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TRAVEL] <데스노트> 일본 초연 무대를 만나다 [No.140]

글 | 안세영 사진제공 | 호리프로 2015-06-17 6,457

이름이 적히면 죽는 노트라는  독특한 소재의 일본 만화 <데스노트>가 현지에서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4월 6일부터 29일까지 도쿄 닛세이 극장에서  초연한 <데스노트>는 6월 국내 라이선스  공연을 앞두고 있다. 

홍광호, 김준수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한국판 <데스노트>의 개막에 앞서  일본의 오리지널 무대를 만나보았다. 



화제의 원작과 글로벌 제작진
뮤지컬의 원작은 2003년부터 슈에이샤 『주간소년 점프』에 연재된 만화 <데스노트>(작 오바 츠구미, 작화 오바타 타케시). 우연히 사신의 노트를 주워 범죄자를 처단하는 ‘키라(Killer)’가 된 고교생 라이토와, 그에 맞서는 탐정 L의 두뇌 싸움이 스토리의 주축을 이룬다. 신선한 소재와 탄탄한 전개, 매력적인 캐릭터로 일본에서만 3천만 부 이상 발행되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35개국에 번역된 히트작이다.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올 7월에는 TV 드라마 방영도 앞두고 있다.
<데스노트>의 뮤지컬화에는 글로벌한 제작진이 투입됐다. 먼저 일본의 대표적인 뮤지컬 제작사 ‘호리프로’가 제작에 나서고, 신국립극장 예술감독을 역임한 쿠리야마 타미야가 연출을 맡았다. 쿠리야마 타미야는 인물의 심리를 예리하게 꿰뚫는 연출로 관객과 배우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일본 공연계의 거장. 국내에서도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 뮤지컬 <쓰릴 미>를 연출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음악은 <지킬 앤 하이드>, <몬테크리스토>, <황태자 루돌프>, <보니 앤 클라이드>, <카르멘>, <스칼렛 핌퍼넬> 등으로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프랭크 와일드혼이 맡았다. 여기에 <보니 앤 클라이드>의 이반 멘첼이 각본을, <몬테크리스토>, <카르멘>의 잭 머피가 작사를 맡아, 세 사람의 호흡에 다시 한 번 이목이 집중됐다. 



