가 아니라,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중년 남성과 사랑을 받아들인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릴리는 쿠거 바의 바텐더 벅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서로를 존중하는 사랑을 하게 된다. 릴리와의 사랑을 통해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이 변호사였다는 것을 깨달은 벅은 릴리에게 동행을 제안하지만, 릴리는 벅을 놓아주면서 자신의 내면에 감춰왔던 배우라는 꿈을 향해 도전하게 된다. 연하남을 유혹하는 중년 여성들의 삶을 비판하기 위해 쿠거 바에 들어온 클래리티는 자신이 꿈꾸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쿠거가 사회의 어두운 측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남녀 관계임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세 명의 중년 여성은 분명 위기에서 출발했다. 겉모습도 표현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실은 중년만이 겪어야 하는 좌절과 고통을 겪게 됐다. 그러나 그들은 내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결국 세 명 모두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삶을 찾게 되었다. 무엇이 세 명의 중년 여성을 위기에서 기회로 끌어주었을까? 그 힘은 내면에 있었다.
믿어요 진정한 용기는 바로 당신 안에 있어
당신 안에 있는 그 두려움들 이젠 떠나보내고
삶의 순간순간을 놓치지마 아직 끝난 건
아니야
들어봐요 당신의 목소리를
결국 당신이 사랑이죠
내면에 그 힘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중년을 위기에서 기회로 바꾸는 것은 아니다. 내면의 힘을 현실화시키려면 세 명의 중년처럼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게 된다. 만약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면,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중년을 위기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중년을 새로운 삶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긍정(Yes)’이다.
밀려드는 상실감에 치를 떨 때
세상에 나 혼자라 느낄 때
포기하지마, 끝까지 버텨
더 좋은 날이 올 테니까 Say Yes!
이젠 외칠 수 있어 Yes! 두려울 것 없어 Yes!
중년, 당신에게는 위기인가 기회인가? 내리막길인가 인생의 절정인가? 내면의 힘을 믿고 시작해 보자. 그리고 상당한 좌절과 시행착오 속에서 끊임없이 Yes라고 말해 보자. 분명 당신에게 중년은 위기가 아닌 기회, 내리막길이 아닌 절정으로 빛날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1호 2015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