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성서 속 인물인 예수를 현대의 록스타에 빗댄 발칙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초연 이후 4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작품은 프로덕션마다 연출의 다양성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언제나 현대적이고 신선한 매력을 유지해왔다.
이 같은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동안 세 번에 걸쳐 제작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영상화 버전을 살펴보는 것이다.
1973년, 2000년, 2012년에 각각 다른 형식으로 촬영된 작품은 저마다 다른 개성을 뽐낸다.
1973년, 이스라엘에서 촬영된 영화
브로드웨이에서 초연 2년 만에 제작된 영화판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뮤지컬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감독이기도 한 노만 주이슨이 메가폰을 잡고, 전문 뮤지컬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 예수 역에 테드 닐리, 유다 역에 칼 앤더슨, 마리아 역에 이본느 엘리먼이 출연했다.
영화는 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히피 청년들이 사막에서 <지저스 크라이스 수퍼스타>를 공연한다는 독특한 컨셉을 갖고 있다. 사막에 도착한 청년들은 분주하게 공연 소품을 챙기고, 그 속에서 의상을 갈아입은 예수가 등장하면 본격적인 극이 시작된다. 제작진은 실제로 이스라엘 및 중동 지역에서 야외 촬영을 실행했다. 사막과 바위산, 폐허가 된 유적 등 거칠고 황량한 이스라엘의 풍경은 고뇌에 빠진 인물들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대변한다. 사실적인 배경 공간과 반대로 의상과 소품에서는 탈시대성을 느낄 수 있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아프로헤어에 나팔바지 차림으로 춤을 추고, 로마군은 헬멧에 기관총을 들고 있다. 시장판으로 변한 예루살렘에는 관광 엽서와 전자제품, 각종 무기까지 등장한다. 유다의 배신 장면에서는 그의 뒤를 쫓아오는 거대한 탱크가 궁지에 몰린 유다의 심경을 표현해준다. 헤롯은 영화에서도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는 호숫가에 누워 수영복 차림으로 예수를 맞는데, 호숫가라는 배경 덕분에 ‘내 수영장 위를 걸어봐’라며 조롱하는 가사가 무대에서보다 살아난다. 영화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예수 외의 나머지 인물이 공연을 마친 배우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2000년,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영상
2000년에는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을 실내 스튜디오로 옮겨 촬영한 TV 방송용 영상이 제작됐다. 공연의 연출을 담당했던 게일 에드워즈가 감독을 맡고, 예수 역에 글렌 카터, 유다 역에 제롬 프라동, 마리아 역에 르네 캐슬이 출연했다.
세트와 의상, 편곡, 배우 모두 실제 리바이벌 공연과 동일하게 연출된 2000년도 영상은 1973년도 영화보다 훨씬 모던하고도 과격한 분위기다. 콘크리트 벽과 기둥으로 이뤄진 단순한 무대 세트에는 혁명과 자유를 외치는 그래피티가 가득하다. 머리를 삐죽하게 세우고 찢어진 청바지와 가죽 점퍼를 걸친 사도들은 열정적인 록 마니아의 모습이다. 반면 예수와 대립하는 제사장 및 빌라도는 검은 제복을 입은 파시스트처럼 묘사됐다. 사도들은 진압봉을 든 로마군과 난투극까지 벌이며 날선 대립을 보이는데, 이때 예수에게도 총을 건네며 로마와 싸울 것을 종용한다. 이처럼 다른 이상을 꿈꾸는 제자들 사이에서 예수가 느끼는 고독과 회의는 더 크게 부각된다. 이 밖에도 2000년에는 여러 장면에서 현대 사회를 풍자하는 연출이 가미됐다. 예루살렘은 스트리퍼와 마약상, 도박꾼이 판치는 환락가로 변했고, 십자가를 진 예수 앞에는 그 모습을 촬영하려는 카메라맨이 몰려든다. 스타에게 열광하다가도 금방 돌아서고, 자극만을 쫓는 군중의 맹목성과 폭력성이 잘 드러난 버전으로, 2000년대 이후 공연된 전 세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프로덕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2012년, 아레나 투어 공연 실황
2012년 웨스트엔드 초연 40주년을 기념하여 진행된 아레나 투어 공연의 실황이다. 이 투어 공연을 앞두고 예수 역을 뽑기 위해 기성 가수를 대상으로 한 TV 오디션쇼 ‘Superstar’를 진행했는데, 여기서 벤 포스터가 역할을 따냈다. 이때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 멜라니 C(Melanie Chisholm)는 마리아 역으로 참여했고, 뮤지컬 <마틸다>의 작사·작곡가로 유명한 팀 민친이 유다 역을 맡았다.
공연은 2만 5천 석 규모의 야외무대에서 진행됐는데, 이에 맞춰 대형 스크린을 활용한 스펙터클한 연출을 선보였다. 이렇다 할 세트가 없는 계단식 무대에서 영상은 배경 또는 전광판으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오프닝에서 불안한 세계 정세를 보여주는 뉴스 영상은 곧 월가 시위를 연상시키는 군중과 경찰의 격투로 이어진다. 핸드폰과 태블릿 PC를 든 사도들이 ‘What's the Buzz’를 노래할 때면, 예수의 사진과 설교 내용을 담은 SNS 글이 화면 위로 마구 튀어 오른다. 조연급 캐릭터의 파격적인 재해석도 화제가 됐다. 레게 머리에 스모키 화장을 한 마리아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돈을 주고 유다를 회유하는 제사장들은 멋진 슈트 차림의 자본가이고, 예수에게 능력을 보이라고 독촉하는 헤롯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쇼호스트다. 재판장 빌라도는 자기 관할지 출신이 아닌 예수에게 무관심을 드러내며 그 앞에서 팔굽혀펴기 운동을 하기도 한다. 이전 버전의 빌라도들이 불안한 꿈이나 양심의 가책 때문에 예수를 헤롯에게 떠넘겼다면, 2012년 빌라도는 훨씬 사무적이다. 동시대성과 현실성을 최대로 끌어올린 투어 버전은 필연적으로 가장 성스럽지 않은 버전이 됐다.
1973년, 자포네스크 버전
일본 극단 시키는 ‘자포네스크 버전(1973년 초연)’과 ‘예루살렘 버전(1976년 초연)’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다른 연출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공연하고 있다. 무대 바닥에 흙을 깔아 이스라엘의 황야를 표현한 ‘예루살렘 버전’은 리얼리즘의 미를 극한까지 추구한 버전. 반면 ‘자포네스크 버전’은 극의 배경을 일본으로 옮겨 표현주의적인 무대를 보여준다.
‘자포네스크 버전’의 무대는 무기질적인 백색의 공간이다. 새하얀 경사 무대에는 아무런 세트도 놓여있지 않지만, 자유자재로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다섯 대의 대형 수레가 오가며 다이나믹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배우들도 가부키풍으로 얼굴을 새하얗게 칠하고 등장한다. 의상은 모두 화이트 진을 기본으로 하고, 역할에 따라 일본 전통 복식과 1960년대 히피 스타일이 뒤섞인 상의를 입는다. 가장 인상적인 옷차림의 인물은 역시 헤롯. 그는 인력거를 타고 두 명의 기모노 여인을 대동한 채 등장하는데, 야쿠자처럼 화려한 문신으로 뒤덮인 상반신에 히피 스타일의 코트를 걸쳐 시선을 사로잡는다. 몇몇 뮤지컬 넘버는 일본의 전통악기인 샤미센과 대나무 피리 소리를 넣어 새롭게 편곡했다. ‘자포네스크 버전’은 그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재공연되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1호 2015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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