추리물의 재미, 라이토와 L
뮤지컬 <데스노트>는 추리물, 미스터리, 스릴러, 판타지, 남자 배우 간의 심리전 같은 최근 국내 뮤지컬의 흥행코드를 골고루 내포하고 있다. 물론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라이토와 L이 벌이는 치열한 두뇌 싸움이다. 뮤지컬은 열두 권짜리 원작 만화를 두 시간 30여 분의 무대로 압축시키기 위해, 만화의 1부에 해당하는 두 인물의 대결에만 초점을 맞췄다. 원작에서 중요한 사건 몇 가지만을 끌어오면서도, L이 단서를 모아 키라의 정체를 추리해가는 과정이나 라이토가 기발한 방법으로 그 포위망을 벗어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아낸다. 원작을 모르는 관객이라도 극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둘의 갈등은 상반된 캐릭터로 인해 극대화된다. 데스노트로 법을 대신해 정의를 행하던 라이토는 점차 광기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신으로 착각하기에 이르는데, 그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연기하는 것이 관건이다. 가족들 앞에서는 이상적인 아들이자 오빠로 이중적인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라이토 역의 우라이 켄지는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만화에서 완벽한 우등생인 라이토와 괴짜 탐정 L이라는 상반된 두 천재의 대결이 매력 포인트였다면, 뮤지컬에서는 라이토가 다소 평범하게 표현되면서 그 대비가 강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코이케 텟페이가 연기한 L은 헝클어진 머리와 짙은 다크써클, 구부정한 등까지 외형적으로 만화와 매우 흡사한 모습을 보여줬다. 무릎을 세우고 앉는 독특한 포즈라든가, 바지춤에 손을 꼽고 느릿느릿 걷는 모습은 무대 위에서 단연 돋보였다. 다만 원작의 L에게 속을 알기 힘든 엉뚱한 면이 있었다면,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노래하는 뮤지컬의 L은 좀 더 진지하고 무거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라이토와 L은 2막 전까지 서로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맞부딪히는 장면이 별로 없다. 하지만 설정상 다른 공간에 있어도 무대 위에서는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등 뮤지컬적인 연출이 적절히 활용됐다. 두 인물이 직접 대면하는 장면은 2막에 가서야 볼 수 있다. 그중 백미는 서로의 속내를 염탐하며 벌이는 테니스 시합. 각자의 공간에서 두뇌 싸움만 펼치던 인물들이 몸으로 맞붙는 테니스 신은 안무가 거의 없는 이 작품에서 가장 역동적인 장면에 해당한다. 두 배우는 공 없이 몸짓과 소리만으로 테니스를 재현하는데, 이때 느림보 L이 뜻밖의 날랜 몸놀림을 선보여 팽팽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판타지의 결합, 류크와 렘
뮤지컬에서 라이토와 L 못지않게 중요한 인물은 사신 류크와 렘이다. 남자 사신 류크와 여자 사신 렘은 그들이 입고 있는 흑백의 의상만큼이나 대조적인 캐릭터다. 류크가 인간적이고 능청스럽고 동적이라면, 렘은 비인간적이고 냉정하고 정적이다. 인간계를 내려다보면서도 류크는 ‘희극’이라고 노래하는 반면, 렘은 ‘비극’이라고 노래할 만큼 성격이 판이하다. 
사신계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류크는 고의적으로 데스노트를 떨어뜨려 인간계로 온다. 그리고 라이토 곁에서 데스노트로 인해 벌어지는 온갖 사건을 방관하며 즐긴다. 류크 역의 요시다 코타로는 연륜에서 우러나는 여유롭고 익살스런 연기로, 사신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극에 활력을 부여했다. 그러나 친근했던 그가 사신답게 돌변하는 순간, 그 섬뜩함은 배가 된다. 극의 시작과 끝을 쥐고 있으며, 무대 위에서 인간을 관망할 때가 많아, 류크의 비중은 라이토, L과 함께 쓰리 톱을 이룬다. 
한편 렘은 규칙을 어기고 인간을 돕다 죽은 다른 사신의 노트를 쫓아 인간계로 내려온다. 두 번째 데스노트의 주인이 된 미사는 키라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아이돌 가수. 처음에 사랑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던 렘도 키라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미사의 순수함에 감화돼 점차 인간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극 중에서 렘이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고문당하는 미사의 발등에 키스하는 장면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본떠 연출됐다. 렘이 미사를 통해 사랑을 발견하고 변해가는 모습을 담은 장면이다.
류크가 느끼는 지루함과 렘이 느끼는 사랑은 결말에서 라이토와 L, 둘의 승패를 가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두 인물의 두뇌 싸움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결국 사신에 의해 결말이 좌우된다는 사실이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허무함이 뮤지컬만의 주제의식을 드러내준다.



풍성한 음악, 단순한 무대
프랭크 와일드혼은 전반적으로 <데스노트>의 냉혹하고 기괴한 세계에 어울리는 빠르고 비장한 음악을 선보였다. 최근 시대극에서 선보인 클래식하고 서정적인 곡들과는 차별화된 느낌이다. 하지만 한 가지 스타일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주인공 라이토가 부르는 메인 뮤지컬 넘버 ‘데스노트’는 그가 데스노트의 힘을 알게 된 순간부터 살인의 순간마다 리프라이즈되는 곡이다. 이 곡은 오히려 라이토가 느끼는 벅찬 기대와 설렘에 이입해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율로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잔혹한 상황과 괴리된 라이토의 자아도취가 음악을 통해 효과적인 대비를 이룬다. 앙상블도 중요하게 활용됐다. 유괴 뉴스가 흘러나와도 각자의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랑곳하지 않는 군중의 모습은 현실의 무심한 세태를 반영한다. 그랬던 군중이 키라의 등장에는 열광적으로 반응한다. 키라를 연호하는 군중의 섬뜩한 합창은 극 전반에 걸쳐 삽입돼 있다. 라이토와 L이 죽기 살기로 테니스를 치며 노래하는 장면에서도 둘을 바라보는 군중의 모습이 그저 스포츠를 감상하듯 태평한 것은 상징적이다. 이밖에도 아이돌 가수인 미사가 키라에게 바치는 댄스곡을 선보이는 등 역할에 따라 다채로운 음악을 들려준다. 
풍성한 음악과 반대로 무대는 단순하고 무기질적이다. 철골 구조와 회전 무대가 전부인 텅 빈 무대를 채우는 것은 조명과 영상. TV 뉴스, 노트에 적힌 이름, 이름이 적힌 사람이 사망하기까지의 40초 카운트 등이 무대 뒷면에 영상으로 구현된다. 무대는 오케스트라 피트석 앞까지 확장하여, 피트석 안에서 사신이 등장하거나, 피트석을 사이에 두고 라이토와 L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명은 라이토(Light)라는 이름의 상징적 의미를 가시화한다. L이 라이토의 정체를 알고 이름을 부르는 순간 어두운 무대에 빛이 켜지고, 라이토가 쓰러지는 순간 다시 그 빛이 꺼지는 연출은 단순하지만 인상적이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국내에서도 레플리카 형식으로 공연된다. 대본, 음악, 무대, 동선 등이 대부분 유지되며, 의상에만 약간의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라이토는 홍광호, L은 김준수, 미사는 정선아, 렘은 박혜나, 류크는 강홍석이 연기한다. 미사는 한국 캐스팅에 맞춰 10대 아이돌에서 20대 디바로 설정이 바뀐다. 한국 공연에서도 연출을 맡는 쿠리야마 타미야는 “같은 무대도 배우가 어떻게 표현해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한국 출연진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연습실이라는, 마치 실험실과도 같은 공간에서 배우들과 부딪히며, 그때그때의 감정과 움직임을 끌어내고 싶다. 어쩌면 L과 라이토처럼 나와 배우들도 심리전을 펼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데스노트>는 일본 공연의 복제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만의 작품이 만들어지리라 기대한다.”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이 말하는 <데스노트>의 네 가지 키워드                
 (*프로그램 북과 간담회 내용을 바탕으로 함.) 



