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를 받았든,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든 누구나 결혼 전에 연애를 한다. 결혼을 염두에 두고 하는 연애는 상대방을 자신의 배우자로 삼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탐색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로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연애 후 결혼’이라는 순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결혼이 연애의 연장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인생 선배에게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당장 좋게만 보이는 상대방의 모습이 결혼 후에도 변치 않을 것이라는 착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단편소설로 데뷔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소설을 한 권도 쓰지 못한 무명작가 샬롯과 건축 회사의 말단 직원으로 성공을 꿈꾸는 일개미 레니도 그랬다. 둘은 어느 무도회에서 만나 첫눈에 반했다. 모두가 무도회장을 빠져나간 후에도 둘은 서로에 대한 매력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춤을 출 정도로 사랑했다. 연애 시절 레니는 시간이 날 때마다 샬롯의 소설을 읽고 함께 머리를 맞대주었으며, 샬롯은 레니가 일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연애 시절 서로에게 왕자와 공주였고, 그렇게 평생을 살 거라 기대하면서 결국 결혼이라는 문을 열었다. 그러나 결혼은 연애와 달랐다. 레니는 샬롯이 아니라 일 중심으로 움직였다. 낮이건 밤이건 상관없이 일에 매달렸다. 당연히 아내 샬롯과의 약속이나 부탁은 뒷전이 되었다. 특히 승진이 달려 있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레니의 마음에 샬롯의 자리는 희미해져만 갔다. 이 때문에 샬롯도 처음에는 섭섭함을 느꼈다. 자신의 작품 활동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레니에게 실망감이 더해 갔고, 샬롯 역시 자신의 소설에 더 많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편집장으로부터 로맨스가 없어서 출판이 어렵다는 피드백을 받은 후로 더욱 글쓰기에 매달리게 되어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서 레니와의 중요한 약속도 잊고 말았다. 이처럼 결혼은 두 사람을 왕자와 공주에서 하인과 하녀로 전락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샬롯이 다용도실 문을 열자 새로운 세상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샬롯은 더 이상 하녀가 아니었다. 장차 왕이 될 카일 왕자가 사랑하는 공주로 변신해 있었다. 샬롯은 연애할 때 느꼈던 설렘과 흥분을 다시 느꼈고, 세상의 중심이 된 것처럼 황홀했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샬롯은 레니에게로 돌아갔지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도대체 왜 연애와 결혼은 다를까? 서로를 왕자와 공주처럼 대접했던 이들이 결혼만 하면 왜 하인과 하녀로 서로를 대하는 것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연애는 일상의 탈출이지만, 결혼은 일상이다. 그래서 결혼은 ‘생활’(결혼 생활)이라고 하지만 연애는 생활이라 하지 않는다. 보통 우리의 생활과 일상은 흥미진진하지 않은 반복과 반복의 연속이다. 그러다 보니 지루해지기 쉽다. 지루한 일상의 탈출구였기에 연애가 좋았던 것이다. 반면 결혼은 지루한 일상이 아니던가. 둘째로 누구든지 자주 보게 되면 설렘과 흥분은 사라지게 된다.
이것은 우리 몸이 적응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 사실 설렘과 흥분은 몸의 긴장 상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우리 몸은 금방 지치고 병들게 될 것이다. 결혼한 이후에도 연애 시절처럼 상대방을 바라볼 때 설레고 흥분된다면, 분명 명은 짧아질 것이다. 셋째, 연애는 단면이라면 결혼은 양면이다. 연인은 상대에게 좋은 면만을 보여주려고 한다. 싸우더라도 각자의 집으로 가면 된다. 하지만 결혼은 싸움이 심해지더라도 떨어져 있지 못한다. 여전히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서 밥을 함께 먹어야 하고, 함께 누워야 한다. 상대방의 좋은 면도 보게 되지만, 더불어 상대방의 추한 모습까지 보게 되는 것이 결혼이다. 이 때문에 연애 같은 결혼 생활은 쉽지 않다. 물론 연애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그리고 결혼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두 사람의 노력 없이 마냥 행복한 결혼, 연애 같은 결혼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행복한 결혼 생활은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연애에서의 행복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라면, 결혼에서의 행복은 애써서 얻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건강한 결혼 생활은 갈등이 존재하느냐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결혼에서의 갈등은 필연적이라는 말이다.
갈등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결혼은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
당신과 나 현실의 무게에 눌려 도망치려
서로 외면했었지
누구 잘못도 아니었지
가슴속에선 이건 아니야 외쳐댔지만
못 본 척 그저 피했었지
하지만 지금 나 당신 앞에 있으니
너를 품에 안고 놓지 않을 거야
레니는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고 직장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승진과 인정이 아니라 배반과 헛수고였다. 이를 계기로 레니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샬롯에게 돌아가려고 결심했고, 그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보였다. 바로 샬롯이 머무르고 있던 세상. 그곳에서 레니는 샬롯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둘은 다시 행복의 문으로 나올 수 있었다,
결혼이라는 문을 통과하면 연애 시절의 흥분과 설렘은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행복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 결혼에서도 행복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잘 지내려면, 또 다른 문을 열어야 한다. 상대방이 살고 있는 세상, 즉 상대방의 마음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바로 소통이다. 서로의 마음 문을 열고 얼마나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느냐가 결혼 생활에서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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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0호 2015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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