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차 배우 서영주는 무대에 선 지난 세월을 이렇게 소회했다.
“인생의 그래프가 항상 상승 곡선을 그리면 좋겠지만, 그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아등바등하지 않고 물이 흐르는 대로 제 자신을
맡겨야 하는 것 같아요.” 제2의 전성기라는 말에 현혹되지 않고 앞으로도 평생 무대에 설 것이라는 그의 인생을 돌아보자.
회한과 애증 <명성황후>
“제 인생의 작품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초연부터 참여한 <명성황후>가 제일 먼저 떠올라요. 초연 당시 고종의 언더스터디로 시작해 앙코르 공연에서 고종을 맡게 됐는데,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못했어요. 자괴감에 매일 무대에 오르는 게 힘들었죠. 결국 다음 시즌에선 다른 역을 맡게 됐고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종 역에서 잘린 거죠. (웃음) 이후 매 시즌 공연에 참여하는 동안 일본 왜상, 러시아 공사, 이노우에 등 거의 모든 배역을 다 해봤어요. 그러다 2005년 10주년 기념 공연에서 다시 고종 역으로 컴백하게 됐고요. 공연 첫날 분장실에서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괜히 뭉클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젊은 시절의 열정을 바친 회한과 애증의 작품이죠.”
소중한 기억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는 정말 하고 싶은 역할이었고, 연습하는 동안 배우들과의 팀워크도 좋았기 때문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어요. 제 인생의 첫 타이틀 롤이기도 하고요. 10년 넘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모든 가사가 다 생각날 뿐만 아니라, 차타고 다닐 때도 여전히 종종 ‘베르테르’ 노래를 흥얼거려요. 특히 마지막 곡인 ‘발길을 뗄 수 없으면’은 정말 아끼는 곡이죠. ‘그대는 어쩌면 그렇게 해맑을 수 있는지…’ 이 아름다운 가사. 어쩌다 가끔 콘서트 같은 데서 이 노래를 부르게 되면 자동적으로 눈물이 나요. 아무리 슬픈 역할을 맡아도 눈물을 흘렸던 적은 없는데 말이죠. 그만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작품이, 또 베르테르라는 역할이 좋았나 봐요. 후회도, 아쉬움도 적죠.”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 <그리스>
“2003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청춘물 <그리스>에서 고교생 케니키를 맡게 됐어요. 무려 서른아홉 살 때까지 <그리스>를 했으니, 대단하죠? (웃음) 솔직히 당시에 작품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배우는 계속 활동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니까. <그리스>는 우여곡절 끝에 참여하게 된 사연이 있는데, 오디션에서 제가 지원한 역할은 킹카 주인공 ‘대니’였어요. 스태프들이 그러더라고요. ‘어따 대니’라고. 하하. 당연히 오디션에서 떨어졌죠. 그런데 얼마 후에 대니 친구 ‘케니키’를 하자는 연락이 온 거죠. 엄기준, 오만석, 고영빈, 김소현…. 지금은 다 쟁쟁한 배우가 된 멤버들하고 정말 재미있게 공연했어요. 관객들도 많이 좋아해줬고요.”
두 번의 뜨거운 박수 <오페라의 유령>
“과거에 에이콤이 제작한 <둘리>에서 ‘고길동’을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코믹 캐릭터를 하게 됐어요. 저는 그 역에 캐스팅된 게 의아할 정도였는데, 공연을 본 주위 사람들은 딱 어울리는 배역을 만났다고 했죠. 그 덕분에 <오페라의 유령> 초연에서 감초 캐릭터 ‘앙드레’를 맡아 좋은 반응을 얻었고, 재공연에도 참여했죠. <오페라의 유령>의 초연 오디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오디션 첫날 자유곡 심사 후에 ‘팬텀’과 ‘라울’, ‘앙드레’ 세 역할로 콜백을 받아서 속으로 내심 기뻤는데, ‘팬텀’이나 ‘라울’은 안 될 것 같았나 봐요. (웃음) 초연 당시 7개월이라는 장기 공연은 제 경제 상황을 적자에서 흑자로 돌려놓았고, 제가 좋아하는 술을 끊고 건강 관리를 하게 했어요. 관객들에게 많은 박수도 받았고요. <오페라의 유령>은 여러모로 플러스가 된 작품이죠.”
새로운 전환점 <닥터 지바고>
“배우로서 한동안 주춤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닥터 지바고> 오디션 요청을 받게 됐어요. 오리지널 공연 자료를 찾아보니, 나이가 꽤 많은 배우가 지바고를 맡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지바고에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외국 배우는 국민 배우였던 거죠. (웃음) 코마로브스키를 제안받았을 때, 처음엔 솔직히 그 역이 달갑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본을 받아보니 드라마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게 하는
캐릭터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연구했고, 코마로브스키로 저의 존재를 알리게 됐죠. 사실 예전엔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의 주연을 못한다는 것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저를 괴롭혔죠. 그런데 <닥터 지바고>를 하던 그 시기에 그런 생각들이 점점 부서졌던 것 같아요.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자고 마음 먹게 됐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0호 2015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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