 지루함            
원작 만화는 연출을 맡은 후에 접했는데, 독특한 소재와 속도감 있는 전개 못지않게 인상 깊었던 것이 제1화에 붙여진 ‘지루함’이라는 제목이다. 1화는 변화라곤 없는 사신계에 질린 류크가 인간계에 데스노트를 떨어트린다는 내용이다. 나는 이 ‘지루함’이라는 단어가 연재가 시작될 당시인 21세기 초 도쿄의 평온하고 공허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세계 유수의 대도시 도쿄에서 생활하던 중산 계급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특별히 부족함도 자극도 없는 지루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뚜렷한 동기 없는 범죄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우수한 학업 능력까지 갖춘 <데스노트>의 주인공 라이토도 일상생활에 지루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노트를 주은 그는 게임을 하듯 거리낌 없이 일상에서 범죄의 세계로 미끄러진다. 생명을 경시하고 무책임하게 파괴하는 행위는 이 세상에 ‘조용한 광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초침 소리                 
내 연출의 첫걸음은 작품 속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만화를 읽으며 맨 처음 들렸던 소리는 ‘째깍째깍’하는 시계의 초침소리다.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40초 안에 죽는 것이 규칙. 이 짧은 시간 속에서 행동에 대한 생각이나 검증은 불가능하다. <모모>의 작가 미하엘 엔데는 이런 말을 했다.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은 시간의 전쟁이다.’ 갈수록 불가해와 부조리가 지배하는 세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를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대인은 충분한 생각이나 검증을 거치지 않고 결론과 정답만 얻어내려 하는 병을 갖고 있다. 쉽게 얻은 정답은 당장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근본적인 불안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거기에 흐르고 있는 것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죽음을 기다리면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제자리걸음의 시간이다. 초침은 그 제자리걸음의 시간을 카운트하고 있는 것이다. 

 허무            
결말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사신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원작의 큰 틀을 그대로 따른다. 현실에 팽배해 있는 부조리한 범죄처럼 무대 위의 드라마도 부조리한 끝을 맞는다. ‘아무 의미도 없어, 아무것도 남지 않아, 이런 게 제일 재미없어’라는 류크의 마지막 대사에는 허무가 담겨 있다. 1950년대에 발표된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키워드는 기다림이었다. 그 시대는 기다리면 언젠가 행복, 풍요, 평화가 찾아오리라고 믿는 시대였다. 그런데 21세기의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야 할지조차 모르는 시대에 와 있다. <데스노트>의 무대는 이러한 현대 사회를 대변한다. 하지만 뮤지컬이니 만큼, 끝에는 구원의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다. 마지막 곡인 레퀴엠은 원래 대본에 없던 것을 내가 프랭크 와일드혼에게 부탁하여 추가한 것이다. 레퀴엠을 통해 범죄를 저지른 소년을 구원하겠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럼에도 태양은 뜨고, 바람은 불고, 세계는 돌아가는 것처럼 이 또한 인간 역사의 편린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백지            
데스노트의 표지는 검정색이다. 하지만 막이 올라갔을 때 보이는 세트는 펼친 노트의 첫 페이지처럼 하얀 공간이다.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은 하얀 세계에 등장인물이 나타나고, 음악이 흐르고, 여러 색채의 풍경이 채워졌다 꿈처럼 사라진다. 모든 것이 지나간 후 다시 만나게 되는 아무것도 없는 풍경. 무대는 정답 따위 없는 잔혹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0호 2015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